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2세 부인 캐롤린 배셋 웨딩드레스와 디자이너에 대한 단상 

                                 -기억과 함께 사람에 대한 기억도 명멸을 반복한다.

 

존 F 케네디 2세와 캐롤린 베셋의 결혼식 장면을 기억하는지? 지금도 세계인의 가슴 속에는 미국 대통령과 퍼스트레이디로서 세기의 커플이었던 존 F케네디와 재클린 케네디에 대한 환상과 아쉬움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다. 이들에 대한 아쉬움과 연민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존 F 케네디 2세의 결혼식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쇼킹한 장면이었을 거다.

"세상에! 4살 때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거수 경례를 하던 그 꼬마가 저 존 F 케네디 쥬니어야?"

오랜 갈증 끝에 모처럼 고대하던 단비 그 이상이었다. 갈증 해소를 넘어서 감로수와도 같았을 거다. “자 이제부터 전개될 둘의 알콩달콩한 사랑모습아 제발 우리를 즐겁게 해다오”하고 바라듯 일반인들의 기대와 희망은 진실과 간절함을 동반한 열망의 바람 그것이었다. 세계의 수많은 이들은 외쳤다. “바로 저 모습이야!”

그의 어머니 재클린은 헐리웃의 그렇고 그런 배우들과 염문을 뿌리며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아들을 안타깝게 때로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아무 말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비로소 기품 있는 금발의 백인 여성 캘빈 클라인의 홍보담당 이사인 캐롤린 배셋과의 결혼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그제야 아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좋아하고 반겼던 것이다. 인지상정이랄까?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도 똑같은 심정이었기에 박수치며 축복을 해줬다.

필자는 패션쇼나 패션 디자이너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무척 좋아한다.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이 사람은 라틴 계 디자이너인데 얌전하고 조용한 용모를 가진 사람으로서 마침 캐롤린 배셋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 하게 된다. 뉴욕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디자이너들을 차례로 인터뷰 하는 프로그램에서 이 디자이너를 본 것이다. 바로 캐롤린 배셋의 웨딩드레스를 만든 디자이너라는 것을. 

화면에 비친 드레스는 심플하고도 우아했다. 무엇보다도 그 옷의 이미지와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신부읨 모습은 더 없이 아름답고도 신비했다. 과히 웨딩드레스에 대한 로망과 환상의 결집체 같았다. 목조건물로 된 이름 없는 성당에서  가족끼리 비공개로 한 결혼식이었다. 그러기에 많은 장면을 담지 못한 파파라치들이나 방송 카메라들은 이에 대한 갈증이 심했던 터라서 누구를 막론하고 호기심과 아쉬움과 궁금증은 상당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이 개인적으로 너무 재밌고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이 많아 그 시간이 고마웠다.

참고로 캐롤린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한 나르시소 로드리게즈는 갑작스런 주목과 성공이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동안 유럽을 떠돌면서 방황을 한다. 뉴욕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캐롤린의 우정 어린 충고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가 그녀의 죽음 뒤에야 그 자리가 소중한 자리였음을 깨닫고 뉴욕으로 복귀한다. 그녀로 인해서 유명디자이너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그. 촉촉한 눈빛을 빛내며 그녀를 아쉬워 하지만 그녀는 세상에 있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거수경례를 하던 네 살짜리 그 꼬마, 부모의 뒤를 이어 만인의 연인으로서 떠올랐던 순간은 짧았다. 존 F 케네디 주니어 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되고 만 것이다. 케네디 가의 대를 이은 불행 앞에 슬픔은 끝을 모를 애상의 잔해를 물결치게 한다.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신부 캐롤린 배셋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한 디자이너 나르시소 로드리게즈에 대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면서 쓴 단상(斷想)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5/01/24 10:48 2015/01/24 10:48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8434pjr/trackback/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