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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김수경 아저씨

 

저는 진보신당 창당 초기때부터 평택에 적을 두고 활동해왔었습니다. 부모님이 평택에 사셔서 저도 거기 얹혀 살았었거든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모임을 해왔는데, 대부분의 지역이 그렇듯 40대 이상의 아저씨 당원들이 다수였습니다. 그 중에는 지금 쌍용차 노조에서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분도 계시고 옥쇄 파업에 참여하고 계신 분도 계십니다.
 
창당 초기, 우리는 그냥 모든 게 다 재밌고 신났습니다.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거 운동도 했고, 심상전 전 대표 사무실 개소식에도 가고, 한 당원님 댁을 선거 사무실로 등록해 엄청 큰 현수막도 달았습니다. 아파트 베란다를 다 가릴만큼 정말 큰 현수막이었는데 불행히도 그 아파트가 16층이어서 밑에서는 그냥 이불 널어놓은 것 같이 보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동지’라는 말은 영 어색하고 입에도 안 붙어 아저씨, 아저씨 하며 열심히 중장년층 당원들을 따라다녔죠. 그렇게 따라다니던 아저씨 당원들 중에는 김수경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를 주군으로 모셨습니다. 어딜가나 심상정 심상정, 심지어 사무실 자기 자리 벽에도 심 전 대표 사진을 붙여놨다고 하시더라구요. 아저씨는 참 재밌는 분이셨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을 유쾌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으셨어요. 왜 그런 분들 있잖아요. 특유의 재치와 밝음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람.
집에 담궈놓은 술이 엄청 많다며 남자 친구와 꼭 놀러오라고 그러셨는데...
그런 아저씨가 지금 옥쇄 파업에 참여 중이십니다. 파업 초기에 아저씨는 ‘투쟁은 내 체질’이라며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재밌고 즐겁게 하루하루를 지내셨어요. 힘들어도 힘들다 말하지 말라며 주위의 지친 동료들을 격려하고 ‘체력은 투쟁력’이라며 밥도 맛있게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당원들과 지지 방문을 가면 반갑게 맞아주시며 재밌게 이 곳 저 곳 안내도 해주셨습니다. 농담삼아, 희망퇴직 신청하면 3천만원 더 준다는데 빨리 신청하시라고 하면 그런 소리가 어딨냐며 택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평소엔 그냥 옆 집 사는 재밌는 아저씨 같았던 분이 이렇게 싸움이 벌어지자 열심히 참여하시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전 정말로 아저씨는 ‘투쟁 체질’ 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파업이 길어지면서 점점 아저씨는 지친 모습을 보이십니다.
깊은 새벽까지 지지 방문 간 당원들과 얘기 나누시던 아저씨가 11시만 되면 피곤함에 그냥 어디라도 누우십니다. 점점 격해지는 상황에서 힘들어하는 동료들의 얘기를 하시며 아저씨 도 말수가 적어지셨어요.
 
그리고 오늘 아침, 구사대가 투입됐습니다.
전경들은 공장의 출구를 막았고 여기저기서 산발적인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가족 대책위의 어머니들도 이제 정말 한계에 다다른 듯 그동안 쌓여왔던 많은 것들을 쏟아내십니다. 공장안에서는 노동자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결의를 다지고 있습니다. 더운 날씨에 관제데모에 동원되어 각지에서 모여든 구사대는 머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습니다. 재밌나 봅니다. 사진 기자들은 싸움이 나는 곳마다 우루루 몰려들어 연신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저 공장안, 어디선가, 아저씨도 복면을 하고 쇠파이프를 들고 싸움을 준비하고 계실텐데......
그냥 자꾸 나쁜 경우가 생각나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너무나 걱정이 됩니다. 자기 남편, 동생, 오빠, 형을 쌍용이라는 전장에 보낸 남은 가족들의 마음은 또 어떨까요. 정말이지 제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저는 파업 참여를 말리고 싶을 것 같습니다.
 
사회 각계 각층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국 선언을 하고 쌍용에 대한 공권력 투입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기어이 그들은 공권력을 투입했습니다. 이제라도, 단 한 명의 부상자가 나오기 전에, 이미 두 명의 희생자면 충분한 것 아닙니까. 공권력 투입을 중단하고, 해고는 살인이라 부르짖는 노동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을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수경 아저씨 댁 진열장에서 저를 어여뻐해줄 주인과 손님을 움전히 기다리고 있을 그 술을 빨리 먹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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