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달랑 한 줄’,,,메시지 전달, 관객 반응, 흥행 대성공
-봄 작가 겨울무대 마지막 작품 ‘열띤 성원 속 대미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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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봄 작가 겨울무대 시리즈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 마지막 작품 인 ‘달랑 한 줄’이 일요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달랑 한 줄’은 주제의 선명성과 관객들의 호응 면에서 일단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액션과 대사 전달력 뿐 아니라 일부 연기자는 언어의 강약 조절과 함께 말의 묘미까지 살려내는 내공을 충분히 선보였다. 이 극 ‘달랑 한 줄’은 종적(縱的)으로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급 화두로 부상한 ‘미투(Me Too) 운동’과 맞닿아 있고, 횡적(橫的)으로는 일상생활에서 주고받는 말과 행동으로 인한 상처와 파급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가해자가 하는 말이나 행동은 어느 특정인과 집단에 씻을 수 없는 역기능을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미투운동과 한 줄의 말과 한행동이 교집합을 이루며 전개되는 극중 사건은 그래서 성희롱, 성폭력, 성폭행에 관한 여성의 피해사실을 제기하고, 각종 갑질 피해와 몰지각한 말과 행동 또한 이의 부당함을 자각하는 개인과 단체가 부단한 이의제기와 저항으로서 고쳐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송현진 작 ‘달랑 한 줄’은 류근혜 연출에 정혜승, 이은향, 황윤희, 윤혜성이 출연한다. 연실은 남편과 싸우고 집을 나온 뒤, 번역가이며 친구인 명희의 집에서 딸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개성이 강한 커리어우먼인 명희와 같이 사는 게 쉽지만은 않은 상태고, 연실의 가장 큰 고민은 사고뭉치인 막내딸 현주의 튀는 성격이다. 이에 반해 큰딸 은주는 매사에 순응적이고 착하고 모범적이다. 하지만 어느 날 은주는 걸핏하면 ‘여자니까 조심해야 한다.’며 현주를 다그치는 엄마를 보며 화를 내고 만다. 연실은 평소 착하기만 한 은주의 행동에 당황스럽고도 혼란스런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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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명희는 출판사로부터 계약파기를 당한다. 책에 나오는 표현들이 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부당하고 불편하다”며 번역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낙심한 명희는 잠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이를 본 은주는 명희를 위로한다. 이 과정에서 둘은 ‘성폭행과 성희롱’이라는 비슷한 상처를 안고 있음을 알게 된다. 현주는 명희를 적극 지지하며 “우리가 여성을 비하하는 문장 한 줄이라도 바꿔보자” “작은 행동이라도 해보자”고 제안하며 ‘문장 한 줄 바꾸기’ 투쟁을 시작한다. 이때 연실은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된다. 명희의 투쟁에 동참하기로 했으니 말이다.

연극에서 연출의 몫은 무엇인가? 달랑 한 줄의 연출가 류근혜 씨의 시각을 통하여 조망해본다. 배우들이 극중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고 표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방향이다. 류근혜 연출가는 등장 배우를 그래서 60대, 50대 30대 20대 로 고루 기용하여 역할에서 오는 전달력에 힘썼다고 한다. 어머니 역할을 연기한 연실 역은 60대인 정혜승이, 당차게 사회활동을 해내고 있는 명희 역은 50대인 이은향, 직장과 사회생활에 순응하며 착하게 살아가는 역엔 30대인 황윤희가 담당하도록 한다.

또 교복 안에 면티를 입은 일로 벌점을 받게 되자 오히려 그 티셔츠에 ‘왜 안 되는지 1도 모르겠다.’라는 글씨를 새겨 입고 온몸으로 저항하는 현주 역이다. 현주 역은 그래서 어린 나이 축에 끼는 20대 윤혜성에게 맡겼다고 한다.

작가정신을 보자. 연출가는 ‘달랑 한 줄’이라는 극본에 자신의 철학과 시대정신을 덧입혀 선보이는 일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연출가의 의도에 따라 무대구성과 소품 선택도 이루어진다. 극의 마지막 장에는 잘록한 허리에 풍만한 가슴을 자랑하는 마네킹이 등장한다. 이 소품은 여성의 전도된 가치를 상징할 것이다.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그 어떤 불편함도 불사하는 여성성이다. 하여 여성 자신은 참고, 입 다물고, 그 어떤 폭력과 부당한 처사에도 가정이 사회가 조용하기 위해서는 참고 견뎌야 한다는 가치관을 덧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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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강압에 의한 인내는 오래가지 못한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기에 때가 되면 불거지기에. 건전한 분출구 없이 참고 견디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류근혜 연출이 “작품을 연출하면서 자기 검열에 시달렸다”고 하는데서 보듯이 미투운동에 힘입어 많은 여성들이 꽁꽁 숨기고 있던 성폭행과 성폭력에 대해 “나도 당했다”며 나섰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이내 ‘그만 하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이를 보며 “관객들이 또 미투문제냐?”며 불편해 할까봐서 잠시 고민을 했지만 표현의 자유야말로 진정한 용기이며 “제대로 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무대에 올리겠다”는 결심으로 나서게 됐다고 한다.

그렇다. 말 하지 않는 자의 입은 타인을 감화시킬 수 없다. 한편 큰 고통이 따르는 고백일수록 타인에게 주는 선물은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고백과 나눔은 지난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숨기고 싶은, 그래서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수반한다. ‘달랑 한 줄’은 미투운동과 맞물려 때맞춰 나온 작품일 뿐만 아니라 주제의 선명성과 관객의 반응과 흥행 면에서 드물게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봄 작가 겨울무대의 마지막 작품이 열띤 성원 속에서 대미를 장식한 것이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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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 22:44 2018/12/02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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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작가 겨울무대,,,쇼와 예술무대의 다른 점
-대학로에서 ‘어제의 당신이 나를 가로 지를 때’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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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박정례 기자]= 대학로가 많이 한산해졌다. 무수히 많은 젊은이들로 붐비던 예전의 그 대학로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인디밴드의 메카로 거듭난 홍대로 간 것일까? 아니다. 대학로는 오늘도 연극마니아들이 믿고 찾을 수 있는 연극 전용 극장이 즐비한 곳이기에 여전히 사랑 받는 곳이라 단언할 수 있다.

본 기자는 금요일 밤 <봄 작가 겨울무대> 세 번째 작품으로서 이소연 작 손원정 연출의 ‘어제의 당신이 나를 가로 지를 때’를 감상했다. 연극을 보면서 대학 때 봤던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렸고, ‘쇼와 공연예술무대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와 공연작품을 위시해서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각종 프로젝트와 문제점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됐다.

먼저 쇼와 예술작품들에 대한 생각이다. 쇼는 더없이 화려하다. 말초신경을 강하게 자극하며  주로 유명연예인이나 대중예술가들이 출연하는 공간이다. 대형 쇼가 빈번한 시대 추세에 따라  최첨단 기기가 동원되어 스타카토로 끊어 투사하는 휘황찬란한 조명이 무대를 휘젓는가 하면 칼 군무를 추는 아이돌가수의 박력 있고 역동적인 동작이 주름을 잡는 곳이다. 이들은 많게는 열댓 명이 그룹을 이뤄 한꺼번에 떼 창을 들려준다. 

그러나 쇼는 쇼일 뿐이다. 예술무대가 주는 다양한 감동과 여운을 안겨주는 맛이 덜하다는 얘기다. 반면에 공연예술은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을지라도 우리에게 긴 여운과 감동을 안겨준다. 일례로 우리가 보는 연극에는 작품의 소재부터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근간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일수록 보다 많은 보편성을 획득하고 더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연극을 비롯한 공연예술은 우리의 삶을 겸허히 반추하게 만들고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예술무대에는 그래서 수천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관객도, 연예인을 응원하는 야광방망이의 위세나 열성 펜들의 환호도 없다. 쇼처럼 쌈빡하고 화려한 퍼포먼스는 없을 지라도 인생의 한 단면과 맞물려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하여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먼 훗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라도 갖가지 형태로 우리의 삶과 조우하는 신비를 선사한다. 이것이 예술무대가 주는 진정한 가치가 아닌가 싶다.

사실 ‘어제의 당신이 나를 가로 지를 때>를 보면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렸다. 인생도 연극도 잘 몰랐던 대학시절이었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부조리극으로 꼽히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서는 ‘주제가 기다림이구나.’ 파악할 수 있었고, 작품이 어렵고 재미없다 느끼면서도 좀처럼 얻을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인생의 아이러니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다.

이어 정부의 지원금 문제다. 예술작품과 예술단체, 연구프로젝트와 각 대학을 비롯한 수많은 연구기관들은 국민의 세금을 정직하고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가이다. 후자의 경우 연구실적을 턱없이 부풀리기나 걸핏하면 연구원이나 학생들의 몫으로 지급돼야 할 임금을 해당 교수나 책임자가 부당 착복하는 일이 심심찮게 폭로돼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적이 있어 왔다.

예술분야에서도 국민의 세금이 정당하고 올바르게 쓰여야 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실 혹은 나눠 먹기식 선정은 작품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고, “이런 작품 보려고 아까운 시간 내서 여기까지 왔나?”하는 후회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국민의 세금으로 제작되는 작품만이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성을 담보하길 바라며, 보다 좋은 작품들이 무대에 많이 올려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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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5 15:44 2018/11/2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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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작가 겨울무대 시리즈,,,연극 ‘고시원 연쇄 화재사건’
-신 한국형 주거형태 고시원에서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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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연쇄 화재사건’이라는 연극에 흥미가 동했다. ‘봄작가 겨울무대’ 시리즈 중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올라 이수진 작 이우천 연출로 맹주영, 한덕호, 박미선, 박선혜, 전민영, 선종남, 안지은, 배상돈, 민경록, 오혜진 10인이 연기를 펼친 두 번째 작품(11월16 금~18.일)이다.

이 연극은 고시촌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연쇄 화재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모티브로 해서 전개된다. 고시촌의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추리소설 작가를 꿈꾸고 있는 치현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화재 사건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조사를 시작한다. 여기에 치현의 고교동창이자 고시원에 거주생인 동민은 묘령의 여인 은주를 보며 한 눈에 반한다. 그런데 치현은 은주를 자꾸만 범인으로 지목한다.

우리 주변에서는 요즘 고시원 화재가 꽤나 빈번하다. 얼마 전 종로의 ‘국일고시원’ 화재에서는 사망자 7명에 부상자 11명의 피해자를 냈다. 고시원 화재의 가장 큰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이익추구에 비해 형편없이 열악한 시설의 후진성 때문이다. 해마다 50건 정도가 발생하는 고시원 화재가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이유는 스프링클러.화재경보.안전점검 소홀에서 보듯이 도덕불감증과 같은 후진국 형 인재(人災)에 모텔 형 벌집구조에서 보듯이 지나친 이익 추구에서 오는 자본주의 속성 때문이다.

고시원은 처음 대학가나 유명학원 근처에서부터 시작됐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지방학생들이나 통학거리가 먼 학생들, 유명학원 근처의 각종 공시생들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고시원의 이용객들도 다양해져 숫자도 전국에 약 15만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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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도심지 고시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일용직 노동자나 큰 돈 없이 거주할 공간을 찾는 이들이다. 도심지에는 일거리와 인력시장이 많고, 무료급식을 할 수 있는 곳에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프라 구성이 돼 있어 고시원은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들이 교통비 아끼고, 주거비 아끼기 위한 신 대안공간으로 선호하는 측면이 강한 대안공간이다.

고시원 화재사건은 그래서 후진국 형 사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안전 불감증에서 오는 인명사고와 사회안전망 부재에서 오는 사회양극화로 인해 도시빈민으로 내몰린 사람의 생존권과도 맞물려 있는 양태로 나타나고 있다.

작품 ‘고시원 연쇄 화재사건’은 이런 현실과 밀접한 문제점을 시의 적절하게 건드린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본 기자가 ‘고시원 연쇄화재사건’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찾은 이유다.

그러나 보자. 작품은 무대에 오르는 순간 작가를 떠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나 시나리오를 모르고도 작품을 통해서 감동과 감화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유명 희곡작가여서 극장을 찾진 않았고, 지명도를 획득한 히트작이어서도 아니다. 2018년도에 등단한 작가들에게 무대공연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5년 만에 부활한 제도를 통하여 한국극작가협회와 한국연극연출가협회로부터 수혜자로 선정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말이다. 작가는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화재를 강조하고 있음에도 주제의 집중력이나 메시지를 선명하게 제시하지는 못하고, 선덕여왕을 사랑한 ‘자귀의 설화’에서 작품의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며 불탄 시신을 이와 연결시키는 뉴앙스를 풍기고 있다. 하지만 엔딩은 결국 묘령의 여인 은주가 부동산 업자로 밝혀지며 극은 끝난다. 

이와 더불어 심플하고도 모던한 무대장치는 돋보였으나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장면들은 주제 파악과 몰입에 득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등퇴장이 원활한 무대구조였으나 객석과 가까운 쪽을 놔두고 무대 귀퉁이에서 이뤄지는 동작들은 객석 왼편에 앉은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아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극장환경과 주변 여건은 나물랄 데 없는 것 같은데 무엇이 문제였는지? 주제의 부각과 배우들의 동선(動線), 설익은 대사 등 퀘스쳔 마크(question)가 찍히는 점에 이르러서는 할 말이 그리 많지 않다.

*글쓴이/박정례.르포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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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8 17:26 2018/11/1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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