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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10/04
    이 여름에
    o-changmi
  2. 2007/08/24
    오랜만에 한국으로
    o-changmi
  3. 2007/08/23
    국민을 내버렸던 일본
    o-changmi
  4. 2007/08/15
    평화를 사랑하는 농업
    o-changmi
  5. 2007/08/05
    고향의 상실과 고향의 괴로움
    o-changmi
  6. 2007/07/26
    일의대수 --일본은 지진열도
    o-changmi
  7. 2007/07/21
    개구리 새끼는 개구리
    o-changmi
  8. 2007/07/17
    제 생일은 제헌절이다(3)
    o-changmi

이 여름에

지난달 한국에 가서 귀중한 체험을 했습니다. 도착한 다음날(93) 하숙집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양주에 있는 ‘’ 대장금 테마 파크‘’공원으로 데리고 주셨습니다. 서울에서 차로 시간정도 저로서는 그다지 가고 싶지않았지만 부처의 호의를 무시하면 안된다 생각해서 갔습니다.

공원에 가보면 세번도 드라마 대장금을 생생히 생각나서 흥분해 버렸습니다. 공원을 찾아오는 관광객은 대부분이 일본사람과 중국사람이라고 들어 웃음을 금할 없었슴니다. 한류붐의 단서가된 ‘’겨울의 연가 일본 여성들의 마음을 잡았는데 ‘’대장금 남성을 포함해 많은 일본사람을 감동시키고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높아진게 아시죠?  정말 영상문화의 영향력은 위대해요. 실은 저는 양미경의 열렬한 팬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도봉산에 들러서 먹은 두부요리도 맛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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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메스컴이 전하지 않는 한국사회  

 공원 구경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 아니였습니다.뉴코아,이랜드 투쟁 현장을 취재하기 그리고 KTX승무원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법율에 의해 해고당한다는  전대미문의 사권과 그에 단호히 싸우고있는 노동자 모습을  전하고 싶어서 강의집회에 참가했습니다. 어려운 운동에 불구하고 기운이 찬 모습을 보고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운동에 대한 확심하고 시민들의 지원이 많기 때무에 그럴 줄 잘 알았슴니다.

저녁 육개월만에 KTX조합원하고 만났습니다. 한국 비정규직문제의 상징적인 그들의 운동이 아직 해결하는 전망이 보이지 않는 것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음날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777회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강의집회에도  참석했슴니다.그 집회에는 일본사람 5명이 참가했습니다.

그 간의 제 보고는 일본 전자신문인 JANJAN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읽으시면  제가  뭘 보고 생각했는지 알게 되겠습니다.

http://www.news.janjan.jp/world/0709/0709140318/1.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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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으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처럼 한국말을 얼마나 배워도 곧 잊어버린다.
  나이 때문에 그런지 기억력도 떨어졌다고 불안감이 나서 견딜 수 없다.
  여러가지로  고민함보다 한국에 가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유학시절 신세 많이 진 하숙집 아주머니와의 만남이 즐거움이다. 그 하숙집에는 불과 삼개월이었지만  한여름 열심히 공부한 생활이 그립게 생각난다.
  일한 교류라고 말하면 여러모러 있으니 저는 언제나 아주머니를 생각난다. 하숙은 아줌마에게는 사업의 하나일지도 모르지만 외국인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하숙집이 맡고 있는 역할은 좀 고장한 표현이지만 국제교류를 위해 보통이 아니다.특히 일본사람이 한국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저는 부엌에서 삼계탕 만들기를 도와준 귀중한 경험이 있거든!
 
  내년 아줌마 부처를 둘러싸고 많은 옛날의 유학생들을 서울로  모으고 ‘감사의 모임’을 계획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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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내버렸던 일본

<패전후 62년 – 더운 여름에>
일본사람이 그 전쟁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흔히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전혀 반성하지 않는 나라라고 지적되고 있습니다.
일본사람 개개인은 겸허하고 친절하는대 왜 그럴까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 여름 한 TV 연속 다큐멘터리를 봤다. 보면서 실은 일본사람은  자기가 받은 피해,괴로음 조차 제대로 공언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살아남은 전 병사들이 많은 동료들의 비참한 죽음 (대부분은 아사 그리고 병사였다) 그리고 심한 학살현장을 많이 경험해서도, 터무니없는 전쟁에 대해 표현하지 못하는 채 살아왔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전지에 가는 병사는 살아서 돌아오지말라는 교육을 받기 때문에 사회는 기적적으로 생환한 병사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전쟁을 미화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배제되지않은 채 남고 말았습니다.
  여기 와서 너무 늦었지만 이웃나라 사람에게 정성 어린 사죄를 하기 위해서는 일본사람 자신이 그 전쟁의 진상을 잘 아는 작업부터 시작해야한다고 동시에 책임을 밝혀해야 한다고  통감했습니다.
다음 문장은  제 일본판  2007-08-22 날짜  blog 내용이다.
http://blog.goo.ne.jp/194207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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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여름 NHK에서 방영된 다큐맨터리 ’’병사들의 전쟁’’을 보면서,일본사회가 일본사람이 입은 전쟁 피해를 경시해왔다고 생각했다.
세계 각지 전쟁터에서 구사일생한 병사들이 기아나 병으로 인해 즉은 병사들의 비참한 죽음을 증언했다. 그 이야기들은 전쟁을 모르는 저에게는 처음에 들은 이야기였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모두가 자기자신이 살아남았다는 가책을 느끼면서 전후 62년을 살아왔다.
 ‘살아서 사로잡히는 수치를 당하지 말지어다’라는 일제시절의 규정에 따라 병사들 전원에게 즉음을 구한 주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미군에 의한 공습,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비극은 이야기될 때가 많지만 병사들의 죽움에 대해서는 유가족,살아남은 병사들을 바롯해 국민 전체가 ‘터부’로 간주해온 경향이 있었다.
‘죽으면 야스쿠니신사로 가고 영령이 된다’다라는 논리가아닌 정서로 죽은 병사들의 실태와 전쟁 자체를 알려고 하지 않고 사실을 피해왔다.
비참한 전쟁을 직시하는것을 사회전체가 두려워했다는 일면도 있었다. 그레서 전쟁부터 교훈을 얻고 차세대에 바르게 전할 수 없었다.
 여든을 넘어 말하기 시작한 옛날의 병사들 이야기는 제가 어렸을 때 들은 용감한 것과 달리 믿을 수 없는 가엾는 이야기만이었다.
  지금 우리가 해야하는 것,또 생각해야하는 것은 죽은 병사들을 영령(英靈)이라는 애매한 호칭으로 부르지말고  병사들도 지난 전쟁의 희생자라는 시점을 가지는 것이다.
  코이즈미 전 수상 그리고 아베 현 수상은 나라를 위해 죽은 특공대(特攻隊) 병사들의 애국심에 의해 마음이 흔들렸다고 칭찬했는데 그들의 전쟁관은 말하지 못하는 죽은 병사들을 무시한 망언이다.
  식량도 없는 채 죽어버린 많은 병사들 대신 말하기 시작한 동료 병사들의 증언은 비참한 최후를 마친 전우에대한 애도심이 넘치고 전쟁을 모르고 전쟁을 안이하게 생각하는  세대에게 강한 염려를  표면한 것 같았다.
  병사들이 모두가 가족애와 고향에 가고싶다는 강한 마음을 품면서 죽어버린 사실을 증언한 목소리는 요즘 일본내애서 활발한 전쟁을 미화하는 세력의 거짓말을  꺾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나라 희생자와 이웃나라 희생자를 저울질하면 안된다> 
전쟁를 직접 경험한 세대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눈을 크게 열고 귀를 기울이고 전쟁 체험자들을 마주보고 싶다.
전후의 경제적인 부흥,번영은 전쟁희생자에 의해 이루어졌다라는 속설을 그마두고 싶다. 전쟁희생자들을 무시한 위에 이루어진  외관만의 번영이니까.
오해를 살지도 모른다. 저는 전후 일본정부가 특히 한국과 중국에대해 되풀이하여 발언해온 ‘반성’이나’사죄’는 일단 취소헤서  근본적으로 다시 출발하자고 싶다.
 외교적으로 할 수 없이 입에 발린 사과이기때문이다.
그것보다 먼저 일본사람으로서는 지난 전쟁의 전모,진실을 밝혀하고,동시에 그 전쟁책임을 추구하고 싶다.
자기 국민을 죽인 책임을 흐지부지한 채 이웃나라에대한 짐략이나 전쟁에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나올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국내에서 벌리는 역사인식에 관한 논쟁은 국민의 희생 조차 직시하지않고 전쟁책임을 애매해온 곳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닐까. 학자들은 문제를 더욱 복잡화시켜서  국미들은 당황수럽다.
그러나 몇백만명이 되는 병사들의 유골이 지금도 해외에 방치되고 있는 사실을 보기만해도 일본이 국내적으로도 패전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명백하다.
국가가 수행한 전쟁에 의해 무고한 국민들이 쓰레기처럼 버림받은 사실을 보면 전쟁책임자들의 아를이나 손자가 ‘애국심’이나 ‘아름다운 나라’를 강조하고 호전적인 자세를 보이고있는 것은 우수꽝스럽게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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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사랑하는 농업

8월 12일, 가까이에 있는  호숫가 밭에서 메밀 씨를 뿌렸다.
우리 시민단체(식과 농의 안전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클럽)가 빌린 약 400평의 밭에서 메밀을 재배하고 11월에는 메밀가루를 만들고 ‘’메밀 축제’’에서 시민에게 판매할 예정이다.
 저는 메밀국수는 잘 먹지만 씨를 뿔리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 날 저는 소비자에서 생산자에 갑작스럽게 변신한 셈이다.
회원 남녀노노만 11명이 모였다. 작업를 앞두고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저도 실제로 종파를 해보았다. 손으로 직접 뿌릴까 생각했는데 실은 소형자동 파종기로 30센티 간격으로 밀어내면 됐다.
쉬은 작업인 줄 생각했는데 한여름 염천하에서 하는 작업은 예상보다 힘들었다.
실은 제가 메밀과 보리를 정확히 구별 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인 줄 깨달았지만  농업에 대해 아니 일반상식도 없는 제가 모종을 키우고 가루를 만들고 메밀국수를 먹는 것을 상상할 만 해도 즐거웠다. 홋수강에 번무한 갈대 사이에서 부는 상쾌한 바람을 나무 그늘에서 쐬면서 먹은 도시락도 맛이있었다.
 한 회웍에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그 밭은 시의 ‘경관 조례’로 시내의 경관을  유지하기 위해 휴경지를 갈고 싶은 사람이나 단체에게 시가 알선해 무료로 빌려준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은 8월 중순에는 우란분재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는 사람이 많아서 제가 수강중인 ‘일본어를 가르치는 교수법 강좌’도 농업지원 봉사활동도 여름휴가중이다. 예년에 비해 너무 더운 여름 때문인지 독서도 잘 못하는 채 전후 62년째를 맞이한 금년 여름, NHK TV에서 전쟁과 평화에 관한 예년보다 훨씬 수일한 작품이 매일 같이 방영되는 것이 는에 띄었다.
전쟁,히로시마,나가사키,물론 피해와 가해를 막론하고 비참한 과거를 의도적으로 감추고 없애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현재,이렇게 전쟁에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해야하는 움직임을 보며 지난 참의선거에서 평화 헌법을 파괴하려고 하는 여당 자민당의 참패와 함께 조금씩 일본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친해하는 한국사람 여러분!
요즘 일본 방위성 장관이 ‘’ 원자폭탄 투하는 할 수 없었다’’라는 발언했기 때문에 파면 당했다는 것이 아시죠. 핵무기폐절을 세계에대해 호소해야하는 일본 정치가로서는 물상식하기 짝이 없다고 많은 국민들이 화가 나서 비판했습니다. 그 장관은 미국에서는 두개의 원폭 투하가 이른 전쟁 종식을 이루었다는 미국측 견해를 소개했다고 변명했습니다.
이 발언과 그를 두둔한 수상의 자세(두 사람은 일본 핵무장 농자다)가 이번의 선거 패배의 원인의 하나로  논편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때 제가 생각난 것은 한국에서도 미국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않은 사실이었습나다. 물론 지난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함세웅 씨가 히로시마에 오시고 희셍자를 추도한 모습이 가슴에 남아있지만.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좋은 핵무기와 나쁜 핵무기에 대해.
‘패전’이 아닌’종전’라고 사실을  애매하게 표현하는 우리나라 일본사람의 감각에 위화감을 느끼지만 전쟁의 피해자는 언제나 민중이라는 공통의식을 전세계의 사람들이 공유하기 정말 바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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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상실과 고향의 괴로움

 저에게는 고향이라는 곳 있는가”
이거 도회에 사는 많은 사람이 품는 의문이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졸업할 때 까지 도쿄 신주쿠에 살았다. 그 동안 네번 이사했지만 소년시절을 지낸 주택 부지에는 빌딩이 건축되고 그 시절을 생각내는 실마리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다. 우현히 근처를 들렀다가 흔적이 없기에 당황할 뿐이다.
 
도회지에 그것도 대저택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상상하지 못 하겠지만 경제 발전에  따라 지방에서 대도시로  끌어당긴 서민들은 집합과 이산을 되풀이하면서 도회지를 헤매고 깨달았을 때 인간관계도 혼란한 채 노년기에 접어든다.
나에게는 고향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있었지만 없어졌다고 해야한다. 그래서 뜨겁게 고향을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 부럽다.
 
 
제 아버님은 소년시절 이와테현 모리오카시에 살고 센다이로 이사했다. 진학을 위해 상경,졸업한 후 기사로서 일본광학회사(현 니콘)에 입사하고 패전후 통상산업성에 근무했다.
왜 민간기업에서 관청근무가 되었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일본의 국가가관의 만주화와 관계가 있었다고 추측된다. 아버님의 무덥은 센다이에 있고 집에는 아바지의 여동생인 고모가 혼자서 계신다.
 
그래서 저에게 고향이라는게 있으면 센다이가 해당할지도 모른다. 센다이는 동북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인데다가 문교도시로 누구도 인정하는 아름다운 도시다. 어렸을 때 저는 여름방학 마다 동생들과 함께 어버지의 고향에서 여름을 지넀다.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우리들을 귀여워해주셨다. 행복한 소년시절의 기억이 제 마음애 남아있는 도지다.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 미나미코이쯔미
 미야기 형무소로 이어지는 버스 가는 길과 이은 고요한 주택지는 옛날과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근처의 거리를 걸어서 놀라고 말았다. 생선가게,채소가게,약국 등 일상생활을 위해 필요한 상점이 거의 업었다. 헌 간판은 보이지만 영업하지 않는 상태다. 상점가로 부르지 못하는 길거리였다. 옛날에는 규모는 적지만 충분히 장볼 수 있었고 저녁에는 손님들로 활기가 있는 기억이 남아있다.
 
 
센다이시가 정령지정도시가 되고 이 근처는 와카바야시구로 불리게 됐고 인구도 13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뜸하고 편의점 하나만 있는 어이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자방은행의 유일한 지점이 얼마전에 폐쇄되고 대신 공터에 ATM가 놓여있었다. 옛날에는 기다리면 곧 오는 버스도 낮에는 한시간에 한대만. 고모님은 요즘 발이 아프시고 집에서 디니기가 어럅게 됐다고 하쎴다.
젊은이들은 이 불편한 도지를 떠나고 남아있는 노인들은 장보기 조차 할 수 없는 부평한 생활응 감수해야한다.새롭게 개통한 도로에 인접해 개점한 대형 슈퍼마켓은 번창해도 차를 운전하지 못하는 나이 드신 분들은 저기 까지 혼자서 못 간다. 이게 과소지 농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의 진보에서 버림받던 네 고향의 사람들. 급격한 도시개발에 의해 파귀해버린 제 소년시절의 고향과 인간관계. 고향의 상실감에 빠지면서 아버지의 고향을 제 고향이라고 말하는 것에 좀 의문을 느끼면서 일본 각지에 번영의 은혜과 끊어지게  살고있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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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대수 --일본은 지진열도

<지진 보도는  전했는가>

713,오전10,저는 시민단체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회의가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파도에 흔들리는 배를 타는 요동과 경험한적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저기가 낯선 장소 일지도 몬른다.

회이장이 있는 JR아비코역 근처에 있는 느티나무 플라자 요즘 건설뒨  시민

회관이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지만, 높은 건물의 외관을 생각나서 혹시’,라고 최악의 사태조차 사상할 만큼 지진이었다.

 흔들림이 끝나서  저는 일층에 있는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했습니다.

‘’많이 흔들렸지?’’

‘’그다지 크게 느꼈다’’ 아내 목소리를 듣고 한숨 놓았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던 아내 부터 지진의 진원지가 니이가타현 가시와자키시고 진도는 6 알았다. 마지막으로 ‘’지금 원쟈력발전소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소동이 된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귀를 의심했다.지진에 의해 사고가 위험성 높은 발전소로 소문이 나온 가시와자키발전소가 지진 직격을 맞고, 있어야 않는 상황이 이르어지고 체르노빌 사고 같은 사고를 상상하지 않을 없고름이 끼쳤다.

회의는 시간 정도로 끝나고 집에 가서 지진보도만 전하는 텔레비전에 열중했다. 지면에 생긴 균열이나 도궤한 가옥이 발전소에서 나오는 불안한 검은 연기와 함께 화면에 나타났다. 그러나 ‘’화재는 겨질 겁니다’’, ‘’방사능의 누출은 없는 같습니다’’라는 설명이 되풀이었다. 마그니튜드 6에도 불구하고 비해가 나오는 모양이라는 목소리와 헬리콥터에서 보내주는 영상은 여유있게 보인다.

200km이상 떨어진 지바현에서 아까 제가 느낀 강렬한 흔들림을 생각나면서 ‘’그럴 리가 없겠지’’ 저는 혼자 중얼거렸다.

정오 뉴스에서는 걱정된 원자력발전소 화재현장의 영상은 거의 나오지 않고 대신 아베수상이 지방에서 급거 수상관청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되풀이 전했다. (당연한 것을 그렇게 몇번도 전할 필요는없다.)

 

지진이 발생한지 일주일.

불행히도 예감은 적중되고 비해는 날마다 확대되고 있다. 사망자11,-반괴 가옥은1200이상,수도,가스는 복구되지않는 시민들은지도못하고 괴롭고 불안한 생활을 참아야된다.

그리고 제가 걱정한 발전소에 대해는 이제와서 문제점이 지적되기 시작했다. 발전소내 소화활동체제의 결함을 비난하는 소리가 집중되고 있다.

지금까지 중대한 사고를 감추고 탄로되는 마다 사과해온 전력회사 사장이 또디시 사과하는 모습은 기가 막혀서 보기도 싫다.

<일본 열도 화산위에 원자력발전소 55>

만이었습니까?

NHK 비롯한 TV각국은 지진발생후 부터 가시와자키 원자력발전소의 상황을 고의로 무시한 같았다.

전문가가 아닌 제가 느낀 공포감에 상관업이  ‘’화재는 껴질 겁니다’’, ‘’방사능의 누출은 없는 같습니다’’라는 출처불명한 안심정보를 의심없이 계속 전했기에 놀랐다.

정부는 지금 원자력에너지정책을 지구온단화대책의 세계적인 흐름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원자력발전을 추진하려고 한다. 그러나 안전성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

지진 대국인 일본에 55기도 존재하는 것이 믿지못하는 사실이다.

원발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험에 가하고 ‘(일본)국토전체가 조교 위에 걸리고 있다라는 대라다 토라히코(물리학자,소설가 1878-1935) 지적한 화산 위에 있는 마치 위에 놓인 화약처럼이다.

변앞기가 불타고 방사능의 유출이 알려진 이번  사고 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 많는데, 그걸 단한 소화체제 문제에만 왜소시키고 문제점을 살짝 바꾸면 절대로 안된다.

 회생당할 사람은 일반 국민 뿐만아니라 전력회사 사장도 ,아베수상,그리고 아베수상이 누구보다 소중해하는 일본의 상징’(천황) 피할 없는것을 명심해야한다.

그리고 일의대수 이웃나라 사람들도 같은 우명을 함께하는 것이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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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새끼는 개구리

"한국사람은 전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한다"
이것은 제 일본말로 쓴  블로그 최신호의 표젭니다. 이하 그 내용의 개략을 소개하곘습니다.
 
우리 일본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제일 인기가 높은 것을  전혀 믿을 수 없습니다. 그 인기의 이유로  기적적인 경제발전이나 청결한 정치를  뽑은 한국사람이 있었지만 그렇다면  희생을 친 민주화운동은 도대체 무엇이었어요.
그러나 일본사람로서는 그  평가에 부정하고  얼굴을 찡그리는 한국사람과  함께    맞장구칠 자격은 없는 것 같아요.
혼미의 도를 더하고 있는 일봉사회에서는  한국에 못지않은 심각한 불안감이나  불만이 넘치고 있는데도 몇번 선거해도 그 원인을 만든 세력은 흔들지 않는채 사회적인 폐속감이 감돌고 있다.시민혁명을 경험하지 않는  일본 사람은 자기 힘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 의욕도 없는 것 같습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나 확신이 없으면  과거를 추억하고 미화하는 심정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박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심정와 일본사람의 과거 회귀적 심정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배경에 현실에 많은 불만이 있는 점에서.
 
 
그런데 요즘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로 유력시되는 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씨가 출판한 자서전에서 김대중  씨 납치사건에 언급해,그 사건이 보도된 당시  아버지인 박대통령이 “북한이 한국 정부를 궁지애 물려고 벌인 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고 소개됐답니디. 정말 깜짝 놀랐습니디.
선거를 위해서도 명백한 거짓말을 사망한 사람을 이용해(누구도 부정할 수 없음) 과거를 미화하고 동시에 북한에대한 적대심을 부채질하는 수법은 아베 수상과 마찬가지다.
자기들에게 형편없는 역사적인 사실을 지우려고 하는 일본 아베 수상은 일본을 어디로 끄는지는 한국사람도 잘 아는 것이다.역사왜곡으로  유명한 일본 보수 정치가 같은 정치가가 한국에서도 출현한 셈이다.
거짓말을   당당히 추장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정말 두려워요.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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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일은 제헌절이다

오늘 7월17일은 제 생일입니다. 축하합니다!

한국에 관한 정보-(환경,노동,문화 등등)를 일본사람 끼리 화제로 해 왔습니다.이제부터는 한국사람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일본 사회의 민주화와 한국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믿습니다.단순한 비교가 아닌 일본사람과 한국사람의 상호이해하기위해 도움되는 문장을 투고할 겁니다.기대하세요.

내용만 아니라 한국말에 대해서도 의견이나 지적을 사얀말고 해주시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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