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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와 후천성인권결핍사회

  "에이즈보다 무서운 '후천성인권결핍증'"
  [기고]인권위 권고를 접한 에이즈 감염인의 호소
 
  2007-03-11 오후 4:11:34  
 
   
 
 
  "에이즈 확산 방치해 국민 생명권 침해할 건가", "인권위, 현실과 이상 사이"….
  
  지난달 27일자 신문에 실린 사설 및 칼럼 제목들이다. 하루 전 나온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비판한 내용이다. 당시 인권위는 보건복지부가 입법 추진 중인 '후천성 면역결핍증 예방법 일부개정 법률안' 등이 인권을 침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유흥업소 종사자에 대한 에이즈강제검진 조항을 삭제하고 HIV(AIDS발병 바이러스)감염인의 익명성을 보장하라고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에게 권고했다.
  
  대부분의 매체는 인권위의 이런 권고를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인권위가 왜 이런 권고를 했는지에 대해 주목한 매체는 거의 없었다. 당시 인권위 권고안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지켜본 한 의과대학 교수는 "대부분의 언론이 HIV에 대한 초보적인 상식도 갖지 못 한 채, 인권위 권고를 처음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를 일방적으로 따라갔다"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인권위가 이런 권고를 한 이유는 HIV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상당부분 편견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인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악수, 포옹 등의 일상적인 접촉을 통해서는 전파되지 않는다. 또 HIV에 감염돼도 별 증상 없이 지내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최근 의학의 발전에 따라 HIV 수치를 현격히 떨어뜨리는 치료법도 나왔다. 다른 질병에 비해 전염율이나 위험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이미 HIV에 감염된 인구가 너무 많아서 기존의 통제 중심 대책이 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도 중요한 이유였다. 인권위는 당시 "질병관리본부에 집계된 HIV감염인은 3750명에 불과하지만, 실제 감염인은 훨씬 많아 에이즈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통제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감염인에 대한 지원ㆍ예방ㆍ교육정책을 통해 자발적인 치료 의지를 극대화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인권위 권고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해 의료 전문가들은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림대 의과대학 최용준 교수는 "체액을 통해 전파되는 에이즈에 대해 다른 질병보다 더 엄격한 통제를 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공기나 음식, 물 등을 통해 전파되는 다른 전염병에 비해 감염 위험이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HIV감염인들은 이런 편견이 아주 익숙하다고 말한다. 언론만이 아니라 정부와 학교 등 사회 모든 영역에서 보편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숙한 편견이라해서 그들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인권의식이 성숙해도 변하지 않는 편견 때문에 더욱 절망하는 경우가 많다.
  
  에이즈로 투병 중인 윤 가브리엘 씨가 인권위 권고안을 접한 소감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이 글에서 윤 씨는 에이즈 환자들에게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은 뒤, 기본적인 인권적 배려조차 하지 않는 우리 사회, 그리고 정부의 태도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윤 씨는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서도 에이즈 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불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암과 마찬가지로 에이즈도 조기에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며, 환자들이 스스럼없이 검사에 응하도록 하려면 에이즈 환자에 대한 편견을 허물어야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윤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그러나 감격은 잠시뿐
  
▲ 사진은 지난 2005년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에이즈 운동가들이 '침묵의 행진' 행사를 하고 있는 모습. 이들은 에이즈 환자들의 인권존중을 촉구하며 행진을 벌였다. ⓒ뉴시스=로이터

  나는 HIV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 7년이 됐고, 현재 투병 중인 에이즈 환자다.
  
  지난 2월 26일에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가 발의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하 에이즈예방법) 개정안에 대해 권고를 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드디어 일어났구나."
  
  한국에서 HIV감염인이 발견된 1985년 이후, 처음으로 국가기구에서 감염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올바른 에이즈 정책을 마련하도록 에이즈예방법을 개정하라는 의견을 내놓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음날 나온 언론의 보도를 보며 나의 희망은 고개를 숙였다. 대부분의 언론은 에이즈가 처음 발견됐을 당시의 편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에이즈가 아니라 정부와 언론이 만들어놓은 '후천성인권결핍사회'에 감염인들이 면역이 되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안 변하는 구나", "또 시끄럽구나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굳어지고 희망을 아예 놓아버리는 일이다.
  
  에이즈가 발견된 지 22년이 지났다. 그동안 감염인들이 얼마나 차별받으며 살아왔는지 이 지면을 다 채워도 모자란다.
  
  "콘돔 없는 성행위, 처벌하겠다"…에이즈에 대한 지겨운 편견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에이즈에 대해 어떻게 말해왔고, 감염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걸리면 그냥 죽어버리는 공포의 질병', '문란한 이들에게 신이 내린 천벌' 등 에이즈를 단순한 '질병' 이상의 것으로 바라봤다. 감염인에게 '문란한 삶의 결과'라는 낙인을 찍고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취급을 해 왔다. 에이즈 예방 이야기가 나오면 감염인을 더욱 감시하라는 목소리를 일제히 높여왔다.
  
  이런 잘못된 정보와 편견으로 인해 HIV감염인은 직장에서, 병원에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버림받으며 사회적 죽음 속에서 신음해 왔다.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하고, 민간보험은 가입조차 안된다. 직장건강검진에 에이즈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서 그 결과가 사업주에게 전달돼 해고로 이어진다.
  
  감염인의 주민등록번호, 성 정체성, 성 행태 등에 관한 정보까지 질병관리본부에 차곡차곡 쌓이고, 이 정보들을 '질병관리'라는 명목으로 함부로 사용한다. 에이즈에 감염된 외국인은 한국에 들어올 수 없고, 감염이 확인되면 강제출국 당한다.
  
  심지어 감염인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행위를 했을 경우 처벌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공무원이 여러분들의 성행위를 감시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것은 엄청난 인권침해이고, 불가능한 규제이다. 이 규정은 감염인을 악의적,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다.
  
  이런 차별을 합법화하는 것이 에이즈예방법이다. 에이즈예방법은 1987년에 제정된 이후로 에이즈예방을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에게만 예방 책임을 강요하고, 감염인을 감시하도록 하고 있다.
  
  감염인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행위를 했을 경우 처벌하게 하는 조항, 감염인을 관리∙감시하게 하는 신고·보고 조항, 외국인과 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제검진조항 등 감시와 통제가 본질을 이룬다. 에이즈예방법은 에이즈 예방에 있어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통제는 국민 건강권 위한 것?
  
  한국정부가 반인권적이고, 에이즈 예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금까지 취해 온 조치들은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첫째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무시하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다. 심지어 "HIV감염인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과 차별은 법이나 제도, 정부정책에 기인된 것이라기보다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신은 다르다는 차별의식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에이즈 예방법 개정방향 모색토론회. 2006.11.27).
  
  세 번째는 감염인의 인권과 국민의 이익이 서로 상충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이익을 위해서 감염인을 감시하고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고, 감염인들은 지은 죄가 있으니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들이 말하는 감염인의 죄는 '성적 문란함'이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의 이익은 일부일처제를 따르는 순결한(문란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의 성생활이다. 우리사회에서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키고 일부일처제를 따르지 않는 모든 경우는 문란하다는 딱지를 붙이지 않는가?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 사회는 억지로 부정한다. 그 정점에 동성애자와 성매매여성이 있다. 에이즈를 받아들이고 감염인의 인권을 존중하면 이 사회가 문란해지고, 문란한 그들이 에이즈바이러스를 퍼트려서 국민의 건강권을 해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네 번째는 특정집단에게만 에이즈예방책임을 강요하는 것이다. 1차적으로는 감염인에게, 2차적으로는 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여성들에게 말이다.
  
  에이즈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병일 뿐
  
  즉 한국정부는 "에이즈에 걸리면 죽는다"고 겁을 주고, "문란하고 부도덕해서 에이즈에 걸린다"고 편견을 조장하고, 감염인들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퍼뜨린다고 낙인을 찍음으로써 감염인을 비난하고 멀리하는 것이 에이즈를 예방하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에이즈는 수혈과 성행위를 통해서,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산모에서 태아에게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감염되어 면역력이 약해지는 질병이다. 의학이 발달된 지금은 에이즈 치료제를 복용하면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관리할 수 있는 만성질병이 됐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미국의 한 연구는 현재 미국에서 에이즈감염인의 평균수명이 24년이라고 발표했다. 물이나 음식을 통해 감염되는 콜레라나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결핵과는 달리 에이즈는 혈액이나 유즙(乳汁, 젖) 등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통해서는 감염되지 않는다.
  
  의학적으로 보더라도 에이즈 예방은 성관계를 가지는 모든 이들, 그리고 수혈이나 헌혈 등 혈액을 다루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된다. 특정 집단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적인 기준에 따르면 동의 없는 에이즈 검진은 모두 강제검진으로 규정하고 금지하고 있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도 이런 기준을 따른 것이다. 즉 특정한 이들에게만 에이즈예방 책임을 강요하는 것이 반인권적일 뿐아니라 성공적인 에이즈예방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정책대로 감시와 통제에 기반하여 에이즈를 예방을 하려면 성생활을 하는 모든 국민에게 강제로 에이즈검사를 시키자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연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할 때 에이즈검사확인서를 제출할 의무를 두는 사회를 만들자는 말인가?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검사를 꺼리게 만든다
  
  한국정부는 자발적인 에이즈 사를 받도록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꺼리게 만든다. 조기 암검사를 잘 실행하기위한 방법을 생각해보자. 많은 이들이 조기 암검사를 받도록 하기위해서는 암이라는 질병에 대해 올바로 알려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게 만들어야하고, 초기에 발견하면 고통을 줄일 수 있고 예후가 훨씬 좋다는 조기검사의 필요성을 잘 알려야 한다.
  
  그리고 비용 때문에 주저하지 않도록 무상검사가 되어야 하고, 치료의 기회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조기암검사는 성공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에이즈도 질병에 대해 공포를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질병의 예후와 나와 파트너의 건강을 위해 검사를 해야 할 필요성을 잘 알려야 한다. 무상검사와 치료기회 역시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터부가 없어져야 검진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에이즈예방법과 복지부의 개정안은 무상검사 이외에는 다른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 에이즈에 걸리면 죽는다고 알려져있고, 에이즈 양성판정을 받으면 외국인은 치료는커녕 강제출국을 당하고, 대부분의 감염인들이 가족, 친구, 동료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직장을 잃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는 상황에서 누가 검사를 받겠는가? 검사를 받아서 예방을 하고, 치료를 받고, 나름의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검사를 받고 싶은 동기나 이유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 정부와 언론이 만들어놓은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편견, 감염인에 대한 차별은 오히려 에이즈 예방을 가로막고 있다. 누구나 에이즈 예방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이즈 감염인이란 사실을 당당히 밝힌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지지와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줄도 모르고, 에이즈 검사를 받을 엄두도 못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감염인을 감시하고 외국인, 성노동자 등 몇몇 집단에게만 에이즈 검사를 강요하고, 콘돔만 던져준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건강권을 방치하는 길이다. 감염인 인권보장이 에이즈 예방의 지름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제까지 우격다짐으로 인권 침해를 강요할 건가?
  
  22년동안 인간의 권리를 빼앗긴 채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억울하다는 말한마디 못한채, 아프다는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죽어나간 이들의 설움을 아는지 모르겠다. 죽어서도 이름을 숨겨야하는 슬픔을 아는지 모르겠다. 나를 비롯한 감염인들은 참 질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언론과 정부의 지독한 폭력을 다 참아내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더 이상 감염인들이 그리고 우리사회가 인권결핍사회를 참아내고 두고보기를 바라지 않는다.
  
  과거 문둥병, 폐병이라고 부르면서 격리시키고 천대시했던 한센병 환자들과 결핵 환자들의 경험을 반복할 참인가? 전염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음에도 언제까지 우리 사회는 비과학적이고 우격다짐격으로 인권결핍사회를 살아갈 것인가? 에이즈 감염인에게 억울하게 빼앗긴 인권을 돌려줘야 한다.
   
 
  윤 가브리엘/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대표
 
 
 

 

 

이 글은 윤가브리엘이 프레시안에 기고하여 기사화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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