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속에서 ‘풍류 나부끼며’ 우리 음악에 묻히다!

                         -치유와 힐링의 시간을 보내며 고궁에서 ‘우리음악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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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창덕궁 낙선재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고궁에서 우리 음악듣기’ 프로젝트를 알리기 위한 기자간담회와 쇼케이스를 겸한 행사다. 매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는 봄가을로 고궁에서 각기 특색 있는 공연을 기획하여 선보이고 있는데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궁궐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을 위하여 도심 속 ‘궁궐 음악회’를 개최한다.

이렇듯이 도심 속의 궁궐을 찾는 관람객들을 위해서 ‘전통예술’을 활용한 관광 자원화를 위한 사업이 펼쳐진다. 그 일환으로 ‘고궁에서 우리 음악 듣기’가 이어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 받는 풍성하고 격조 있는 볼거리로 자리를 잡은 이 공연은 2008년 시범공연을 시작으로 해서 2009년부터 본격적인 상설공연 체재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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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5월20일 11시) 특히 고아에서 관기로 추락한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양민으로 환원한 제주의 여인 김만덕 이야기가 선보였다. 김만덕은 거상이 되어 번 돈을 흉년에 배곯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내놓는다. “풍년에는 흉년을 생각하여 절약하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은 고생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하늘의 은덕에 감사하며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김만덕의 생활철학이다. 이를 스토리텔링 하여 감사와 사랑의 정신을 함께 나누고 관객과 함께 감동으로 이어갔다.

무대 해설은 배우이자 전 문화체육부장관 유인촌 씨의 해설로 이루어졌다. 출연은 안숙선 명창과 가야금 연주가 황병기 이대 명예교수가 출연한 가운데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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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의 일정과 장소는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종묘에서 타이틀 명 ‘고궁에서 우리음악 듣기’로 개최하는데 5월 24일에서 10월 12일까지다. 우리 음악 듣기는 각 장소에 따라서 특징이 있는데 경복궁에서는 조선시대 궁에서 연주되던 궁중음악을 중심으로 감상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에서는 궁궐의 후원을 산책하며 힐링과 휴식을 누릴 수 있는 풍류음악이 공연된다. 후원에서는 국립국악원의 연주가 있고 낙선재에서는 앞에서 소개한 김만덕 이야기나 정희왕후 그리고 헌종과 경빈 김씨의 사랑 이야기가 스토리텔링되어 선보인다.

덕수궁에서는 퓨전국악이 또 종묘에서는 종묘제례악이 울림을 줄 예정이다. 우리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때를 놓치지 않고 신청하는 부지런함만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고궁을 산책하면서 ‘풍류 나부끼며’ 멋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우리 음악에 묻힐 수 있다.

*박정례 / 기자, 르포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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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2 01:18 2014/05/22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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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열사들의 외침, “산자여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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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이 헌화를 하고 있었다. 강기정, 장병완, 박혜자, 임내현, 김동철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당원들과 함께 헌화를 하는 모습이다. 그러고 나서 민주열사들과 희생자들의 묘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광주시장 후보로 공천된 윤장현 후보도 함께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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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야학 열사’ 박관현 어머니는 “우리나라가 많이 힘들단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당한 유족들의 고통이 너무 심하단다. 힘내라고 격려해다오. 민주화도 예전 같지 않단다. 잘 이루어지도록 염원해줄 거지! 엄마도 네 뜻 받들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단다.”하면서 묘비를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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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규 전교조 위원장의 부인 이귀임 여사가 말했다. ‘어제는 5월의 집에 고난 받는 엄마들 네 분이 오셨어요. 우리보다 더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사시는 분들이기에 희망을 잃지 마시라고 위로해드렸습니다. 지금 정부는 우리 전교조를 탄압하고 있어요. 당신이 해오던 참 민주와 참교육이 많이 사라지고 있어요. 세월호 생각만 하면 통곡밖에 안 나옵니다. 얘들아 이렇게 위험한 나라에는 태어나지 말고 안전한 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라 제가 오죽하면 이렇게 빌었어요. 우리가 데모했던 것은 보다 잘 살기 위해서인데 그리 못하고 있습니다. 더 잘 살기보다 더 힘든 세상이 돼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다 같이 노력하여 반드시 못다 이룬 꿈을 이뤘으면 좋겠어요. 부디 하늘에서 지켜봐주세요.”

 이귀임 여사의 말이 끝나자 “정동영 고문님, 한 말씀 해주십시오.”하고 본 기자가 요청했다. 그러자 정동영 고문이 “광주시장 후보부터 한 말씀 하시지요.”했다. 윤장현 광주시장 후보가 말했다. “요즘 들어 어르신이 더 생각납니다. 생전에 즘 더 잘 모셨더라면 후회가 덜 할 텐데 방금 사모님이 하시는 말씀하시길 왜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는 세상이 됐는지, 한 사람이라도 버리지 않아야 하는데 그일 제가 선생님의 가르치심 따라서 그걸 심부름하러 나섰습니다. 당선돼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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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이어서 정동영 고문이 말했다. “다시 눈물을 흘리는 광주를 만나고 있습니다. 다시 눈물 흘리는 한반도를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 노력해서 광주의 눈물을 닦아 주겠습니다. 한반도의 눈물을 닦아주겠습니다. 눈물 없는 광주, 눈물 없는 대한민국을 위하여 다함께 부활의 기도를 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옆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노부부가 홀로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는 묘비를 어루만지면서 울고, 할아버지는 그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82세 된 명노근 열사의 아버지 최은홍 옹과 모친인 이금순 여사다. 정동영 고문과 그 일행이 다가가서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밖에도 쌍둥이를 낳아 놓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갔다며 흐느끼는 할머니와 그 보다는 조금 더 젊은 또 다른 어머니 곁으로 가서 위로를 건넨다.

3 금남로 풍경, 사람, 사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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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금남로를 찾았다. 가설무대가 설치돼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저녁에 있게 될 대성회를 위해 노래패들이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도로 한쪽에서는 천막을 쳐 놓고 주먹밥을 만들고 있었다. “아주머니 이게 뭐에요?” “광주항쟁 때 엄마들이 학생들에게 주먹밥을 해 날랐잖아요. 그걸 기념하기 위해 저희도 주먹밥 이벤트를 하고 있어요.” 주먹밥을 빚고 있는 천막 앞에 걸린 펼침 막에는 “당신과 함께 눈감지 않겠습니다.”라는 구호가 쓰여 있고 그 밑에는 ’세월호 해바라기 당신과 함께하는 광주청년들‘이라는 작은 글씨가 덧붙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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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전남도청 쪽을 향해서 걸어갔다. 갑자기, 수많은 군중들이 보였다. “웬 일이야?”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대표가 군중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닌가? 운 좋게도 야당 대표들과 맞닥뜨린 것이다. 필자가 있는 쪽으로 근접해오고 있었다. 때마침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가 있었는가 보다. 아이를 덥석 받아 안고 쳐다보며 셋이 기뻐하고 있었다. 김한길, 안철수, 윤장현, 수많은 시민 시민들........

도청 가까이 갔다. 그곳은 아직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림이 있는 대형 천을 뒤집어 쓴 채 분수대를 바라보고 있다. 낡고 칙칙한 테를 벗고 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바쁜 숨을 쉬고 있는가 보았다. 분수대도 쪽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언제일까? 5.18 민주항쟁의 중심지였던 구 전남도청이 새롭게 정비되어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박정례/ 기자, 르포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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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1 13:05 2014/05/2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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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生生현장 5.18 광주 그 뜨거운 도시

[생생현장 르포] 알싸한 현장의 언어로 5.18 광주를 말하다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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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광주에 다녀왔다. 16일 아침 9:25분 서울발 고속버스로 길을 재촉했다. 3일 동안 서울을 떠나있게 되는지라 글 한편을 올리고 간다는 것이 너무 늦은 밤에 글을 쓰기 시작한 탓인지 이튿날 새벽에야 끝났다. 이래저래 새벽녘에야 잠을 청하게 됐다. 모닝콜을 들으며 7시에 눈을 떴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고 보니 7시에 일어난 것도 “휴 다행이다.”싶었다. 그런데 꼼지락거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나 보다. 8시가 훨씬 지나서 집을 나서게 됐으니 말이다. 

터미널은 붐볐다. 눈으로는 매표소를 찾으면서 발걸음을 최대한으로 바쁘게 놀렸다. 이곳에 올 때마다 왜 나는 이리도 어리버리 두리번거리는 일이 많은지, 하지만 뭐 이내 광주행 매표창구를 찾아 줄을 섰다. 어느 지역인지는 모르지만 매진됐다는 소리가 들린다. 설마 내가 갈 광주는 아니겠지. 배차 간격이 5분에서 15분 간격으로 충분히 많은 차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니 얼마큼 빠른 차표를 손에 쥐는가가 문제다. 표를 사고 보니 우등버스표에 10시 20분 차표였다. 좌석은 9번, 광주까지 4시간을 잡으면 2시 20분에 도착하겠지. 당초에 도착을 원하는 시간은 11시 전후였다, 헌데 참으로 애매한 시간에 도착하네 그려.

지인한테 단단히 약속을 했었다. “시간 자투리나지 않게 오전 중에 도착하는 차를 꼭 타겠노라.”고. 야튼 3번 승차 홈으로 갔다. 그런데 ‘빨리 가고 싶은 사람 기다리는 곳’이라는 글이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뭐, 버스가 시동 걸고 있는 곳으로 가 보는 거지!” 행운을 빌면서 승차장으로 들어섰다. 버스표를 체크하는 아가씨가 서있기에 “좌석 남는 거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몇 분이세요?” “혼자인데요.” “한 자리 있습니다. 중간쯤에 자리 하나 비었으니까 앉으세요!”한다. “야호! 신난다. 9시 45분차다. 40분은 단축이다.”

“9시 45분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3시간 40분 쯤 걸린다 합니다.”

“네 시간 맞춰서 고속버스 터미널로 나갈게요.”

“감사합니다.”는 문자를 지인과 주고받았다. 그게 10시 6분이다.

12시 22쯤 문자가 왔다. “점심시간이 애매하군요! 광주 도착하고 식사 함께 하실까요?”하는 내용이다. 먼저 식사를 하라고 말을 하려니 이미 휴게소에서 밥 먹을 기회를 놓쳤다. 화장실 볼일을 보고나서 뭘 좀 사먹을까 말까 망설이면서 지체하는 사이에 시간이 다 지났던 것이다. 답 문자를 어떻게 보낼까 잠시 생각했다. “저 때문에 점심 너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했더니 “아닙니다. 박 기자님을 만나는 게 반갑습니다.”하고 답이 왔다. 버스에 앉아서 가만히 보니 전광판에 실시간으로 도착 예정시간이 나오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곧바로 “1시 13분에는 도착할 예정이랍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아침 형 인간들은 우리 같은 늦잠꾸러기들에 비해서 점심밥을 일찍 먹는다는 것을 알기에 에그 그 양반 나 때문에 점심 한 번 늦게 먹겠구나 생각하니 미안한 맘이 들었다.

만나 볼 사람은 성직자였다. 광주고속터미널 하차장에서 우린 반갑게 만났다. 그리고 오후 2시,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장소를 옮겨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어렵고도 철학적이고도 미묘한 이야기가 다수 포함돼 있다. 그가 하는 일 중에는 포교활동도 있지만 조상들을 위한 천도식 등 지극히 영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우린 17일 아침 9시 40분까지 광주 망월동 묘역으로 같이 가기로 하고 했다. 서론이 길었다. 광주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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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망월동 묘역과 ‘5.18 유족회 기념식’

해마다 5.18 유족회에서는 하루 전날에 공식행사를 치른다. 5.18 단체들은 ‘5.18 구속 부상자회’와 ‘5.18 부상자회’ 그리고 ‘5.18 유족회’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구속 부상자회는 구속 수감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구타와 고문까지 당한 사람들이고, ‘부상자회’는 구속은 당하지 않았지만 구타를 당하고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다. 또 ‘5.18 유족회’는 5.18 대 가족 중에서 죽음을 당한 유가족들로 구성돼 있다. 물론 정부 인사나 여야의 고위 당직자들은 정부의 공식기념일인 5월 18일 날에 기념행사를 치른다. 지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도 작년에 박근혜 대통령도 이날 다녀갔다. 그런데 ‘5.18 유족회’에서만은 해마다 그 하루 전인 5.17일 날에 기념식을 치르고 있다. 본 기자는 ‘유족회’에서 여는 5.17일 날에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찾았다.

온통 노란 물결이었다. 망월동 국립묘역의 초입 길을 장식하고 있는 리본 색깔이었다. 광주는 자신들의 슬픔 보다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희생된 그 청춘들의 죽음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과 애도를 양보하고 있었다. 굽이굽이 노란 물결을 그렇게 지나서 ‘민주의 문’ 앞에 섰다. 우측에는 초록 잠바를 입은 아주머니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봉사에 한창이다. 책상위엔 방명록이 있었고, 안내문과 유인물 그리고 한겨레신문이 가득 놓여있었다.

어디 보자. ‘민주의 문’ 바로 앞에서는 청소년들 여러 명이 지켜 서 있다가 하얀 국화 꽃 한 송이씩을 건네준다. 언제 어디서 누가 키웠는지 새하얀 국화송이가 탐스럽고 싱싱하다. 카메라가 무거워서 사진을 찍을 때는 줄을 목에 걸고 두 손으로는 카메라 몸체를 받쳐 든다. 허니 꽃을 받아들기가 쉽지 않았다. 해서 헌화할 기회가 있을지 어떨지 몰랐지만 일단 꽃 한 송이를 받으며 물었다. “학생들 어디서 나왔어?” “유족회에서요.” “아~ 유족들이구나!” 기념탑 쪽으로 다가가는데 어라, 눈에 띄는 사람이 있다. 저 아저씨는 뭐지?

다가가서 말을 붙여봤다. “아저씨 수고하시네요.” 아저씨는 국가 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하라!”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등판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 보다 더 어울리는 5.18 기념 곡은 없다! 사랑도 명에도 이름도 남길 없이.......산자여 따르라’ 그리고 (사)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라고 명조체로 쓰여 있었다. 아저씨는 광주민주항쟁 때 부상을 입은 사람인가 보았다. 이름은 박명환(54세), 박명환 씨는 “지금 민주화가 됐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회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5.18 기념곡으로 지정되도록 결의안까지 채택됐지만 정부와 보훈처에서는 이를 계속 묵살하고 있어요. 노래 한 곡 못 부르는 나라,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셈하는 나라가 무슨 나라입니까?”라고 일갈을 하고 있었다.

 

*박정례/ 기자, 언론인, 르포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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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1 12:52 2014/05/21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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