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품김치, 열무김치의 추억
오랜만에 맛있는 밥을 먹었다. B가 준 열무김치 덕분이다. 혀끝을 톡톡 쏘며 자극하는 열무김치 특유의 맛을 즐기면서 김치에 얽힌 생각과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이번 김치는 특히나 ‘개운하고 칼칼한’ 맛이 유독 뛰어난 김치였기에 잠자고 있었던 미각에 좀처럼 만나기 힘든 호사요 행운이었다. 휴먼게좌처럼 잠자코만 있던 오욕칠정 중의 하나인 식욕과 이에 대한 인식을 새삼스럽게 일깨우고 나도 모르게 뇌리에까지 삽상한 자극으로 새겨진 이 신선한 체험이자 별난 맛을 느끼게 해준 일품 열무김치에 대해 누구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조차 한다. 마치 복잡한 시장을 뒤진 끝에 자신만의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기분이 이런 것인지 모르겠다.
B가 준 이번 김치는 열무김치 특유의 맛을 잘 내고 있었다. 파 마늘 생강과 고춧가루 양념이 한데 어우러진 데다 젓국 냄새까지 더해져서 독특한 발효식품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헌데 이에 못 미치는 것은 내 부족한 어휘력과 표현력인 것 같다. 이런 와중에서도 '열무김치' 담아야지 하는 환청소리가 어김없이 들려오는 것은 웬일인지 모르겠다. 잊을 수 없는 그 소리, 바로 어머니의 목소리다.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은 사실 김치 담그는 부담을 안고 사셨다. 한국인의 밥상에 일순위로 올라야 하는 겅거니(반찬의 사투리)이고 보면, 김치는 그러니까 모든 반찬의 큰 언니 격으로서 우리의 식(食)생활과 얽히고설켜 정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온갖 감정 선과 맞물려 있는 심상찮은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사람마다 김치에 대한 기억은 갖가지일 것이다. 확실한 것은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오랜 세월 동안 김치를 먹고 자란 한국인들이기에 김치와 얽힌 기억 몇 가지쯤은 다 가지고 있을 거란 이야기다. 하물며 가족의 끼니를 책임지고 때마다 찬거리를 만들어온 어머니들이라면 왕초보에서 김치 고수가 되기 전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일군 경험만 해도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겪은 노동의 양과 질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먹거리를 손수 장만한 양념으로 버무리고 무쳐내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말한다면 여인들의 고충은 고단한 삶으로까지 연결되기에 충분하다.
비싼 고기반찬이나 별식은 웬만큼만 조리해도 맛있다. 고기라서 그렇고 별식이라서 환영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치 같은 기본 찬이나 밑반찬을 만드는 것은 번거롭고도 힘들기만 하다. 여간한 솜씨가 아니고는 똑 떨어지는 맛을 내기가 쉽지 않고, 절대미각을 가진 터라서 자타가 공인하는 음식의 고수가 아닌 담에야 수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동시에 충족시키기가 간단치 않기에 말이다.
김치에 대한 고민은 또 있다. 어떠한 차림 상(床)에서든 안주인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기본 찬으로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 이유에서다. 만들기는 까다롭고 번거롭지만, 흔한데다 눈에 잘 띄지는 않으며 그렇다고 없으면 당장 찾는 희한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종류다.
그나저나 밥상머리에서 우리가 자주 “김치 없어요?”하는 이유는 뭘까? 어릴 적부터 길들여진, 맵고 칼칼하며 자극적이기까지 해서 혀끝이 얼얼할 정도로 정신 바짝 나고 심하면 눈물 쏙 빼던 그 순간 그 맛을 잊지 못해서 일 것이다. 그렇다. 산해진미로 가득 찬 밥상일수록 역설적으로 눈도장이라도 찍고 그래서 김치에 젓가락을 대지 않았을망정 눈으로라도 먹어야만 하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제 아무리 잘 먹었다손 치더라도 김치를 먹어온 세월이 긴 사람일수록 그들만의 의식의 차원에서 수저를 놓기 전에 “이집 김치 맛은 봐야할 거 아녀?” 하는 마음으로 기어코 한 번 먹어보는 못 말리는 품목이다.
김치담기도 수월치 않다. 그러니까 냉장고 같은 문명의 이기가 따로 없던 시절엔 보관 방법에서부터 마땅치 않아서 그 시절의 여름엔 김치담기는 적어도 3.4일에 한번 씩 벌이는 주중 행사였다. 김치담기는 이런 이유에서 엄마들의 노동 중에서 힘들기로 상위 순위를 놓쳐본 적이 없을 거다. 어린 시절에 보아온 어머니의 김치 담던 모습은 어김없이 수많은 여성들의 모습으로 겹쳐진다. 그래서인지 ‘김치 담아야지!’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가끔씩 아련하게 혹은 선명하게 내 의식의 찻잔에서 향기를 내뿜고 있는 유자차처럼 안쓰러움의 얼굴로 다가오는 이 지상(地上)의 음성이기도 하다.
여름 한철, 그러니까 우리네 어렸을 적의 여름엔 열무김치가 대세였다. 그땐 하우스 작물도 고랭지채소도 없었기 때문이다. 밭에서 소출되는 제철 채소가 주로 이용될 수밖에 없었고 재배의 실제에 있어서의 김치종류는 몇 가지로 정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가령 배추는 수박이나 참외 같은 여름작물을 걷어낸 자리에 심어져 김장배추를 내야하기에 그랬다. 그렇지만 일품을 이룬 열무김치를 먹어보기란 쉽지 않았다. 어떤 땐 다소 씁쓰름하고 아릿한데다가 질기기까지 해서 여간해서는 맛과 질과 크기를 두루 갖춘 재료에서 그렇지만 어떤 김치담기든지 좋은 김치 거리를 구입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천수답 밭작물이 주를 이루시절이든 지금이든 김치담기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 시절엔 특히나 열무김치의 재료로 적당한 것은 물기를 적당히 머금고 있으면서도 김치거리 자체가 고소한 것으로 구입해서 온갖 양염 제대로 잘해서 담아야 맛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김치의 간과 국물의 간이 거의 똑같이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간 절이기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김치를 버무릴 때면 찹쌀 풀을 쒀서 빠뜨리면 안 될 것은 즉석에서 갈아 넣은 빨간 고추조각이 눈에 보여 시각적인 효과를 잃지 말아야 하는 점이다.
정작 주재료인 열무의 모양새 새끼손가락만한 작은 무가 파릇한 줄기에 붙어 있어서 자박거리는 빨간 김치 국물에 담겨서 시각을 한껏 자극해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미각과 촉각과 시각과 청각을 두루 만족시키는 흔치 않은 맛을 지닌 ‘열무김치’를 맛본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기회라는 점이다.
혀끝을 똑 쏘는 별미로서의 존재감에 빛나는 열무김치를 만났을 때는 이렇게 입속으로 쏙 들어와 혀끝에 닿는 순간 뇌리에까지 파고드는 진한 기억을 남겨야 제격이다. 맛의 재발견이란 이런 것이고 별미일정도로 일품을 이룬 맛을 만나는 것은 그만큼 행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늦은 밤인데도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맛있는 열무김치를 선사한 지인에게 그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후회막급일 것 같아서였다. 이 기회에 ‘열무김치’에 대한 예찬을 못하고 가면 두고두고 마음에 켕길 것 같았다.
“근데 B, 이번 열무김치 정말 맛있더라. 간만에 기억에 남는 별미를 맛봤어. 근데 너 그거 어떻게 담았어?”
“자꾸 담다 보니 이번에 한 번 기찬 맛을 냈네.”
“덕분에 기찬 김치 한 번 잘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