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서의 단상, 거리를 보면 시대의 트렌드가 보인다

                                          -거리는 사람을 부르고 이야기를 피워낸다

 

 [브레이크뉴스 박정례기자]= 명동에 있는 직장에 다니다 보니 명동거리에서 보고 듣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교통수단에 따라서 유입되는 행인들의 모습과 화장품과 패션과 음식 트렌드 등 명동이기 때문에 보고 듣는 것과 보이고 들리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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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거리 모습이다. 전에는 사람들이 명동으로 진입할 때 제일 선호하는 길로 롯데백화점 쪽을 꼽았다. 그리고 충무로 쪽에서 명동성당을 바라보며 들어가는 약간의 경사진 길이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롯데백화점 측 입장에서 보면 한숨이 나올 정도로 명동을 방문하는 행인들의 발길이 빈번하게 닿는 길은 지하철 4호선이 멈추는 퇴계로 쪽과 2호선이 닿는 을지로 1가역이라고 한다. 대중교통과 도로사정에 의해서 광광객의 유입경로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서 상권의 판도가 확연히 차이가 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롯데 쪽은 크게 변할 것 같지는 않고 잘 하면 명동성당 쪽에서 들어오는 길은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조짐이 보인다. 왜냐하면 지난 몇 년 동안 명동성당은 재개발의 기치를 걸고 허구한 날 주변에 소음을 유발하는 근원지였다. 망치 뚜닥거리는 소리와 건축자재를 운반하는 덤프트럭이 넘나드는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땅을 파고 땅을 다지는 포크레인과 쇠기둥에서 쿵쾅거리며 쏟아내는 소음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다 못해서 사람이 미칠 지경이었다. 더하여 성당 입구에는 산성 같이 높은 보호막이 쌓여 있어서 그 앞을 지나노라면 답답해서 고개가 절로 돌아갈 뿐이었다. 무엇인들 그렇지 않을까 마는, 소리와 냄새는 특히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갖고 있다고 한다. 딱 그랬다.

필자가 머무는 사무실은 14층에 있어서 하루 온종일 명동성당 쪽에서 뚜닥거리는 건축소음 때문에 사람이 그만 미칠 지경이었다. 더구나 긴긴 여름 한 철을 자나다 보면 귀도 지치고 사람도 지쳐서 인내심이 그만 바닥날 지경이었다. 어느 날엔가 회사 대표는 견디다 못해서 성당 쪽에 항의 전화를 걸기조차 했다. ‘우린 거룩한 종교기관이니까!’하는 생각일랑 언감생심 가당치 않다. 푸념이 길었다.

반가운 소식일지 모른다. 그런 명동성당이 재개발 공사를 곧 끝낼 모양이다. 어떤 모습으로 그 위용을 드러낼지는 8월 15일 경에 가보면 알겠지만 하여튼 공사로 인한 소음이 멈추고 철벽 같이 높기만 하던 흉물스런 보호막을 걷어내고 새 모습을 보인다고 하니 반갑기 그지 없다. 그동안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다른 구획과는 게임도 안 되게 한산하고 별 볼일 없어 보이던 명동성당 앞쪽도 이제는 쨍하고 볕이 들게 생겼다. 성당 앞에는 어느 결에 스타벅스가 자릴 잡고 앉았다. 해서 가보니 벌써부터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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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거리 이야기다. 거리가 한창 붐빈다.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누비다 보면 각국의 언어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4년 전 일본에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났을 때는 명동을 찾는 외국인 중에 일본인이 제일 많았다. 필자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지금 도피심리가 자리 잡고 있구나!”하는 심증과 함께 “명동거리가 일본인들로 미어터질 것 같았구나!”하고 나도 모르게 내뱉고 있었다. 이를 보면서 잠깐이나마 상대적으로 안전한 내 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가 하는 감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명동은 그때에 비해서 사람들의 조밀도가 약간은 떨어지고 중국과 말레시아 인도네시아 쪽 관광객 수가 두드러지게 많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로드매장 마다 중국어를 외칠 수 있는 점원을 배치하여 손님을 끌어들이기에 고심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국제 정세가 꼭 그렇게 굴러갈 수밖에 없는 동인(動因)은 무엇일까. 무슨 이유에서 우리나라를 찾는 방문객들의 색깔이 달라지는지 히잡을 쓴 이슬람 권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지 그 원인과 결과 치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15대 대통령인 고 김대중 대통령은 “관광산업은 굴뚝 없는 산업이다.”라고 일찍이 설파했었다. 거러면서 관광한국의 입지를 세워야 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관광산업은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사업일 수밖에 없는데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당연히 이러한 비전을 제시하는 선견지명이 있어야 한다.

따져보면 그렇다. 관광 사업은,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지하막장에서나 행하는 채굴사업도 아니고, 소모품처럼 매번 원료가 재투입되고 자본이 드는 사업도 아니다. 그러니 있는 것을 까먹을 필요도 없고 손 털고 파산할 일도 없다. 그저 조상이 물려준 유적지나 사적지 혹은 아름다운 풍광과 문화를 잘 보존하고 관리 발전하여 보이고 느끼고 체험하게 하는 것만으로 이윤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화수분이다. 환경훼손도, 공해 유발도, 대단위 위험도 없다. 사람에게 즐거움과 휴식을 선사하여 생활에 필요한 활력과 에너지를 제공한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우리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명동은 워낙이 상업지구로 유명한 곳이니만큼 인사동과는 달리 소비품목이 주를 이뤄도 상관없을 것 같다. ‘옛말에 눈치가 빠르면 절간에서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고 했다. 거리를 메우는 커다란 물결에 주목하자. 그것에 담긴 뜻을 읽어내는 안목과 센스는 시대의 트렌드로 직결될 것이다. 명동을 보자.

 박정례/ 기자,.르포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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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5 16:13 2014/05/2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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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生生현장 5.18 광주 그 뜨거운 도시-5

-                [생생한 르포] 자유공원, ‘5.18을 체험하는’ 대학생들! -5

[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5.18자유공원이다. 이곳 역시 상무대가 옮겨간 신도심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규모는 33058제곱평방미터, 당시 신군부에 의해 끌려가서 구타와 구금을 당하고 재판받고 수감되던 군사법정과 영창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고 재현한 곳이었다. 오직 민주화! 이를 위하여 드높은 이상을 외치며 젊음의 뜨거운 열정을 불사르던 장소다. 그 항거는 인권, 평화, 화합의 상징으로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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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폭압을 몸소 겪었던 민주열사들이 군복을 입고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맞이하며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과 신군부들이 자행한 만행을 전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60대를 훨씬 넘은 듯한 노병들이었다.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그 날의 함성과 그 날의 항거를 잊지 말기를 염원하면서.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 예나 지금이나 피 끓는 영원한 청춘이기에. 민주열사이기에 “여러 분 저는 당시에 전남 도청에 있었던 시민군이었습니다!” 드넓은 운동장에는 80명 혹은 100여 명 씩 무리를 이룬 학생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그날의 함성을 전해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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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열사기념비에 쪽에 있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자신들은 충남대생으로서 충남대 동아리 연합회에서 ‘5.18광주항쟁기념식’에 단체로 참석한 학생들이라고 했다. 참석인원은 100명가량이라고 한다. 군사 법정 쪽으로 가니 거기도 학생들이 있었다. 눈을 들어보니 비슷한 젊은이들이 줄줄이 또 줄줄이 단체로 찾아들고 있었다. 깃발을 치켜 올리고 있는 학생들은 서울시 전역에서 모집돼 온 ‘평화나비’라는 역사동아리에 소속된 학생들이었다. 그랬다. 그들은 하얀 깃발을 펄럭이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서 자유공원 안쪽 깊숙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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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가자던 뜨거운 맹세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

*박정례/ 기자, 르포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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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3 17:27 2014/05/2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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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生生현장 5.18 광주 그 뜨거운 도시- 4

                            [생생현장 르포]= 5.18 사적지, 기념 문화센터와 기념문화관

[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5.18기념 문화센터로 갔다. 이곳은 상무대가 이전한 이후 정부가 광주시민에 보상하는 차원에서 상무 도심 재개발지구내에 시민공원 부지로 조성된 곳이다. 5.18민주화운동의 명예회복과 값진 교훈을 올바르게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서 각종 의미 있는 조형물과 편의시설 등이 들어서 있었다. 5.18기념문화센터, 5.18현황조각 및 추모승화공간 자료실, 휴식공간 등이 조성돼 있다. 기념문화관은 이래서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은 199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2001년 4월 27일에 개관을 했다. 민주홀(802석) 대동홀(285석) 리셉션홀, 동시통역실, 자료실 등을 갖추고 있고 5.18과 유관한 기념회 3곳의 사무실도 입주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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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에서 두 학생을 만났다. 수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왔다고 한다. 한 사람은 화성에 또 한사람은 안산에서 살고 있다는 고 2학년 남학생들이었다. 4시 반에 도착해서 곧장 이곳으로 오는 길이라고 했다. “오늘 저녁엔 어디서 묵게 되나?”고 물었다. 광주로 전학을 온 친구의 초대로 온 것이라서 그 친구 집에서 잘 거란다. 마침 지인 한분이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잘 왔다.”고 격려를 하며 말을 걸었다. 원탁에 비치돼 있는 자료를 챙겨주면서 친절하게 응대를 해주고 있었다.

미니 인터뷰, 5.18구속부상자회 대변인인 김공휴 씨

김공휴 씨는 5.18 당시 29세였다. 김공휴 청연은 신군부에게 잡혀서 무수히 많은 구타를 당하고 심지어 고문까지 당하고 구속됐던 사람이다. 이 후유증으로 인해서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안 앓아본 병이 없다고 한다. 허리 다리 골절에 신경 심지어는 정신병까지. 힘들고도 험난한 세월을 온갖 후유증과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도 사는 것 답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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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제일 힘든가 물었다. “저의 병은 4월이 되면 심해지기 시작하여 5월이 되면 더 심해집니다. 큰 사건이 일어나면 두렵습니다. 올해엔 세월호 사건이 가슴을 누르고 있습니다.”하고 운을 뗀다. 고문당한 이야기를 물었다. “고문이야 많지요. 보통 하는 고문 다 당했어요. 저같은 경우에는 ‘개미고문’도 당해봤습니다.” 개미고문이 뭔가 물었다. 그들은 김공휴 씨의 옷을 손발을 묶고 옷을 벗겨서 도청 앞에 있는 느티나무로 데려갔다. 거기서 지휘봉으로 개미굴을 헤집어 건드리면 개미떼들이 김공휴 씨 몸으로 기어올라서 간질이고 따갑게 문다. 살갗을 기어 다니는 개미를 털어낼 수가 없었다. 손발이 묶인 데다 몽둥이로 감시를 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도 아니면 몽둥이로 허리 다리 정강이 할 것 없이 마구 때린다. 

구타와 고문 후유증으로 허리 병신, 다리병신으로 살아온 지 34년이라며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19살에 신구부에 잡혀가서 영문도 모르고 당한지 34년이 됐다. 나이도 어언 53세다.

 
며칠 동안 구속됐었나요? “153일 동안 수감돼 있었습니다. 몸 아픈 건 둘째로 치고 정신질환에 시달리느라 허구 한 날 뜬 눈으로 지새우고 있습니다. 어디 사람이 살 수 있어야죠. 거기다 이명박 이래 정부는 역사를 뒤집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인정한 5.18이 반쪽이 나 있고 올해엔 세월호 참사로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 추진하고 계시는 일이 있으시죠? “네. 저희가 사단법인이라서 유지가 힘듭니다. 회원들이 심시일반으로 걷어서 단체를 유지하고 있는 관계로 공익법인단체로 만들려고 하는 거지요. 저 같은 경우도 순전히 무료봉사를 하고 있고요. 그뿐만 아니라 ‘님을 위한 행진곡’도 제대로 못 부르는 이런 사회가 어서 다시 광명을 기대하는 것이고요.”

*박정례/ 기자, 르포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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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3 16:47 2014/05/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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