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은강간

분류없음 2016/07/27 00:11

 

"강간은 강간이다." "강간에 대한 신화는 없다." 매우 의미있는 법정 판결이 나왔다.

 

피해자 맨디와 가해자 무스타파. 둘은 모두 대학 박사과정 학생이자 조합 (Union) 소속원. 맨디는 사회학 전공, 학부에서 범죄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무스타파는 조합 고위층 간부로 활동했다. 이 둘이 서로 가깝게 알고 지낸 지 2주일, 사건은 지역노조가 파업을 결의한 2015년 겨울 어느날 밤에 일어났다. 조합 사람들은 파업결의를 경축하기 위한 모임을 열고 술자리를 가졌다. 감기에 시달리던 무스타파는 참석하지 못했고 이를 아쉬워한 맨디는 무스타파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낸다. 같이 술마시고 "화끈한 밤 (having a hot sex)" 을 보내자는 내용이었다. 이 문자메세지는 나중에 무스타파 측에 의해 강간이 아니라는 주장; 합의된 성관계 (consensual sex) 였다는 근거로 활용된다.


피해자 맨디는 무스타파에게 화끈한 밤을 보내자며 "먼저 제안" 했고, "술을 많이 마셨"고, 무스타파의 집에 "자기 발로 걸어갔"다. 침대에서 맨디는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러나 무스타파가 오랄섹스와 인터코스 섹스를 강요하고 그녀를 강간할 때 그것엔 동의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난 맨디는 하루 뒤 병원에 들러 검사 (Rape Kit) 를 받았고 또 며칠 뒤 경찰에 피해사실을 알렸다. 약 2년여 지속된 법정공방 끝에 판사는 강간은 강간이다, 라는 최종판결을 내렸다.  

 

"피해자가 술을 마셨는지, 밤에 혼자 있었는지, 성적으로 문란했는지, 가해자와 데이트를 했는지 혹은 피해자가 어떻게 옷을 입었는지 이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무도 [이런 이유로] 강간당해서는 안된다."
 
 "It doesn’t matter if the victim was drinking, out at night alone, sexually exploited, on a date with the perpetrator, or how the victim was dressed. No one asks to be raped."

 

 

179페이지에 달하는 판결문 (Verdict;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을 읽다보면 맨디가 얼마나 참혹하게 지난하게 법정 투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판사의 판결문엔 참으로 훌륭한 표현들이 있다. 특히 말미에 있는 판사의 생각들. 마야 안젤루와 버지니아 울프를 언급한 부분.

 


한편 피해자 맨디, 백인에 이성애자에 배울만큼 배운 맨디는 법원 판결 뒤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본인의 기득권 (privileges) 을 언급하며 이런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백인이고 이성애자고 공식 학문과정에서 도달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단계 (박사과정) 에 있으니 배울만큼 배웠고 (그 탓에) 법 체계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고 있다. … 배우지 못한 비백인이 성폭행당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white, heterosexual woman in my late 20s with a graduate level education and an in-depth knowledge of the legal system … what can be drawn from my experience is that if I am drowning in these systems, what does that mean for those who are not university educated white women who are sexually assaulted?"

 

 

개인적인 소회는 --

아마도 오래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과거의 나였다면 이 판결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고백이다. 그리고 가해자, 무스타파가 왜 합의한 성관계 (consensual sex) 라고 주장했는지 그 해석과 맥락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 상대가 아니라고 했을 때, 아니라는 의미는 그냥 아닌 거다.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는데 이젠 아주 잘 알 것 같다. 맨디 그레이의 케이스를 보면서 그것을 다시 리뷰할 계기를 만나 고맙다. 나중에 이 개인적인 마음을 더 잘 정리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느 "전형적인 피해자; 가부장 사회가 그리는 전형적인 성폭력 피해자" 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완강하게 투쟁해 싸워 이긴 맨디 그레이 (Mandy Gray) 에게 감사하고 그리고 내가 알고 있거나 혹은 모르더라도 맨디처럼 투쟁해온 생존자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2016/07/27 00:11 2016/07/27 00:11
Trackback 0 : Comment 1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ys1917/trackback/1194

  1. 뎡야핑 2016/07/27 14:51 Modify/Delete Reply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판결문을 꼭 읽어봐야겠다 싶어요. 저도 같이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Write a comment

◀ PREV : [1] : ... [69] : [70] : [71] : [72] : [73] : [74] : [75] : [76] : [77] : ... [405]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