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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으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종헌

 

 


한순간의 만남이 영원토록 기억되는 것은 그리 흔치 않다. 모 전자회사의 말처럼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지만, 잊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순간의 기억은 평생 지속된다. 이런 기억은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남아있는 인생의 편린처럼 내 삶에 영속한다. 우리의 윤가브리엘과 만나는 순간순간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 앞으로의 윤가브리엘은 내게 또 다시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다.


Scene#1. 2005년 11월 어느 날. 에이즈 토론회에서.


친구사이가 ‘AIDS를 바라보는 동성애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개최하는 장소에서 나는 윤가브리엘을 처음 보았다. 토론자들의 토론 이후, 자유 토론 시간 중 윤가브리엘은 잘못된 에이즈 관련 인식이나 감염인 인권 관련 이야기를 빠짐없이 토해냈다. 내가 ‘토하다’라는 다소 격한 표현을 쓴 이유는 그것이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라도, 그 순간 내게 주는 인상은 그러했고, 내가 가진 HIV/AIDS의 막연한 오해와 감염인에 대한 두려움을 한순간에 깨트리는 상황을 잘 표현하기 때문이다. 내가 먼발치에서 바라 본 윤가브리엘은 그러했다.


Scene#2. 2006년 3월 어느 날. 나누리+모임에서.


나누리+모임 처음으로 참여하는 날. 몇 달 전 내게 강렬한 인상을 주던 그 분이 이 자리에 계셨다. ‘그분이 이분이었구나!’ 나는 몇 분가량 몰래 혼 빠진 정신을 차리느라 시간을 벌어야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익어갈 즈음, 윤가브리엘은 따뜻하게 맞아주며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해달라며 인사를 나눴다. 회의는 저녁이 밤으로 이어갈 무렵까지 진행되었고, 그날 윤가브리엘은 표정은 무엇 때문인지 지쳐보였지만 목구멍 깊은 곳에서 깊은 발성 없이 나오는 소리 한마디 한마디가 더 깊게 자리했다.


Scene#3. 2007년 6월 2일.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현장에서


  3월 후원의 밤 행사 이후 간만에 뵙는 윤가브리엘. 이날은 왠지 더 씩씩해 보였다. 지난 몇 달 동안 HIV/AIDS 관련 운동에 같이 참여하며 일했던 몇몇 분들도 함께 자리해 축제를 즐겼다. 다들 그 동안의 활동으로 조금씩 피곤해보여 맥주 몇 캔을 건넸다. 윤가브리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는 축제를 잊지 않고 찾아주었다. 역시 그도 동성애자이고, 우리들의 친구이기에.


  윤가브리엘의 젊었을 때 인상이 나와 닮았다고 다른 활동가 분들이 말한다. 영광이다. 회의 자리에서, 토론회 자리에서, 그리고 축제의 자리에서 그를 만날 때도 영광이지만, 그런 분과 닮았다고 하니 더욱 영광이다. 그때 모습을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지금도 윤가브리엘은 아름답다. 감염인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그리고 당당하게 문제점을 문제시하는 그는 여전히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은 모습은 순간 스쳐갈지도 모르지만, 기억으로 남아 언제나 같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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