4월 28일은 세계 100여 나라에서 함께 참여하는 "국제산업재해사망노동자추모의 날"이다. 전세계가 다같이 희생당한 노동자를 기억하는 날로 이 날을 삼은 것은 채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캐나다에서는 (각각 주 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어도) 1984년부터 기념해왔다. 1914년 4월 28일 산재보상법 (Workers Compensation Act) 제정을 기념하자는 취지이다. 한국에서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수은중독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문송면 군을 추모하는 취지로 한여름에 치렀다가 국제자유노련 (the 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 의 제안 뒤로 4월에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꽃개가 살고 있는 온타리오에서는 4월 28일도 4월 28일 나름대로 치르지만 산재노동자의 날 (Injured Workers Day)을 별도로 6월 1일에 더욱 의미있게 치러낸다. 오늘 주 의사당 앞에서 집회가 있었고 오후 2시엔 일터에서 희생당한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상영이 있었다. 함께 살고 있는 명민한 짝, 파트너의 제안으로 함께 참여하기로 하였고 낮에 같이 의사당에 도착했을 땐 너무 늦어 다시 발걸음을 영화상영 장소인 금속노동조합회관 (Steelwokers Union Hall) 으로 돌렸다.
20세 청년 로렌스 데이퀴언 "데이" 데이비스 (Lawrence Daquan "Day" Davis; "데이"는 가족들과 친구들 사이에는 불리우던 애칭이다) 는 고교를 졸업하고 갖가지 자격증을 땄지만 여전히 일자리를 구하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용역회사에 지원서를 낸 뒤 플로리다 잭슨빌에 있는 바카디보틀링 (Bacardi Bottling) 회사에서 잡오퍼를 받아 첫 출근을 한다. 영화의 스틸 사진으로 쓰인 데이의 사진은 그가 첫출근 뒤 화장실에서 찍은 셀카 (selfie). 여자친구에게 셀카 사진을 보내 첫 근무의 설렘과 미래에 대한 벅찬 기대를 함께 나눴다. 그리고 90분 뒤, 그는 현장에서 적재화 기계 (palletizer machine) 에 깔려 죽었다. 데이는 여느 바카디보틀링 정규직들처럼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것으로 고용됐지만 그는 "정규직이 아니었다". 심지어 바카디보틀링 회사는 그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했어도 데이의 고용주 (employer) 가 아니었다. 데이의 고용주는 레미디스태핑 (Remedy Staffing) 이라는 용역회사 (Temporary agency) 였다. 사건 초기부터 과실을 인정하지 않던 바카디보틀링은 추후 데이의 어머니에게 $250,000의 정산 (settlement fund) 을 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영화 제목인 "A Day's Work" 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데이는 근무 첫 날 변을 당했다. 그리고 그게 데이의 일 전부였다. "하루품" 을 뜻하는 이 말처럼 수많은 임시직노동자들 (temporary employees) 이 하루살이처럼 내일의 스케쥴도 모레의 스케쥴도 모르고 일한다. 오늘 하루 일할 수 있는 것이 그들의 전부다. 데이도 그날 아침 전화를 받고 (on-call) 시프트를 받았다. 아마도 정규직노동자 한 명이 시프트를 취소했거나 그날따라 물량이 밀렸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상영 뒤 토론에 참여한 영화제작자 가운데 하나인 데이브 드사리오 (Dave DeSario) 는 그 역시 임시직노동자 출신이다. 데이브는 토론자들 가운데 한 명인 산재노동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놓자마자 가장 큰 박수와 격려를 보냈다. 이 영화는 오늘 6월 1일, 캐나다에서는 처음으로 상영되었고 미국 내에서는 2015년 몇 군데 노동영화제를 비롯해 전역에서 상영됐다. 한국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을지, 상영을 할 수 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며칠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19살 젊은 청년 "김군"이 사고를 당해 현장에서 숨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김군"의 삶과 노동의 맥락은 "데이"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용역회사 은성메트로에 취직한 김군.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면 어머니를 모시고 잘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월급 144만 원 가운데 백만 원을 떼어 적금을 부었다. 그 적금은 오백만 원에서 멈췄다. 밥먹을 시간조차 빠듯해 작업가방에 컵라면을 넣어다니던 한 청년. 그랬던 그가 지난 3월부터 쉬는 날마다 메트로 본사 앞 피켓 시위를 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1. "여성혐오 범죄 (hate crimes of misogyny)"는 존재하지 않는다.
2. 존재하지 않는 여성혐오 범죄를 기정사실화해 또다른 분노와 혐오를 양산해서는 안된다.
3. 역차별을 양산하고 "남혐"을 조장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앞의 두 문장 1과 2는 문장으로만 놓고 볼 때 참으로 바라마지 않는 말들이다. 그런 세상이면 참 좋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저 말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 맥락(들)은 고사하고 완전히 틀린 말이다. 문법적으로 문제 없는 말이라고 말이 되는 말은 아니라는 말. 그리고 왜 저런 말같지도 않은 말들을 정성스럽게 하는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뭔지는 바로 3에 있다. 1과 2를 말하는 사람들은 이미 관습적인 사실 (institutional fact)이 사실로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억지를 쓰는 게다. 그 억지는 바로 마지막 문장, 3이다.
여성혐오 (misogyny) 는 별다른 게 아니다. 숨쉬는 일처럼 일상이고 한 성 (gender) 의 그룹을 동등한 객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 꽃개를 포함해 여성들도 여성혐오에서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남성만 여성혐오를 하는 것도 아니고 특히 돈없고 가난하거나 정신질환자인 남성들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일상이고 인간의 역사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나는 여자를 너무 좋아하는데 내가 왜 여혐이야? 라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헛웃음이 나온다. 여성혐오 (줄여서 여혐) 는 별개 아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를 샀던 기억, 아마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너무나 예쁘고 작고 아담하고 소중한, 그래서 지켜주고 아껴주고 보듬어야 할 존재. 삐약삐약 그 작고 노란 것이 움직일 때마다 몸서리치며 사랑하고 싶던 그 느낌. 그런데 갑자기 어느날 그 병아리가 구구단을 나보다 먼저 다 외우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닦고 자라고 잔소리를 한다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떨어뜨려 버린다, 넌 나 없인 아무 것도 아냐. 병아리 주제에. 그냥 이런 게 여혐이다. 원래 나보다 열등한 존재, 존재 그 자체로 유약하기 때문에 내가 지켜주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노랗고 작고 예쁜 것. 너는 그냥 그 자리에 그 존재로 있어야지 주제넘게 구구단을 외우고 양치질하라고 잔소리를 해!!! 무엄하다!
인종차별은 없다
오늘 정말 재미난 기사를 읽었다. 우리들 삶의 터전인 "마을 (neighbourhoods)"에 관한,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인종차별은 어떻게 우리 마을의 모양을 결정하는가. 다섯가지로 요약한 그 내용을 보자면,
1. 저소득 계층이 모여사는 동네의 "공기"가 안좋다. 산업폐기물 등 오염물질을 다루는 산업클러스터가 이 동네 주변에 형성되기 때문이다.
2. 이른바 "재개발"은 차이나타운의 지형을 바꾼다. 차이나타운은 대부분 도심 한가운데 다운타운에서 시작했다. (중국인들이 도심에 모여살기 시작한 역사적 배경을 살펴야 한다)
3. 비인간적인 건축, 구조물들 (홈리스들이 잠을 잘 수 없도록 칸막이를 둔 벤치 의자)
4. 열악한 대중교통 (부심으로 갈수록 열악한 대중교통은 저소득계층의 이동을 제한하고 이들을 범죄에 노출시킨다. 예. 원주민 여성들의 납치, 살해, 시체유기)
5.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의 축적은 저소득층 마을을 부심/주변부로 내몬다. "자연스런 분리" (고속도로 남쪽엔 고급콘도촌, 북쪽엔 저소득층마을)
페이스북에 올라온 기사. 댓글이 궁금해 댓글창을 열었더니 짜잔-
is everything fucking racist these days? stop trying to make something a racist problem that isn't
씨발 이젠 아무 거나 다 인종차별이냐. 있지도 않는 거 들이밀어 인종차별이라 지껄이는 짓 좀 그만해라.
엄연히 존재하는 인종차별 - 원인이든 결과든 - 애써 부인하려는 저 댓글의 주인공인 백인은 뭘 두려워하는 걸까. "역차별을 조장하고 백인혐오를 조장하는 이따위 기사는 집어쳐"
할말이 없다
직장에서 승진을 앞두고 있는 시점, 그게 가장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점인데 백인 두 명이 끼어들었다. 이번에도 어렵게 됐다. 두 명의 백인 가운데 하나는 최근에 고용된 사람인데 잡포스팅이 열리지도 않았는데 고용이 됐다. 정말 이상한 케이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회사 내 다른 프로그램의 매니저의 아들이란다. 옘병. 백인들이 이렇게 서로 밀어주고 땡겨주는데 비백인인 내가 당해낼 재간은? 나는 정말이지, 인종차별은 없다고 믿고 싶은 사람이다.
그들은 말할 것이다. 인종차별은 없어. 존재하지도 않는 인종차별따위는 말도 꺼내지 마.
아이 씨발. 젠장. 여자에 비백인에 거기에서도 소수민족에 성소수자인 나는 정말이지 씨발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오늘 (현지 시간으로 6월 2일) 경찰의 공식 (?) 발표를 보게 됐다. 예상한대로 정신질환에 따른 "묻지마 범죄 (random crime)" 로 가닥을 잡는 듯한데 어쩔 수 없이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말인즉슨 정신질환에 따른 것이니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이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니만큼 일반적인 살인범죄, 증오살인 범죄 (이 경우 가중처벌하는 것이 상례이나 한국에는 아직 증오범죄가 크리미널 코드에 존재하지 않는다. 웃긴 것은 "묻지마 범죄" 도 크리미널 코드에 없다는 것) 와는 달리 살인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물을 수 없다. 양형의 근거로 쓰일 것이다. 경찰 스스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이의 의견을 밝히지 않는다면 역으로 정신질환자를 차별하는 것으로 된다.
앞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여성혐오 (밋쏘지니, misogyny) 범죄, 이주노동자와 비백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외국인혐오 (제노포비아, xenophobia) 범죄,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호모포비아 범죄, 그 외에 소아성애 범죄 등 사회적 소수자를 핍박하는 범죄들은 죄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일 가능성, "묻지마 범죄"일 가능성, 개인(들) 일탈일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졌다. 사실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경찰의, 행정당국의 행보가 그럴 것 같다는 거,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
돌아가신 분께 명복을. 가족들과 그녀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 또한 몸과 마음을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희생당한 모든 희생자들-생존자들을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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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기사에 따르면 2008, 2011, 2013, 그리고 2015년에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전한다. 입원 기간도 한 달에서 6개월 등 각각 한 달 이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기준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이 곳 캐나다에서 조현병 (schizophrenia) 으로 위와 같은 입원치료 기록을 보이는 사례는 중증에 해당한다. 중증이라 함은 "각별한 치료"를 요한다는 말이다. "각별한 치료"의 내용은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정기적으로 의학적 치료를 받고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하는 것에서부터 아예 보호감호소로 이송하여 신체적 자유를 제한당하는 케이스까지 다양하다. 물론 어떠한 의학적 치료도 받지 않고 침술 등의 대안치료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커뮤니티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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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기사에 나온 것으로 볼 때 망상조현 (Paranoid schizophrenia) 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망상은 조현증의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다. 영화 "뷰티풀마인드" 로 잘 알려진 존 내쉬,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면서 방송국에 난입한 어떤 사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으로 예를 든다면 대표적으론 딱 두 사람이 떠오른다. 꽃개는 의학적 전문가도 아니고 정신질환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않았지만 지금까지 만났던 망상조현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 이 사건의 가해자는 너무나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우선 이 가해자는 사건을 "준비" 했다. 미리 회칼을 훔치고 화장실에 들어가 한시간이 넘도록 기다렸다. 칼과 같은 무기를 소지하는 일은 드물지 않은 일이다. 중증의 망상조현 질환자들 가운데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무기를 소지하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다. 외계인이나, CIA-외부의 지령을 받은 타인이 자신을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이유없이 먼저 공격하거나 타인의 신체, 재물을 손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가다 망상조현 질환자들/범죄피의자의 가방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물건들이 (예를 들면 워키토키 무전기) 발견된다. 이유를 물으면 모두들 자신을 방어해줄 물건이라고 답한다. 선제공격용으로 무기를 준비하는 경우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보지 못했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한 시간 이상 불특정-대상을 기다렸다는 부분이다. 한 시간 (60분) 은 정신질환을 앓지 않는 사람에게도 무척이나 긴 시간이다. 60분 동안 밀폐된 장소에서 무기를 들고 대기하는 일, 그것도 특정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을 "공격" 하기 위해 기다린다? 망상조현 질환자들이 가해자로 연루된 어떤 사건에서도 이런 케이스는 보지 못했다. 만약, 가해자가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어떤 여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 여성이 가해자를 공격할 것 같아, 혹은 그 여성의 얼굴이 자신을 괴롭히는 대상의 얼굴과 같았다는 착란으로 칼로 찔렀다, 고 하면 망상조현을 참작할 수 있다. 그러나 불특정 개인을 밀폐된 화장실에서 60분 이상 기다렸다가 먼저 공격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보편적인 망상조현 형사범죄 케이스를 훌쩍 넘어서는 대단히 의외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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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링이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가해자의 정신감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범죄를 저지른 그 순간의 행위가 형사범죄적으로 책임을 질 수 없는 상황인지 (Non Criminally Responsible) 아니면 망상조현 이외의 다른 정신질환 때문인지 밝힐 수 있는 한 밝혀야 한다. 망상조현 질환자들이 사람을 막무가내로 죽일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로 알려져서는 곤란하고 이런 식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스티그마가 강화되서도 안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가해자가 이미 진술한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여성을 죽였다, 는 말. 이 범죄의 성격을 가장 잘 정리해주는 말이다. 혐오범죄. 그 중에서도 여성혐오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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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원인을 "정신질환"으로 돌리면 차후 처리는 간단하다. 정신병환자 한 명의 일탈로 원인을 삼으면 그 한 사람만 처벌하면 되고 피해자 또한 "재수가 없었다" 따위로 퉁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혐오범죄로 원인을 삼으면 사후 처리가 복잡하고 담당자들이 고달퍼진다. 사회의 책임으로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 혐오범죄의 사례가 있는지, 형사범죄 케이스와 법적 근거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차별철폐법도 수립할 수 없는 나라에 혐오범죄 케이스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이명박그녜 전에는 나름대로 괜찮은 나라였으니 있을 수도 있겠다는 간절함. 찾아봐야겠다.
건강검진 날짜를 잡기 위해 클리닉에 전화. 베트남 이민 2세대 여성의사 닥터 P가 우리의 패밀리닥터. 닥터 P는 지금 휴가 중이라 가장 가까운 날짜가 6월 1일이란다. 뭐 이 나라에서 기다리는 일은 일도 아니니까 그러려니. 6월 23일에 보기로 하고 아침 첫 시간으로 예약. 파트너 방문까지 함께 예약하려고 해, 했더니 그 남자 (him) 도 같은 날 하겠냐며 묻는다. 남자가 아니고 여자 (her) 야. 하고 답했더니 바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한다.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빴지만 미안하다고 바로 말하는데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이성애 관계만 상상할 수 있는 제한적인 상상력의 그 사람이 불쌍해서 그냥 알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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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엔 갑자기 우박 같은 눈발이 날렸다. 날이 우중충해지더니만 갑자기 후두둑. 그리곤 또 얼마 안 있다가 해가 들어 볕이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다가 또다시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가 빗방울이 듣고 또 있다가는 해가 다시 났다. 오월 중순에 우박 같은 게 내리는 일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무엇보다 이런 날씨 변화가 이제는 흔한 일로 되어간다는 게 다소간에 우울하다. 지구온난화 (Global Warming). 더 이상 사람들은 지구온난화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 대신, 기후 변화 (Climate Change) 라는 가치중립적인 말을 쓴다. 비슷한 것으로 유전자조작식품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을 유전자변형식품이라고 일컫는다. 프레임의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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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에서 온 한 명의 서비스유저. 나고 자란 나라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유명한 화가로 활동했던 이 양반이 어떤 사기꾼의 꾐에 빠져 그림 200점을 들고 나와 뉴욕에서 전시회를 했다. 그런데 그 그림값을 몽창 사기꾼에게 빼앗기고 이 나라 도시, H 에서 그 사기꾼이 운영하던 식당에 고용되어 하루 1달러를 받고 노예처럼 일했다. 이 양반이 알려준 홈페이지를 보니 (구글을 통해 영어로 번역기를 돌려 글을 읽어보니) 그 사기꾼은 여전히 이 화가의 매니저로 알려져있다. 이 양반의 나라에서는 그렇게 알려져있다는 말이다. 정작 이 나라에서 그 사기꾼은 인신 매매 (Human Trafficking) 케이스로 감옥에 들어가 계시는데 말이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손짓발짓, 구글 번역기.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서 가까스로 짧은 소통을 이뤄냈다. 내일, 통역하는 사람을 불러서 다시 이야기를 하자. 고 했더니 알았다고 아이처럼 좋아한다. 사람 하나 여럿 등쳐먹는 일, 아예 작정하고 덤벼들면 일도 아니구나. 사기꾼이 어떻게 사기를 치는지 알아내기가 어렵지 알고나면 너무나 황당하리만치 간단해서 혀를 내두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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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사이에서 벌어진 벤치클리어링. 주먹질이 오고간 희대의 벤치클리어링 탓에 블루제이스의 몇몇 선수들과 감독이 최소 2게임에서 10게임까지 서스펜디드 벌칙을 받게 됐다. 야구는 몸싸움이 없어서 그럭저럭 볼만한 스포츠인데 한번 저렇게 몸싸움이 붙으면 또 그런대로 볼만하다. 농구, 아이스하키, 축구처럼 늘상 내내 신체접촉을 하면 모르겠는데 긴장이 없다가 갑자기 붙어버리면 어디로 어떻게 튀어버릴지 모르는 그런 매력이 있다고나 할까.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 인종차별에 맞서 영웅적인 투쟁을 이뤄낸 두 사나이들. 그들의 실제 젠더관념은 어땠는지 잘 들여다볼 수 있는 키를 제공한다. 그들이 말한 인간해방, 차별철폐에 여성들의 해방과 성차별철폐는 없거나 있더라도 희박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그 둘 사나이의 업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견지한 한계가 무엇이었는지, 왜 그랬는지 그 정도는 짚어야 한다는 것일 뿐. 그리고 그 한계를, 역설적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싸워나가야 하는지를 이 두 흑인 여성이 잘 보여준다.
근황 1
동네 중고물품가게 (thrift stores) 에 혹시 벨트가 있을까 싶어 줄자를 들고 갔다. 정 살만한 물건이 없으면 눈요기라도 하는 재미가 있는 데가 바로 중고샵이다. 한국에도 아름다운가게나 온라인 중고나라 같은 게 있듯이 이 나라에도 동네마다 이런 곳이 있다. 구세군 (Salvation Army) 이 운영하는 곳도 있고 이 외의 종교단체, 구호단체가 운영하는 곳도 있다. 시민들에게 기부-도네이션을 받아 운영하고 이익이 남으면 단체의 운영에 보탠다. 우리 동네에 있는 곳은 개인이 하는 곳인데 로컬 여성쉼터와 자매결연을 맺어 분기별 이익금의 일정액을 기부하고, 물품을 기부하기도 한다.
역시 마음에 드는 벨트가 없다. 둘러보다가 책 두 권을 각각 $3.99 에 샀다. 로렌스 힐의 책과 "말리와 나" (밥 말리 아님). 로렌스 힐의 책은 한국어로 옮기기가 참 난망. 한국에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최근 CBC 에서 드라마로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다. 몇 년 전에 이 책을 살까 하다가 포기했고 도서관에서 한 번인가 빌렸는데 끝내지 못했다. 올 해 안에 끝냈으면 좋겠다. "말리와 나"는 한국어판으로도, 영화로도 한 번씩 접했는데 두번 다 꺼윽꺼윽 울면서 끝낸 터라 잔상이 오래 남았다.
근황 2
한국에 있을 적에 아주 가끔, 술을 많이 연거푸로 마신 뒤에 항문에 뭐가 삐죽 나오는 그런 고통을 겪곤 했다. 언젠가 대장항문과에 갔더니 이 녀석이 한 번 나오기 시작하면 계속 나올 수 있다면서 수술을 권하기도 했었다. 되도록이면 몸에 칼을 대고 싶지 않아 거절했는데 그 뒤로 괜찮다가 아예 잊을만하면 - 그러니까 술을 연짱으로 마시면 또 나오곤 했다.
이 나라에 온 뒤 몇 차례 그런 일이 있긴 했지만 -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말야! - 하루만에 괜찮아지곤 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지난 주 수요일, 다시 도졌다. 역시 하루면 괜찮겠지 했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핑계로 목요일, 금요일을 종일 쉬었다. 금요일에 트레이닝이 있었는데 가지 못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 연식이 될만큼 되어서 예전과 같은 회복력 (resilience) 을 기대하는 건 힘든 것 같다. 다만 평소에 신경을 더 쓰고 관리를 하는 수밖에 없다.
근황 3
북미대륙 어머니의 날. 엄마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드렸다. 간만에 전화를 드리는 것. 잘 계신지 여쭙고 저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요...
칠순이 넘으신 어른의 생각이 바뀌는 걸 기대하는 건 참으로 무망한 일이겠지. 나도 엄마께 변화를 강요하지 않듯이 엄마도 내게 변화를 강요하지 않으시고 서로 피차 차이를 인정하고 살았으면 싶은데 그건 과도한 바람인 모양이다. 하긴 그렇게 살면 그냥 평행선이니까. 슬프다.
서비스유저 (service users), 클라이언트 가운데 한 분이 갑자기 분노를 표출하고 적절지 않은 언사를 하는 바람에 긴장감이 조성됐다. 이 분은 캐나다에서 태어난 백인, 외모로 보건대 전형적인 서-북유럽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듯. 즉, 부모나 조부모 등 조상들이 서-북유럽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사람이라는 말이다. 간간히 대화를 나눠본 결과 조상 가운데 원주민 (First Nations) 혈통은 전혀 없다. 엄밀히 따지면 이 양반도 이민자의 후손. 몇 년 전에 하우징 어플리케이션을 냈는데 어찌어찌한 이유로 어플리케이션이 펜딩됐다. 아무리 기다리는 기간이 오래 걸린다해도 벌써 아파트를 받아서 입주했어도 서너 번은 했을 기간. 이유를 물어보니 황당한 대답을 한다.
"빌어먹을 시리안 리퓨지들이랑 무슬림들이 내 조국에 들어와서 아파트를 다 빼앗아 갔어. 개후레자식 같은 이민자들이 내 조국에 와서 일자리를 다 훔쳐가고 있다고. 이건 정당한 일이 아니야."
응?
이유를 샅샅이 찾아보니 하우징 신청서를 낸 뒤에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다. 원래 본인만 할 수 있는 이 업데이트를 본인이 하기 어려우면 케이스워커들이 대신 할 수 있도록 동의서를 제출하고 해당 케이스워커와 한 달에 한 번, 적어도 분기에 한 번만이라도 팔로우업을 하면 되는데 그걸 안했다. 공공하우징회사에서는 신청자가 일정 기간 업데이트를 하지 않을 경우 신청서를 펜딩하거나 더 뒤의 웨이팅리스트로 보낸다. 신청자가 그 사이 다른 아파트를 얻었을 수도 있고, 공공하우징 서비스를 원치 않을 수도 있고 (변심했을 수도 있고) 혹은 심지어 사망했을 수도 있고 등등의 이유 때문이다. 최소한 분기별 일 회 업데이트가 필요한 까닭이다. 이유를 설명하니 자신은 몰랐단다. 그리고 홈리스로 사는데 어떻게 그걸 일일이 확인하고 업데이트하냐며 되려 성을 낸다. 한 달에 한 번 장애보조금은 받고 있잖아. 그 체크는 어떻게 수령하고 있었어? 어떻게 했는지, 아니면 누가 도와줬는지 말해줄 수 있니? 그건 꽃개 네가 알 바 아니야, 라며 소리를 지르고 자리를 뜬다. 뒤돌아서 가는 길에 혼잣말로 이민자들 확 다 뒈져버려,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분노를 시전하시곤 사라졌다.
이런 양반들을 일컫는 오래된 슬랭으로 화이트트레쉬 (white trashes) 가 있다. 면전에서 이 말을 하면 곤란하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는 단어. 대체 이 사람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을 거다. 추측컨대 남자, 중년 이상의 연령, 저임금노동자 혹은 실업자, 홈리스 등의 반피티/룸펜 피티 그룹 가운데 이런 부류들이 많을 것 같다. 최근엔 젊은 남성들 가운데 여성혐오-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동서를 막론하고 넓게 퍼진 억울력자들.
실제로 이들로 하여금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원인을 함께 파헤치고 그것에 함께 맞서자고 하기까지 지난한 시간과 노력이 든다. 가령 저 백인 클라이언트에게 한없이 부족한 공공하우징 공급 정책을 뜯어고칠 수 있도록 정부를 압박하자고 한들 이이에게 그 말이 통할 리가 없다. 당장 트럼프 같은 인물이 캐나다에도 필요하다고 하는 저런 사람을 보면 "정내미"부터 떨어진다.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거다.
이명박귾혜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외국인노동자들과 불법체류자들을 추방해야 내국인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목놓아부르짖는 이들에게 노동시장정책의 불합리성과 "쉬운 해고"가 목적하는 바를 설명한들 동의를 얻어낼 순 없을 거다. 아마 대번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 것이다.
말을 해도 말을 못알아들으니 말을 할 수가 없네, 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그런데, 그런 목불인견 (目不忍見) 의 상황을 알고도 하는 일이 나의 일이다. 배짱을 좀 더 두둑하게, 좀 더 여유를 가져가겠다. 야구와 마찬가지로 나의 일의 가장 큰 적은 일희일비 (一喜一悲) 인 것을.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 토요일 이브닝 끝. 퇴근길. 하필이면 딱 집으로 가는 그 길 지하철만 운행 중단. 셔틀 버스 탔음. 나랑 다른 한 명 아가씨 빼곤 다 남자들 (외관상). 아 이 지랄맞은 냄새. 제발 좀 씻으란 말이다. 아무래도 이 구역질나는 냄새 때문에 남자들하고 친해지기는 영 글러먹었다. 다음 생에서는 코맹맹이로 태어나기로 했다. 제발 좀 씻으라규ㅠㅠ. 저 불쌍한 아가씨. 표정이 거의 나라잃은 얼굴이구나.
** 클라이언트 한 분이 청바지 위에 사각팬티를 입고 등장. 그 복장으로 백야드, 프론트 주차장 청소를 하심. 말려도 듣지 않음. 몸은 우리와 함께 있지만 정신은 먼 곳에. 이웃 한 명이 정문 초인종을 누름. 저 남자 이상해. 알았어 얘기해볼께. 영 불편하면 경찰을 불러. 이 클라이언트의 "문제(?)"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no aggression) 그냥 정신이 많이 아프다는 점. 욕도 한마디 않고 묵묵히 그 복장으로 청소를 한다. 아, 가련한 인생이여.
*** 트윈스는 내일 메이데이 선발로 봉중근을 예고했다. 51번 봉중근이 5월 1일 역투한다. 자책점은 아니겠지. 응?
이상훈 선수, 아니 코치가 나오는 다큐를 봤다. 그냥 계속 이상훈 선수라고 할래, 아 씨벌 이르케 늙다니... 슬픔... 이상훈 선수는 정말로 팬을, 트윈스 팬을 아끼는 진짜 퍼포머인 것 같다. 진정한 프로페셔널. 중간에 2002년 뒤로 한국시리즈에 오르지 못한 트윈스 흑역사를 거론하면서 이런 얘길 했다. (워딩은 다르지만 내용은 아마도) 옛사랑은 새로운 사랑을 만나서 추억이 되는데 트윈스 팬들은 새로운 사랑을 아직도 못만나서 벌써 추억이 됐어야할 옛사랑을 부여잡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그게 미안하다고. 아, 눈물이...주르륵...
다큐를 다 보고 설겆이를 하면서 파트너에게 이런 말을 했다. "트윈스가 올해는 패넌트레이스에서 2등을 했으면 좋겠어요. 1등하면 한국시리즈 경기까지 너무 오래 기다리니까 경기 감각이 떨어져요. 플레이오프 잘 마치고 한국시리즈 가는 거 그것만 하면 좋겠어요" 파트너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그 얼굴은 이미 걱정 시작. 언젠가 트윈스의 연패에 시름시름 앓는 나를 보시곤 "이제 할만큼 했으니까 응원하는 팀을 바꾸면 안될까요" 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하신 적도 있었다. 아, 알아요. 김칫국 그만 들이킬께요. 꼴등해도 좋으니 재밌게만 해다오. 나의 트윈스들아. 한국시리즈, 그게 뭐 별거냐, 옛사랑은 옛사랑인 거지 뭐, 그게 대수겠어! (대수야 응?) 넌 이미 나에게 이만큼의 추억인 것을!
어떤 감독님
2014년 10월 경. 이글스 팬들이 열정과 성심을 다해 어떤 감독 옹립을 부르짖으려던 시점에 꽃개는 제발 이글스 감독으로 그 분은 안오셨으면 하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막 서산 훈련장을 마련한 시점으로 이글스의 팜 시스템을 키울 수 있는, 화수분 야구를 실험할 수 있는 시작점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 분을 반대했다. 사실 등번호 38번이 지나간 길엔 풀도 나지 않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모든 것을 쥐어짜내는, 마른걸레까지 짜내는 것은 미래를 현재에 저당잡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영혼을 파는 파우스트와 같다고 할까. 달콤할는지 모른다. 그 현재의 짧은 순간엔. 하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2014년 10월 경. 그 감독님을 부르짖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선 느낌이다. 그 감독을 비판하고 심지어 그 감독이 했던 지난 과거의 동정까지 하나하나 들추고 있다. 추억이 될 수 있었던, "9회말 역전의 리더쉽"으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었던 어떤 한 사람이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있는 거다. 추억은 추억이 될 수 있는 그 순간까지, 그 역치까지만 추억이어야 추억일 수 있는 모양이다. 추억이 되었다면 딱 좋았을 어떤 감독님을 보자니 다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그만두기엔 모양새가 더 이상해져버렸다. 무엇보다 의리의 회장님이 나가라고 할 리도 만무하니 도리가 영 없다. 지켜보는 수밖에. 반등의 기회는 올 것이다. 이글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