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흥미로운 국문 기사 하나를 접했다. 한국 여성의 평균 신장이 지난 100년 사이 20.1㎝나 폭풍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세계 200개국 가운데 가장 가파른 성장이라고 한다. 영국 임페리얼컬리지 연구팀이 조사해 발표한 자료는 여기에서, 그것을 다룬 가디언 기사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로서 지난 몇 년 간 혼자만 깊이 생각하고 있었던 한 가설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선 것 같은 즐거운 Kibun.
1.
물리적으로, 그러니까 주먹으로 남자들과 더 싸웠다간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을 깨달은 건 창피하지만 스물이 훨씬 넘어서였다. 아니 그 전에 약간의 깨달음의 순간이 있기는 했다. 아마 십대 후반, 남동생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 전에 남동생과 종종 주먹다짐을 하곤 했는데 언제나 내가 이겼다. 그런데 어느날, 그러니까 그날 또 싸우다가 아구창을 한 대 맞았다. 결국 이기긴 이겼는데 남동생에게 맞은 아구창이 무척 아팠고 통증이 며칠 갔다. 아 이 놈이 많이 컸구나. 그날 우리 둘의 싸움을 말리던 엄마께서도 한 군데를 다치셨다. 그 뒤로 우리 둘은 싸우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학 신입생 시절. 학교에서 교육투쟁 농성을 하던 밤, 가까스로 강간을 모면한 그날밤 그 예비역 남성과 싸우다가 또 아구창을 맞았고 이번엔 된통 맞았는지 어금니가 산산조각났다. 안경을 쓴 그이는 격투 과정에서 나에게 맞아 눈썹을 오센티미터 꿰맸는데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깨달았다. 더 이상 물리력으로 어른 남자들과 싸워선 안되겠다. 이러다가 틀니를 하고 말지. 아마 죽을지도 몰라. 슬펐다. 아마 이 시점부터 근력/ 체력에서 여와 남의 차이는 생득적이라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일종의 자기합리화.
2.
또 십 년 뒤. 이름난 한 페미니스트 교수 K와 술자리를 갖게 됐다.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성차이 (gender differences) 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체력적으로 남성집단이 원래부터 강할 수밖에 없지 않냐는 얘기를 했다. 교수 K 는 원래부터라면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냐, 원시공산제시대부터냐, 등등의 질문을 했다. 나는 당연히 그렇지 않겠냐고. 사냥과 채집의 생산활동, 출산과 양육 등등 불라불라 떠들었다. 그러다가 이 양반이 가만히 질문을 했는데 자세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러하다: 만약 잉여생산을 (그러니까 예를 들어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한 집단의 성이 독점하거나 과점하여 소비하고 이 행위가 대를 이어 몇 천년 동안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그 독과점 집단의 신체발달/ 근육의 질과 양 또한 상대적으로 비례하여 성장하지 않겠냐고.
3.
어린 시절, 명절에 외갓집에 가면 육류/어류 등의 음식을 우선적으로 소비하는 순서는 외삼촌, 외삼촌의 장남, 외삼촌의 차남이 1순위-3순위였다. 이것은 거의 고정적이었고 그 때만 해도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이던 외할머니는 육류를 잡숫지 않으셨고 나도 고기를 먹지 않았기에 별 생각이 없었다. 음식이 모자란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것 또한 큰 영향을 미치긴 미쳤다. 의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이런 패턴이 외갓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 보편적인 일이라는 것을 나이들면서 알게 됐다. 특히 K 교수와 만난 그 뒤로 잘 관찰해보니 여느 집마다 고기를 굽거나 "요리"를 하면 가장, 아들, 딸, 엄마 순서로 배정하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도메스틱 질서에서만 이런 공통점이 있는 게 아니었다. 회사나 학교, 여타 사적인 모임 등에서도 덩치가 큰 남자나 아저씨들 중심으로 밥상권력이 재편된다. 고기를 굽거나 시중을 드는 사람은 대부분 어린 사람들 (주로 여성들) 일 가능성이 높고 그 어린 여성이 고기를 굽거나 이런저런 잡일을 하는 동안 남자들은 그 고기를 쳐묵쳐묵한다. 그 남자들이 가만히 앉아서 쳐묵쳐묵해도 되는 지위에 있거나 남자라면 그래도 되는 문화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에 만났던 한 여성 활동가는 집에서 동태탕을 끓이면 동태살이 그득한 부위를 오빠와 남동생에게, 꼬리 부위는 자신에게 주는 할머니와 싸운 적도 있다고 했는데 그 때마다 할머니께서 생선은 꼬리가 맛있다, 고 하셔서 기가 막혔다고 했다. (응? 어두육미 아닌가?)
학교식당이나 급식시설을 갖춘 회사에서는 남성에게는 밥이나 반찬을 더 주고 여성에게는 그에 비해 적은 양을 준다. 배식하면서 필요한 양을 미리 물어보지 않는다. 지레짐작한다. 스스로 급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 전의 일이다. 요즘에는 이런 일은 없겠지.
"공대여자밥" 이란 말이 있었다. 여학생이 밥을 많이 먹으면 "너 공대 다니냐" 는 농담이 실제 현실에서 유력하게 쓰이고 개그로 취급받던 그런 때가 있었다. 요즘에는 이런 일은 없겠지.
사내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된다. 곧휴가 떨어진다. 는 말이 있어서 그런지 (그런데 나는 궁금한 게 부엌에만 들어가도 똑 떨어질 정도로 간신히 붙어있는 거라면 평소에 불안해서 어떻게 살지 그게 참 궁금하긴 하다) 음식을 장만하는 일엔 고약할 정도로 진저리를 치면서 그 음식을 주도적으로 소비하는 일엔 열심이다.
이런 불편등한 질서와 문화가 당연한 것으로 고착되어 몇 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면 상대적으로 음식배정 순위에서 밀린 집단이 유전학적으로도 근육발달 측면에서도 왜소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4.
흥미로운 것은 지난 백 년 동안 한국 여성들의 키가 20센티미터나 성장해 성장속도에서 1위를 보인다는 그 부분인데 지나친 가정이지만 - 억지이겠지만 만약, 적어도 최소한 임진왜란 뒤 지난 몇백 년 동안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수준으로 영양섭취를 했다면 아마도 "180 아래는 루저" 라는 말을 했다고 십자포화를 맞고 산화한 여성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다는 그런 생각. 따라서 당연하게도 메갈리안 같은 "극단주의자"도 없었을 거라는 그런 생각.
이선옥 작가가 어떤 양반이고 어떤 글들을 썼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처음에 페이스북 피드에서 이 글의 글쓴이 이름을 봤을 때 공선옥 작가를 떠올렸고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비로소 공선옥 작가가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으니까.
"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 라는 제목에 "선택적 정의와 진보의 가치… 극단주의자들이 우리의 신념을 대표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부제를 단 이 글에 대해 하나하나 해부하는 짓은 하지 않으려 한다. 인신공격이나 여타 불필요한 감정소모/ 시간낭비를 동반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 논리적 정합성이나 개요구성, 주어를 적절히 활용하는 상식적인 글쓰기 등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글은 영 아니다. 아니,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니라고 해야겠다. 이선옥 작가는 글을 잘 쓰는 것으로 알려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계실텐데 아마도 이 글은 급하게 쓰신 모양이거나 전공분야가 아닌 것 같다. 그럴만한 이유, 꼭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련다.
한마디로 말해 이 글은 -슬프게도- 아주 간단히 논파당할 수 있는 글이다.
"당사자인 여성 성우는 입장문을 통해 넥슨사와는 계약금을 받았고 잘 해결되었으며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밝혔으나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갑을관계에서 벌어지는 부당해고로 이 사안을 규정하기는 어렵다."
"당사자 역시 부당해고가 아니며 그렇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갑질 때문에 해고당한 약자 프레임에 익숙한 진보진영은 관성을 반복한다."
"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말이 있다. 문법적으로야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읽는 이의 당파성에 따라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는 말이다. 아마도 이선옥 작가는 "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말에 동의하는 당파성을 띨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아주 많은 이들이 - 이선옥 작가의 이 문제적 글에서 표현되는 많은 "대중" 이 반대편에 서 있다. 기업하는 사람, 부자들, 1%의 사람들만 "해고는 해고일 뿐이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정리해고, 조기퇴직 등을 기업하는 사람들은, "대중" 들은 "구조조정", "경영합리화" 등으로 표현한다. 김자연 성우의 케이스가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말은 그래서 웃긴다. 고약하다. 하지만 - 말인즉슨 부당해고가 아니긴 아니다. 정부와 자본이 정한 룰에 따르면 김자연 성우는 부당해고를 다툴 수 있는 영역에 있지 않다. 특수고용노동자, 자영업자, 일용직노동자 정도 되려나. 그때그때 수요에 따라 일감을 받고 일하고 노임을 받으니 말이다.
자, 정리해고. 희망퇴직... 구조조정이 절실한 회사가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했고 그래서 노동자들을 해고했으며 해고위로금을 지급했다. 노동자들이 원하는대로 퇴직신청을 받아 희망퇴직시켰고 합당한 보상금도 지급하기로 했다.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의 경우 일할 때마다 주기로 한 돈을 약속대로 다 지급했다. 문제 있나? 필요하면 쓰고 쓴만큼 돈줬는데 거기에 위로금까지 올려줬는데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법대로 다 했는데 왜 떼를 쓰나.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해온 이선옥 작가의 스탠스는 김자연 성우의 계약해지 건에서 대번 휘청한다. 큐 (Cue) 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성적대상화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가 성적대상화의 전형으로 욕먹는 게임의 성우로 참여 (...)". 혐의를 억지로 두자면 그렇다는 거다.
천정환 씨가 최근 사태에 대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선옥 작가가 선호하는 "차분하고 냉정한 분석과 합리적" 인 글쓰기를 볼 수 있다. 더구나 불편부당하기까지 하니 적극 추천하고 싶다.
* 이선옥 작가가 본인의 저 글을 통해 상정한 독자 (타겟층) 는 진보정당-노동운동하는 부류, 특히 김자연 성우 계약해지의 부당성을 알린 그룹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일베리안들과 오늘의유머 (오유리안) 들이 더 좋아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메갈은 표현의 막무가내를 없애면 상식 (몰카찍지 마세요, 성폭력하지 마세요, 데이트폭력하지 마세요, 여자를 사람으로 봐주세요) 이 되지만 일베는 그 표현을 걷어내면 오유가 된다" 는 말이 있다. 이선옥 작가의 이 글이 어느 당파성에 복무하게 될는지 답이 너무 뻔해 지켜보는 것조차 재미가 없다.
*독자층을, 타겟을 분명히 상정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면 그 타겟에 충실해 글을 쓰면 되는데 타겟층을 벗어난 사람들에게까지 호소하고 사랑받으려다보니 망한 글이 되어버렸다. 아니면... 정의당 류의 진보정당이 그만큼 널럴하다는 방증인가?
* 유상무 사례, A B 두 사람이 싸우는 사례. 이선옥 작가는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 흠좀무
* 모르긴 몰라도 이선옥 작가는 성서비스 판매 여성의 노동자성에 대해선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 구글링해봤는데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알 수 있었으면 싶다.
피해자 맨디와 가해자 무스타파. 둘은 모두 대학 박사과정 학생이자 조합 (Union) 소속원. 맨디는 사회학 전공, 학부에서 범죄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무스타파는 조합 고위층 간부로 활동했다. 이 둘이 서로 가깝게 알고 지낸 지 2주일, 사건은 지역노조가 파업을 결의한 2015년 겨울 어느날 밤에 일어났다. 조합 사람들은 파업결의를 경축하기 위한 모임을 열고 술자리를 가졌다. 감기에 시달리던 무스타파는 참석하지 못했고 이를 아쉬워한 맨디는 무스타파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낸다. 같이 술마시고 "화끈한 밤 (having a hot sex)" 을 보내자는 내용이었다. 이 문자메세지는 나중에 무스타파 측에 의해 강간이 아니라는 주장; 합의된 성관계 (consensual sex) 였다는 근거로 활용된다.
피해자 맨디는 무스타파에게 화끈한 밤을 보내자며 "먼저 제안" 했고, "술을 많이 마셨"고, 무스타파의 집에 "자기 발로 걸어갔"다. 침대에서 맨디는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러나 무스타파가 오랄섹스와 인터코스 섹스를 강요하고 그녀를 강간할 때 그것엔 동의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난 맨디는 하루 뒤 병원에 들러 검사 (Rape Kit) 를 받았고 또 며칠 뒤 경찰에 피해사실을 알렸다. 약 2년여 지속된 법정공방 끝에 판사는 강간은 강간이다, 라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피해자가 술을 마셨는지, 밤에 혼자 있었는지, 성적으로 문란했는지, 가해자와 데이트를 했는지 혹은 피해자가 어떻게 옷을 입었는지 이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무도 [이런 이유로] 강간당해서는 안된다."
"It doesn’t matter if the victim was drinking, out at night alone, sexually exploited, on a date with the perpetrator, or how the victim was dressed. No one asks to be raped."
179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 (Verdict;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을 읽다보면 맨디가 얼마나 참혹하게 지난하게 법정 투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판사의 판결문엔 참으로 훌륭한 표현들이 있다. 특히 말미에 있는 판사의 생각들. 마야 안젤루와 버지니아 울프를 언급한 부분.
한편 피해자 맨디, 백인에 이성애자에 배울만큼 배운 맨디는 법원 판결 뒤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본인의 기득권 (privileges) 을 언급하며 이런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백인이고 이성애자고 공식 학문과정에서 도달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단계 (박사과정) 에 있으니 배울만큼 배웠고 (그 탓에) 법 체계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고 있다. … 배우지 못한 비백인이 성폭행당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white, heterosexual woman in my late 20s with a graduate level education and an in-depth knowledge of the legal system … what can be drawn from my experience is that if I am drowning in these systems, what does that mean for those who are not university educated white women who are sexually assaulted?"
개인적인 소회는 --
아마도 오래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과거의 나였다면 이 판결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고백이다. 그리고 가해자, 무스타파가 왜 합의한 성관계 (consensual sex) 라고 주장했는지 그 해석과 맥락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 상대가 아니라고 했을 때, 아니라는 의미는 그냥 아닌 거다.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는데 이젠 아주 잘 알 것 같다. 맨디 그레이의 케이스를 보면서 그것을 다시 리뷰할 계기를 만나 고맙다. 나중에 이 개인적인 마음을 더 잘 정리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느 "전형적인 피해자; 가부장 사회가 그리는 전형적인 성폭력 피해자" 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완강하게 투쟁해 싸워 이긴 맨디 그레이 (Mandy Gray) 에게 감사하고 그리고 내가 알고 있거나 혹은 모르더라도 맨디처럼 투쟁해온 생존자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233] Consent involves state of mind
[234] Ms. Gray, may not resist does not mean that she consented to what happened. Consent requires knowledge on part of what os going to happen and a decision by Ms. Gray without the influence of force, threats, fear, fraud to let it happen.
[279]
[391[ Consent can be given by words or actions,
[396]
[398]
[404]
[405]
[491]
[492]
[508]
[516] Asking her to remember the details is ridiculous.
[523]
"로빈 훗 (Robin Hood)" 의 무대로 알려진 잉글랜드 노팅엄셔 (Nottinghamshire) 지역 경찰이 밋쏘지니 (misogyny, 여성혐오) 및 여성을 대상으로 한 추행을 증오범죄로 처리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길거리에서 여성에게 접근해 추근덕거리는 것도 증오범죄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영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아마 여성혐오 (misogyny) 를 범죄의 동기 (motivation) 로 분류하는 것은 전세계를 통틀어 처음이지 아닐까 싶은데 조금 더 찾아봐야겠다. 타겟이 된 대상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because they are a woman)" 남성에 의해 저질러지는 사건 (incidents) 은 앞으로 증오범죄로 분류할 듯 싶다. 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이나 타블렛 등 전자기기를 이용해 상대 여성이 원하지 않는 메세지를 보낸다거나 상대여성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상대여성과 관련된 메세지를 전파하는 것도 노팅엄셔 경찰이 새로이 도입한 가이드라인에 해당된다. 수사 결과에 따라 증오범죄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증오범죄는 일반적인 폭력 (assault), 추행 (harassment) 범죄에 비해 가중처벌을 받는다. 아마도 이 결정을 내린 노팅엄셔 경찰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여성혐오 범죄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메세지인것 같은데 전후에 놓인 배경이나 다른 사정은 알기 어렵다. 좀 더 자세한 업데이팅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다만, 브렉시트 직후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주로 이민자를 타겟으로 한 증오범죄가 무려 42%가량 증가했다는 이 기사가 같이 읽힌 탓에 뭔가 보통 평민이 접근하기 어려운 정치적 배경이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기는 든다.
어쨌든 여성혐오 범죄가 증오범죄 아래 분류됐다는 것은 진전이다. 그동안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거나 다치거나 성폭행당하거나 재산을 빼앗기거나 자존감의 훼손을 겪은 무수한 희생자들이 그들이 "왜" 그런 일을 겪었는지 이제는 "공식적으로 (officially)"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생각난 김에 캐나다 통계청 자료를 찾아봤다. 컬리지에서 페이퍼를 쓸 적에 찾아본 뒤로 잊고 있었는데 --- 캐나다 증오범죄의 분류에 여성혐오 (misogyny) 가 따로 들어 있지는 않다. 기타 (others) 분류에 해당하는 성별 (sex) 로 포함하기는 할테지만 그토록 많은 여성살해가 벌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건들이 여성혐오 범죄로 기록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아마도 여성혐오 분류가 "공식적으로" 따로 생기면 가장 큰 포션을 차지하는 인종혐오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 않을까 싶다.
가난한 이들끼리 치고박는 일
브렉시트 이후에 --
또는 자본의 이윤축적속도와 비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현재를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워질수록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은 이제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될수록,
가난한 이들끼리 치고박는 일들이 제일로 심각한 문제로 될 것 같다.
현재 자본주의 세계의 가장 큰 문제, 해결하기 어려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 같다.
너죽고나죽자는 지옥이 열리는 거다.
백인무산자계급은 비백인무산자계급을 핍박하고 비이민자는 이민자나 이주노동자들을 핍박한다. 한국사회에서 이 양상은 무산계급 남성들이 여성을 폄훼하고 해하는 여성혐오로, (주로) 무산계급 남성들이 탈북자나 조선족, 비백인이주노동자들을 핍박하고 해하는 제노포비아로 나타날 것 같다. 브렉시트는 이러한 세계적 양상의 한 단면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마당에 "브렉시트는 노동계급의 신자유주의에 맞선 승리" 라면서 유유자적하는 좌파가 있다면 - 만약 정말로 있다면 - 아 정말이지 우리 민중에게 미래는 없다. 그냥 개돼지로 살아야지, 죽을 때까지 치고박다가 가끔 얻는 사료에 만족하는.
* 재분배의 관점에서 https://www.socialeurope.eu/2016/07/brexit-shows-us-real-first-world-problems-look-like/
안타깝게도 선택지엔 개와 돼지 뿐인지라 나는 "개"를 짝꿍은 "돼지"를 선택. 졸지에 소외당한 고양이 얘기를 잠깐. 사실 민중이 고양이 같았으면 쥐색히 같은 너그들응 벌써 다 죽었을 것이야. 뭐시 중헌지도 모름서도 알건 아는구나. 그래서 고양이를 뺐구나.
Controlling person (s)
대단히 다루기 힘든 직장동료가 하나 있다. 농담으로 "또 하나의 클라이언트" 라고 지칭하는데 이 양반과 함께 짝이 되면 신경이 배로 쓰인다. 다른 건 다 그렇다고 치는데 간혹 클라이언트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네 보호관찰관에게 당장 전화할거야!!!" 식으로 협박하는 등 포악 (hostile) 하게 군다. 대개 클라이언트들이 말을 안 들을 때 그렇게 행동한다. 그래놓고선 조금 있다가 또 잘해준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선 헷갈릴 수밖에. 클라이언트들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자기 기준에서 만만해보이는 동료들에게도 그런 식이다. 분명 controlling issue 가 있다. 한국어로는 뭐라고 번역하는지 모르겠다. 지배욕구? 이런 양반들의 공통점 가운데 완벽주의 (perfectionism), 거짓말, 현혹하기 (manipulation), 미루기 (procrastination), 아부하기 (kissing sb's ass) 등이 있다.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이론에서 배운 것을 복기하면 정말로 기가 막히게 딱 떨어진다. 사람을 미워해서는 답이 없다. 이 친구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더 심각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래도 정말 같이 일하는 게 너무 피곤하다. 가끔 시프트 파트너가 오프를 신청해서 이 친구와 짝이 되면 그야말로.... 암담하다. 다행히 (?) 이 동료에겐 아이가 없다. 아이를 낳을 계획도 없다고 한다. 다행이라고 할밖에.
비즈니스 문화가 다르다보니 한국과 이곳의 일터 문화도 사뭇 다르다. 한국에선 다루기 힘든 상사, 동료 리스트에 "일을 시키고 자기 것으로 빼앗는 사람" 정도가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 같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을 동료에게 부탁해놓곤 매니저에게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보고한다. 하루이틀 겪는 일도 아닌지라 그러려니 하다가 살살 상황을 봐서 끼어들거나 치고 빠진다. 피곤하지만 뭐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일컫는 텀 (terminology) 들이 제법 발달해 있다. 당장 구글링을 해도 이런저런 용어들이 줄줄줄 나오고 대처방법도 나온다. 그런 기술만 가르치는 워크샵-세미나도 제법 많다. 아무래도 정의하기 (defining) 문화가 발달해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추측을 한다.
젠더, 인종, 문화
몇몇 나라에서 온 남성들은 정말로 젠더평등 의식이 저열하다. 일다의 어떤 기사를 읽으며 맞아맞아 맞장구를 열 번 넘게 쳤다. 그렇다고 북미대륙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성들이 평등한 젠더의식을 갖고 있느냐. 그건 아닌 것 같다. 다만 그들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기본적인 기준을 알고 있기는 하다. 어릴 때부터 학습한 결과다. 원치않는 임신을 시켰을 때 혹은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를 했을 때 따라올 후과 (consequences) 와 책임을 잘 알고 있으니 콘돔 사용에 철저하고 사회 또한 콘돔 사용/ 안전한 성관계를 알리는 데에 인색하지 않은 편이다. 일종의 harm reduction 접근이다. 이에 반해 한국이나, 몇몇 중동의 국가들, 무슬림 국가들, 카톨릭 국가들에서는 성교육, 콘돔사용, 안전한 성관계 등을 아예 가르치려하지 않는다. "알게 되면 행한다", 즉 성 (sex) 을 알면 관계 (sexual activity) 를 한다는 지론이 그 바탕에 있는 것 같은데 참으로 무지하고 저열한 접근이다. 그 바탕엔 여성의 육체를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가부장지배담론이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그런 나라들에서 이민온 남성들이 자기네 나라에서 하던대로 이 나라에서 한다는 것. 안팎 바가지 타령을 안하려야 안할 수가 없다.
개인적으론 이 나라에서도 참 많이 성추행을 당하고 겪었다. 이른바 더러운 꼳휴를 전시하는 "바바리맨"은 일터에서 딱 한 번 본 것 외에는 길거리에서 본 적이 없지만 그 외의 경우는 제법 겪었다. 특히 무슬림 국가에서 온 남성들에게서, 그리고 술이나 마약 같은 것을 하고 꽐라가 된 백인/흑인 오징어들이 "나 아시안 여자들 정말 좋아해" 하며 접근하는 경우를 제법 겪었다. 한국 아저씨들은 뭐 아예 말할 것도 없고.
일다의 저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혹은 나의 친구들이 겪는 성적 추행 (sexual harassment)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민자/ 레퓨지/ 유색인종 남성들이 놓인 처지에 공감하는 것이 그래서 때로는 어려울 때가 있다. 조금 더 확장하면 -- 간혹 흑인들이 아시안들을 얕잡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어떤 흑인은 "오늘 밤에도 개고기를 먹니" 하면서 빈정댄 적이 있었고 여기에서 태어난 어떤 흑인은 대놓고 나의 엑센트를 흉내내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은 그냥 보통의 일이다. 그럴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긴 하지만 아무래도 금방 잊기는 힘들다. 그들이 건넨 그 "느낌"을 잊어버리는 건 아무래도 힘들다. 그렇다고 BlackLivesMatter 를 지지하지 않느냐. 그건 결코 아니다. 그 둘은 전혀 다른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끔 속이 부대낄 때가 있다는 거다.
세상이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사는 "개인" 으로서, 맑스가 언급한 "자유로운 개인"이 되고 싶은 "개인"으로서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할 일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에 반대한다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고, 그런 앵무새 같은 말을 되뇌인들 변화는 다만 1도 오지 않기 때문이다.
캐나다에 온 뒤 유럽의 대륙 침략으로 선주민/원주민 (Indigenous people) 이 겪었던 고통과 이의 치유, 캐나다 (백인) 정부의 원주민정책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가 컸다.
한국사회도 원주민커뮤니티와 마찬가지로 일본제국주의 35년의 식민시절을 겪었고 그 전엔 중국이라는 나라의 우산 아래, 그 뒤엔 역시 미국-소련이라는 거대 제국주의 진영의 대립 속에 모진 시절을 겪었다. 특히 일제시대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은 아버지. 복잡한 가족사와 가난 탓에 어린 시절 애착관계 형성에 절대적으로 실패하고 성장한 뒤 남들 다하듯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뒤 중동에 이주노동자로 다녀오신 아버지. 인생 전반에 걸쳐 분노조절장애와 자기연민에 지독히 찌들어 사신 (것으로 보이는) 아버지. 아버지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관조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하게 됐고 그러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대장정도 시작할 수 있었다. 글쎄, 나는 무엇 때문에 아버지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을까. 감히 아버지를 용서하겠다따위의 말은 못하겠고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정도는 이해하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 그 과정에서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욕심.
컬리지에 다니던 어느 날, 우연찮게 원주민 출신으로 탈식민주의 연구와 운동을 하시는 어떤 양반 의 워크샵에 참여하게 된 뒤 탈식민주의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분명 즐겁고 하지만 고통스러운 계기. 나중에 만약에 공부를 더 계속할 수 있게 된다면 이 분야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다는 바람.
이 양반의 교육철학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데 그 때 워크샵 자리에서 이 분이 소개한 글 중 이런 게 있다. 식민당사자가 어떤 경로로 식민대상자를 식민화하는지 그 스테이지를 보여준다. 일제가 조선반도에 저지른 작태를 떠올리면 아주 이해가 쉽다. 다만 이 스테이지에서 일부 조선인들의 자발적 복종과 복무한 경로를 유추하려면 좀 더 애를 써야 한다. 캐나다 선주민/ 원주민들이 유럽의 식민지화정책과 강제에 자발적으로 복종한 사례는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령 일제가 조선인 정신대-위안부를 모집할 때 가가호호 방문하며 맨 앞에서 적극 모집책으로 활동한 사람이 (남자) 조선인이었을 가능성이 큰 것과 같은 유사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잘 찾아보면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백인유럽사회는 – 일제가 조선인들을 행정하위급관료/ 소작인 (마름) 정도로 이용하고 고관대작들에게 작위를 주어 회유했던 것과는 달리 - 그들과 피부색이 다른 원주민들을 철저히 분리/ 파괴하는 정책을 썼다.
인용한 글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식민당사자가 어떤 단계로 피식민 대상을 식민화 (On the process of colonization) 하는가, 그것보다는 피식민당사자가 어떤 단계로 탈식민화 (PROCESS OF DECOLONIZATION) 하는가! 바로 그 부분이다.
1) Rediscovery and Recovery
2) Mourning
3) Dreaming
4) Commitment
5) Action
일제 식민지 시절을 평가하고 우리의 현재를 돌아볼 때, 아니 그런 대단한 건 아예 바라지도 않고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어느 단계에 와 있을까. 위안부 피해당사자들을 생존자로, 살아움직이며 꿈틀하는 – 스스로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투쟁하는, 인간의 생존 욕망을 지닌 주체로 마주하려면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오징어튀김이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서울에서 살 적에 길거리에서 가끔 사먹던 방금 튀겨낸 오징어튀김. 그에 더해 김말이튀김도 같이. P출판사에 세들어 살던 어느 한 해. 동자동 근방에 있던 사무실 근처에 아주 맛있는 오징어튀김 + 김말이튀김을 떡볶이와 함께 팔던 노점상이 있었다. 언젠가 인상좋은 사장님 아주머니와 농담을 하면서 새우튀김도 하면 정말 좋겠어요, 했는데 정말로 며칠 뒤 새우튀김을 준비하셨다. 지금도 여전히 장사를 하고 계신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여기에도 한국인이 하는 분식집이 있어서 가끔 아주 가끔 사먹기는 하는데 글쎄 그 맛이 나질 않는다. 더군다나 지하철을 타고 한국인마을에 가야만 튀김, 떡볶이 등을 구할 수 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그 사이에 군침이 돌다가 막상 분식집에 도착하면 아무렇지도 않았다는듯이 입맛이 사라지는 경험을 몇 번 하고나니 애써 갈 기운도, 욕심도 잘 들지 않는다. 그렇게 되어버렸다. 중간에 몇 번 직접 요리해먹어 보기도 했는데 꽝.
오랜 기간 동안 이 크레이빙 (craving) 을 어떻게 해결할까 궁리하다가 동네에 있는 그리스 (Greek) 음식점에서 파는 칼라마리 (calamari) 로 대체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먹는 오징어보다는 크기가 약간 작고 다소 주꾸미같은 느낌을 주는 이것도 나름대로 맛있다. 동네가 동네이다보니 지중해 연안 국가 사람들, 동유럽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어서 그 동네 음식, 식재료 등을 구하는 건 일도 아니다. 음... 나름대로 맛있다. 한국인 분식집에서 먹었던 오징어튀김에 몇 번 절망하거나 실망한 뒤로는 기대치가 너무 낮아져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함께 주는 소스, 사이드로 나오는 감자칩, 간혹 엑스트라로 오더해서 먹는 페타치즈 샐러드랑 함께 먹으면 금상첨화일 때도 있다.
처음에 그 식당에 들어섰을 때, 동양인이 들어서서 그런지 쳐다보는 눈길이 그리 친숙한 얼굴은 아니었다. 두번째 들렀을 때 중국인이냐고 물어서 (왜 아니겠어!) 아니, 한국인이야. 남쪽 한국인, 이라고 했더니 응,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너는, 너는 어디에서 왔어? 하고 물었더니 알바니아에서 왔단다. 오오, 티토의 유고슬라비아혁명 책을 읽을 적에 자주 언급되었던 나라. 화약고 발칸 반도의 역사에서 언제나 슬프고 참혹한 피해를 겪었던 작은 나라, 그럼에도 그리스정교/ 러시아정교와 로만카톨릭 사이에서 그들만의 종교 (이슬람) 를 지키기위해 분투했던 나라, 알바니아.
그 뒤로 이 식당 주인 부부와 매우 친해져서 들를 때마다 이런저런 농담과 사는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어느날, 아주머니의 얼굴이 말이 아니다. 안녕 어떻게 지냈어? 말도 마. 내 얼굴 좀 봐. 완전 썩었잖아. 무슨 일 있어? 물어봐도 돼? --- 아주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는 이랬다: 역시 알바니아에서 온 한 직원을 고용했는데 벌써 며칠 째 말도 없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다. 동네 사람들이 몇 블럭 아래에 있는 펍에서 봤다는데 아프다는 핑계로 나오지 않다가 어제오늘은 아예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아서 그 직원 몫까지 일하느라 힘들어 죽겠다는. 사람을 쓰고 부리는 일이 너무 힘들다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을 구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네가 제대로 대접을 하고 적당한 페이를 지급했으면 그 사람이 그런 식으로 때쳐치겠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쑤욱 집어넣었다. 다만 "너무 안됐다. 그런 이야길 들으니 유감이다, 얘. 곧 좋은 사람을 구하길 바라. 건강 잘 챙기고." 위로를 건넨 뒤 주문한 음식을 받고 식당을 나왔다. 집으로 걸어오는 약 백미터가량의 그 길에서 이런저런 오만가지 상념이 들었다.
가장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착취하는 방식 - 중국인은 중국인을, 인도 사람은 인도인이나 파키스탄, 방그라데시 사람을, 한국인을 한국인을. 즉, 모국어와 문화가 비슷하거나 같은 사람을 착취한다. 법정 임금보다 덜 주거나, 인격적 모욕을 일삼고, 법정 노동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심지어 "사기"를 친다. 대표적인 사기는 이민사기. 새로운 나라에 건너와 아직 법과 규율, 언어와 풍습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고용하거나 모집해서 착취하는 거다. 후려치기. 그래서 한국인 이민자들이 교회를 다니는 이유 가운데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고" 라는 은밀한 까닭이 있다. 같은 교회 사람끼리 사기를 치기는 많이 어렵다. 어지간한 사람이 아닌 이상, 그 동네를 야반도주하려는 계획이 없지 않는 한 같은 교회 (커뮤니티) 사람을 등쳐먹는 일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다른 교회를 다니거나, 혹은 한국인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아예 막 이민온 사람들 등을 쳐먹는다. 리스크가 적기 때문이다.
사실, 저 알바니안 부부의 사연은 잘 알 수 없다. 법정임금을 지급하고 인격적으로도 잘 대해줬는데 직원이 근무태만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경험상,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부당노동행위의 사례 상 아무래도 나의 추측이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진실"은 알 수 없다.
한동안 무지하게 덥다가 소나기가 내리니까 다시 오징어튀김이 먹고싶다. 갑자기 후드득 비가 내리면 총총총 뛰어가서 간장종지에 살짝 찍어먹던 막 튀겨낸 오징어튀김, 서울에 있을 적에 누렸던 그 호사가 다시 그립고 그립다. 이따 저녁에 그 때까지도 기분이 괜찮으면 알바니아 아줌마 식당에 한 번 들러봐야겠다.
비제도-반체제-비주류적 성질을 갖던 것들이 제도 안으로, 체제 내로, 주류로 인정받거나 들어가버리는 순간/ 그 뒤로 본래의 성질을 상실하거나 오히려 제도와 체제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것으로 변해버린다. 궤도를 어긋나 돌던 행성이 인력이나 자력처럼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궤도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궤도 안에서만 빙글빙글 도는 그런 그림.
역사의 순간순간. 역사를 만들어온 인간들의 투쟁을 봐도 그렇다. 대표적인 게 한국사회에선 민주화운동 세력들. 이 나라에선, 북미대륙에선 이미 합법화된 동성결혼"제도". 그리고 그만큼 시민권을 획득한 게이운동 (레즈비언, 트랜스 운동은 제외하고). 저항의 역사, 스톤월 정신을 점점점 상실해간다.
똑똑한 이성애 여자들이 결혼한 뒤로 어처구니없는 비대칭 관계를 묵묵히 이어가는 모습. 이런저런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그 관계 (제도) 를 유지하느라 저글링하는 모습. 시댁에서, 그러니까 남자 쪽에서 집이라도 얻어준 경우, 그 처참함과 모순은 극에 달했다. 이성애 관계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 그것은 어차피 그 제도 안에서, 체제 안에서 허용하는, 그 관성을 지키는 것이니까. 짝꿍과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머뭇머뭇한다. 나도 그렇게 변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는데... 계약서를 치밀하게 꼼꼼하게 써서 변호사 공증을 받으면 괜찮을까... 아이, 나는 괜찮을거야. 과연?
아침에 대부분 백인들인 교회 친구들이 BlackLivesMatter 에 맞서 의견을 내는 것을 보자니 답답하다. 그래, 너희들은 평생을 게이라고, 성소수자라고 핍박을 겪었어도 어쩔 수 없는 백인이긴 백인이구나. 그게 너희들의 본질이구나. 미움보다는 탄식과 개탄이 앞선다. 전혀 밉지는 않다. 차라리 미우면 좋겠는데, 미워했으면 좋겠는데. 줄줄줄 결혼을 하고 하나둘 식민지를 자처하며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던 똑똑한 기혼여성들의 얼굴이 겹쳐 지나갔다.
관성을, 제도의 익숙함과 마주했을 때 그 관성을 경계할 수 있는 힘. 어떻게하면 기를 수 있을까. 그게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그런 짧은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