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봄날 ‘짱가’를 꿈꾸는 가브리엘이

 

요 며칠 봄 햇살이 참 따스했었는데 오늘은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 마당에 앉아 이글을 씁니다. 오늘도 지팡이2와 3은 열심히 운동중입니다. 이곳에는 저(지팡이 1)를 포함하여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는 지팡이 삼총사가 있어요. 한 친구는 집안을 열심히 걷고, 한 친구는 팔운동에 열심이네요. 병원 가는 일 외에는 외출하기가 어려운 그들이기에, 집안에만 갇혀 지내는 생활이 얼마나 답답하고 하루가 지루할지 짐작이 갑니다. 저는 워낙 병원 갈 일도 많고, 요즈음 바깥출입을 할 일이 자주 생겨 외출을 할라치면 날 따뜻해졌다고 옷 얇게 입으면 검기 걸리기 십상이니 따뜻하게 입고 나가라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늘 잊지 않습니다.


그날 후원의 밤을 치르던 날도 잘하고 오라며 등 두들겨 주면서 자신들이 못가는 것을 많이 아쉬워하고 미안해했습니다. 난 자기들이 격려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후원을 받았으니 괜찮다며 미안해하는 그들을 애써 위안합니다. 마음대로 외출할 수 없는 그들의 몸상태와 많은 이들 앞에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또한번 무거웠습니다. 언젠가 내가 지팡이에서 해방되어 튼튼한 다리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날 둘을 데리고 나가 술도 한잔하고 노래방도 가자며 약속을 했었는데 얼른 튼튼해져서 그 약속을 지켜야겠습니다.


그날 후원의 밤에 오셨던 많은 분들이 저에게 주셨던 도움의 손길과 따뜻한 격려를 분에 넘치게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주셨던 격려와 지지는 저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지팡이 삼총사를 비롯하여 HIV/AIDS감염인 모두에게 주신 것이라고 믿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절망속에서 힘들어하는 감염인들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엄청난 기운이 솟아나는 ‘짱가’처럼 슝 날아가 그들과 함께 있는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아니 상상만이 아니겠지요. 여러분들이 충분한 기운을 주셨으니까요. 그날 오셨던 한분 한분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못한 점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그날 사정상 오시지 못해 후원금만 보내주신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는 어느님께서 문자메시지로 보내주신 ‘내년에도 후년에도 봄은 돌아오니 잘 견디고 이겨내면 또 봄일거라’는 말씀처럼 잘 견디고 꼭 이겨내겠습니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활동하는 가브리엘을 꼭 보여드리겠습니다.


-봄날 ‘짱가’를 꿈꾸는 가브리엘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와 후천성인권결핍사회

  "에이즈보다 무서운 '후천성인권결핍증'"
  [기고]인권위 권고를 접한 에이즈 감염인의 호소
 
  2007-03-11 오후 4:11:34  
 
   
 
 
  "에이즈 확산 방치해 국민 생명권 침해할 건가", "인권위, 현실과 이상 사이"….
  
  지난달 27일자 신문에 실린 사설 및 칼럼 제목들이다. 하루 전 나온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비판한 내용이다. 당시 인권위는 보건복지부가 입법 추진 중인 '후천성 면역결핍증 예방법 일부개정 법률안' 등이 인권을 침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유흥업소 종사자에 대한 에이즈강제검진 조항을 삭제하고 HIV(AIDS발병 바이러스)감염인의 익명성을 보장하라고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에게 권고했다.
  
  대부분의 매체는 인권위의 이런 권고를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인권위가 왜 이런 권고를 했는지에 대해 주목한 매체는 거의 없었다. 당시 인권위 권고안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지켜본 한 의과대학 교수는 "대부분의 언론이 HIV에 대한 초보적인 상식도 갖지 못 한 채, 인권위 권고를 처음 보도한 연합뉴스 기사를 일방적으로 따라갔다"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인권위가 이런 권고를 한 이유는 HIV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상당부분 편견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인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는 악수, 포옹 등의 일상적인 접촉을 통해서는 전파되지 않는다. 또 HIV에 감염돼도 별 증상 없이 지내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최근 의학의 발전에 따라 HIV 수치를 현격히 떨어뜨리는 치료법도 나왔다. 다른 질병에 비해 전염율이나 위험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이미 HIV에 감염된 인구가 너무 많아서 기존의 통제 중심 대책이 별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도 중요한 이유였다. 인권위는 당시 "질병관리본부에 집계된 HIV감염인은 3750명에 불과하지만, 실제 감염인은 훨씬 많아 에이즈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통제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감염인에 대한 지원ㆍ예방ㆍ교육정책을 통해 자발적인 치료 의지를 극대화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인권위 권고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해 의료 전문가들은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림대 의과대학 최용준 교수는 "체액을 통해 전파되는 에이즈에 대해 다른 질병보다 더 엄격한 통제를 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공기나 음식, 물 등을 통해 전파되는 다른 전염병에 비해 감염 위험이 적다는 것이다.
  
  그런데 HIV감염인들은 이런 편견이 아주 익숙하다고 말한다. 언론만이 아니라 정부와 학교 등 사회 모든 영역에서 보편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숙한 편견이라해서 그들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인권의식이 성숙해도 변하지 않는 편견 때문에 더욱 절망하는 경우가 많다.
  
  에이즈로 투병 중인 윤 가브리엘 씨가 인권위 권고안을 접한 소감을 담은 글을 보내왔다. 이 글에서 윤 씨는 에이즈 환자들에게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은 뒤, 기본적인 인권적 배려조차 하지 않는 우리 사회, 그리고 정부의 태도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윤 씨는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서도 에이즈 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불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암과 마찬가지로 에이즈도 조기에 진단하는 것이 중요하며, 환자들이 스스럼없이 검사에 응하도록 하려면 에이즈 환자에 대한 편견을 허물어야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윤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그러나 감격은 잠시뿐
  
▲ 사진은 지난 2005년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에이즈 운동가들이 '침묵의 행진' 행사를 하고 있는 모습. 이들은 에이즈 환자들의 인권존중을 촉구하며 행진을 벌였다. ⓒ뉴시스=로이터

  나는 HIV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 7년이 됐고, 현재 투병 중인 에이즈 환자다.
  
  지난 2월 26일에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가 발의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이하 에이즈예방법) 개정안에 대해 권고를 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드디어 일어났구나."
  
  한국에서 HIV감염인이 발견된 1985년 이후, 처음으로 국가기구에서 감염인의 인권을 보장하고 올바른 에이즈 정책을 마련하도록 에이즈예방법을 개정하라는 의견을 내놓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다음날 나온 언론의 보도를 보며 나의 희망은 고개를 숙였다. 대부분의 언론은 에이즈가 처음 발견됐을 당시의 편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에이즈가 아니라 정부와 언론이 만들어놓은 '후천성인권결핍사회'에 감염인들이 면역이 되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안 변하는 구나", "또 시끄럽구나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굳어지고 희망을 아예 놓아버리는 일이다.
  
  에이즈가 발견된 지 22년이 지났다. 그동안 감염인들이 얼마나 차별받으며 살아왔는지 이 지면을 다 채워도 모자란다.
  
  "콘돔 없는 성행위, 처벌하겠다"…에이즈에 대한 지겨운 편견
  
  우리 사회는 그 동안 에이즈에 대해 어떻게 말해왔고, 감염인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걸리면 그냥 죽어버리는 공포의 질병', '문란한 이들에게 신이 내린 천벌' 등 에이즈를 단순한 '질병' 이상의 것으로 바라봤다. 감염인에게 '문란한 삶의 결과'라는 낙인을 찍고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취급을 해 왔다. 에이즈 예방 이야기가 나오면 감염인을 더욱 감시하라는 목소리를 일제히 높여왔다.
  
  이런 잘못된 정보와 편견으로 인해 HIV감염인은 직장에서, 병원에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버림받으며 사회적 죽음 속에서 신음해 왔다.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하고, 민간보험은 가입조차 안된다. 직장건강검진에 에이즈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서 그 결과가 사업주에게 전달돼 해고로 이어진다.
  
  감염인의 주민등록번호, 성 정체성, 성 행태 등에 관한 정보까지 질병관리본부에 차곡차곡 쌓이고, 이 정보들을 '질병관리'라는 명목으로 함부로 사용한다. 에이즈에 감염된 외국인은 한국에 들어올 수 없고, 감염이 확인되면 강제출국 당한다.
  
  심지어 감염인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행위를 했을 경우 처벌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 공무원이 여러분들의 성행위를 감시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것은 엄청난 인권침해이고, 불가능한 규제이다. 이 규정은 감염인을 악의적,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는다.
  
  이런 차별을 합법화하는 것이 에이즈예방법이다. 에이즈예방법은 1987년에 제정된 이후로 에이즈예방을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집단에게만 예방 책임을 강요하고, 감염인을 감시하도록 하고 있다.
  
  감염인이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행위를 했을 경우 처벌하게 하는 조항, 감염인을 관리∙감시하게 하는 신고·보고 조항, 외국인과 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제검진조항 등 감시와 통제가 본질을 이룬다. 에이즈예방법은 에이즈 예방에 있어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통제는 국민 건강권 위한 것?
  
  한국정부가 반인권적이고, 에이즈 예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금까지 취해 온 조치들은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첫째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조성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무시하고,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다. 심지어 "HIV감염인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과 차별은 법이나 제도, 정부정책에 기인된 것이라기보다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신은 다르다는 차별의식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에이즈 예방법 개정방향 모색토론회. 2006.11.27).
  
  세 번째는 감염인의 인권과 국민의 이익이 서로 상충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국민의 건강과 이익을 위해서 감염인을 감시하고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고, 감염인들은 지은 죄가 있으니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들이 말하는 감염인의 죄는 '성적 문란함'이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의 이익은 일부일처제를 따르는 순결한(문란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의 성생활이다. 우리사회에서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키고 일부일처제를 따르지 않는 모든 경우는 문란하다는 딱지를 붙이지 않는가? 다양한 성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 사회는 억지로 부정한다. 그 정점에 동성애자와 성매매여성이 있다. 에이즈를 받아들이고 감염인의 인권을 존중하면 이 사회가 문란해지고, 문란한 그들이 에이즈바이러스를 퍼트려서 국민의 건강권을 해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네 번째는 특정집단에게만 에이즈예방책임을 강요하는 것이다. 1차적으로는 감염인에게, 2차적으로는 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성소수자, 여성들에게 말이다.
  
  에이즈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만성질병일 뿐
  
  즉 한국정부는 "에이즈에 걸리면 죽는다"고 겁을 주고, "문란하고 부도덕해서 에이즈에 걸린다"고 편견을 조장하고, 감염인들이 에이즈 바이러스를 퍼뜨린다고 낙인을 찍음으로써 감염인을 비난하고 멀리하는 것이 에이즈를 예방하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에이즈는 수혈과 성행위를 통해서,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산모에서 태아에게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감염되어 면역력이 약해지는 질병이다. 의학이 발달된 지금은 에이즈 치료제를 복용하면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관리할 수 있는 만성질병이 됐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미국의 한 연구는 현재 미국에서 에이즈감염인의 평균수명이 24년이라고 발표했다. 물이나 음식을 통해 감염되는 콜레라나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결핵과는 달리 에이즈는 혈액이나 유즙(乳汁, 젖) 등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통해서는 감염되지 않는다.
  
  의학적으로 보더라도 에이즈 예방은 성관계를 가지는 모든 이들, 그리고 수혈이나 헌혈 등 혈액을 다루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된다. 특정 집단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적인 기준에 따르면 동의 없는 에이즈 검진은 모두 강제검진으로 규정하고 금지하고 있다. 이번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도 이런 기준을 따른 것이다. 즉 특정한 이들에게만 에이즈예방 책임을 강요하는 것이 반인권적일 뿐아니라 성공적인 에이즈예방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정책대로 감시와 통제에 기반하여 에이즈를 예방을 하려면 성생활을 하는 모든 국민에게 강제로 에이즈검사를 시키자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연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할 때 에이즈검사확인서를 제출할 의무를 두는 사회를 만들자는 말인가?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검사를 꺼리게 만든다
  
  한국정부는 자발적인 에이즈 사를 받도록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꺼리게 만든다. 조기 암검사를 잘 실행하기위한 방법을 생각해보자. 많은 이들이 조기 암검사를 받도록 하기위해서는 암이라는 질병에 대해 올바로 알려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게 만들어야하고, 초기에 발견하면 고통을 줄일 수 있고 예후가 훨씬 좋다는 조기검사의 필요성을 잘 알려야 한다.
  
  그리고 비용 때문에 주저하지 않도록 무상검사가 되어야 하고, 치료의 기회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조기암검사는 성공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에이즈도 질병에 대해 공포를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질병의 예후와 나와 파트너의 건강을 위해 검사를 해야 할 필요성을 잘 알려야 한다. 무상검사와 치료기회 역시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터부가 없어져야 검진이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에이즈예방법과 복지부의 개정안은 무상검사 이외에는 다른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 에이즈에 걸리면 죽는다고 알려져있고, 에이즈 양성판정을 받으면 외국인은 치료는커녕 강제출국을 당하고, 대부분의 감염인들이 가족, 친구, 동료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직장을 잃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는 상황에서 누가 검사를 받겠는가? 검사를 받아서 예방을 하고, 치료를 받고, 나름의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검사를 받고 싶은 동기나 이유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 정부와 언론이 만들어놓은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편견, 감염인에 대한 차별은 오히려 에이즈 예방을 가로막고 있다. 누구나 에이즈 예방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이즈 감염인이란 사실을 당당히 밝힌다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지지와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줄도 모르고, 에이즈 검사를 받을 엄두도 못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감염인을 감시하고 외국인, 성노동자 등 몇몇 집단에게만 에이즈 검사를 강요하고, 콘돔만 던져준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건강권을 방치하는 길이다. 감염인 인권보장이 에이즈 예방의 지름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제까지 우격다짐으로 인권 침해를 강요할 건가?
  
  22년동안 인간의 권리를 빼앗긴 채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억울하다는 말한마디 못한채, 아프다는 말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죽어나간 이들의 설움을 아는지 모르겠다. 죽어서도 이름을 숨겨야하는 슬픔을 아는지 모르겠다. 나를 비롯한 감염인들은 참 질긴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언론과 정부의 지독한 폭력을 다 참아내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더 이상 감염인들이 그리고 우리사회가 인권결핍사회를 참아내고 두고보기를 바라지 않는다.
  
  과거 문둥병, 폐병이라고 부르면서 격리시키고 천대시했던 한센병 환자들과 결핵 환자들의 경험을 반복할 참인가? 전염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음에도 언제까지 우리 사회는 비과학적이고 우격다짐격으로 인권결핍사회를 살아갈 것인가? 에이즈 감염인에게 억울하게 빼앗긴 인권을 돌려줘야 한다.
   
 
  윤 가브리엘/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대표
 
 
 

 

 

이 글은 윤가브리엘이 프레시안에 기고하여 기사화된 것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미FTA는 아픈 이들에게 재앙입니다

한미FTA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한미FTA 협상은 협상 개시부터 비민주적인 절차와 국내 농업기반의 붕괴, 의료/교육/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정책을 훼손할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거센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양 국 정부는 협상 체결에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지적재산권 분야는 미국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될 가능성이 큽니다. 저작권, 특허 등 지적재산권은 국내의 문화(산업)과 공공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됨에도 불구하고, 국내 상황에 대한 고려없이 미국 국회에서 정해진 법이 한국에 강제되는 것입니다. 다국적 문화자본과 제약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내 문화산업의 붕괴와 공공적 보건의료정책의 훼손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한미FTA 협상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한미FTA 협상을 막아내기 위한 투쟁에 동참해주시길 절절한 심정을 담아 호소드립니다.

한미 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



[호소문] 한미FTA는 아픈 이들에게 재앙입니다.

윤 가브리엘

저는 에이즈양성판정을 받은 지 7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벼랑 끝에 서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에 놓여있어요. 국내에 있는 에이즈치료제에 내성이 생겨서 각종 기회감염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힘들게 투병중입니다. 한국에서는 13가지 에이즈치료제가 판매되고 있고, 대부분 1990년대에 개발된 약입니다. 이 약들에 대해서는 보험적용이 되어서 무상으로 공급받습니다. 이 약들도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오리지널 약이라 건강보험과 한국정부에서 지출하는 약값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지금 제가 먹는 1년 치 약값이 1300만원 가량 이에요. 그런데 한국에서 에이즈가 발견된 지 20년이 지나 이 약들에 대해 내성이 생긴 에이즈환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한국에서 판매되는 13가지 치료제에 모두 내성이 생겨서 효과가 없어요. 약이 없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2000년 이후에 미국에서 승인을 받은 에이즈치료제는 약제성분기준으로 12가지이지만 한국에서 시판허가를 받은 것은 3가지뿐이에요. 이 중에서도 실제 판매가 되고 있는 것은 2가지뿐입니다. 다국적제약회사 로슈(Roche)는 푸제온(Fuzeon)에 대해 2004년에 우리나라에서 판매허가를! 받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 팔리는 가격을 요구하면서 판매를 하지 않고 있어요. 연간 2만달러(약 2천만원)를 요구합니다. 미국에서도 푸제온 가격이 너무 비싸서 문제가 되었었어요.

제가 지금 살기위해서는 적어도 연간 3000만원이 넘는 돈을 구해야합니다. 한국에는 에이즈 환자수가 적어서 돈벌이가 안 된다고 제약회사가 약을 팔지 않거나 아주 높은 가격을 요구하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약을 구해야 합니다. 전 세계의 에이즈 감염인이 모두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고 있듯이, 한국에서도 에이즈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직장생활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더욱이 저처럼 몸이 많이 안 좋아진 환자는 어떤 일도 하기 힘들어서 소득이 없습니다. 40년을 살아왔지만 저의 통장 잔고는 100만원이 안됩니다. 1년에 2만달러를 주고 푸제온을 구한다는 것은 저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에이즈치료를 하려면 보통 3가지 약을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푸제온 외에도 2가지 신약에 대한 약값을 마련해야해요. 에이즈환자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약값만 1년에 3000만원 가량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일거예요. 게다가 에이즈는 면역력이 떨어지는 질병이기 때문에 각종 기회감염을 치료하는데 많은 비용이 듭니다. 저는 현재 면역력이 떨어진 에이즈환자들이 잘 감염되는 거대세포바이러스(CMV) 때문에 치료를 받고 있는데 ?! ? 달에 200만원이 들어요. 이 약은 보험이 안돼서 희귀의약품센터에서 사서 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거대세포바이러스는 우리몸속에 누구에게나 있지만, 저처럼 면역력이 낮은 사람에게는 치명적이에요. 이 주사약을 끊으면 거대세포바이러스가 망막을 침투해 실명할 수 있고, 신경계를 손상시켜서 마비상태가 될 수도 있고, 뇌에 침투하면 뇌사상태에 빠질 수도 있답니다. 이 비용역시 감당할 수 없어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요. 신약을 기다리는 사이 저는 오른쪽 시력을 잃었고, 걷기도 힘들게 되었어요. 면역력이 낮다보니 사마귀바이러스도 제 얼굴이며 팔, 다리, 온몸에 사마귀를 주렁주렁 매달아놓았지요. 병원에서는 하루빨리 신약을 써서 면역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지만 제약회사가 약을 팔지 않거나 약값을 너무 높게 요구해서 신약을 구할 수가 없으니 버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두렵기도 하고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지금 맞고 있는 거대세포바이러스 주사약값만으로도 하루하루를 허덕이는 상황에서 로슈가 요구하는 비싼 새 에이즈치료제를 산다! 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약이 있어도 약을 먹을 수 없는 문제가 저만의 문제가 아님을 잘 압니다. 저는 2004년부터 친구들과 함께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라는 단체에서 에이즈감염인의 인권을 위한 일을 하고 있어요. 작년 초에 한미FTA 협상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우려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보건복지부가 작년 5월에 약제비를 줄이기 위해 약제비적정화방안을 발표했을 때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반대를 표명하는 기자회견을 했어요. 저는 그 당시에 이미 몸이 많이 안 좋았지만 다국적제약회사가 뭐라고 말하는지 듣고 싶었어요. 그들은 약제비적정화방안을 반대하는 이유가 환자들에게 신약접근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어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말하는 신약접근권이란 그들이 원하는 터무니없이 높은 약값을 인정해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들은 왜 약값을 비싸게 결정해야하는지, 연구개발비가 얼마인지, 생산원가가 얼마인지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 이유도 없이 높은 약값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에이즈환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저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살 수 있는 방법이 있! 는데도 제약회사가 약을 팔지 않아서, 약값이 너무 비싸서 제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것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나는 에이즈환자입니다. 로슈는 푸제온을 왜 그렇게 비싸게 팔려는지 대답하십시오." 하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어요. 약이 있어도 제가 약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약제비적정화방안때문이 아니라 특허약이라는 이유로 약값이 너무 비싸기 때문입니다.

그 후 미국협상단은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똑같은 이유를 들어 한미FTA 2차 협상을 결렬시키더니 7차 협상까지 오면서 한국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어요. 의약품 특허기간도 연장해주고, 약값을 결정할 때 미국제약회사가 이의를 신청할 수 있는 기구도 만들기로 했고, 제약회사가 의료정책이나 제도에 대해 정부를 제소할 수 있는 권한까지 내주었어요. 이제는 고위급회담에서 무역구제와 의약품, 자동차간에 빅딜을 한답니다. 환자의 생명을 웬디커틀러와 김종훈의 두 사람의 손으로 주고받기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지요?

얼마 전 태국에서는 특허 때문에 비싸서 먹지 못하는 약을 싸게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발표했어요. 이 방법을 의약품특허에 대한 ‘강제실시’라고 부르는데,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인정을 하고 있고, 우리나라 특허법에서도 가능한 방법입니다. 두 가지 에이즈치료제와 심장질환을 치료하는데 사용하는 혈전치료제를 태국국영제약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해서 특허약보다 1/2~1/10 싸게 공급할거라고 합니다. 태국국영제약회사에서 생산할 수 있는 준비를 할 동안 인도에서 값싼 복제약을 수입해서 사용하기로 했대요. 계속 값비싼 특허약을 사용할 경우 태국정부에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무상공급을 포기해야하고, 약을 필요로 하는 모든 환자에게 공급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한국과 태국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아요. 태국도 미국과 FTA 협상중이고, 의약품 특허를 확대하고 독점기간을 연장하도록 요구를 받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같은 약이라도 용도, 용량, 색깔과 코팅조차도 특허가 가능하고, 기존 약물의 혼합도 특허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효과를 가진 새로운 물질에만 특허를 받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특허권?! ? 받아서 독점기간을 늘리고 있어요. 미국은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과 FTA 협상을 하면서 제약회사가 돈을 더 많이 벌도록 미국처럼 하라고 요구를 하고 있어요. 저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독점기간이 늘어난 만큼 비싼 약값을 제약회사에게 주어야 하고, 약값을 결정할 때 제약회사 맘에 안 들면 이의를 제기하고 소송을 걸고, 한국의 의료제도나 정책이 제약회사의 기대에 못 미치면 정부가 소송을 당하고 지면 우리가 낸 세금으로 보상을 해줘야 하는 과정들이 기가 막힙니다. 지금도 다국적 제약사들이 특허라는 명목으로 비싼 약값을 요구하고 약이 있어도 못 먹고 죽어가고 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랫동안, 얼마나 더 많은 환자들이 제약회사의 돈벌이를 위해서 죽어가야 할까요?

병원에 갈 때마다 치료를 받는다는 생각보다 진료비와 약값걱정 때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일어서야한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고 약해지는 마음을 계속 다잡고 있지만 현재 한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FTA 협상은 저의 의지를 꺾으려 하고 있어요. 저에게는 한미FTA를 반대하는 목숨을 건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특허권과 비싼 약값 때문에 에이즈 감염인이 하루에 8000명씩 죽고 있습니다. 전 세계 에이즈 감염인에게 FTA는 생명포기각서와 같아요. 에이즈는 더 이상 죽음의 병이 아닙니다. 치료제를 잘 복용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답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가난한나라의 사람들이 에이즈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 목숨을 잃는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살고 싶습니다.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생명의 가치를 단지 돈벌이의 대상으로만 치부해버리는 다국적 제약사한테 따져 묻고 싶어요. 우리 에이즈환자들과 감염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할 일이 너무나 많아요. 그런데 미국이 추진하는 FTA는 저같은 에이즈환자에게 치료할 수 있! 는 기회를 빼앗아 갈 것이고, 이것은 에이즈를 확산시키는 길입니다. 에이즈 뿐만아니라 고혈압, 당뇨, 암처럼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평생 치료를 해야하고 새로운 약이 필요한데, FTA가 체결되면 신약을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보험이 안 되는 부분 때문에 건강보험제도에 불만이 많지만 FTA가 체결되면 머지않아 우리는 지금의 혜택도 못 받게 될 거예요. 한미FTA는 아픈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호소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에이즈환자만의 문제로 여기지마시고, 우리 국민 모두 건강하게 살아야갈 수 있도록 소중한 권리를 위해, 우리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FTA를 반대해야 합니다. 태국처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병들고 가진 것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해야할 정부가 배부른 가진자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해 서둘러 FTA를 체결한다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정부는 3월 8일~12일까지 8차 협상을 서울에서 하고 4월초에는 타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답니다. 저는 제 온몸을 보여주고 싶어요. 제약회사가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되면 환자는 어떻게 되는지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인터넷 상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한국정부의 태도에 대해, 한미FTA에 대한 우려스러움에 대해 친구, 가족, 동료들에게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3월에 농민, 빈민, 노동자, 영화인, 방송인, 학생, 의사, 약사들이 8차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할 때도 많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픈 이들에게 사망선고와 같은 한미FTA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호소드립니다.

한미 FTA 저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

주소 :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1가 13-1 정봉원빌딩 5층
전화 : 02-717-9551 | 이메일 : ipleft@jinbo.net
홈페이지 : http://nofta-ip.jinbo.net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희망은 언제나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

 
희망은 언제나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
에이즈 인권모임 나누리+ 윤가브리엘을 만나다
강곤 | 기자 19호 | 2007년 1월
윤 가브리엘(39세)은 동성애자이고 에이즈 환자다. 이 한 줄의 글이 가진 폭력성과 선정성을 우리 사회는 아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6년 전부터 그리 대수롭지 않은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지만 에이즈 환자에게는 폐렴이나 중추신경계의 장애를 가져올 수 있어 치명적인 CMV 바이러스와 질긴 싸움을 해오면서 한편으로는 에이즈 인권모임의 대표로 활동의 최전선에 서 있던 활동가이다. 지난 해 들어서 급속도로 몸이 악화되면서 벌써 다섯 차례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 중인 그를 찾아갔다.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을 가다

 


오른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아요. 의사가 치료 불가능한 단계라고… 하지만 한 쪽이라도 보이는 게 천만다행이죠. 아직은 걷는 것도 힘에 부치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어제는 병원 안에서 조금 걷는 연습도 하고. 문제는 CMV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주사인데 그동안 맞던 주사가 부작용이 생겨 다른 것으로 바꿨어요. 그런데 바꾼 약이 보험 적용도 안 되고 병원에도 없는 약이라서 희귀약품센터에 직접 주문해서 맞고 있어요. 한 달에 약값만 190만 원 정도 들고…. 돈도 돈이지만 이 약도 부작용이 생길 경우 대책이 없죠. 지난 달(2006년 11월)에 잠시 퇴원을 하면서 의사한테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어요. 그 얘기 듣고 엉엉 울었죠. 갑자기 무섭더라구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지 않아요. 지금 같아서는 조금만 더 회복하면 곧 활동할 수 있을 거 같은데….

99년도에 폐렴과 결핵을 심하게 앓았죠. 그때 입원을 하면서 감염 사실을 알게 됐어요. 너무 늦게 알고 치료도 늦게 시작한 탓인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에이즈 치료제는 전부 내성이 생겼고 다른 기회감염도 많은 편이죠. 처음 에이즈에 걸렸단 것을 알았을 때는 나도 보통사람들처럼 편견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면서 한 6개월 동안 연락도 끊고 잠적을 했죠. 당시만 해도 감염인 모임이나 에이즈 인권단체들이 전무했어요. 혼자서 끙끙 앓다가 10년 넘게 사귄 친구에게 털어놨는데 고맙게도 너무 따뜻하게 나를 위로해줬어요.

 


그 후 그는 동성애자인권연대의 문을 두드리면서 조심스럽게 인권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그의 말대로라면 “우연한 기회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2003년 ‘에이즈 인권모임 나누리+’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대표까지 맡게 된다. 그 뒤로 그는 HIV/AIDS 감염인 당사자이자 에이즈 인권활동가로서 감염인의 인권과 관련된 국내외의 현장을 쉼 없이 누벼왔다.

 


2003년 당시에 언론에 에이즈 환자에 대한 진료 거부라든지 감염인 부부가 낳은 아이가 감염이 되어 감염인은 임신을 금지시켜야 한다든지 하는 내용이 나왔어요. 왜 우리는 사람대접도 못 받고 숨어 지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동성애자에다가 에이즈 감염인이란 사실 때문에 꺼려지는 게 없었던 건 아니지만 결국 누군가는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활동을 하면서 사실 보통사람들은 워낙 모르니까 오히려 설명하고 설득하기 쉽죠. 감염인들에게 호소하는 게 훨씬 어려워요. 그들이 나서는 게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단 한명이라도 나를, 우리를 지지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그런 어느 날 캠페인을 하는데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자기도 에이즈 환자라며 고맙고 수고한다는 거예요. 캠페인을 하면서 감염인이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는데….

 


윤 가브리엘의 긍정의 힘

 


 

그는 2006년 활발했던 HIV/AIDS 감염인 인권에 대한 활동도 많은 침묵하는 감염인들이 어딘가에서 지켜보며 지지를 보내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런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그의 태도는 에이즈 인권활동가 이전의 삶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어릴 적에 집을 나왔어요. 중2 땐가. 위로 누나 하나와 세 명의 형들이 있었는데 누나는 아주 어릴 때 시집을 갔고 부모님하고 형들과 같이 살았죠. 그런데 나만 배다른 동생이었어요. 그래서인지 큰 형이 참 많이 나를 괴롭혔어요. 때리기도 많이 때리고. 어떤 날은 ‘너 오늘은 반찬은 먹지 말고 밥만 먹어’ 하면 그래야 했어요. 오줌 쌌다고 벽을 보고 서있다 쓰러져 잠든 적도 많았죠. 아버지는 택시를 했고 어머니도 장사를 해서 늘 밖에 있었으니까, 형의 주먹보다 무서운 건 없었죠. 둘째나 셋째 형은 그렇지 않았는데 큰 형만 유독 나를 괴롭혔고 아무도 거기에 대들지 못했어요. 그러다 도저히 이대로는 못살겠다 싶어서 중학교 2학년 때 가출을 했어요. 그리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간 곳이 전자제품 뒤편에 들어가는 기판에다가 구멍을 뚫는 일을 하는 공장이었어요. 거기서 일하면서 졸다가 손가락을 구멍 뚫는 기계에 넣어 이렇게 다친 거예요. (그의 왼손 가운데 손가락은 약간 짧다. 아예 마디가 다 잘렸다면 이어붙일 수도 있었지만 반 마디가 뭉개져서 그마져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거기는 일도 어렵지 않고 늦게까지 시키지도 않아 좋았는데 어느 날 공장 앞에서 우연히 아는 친구를 만난 거예요. 가족들이 찾아올까봐 사장에게 맡겨놨던 월급 통장도 못 챙기고 그길로 도망쳤죠. 나중에 주민등록증을 만들 나이가 되어서 집을 물어물어 찾아가봤는데 아버지는 내가 집 나오고 얼마 안 있어서 당뇨로 돌아가셨고 키워준 어머니는 다른 분하고 지금 지방에서 살고 있어요. 친어머니야 찾을 길이 없죠. 아버지가 살아 있었더라면 혹시 몰라도….
그리고 간 곳이 동대문 평화시장에 있는 봉제공장이에요. 거기서 미싱보조로 시작해서 아프기 전까지 10년 넘게 일을 했죠. 하루에 18시간씩 일을 했어요. 그러면 바지 한 벌에 몇 천 원씩 나한테 떨어지는 거예요. 거기서 기억나는 게 일한 것 밖에 없어요. 당시에는 청계피복노조가 활발히 활동할 때였지만 대부분 이렇게 도급제로 일을 하다 보니 우리가 오히려 불빛을 가리고 몰래 일을 했지요. 그래야 수입이 느니까. 사실 그때는 노조가 뭐 하는 곳인지 그런 것도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죠.

 


그러면서 그는 스물한 살 때 네 살 연상인 여자와 동거도 했다고 한다. 성 정체성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딴에는 나름대로 자신의 문제에 대해 치료를 해보려는 노력이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동거를 했으니 여자한테는 정말 미안하죠. 지금이라도 다시 만나면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못 만나게 되네요. 손가락과 예전부터 앓던 중이염으로 군대를 면제를 받고나서도 나는 슬프고 우울했어요. 군대를 갔다 오면 남자다워질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마저도 가지 못하게 됐으니…. 왜 나는 남들 다 가는 군대도 못 갈까 절망을 했죠. (웃음) 남들은 돈 벌었다고 하며 남의 속도 모르고 좋겠다고 떠드는데.

 


사람에게 희망을 걸다

 


그런 그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고 더 나아가 에이즈라는 치명적인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넘어 활동을 하게끔 했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

 


열아홉 살이었던 86년 어느 날인가 라디오에서 한영애 씨의 노래를 들었죠. 어, 우리나라에도 이런 여자 가수가 있다니… . 충격적이었죠. 그 목소리와 독특한 창법에도 반했지만 음악이 얼마나 철학적인지 몰라요. 삶을 진지하게 돌아볼 기회랄까, 세상살이에 대한 가르침이랄까 하는 것을 한영애 씨의 노래를 통해 얻고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사춘기부터 시작되었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어릴 때부터 받았던 폭력이 겹쳐서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없는데 왜 나는 이렇게 살기 힘든 것일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어릴 때는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슬퍼서 노을을 보면서 울기도 많이 했어요. 지금도 어릴 적 생각을 하면 그때가 아련하게 떠올라요. 그냥 어디론가 떠나면 나를 구해줄 사람이 나타나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죠. 지금 돌이켜보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죠. 성인이 될 때까지 누구도 나에게 세상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 뭐 이런 것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는데 한영애 씨 노래가 그런 세상에 대한 목마름을 달래줬죠. 그래서 한영애 씨의 노래는 내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에요.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마감할 때 제일 아쉬운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를 지원해주고 도와줬던 이들에게 미안한 거 하나 하고 또 하나는 이제 더 이상 한영애 씨 음악을 못 듣는다는 거예요.(웃음) 노래 중에 ‘말도 안 돼’란 노래가 있는데 거기 가사 중에 ‘희망은 너와 내가 맞잡은 손에 있다’는 부분, 그게 지금까지 내 삶의 신조가 된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그는 지난 해 5월 백혈병 환자로 에이즈 인권모임 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김상덕 씨(본지 2006년 7월, 13호 人터뷰 참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지금도 한 쪽 팔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라며 상실감을 표현했다.

 


상덕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별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통하는 그런 사이가 됐어요. 아픈 사람끼리 모이면 아팠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얼굴만 봐도 서로 그런 얘기도 할 필요가 없는 처지란 것을 알았던 거죠. 상덕이는 다국적 제약회사와 싸웠던 경험도 있고 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사실 활동을 시작하면서 내가 못 배웠다는 것,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많이 주눅 들어 있었어요. 처음 만나서 학번이 뭐냐고 물어오면 ‘대학 안 나왔다’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은 하지만…. 어디 회의를 가서도 제발 내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으면 하고 앉아있게 되죠.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감염인 당사자로서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하는 고민이었어요. 그런 부분에서도 상덕이는 참 도움이 많이 되던 친구였죠. 지금도 기억에 남는 말이 “인권활동이 감염인 단체를 쫓아가서도 앞서가서도 안 된다. 감염인과 함께 가야 한다. 그리고 절대 이익집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거예요. 깊은 얘기도 못했고 오래된 친구도 아니었지만 늘 전화할 때면 서로 “제발 아프지 마라”며 끊었죠. 그 친구 추모 글에서도 “거기서는 제발 아프지 마라”고 썼지요.

 


든든한 동지이자 벗이었으며 선배이기도 했던 이를 떠나보낸 그는 지금 많이 지쳐 보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있다. 몸이 회복되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뭐냐는 질문에 “그동안 밀린 활동을 어서 해야죠.”라고 조금의 주저도 없이 대답한다. 그런 것 말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말해달라고 하니 역시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한영애 씨 공연 보러 가야죠.” 돌아와 그가 말한 한영애의 노래가사를 찾아본다. 그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래도 희망은 너와 내가 손잡은
사람에게 걸 수밖에 희망은 언제나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있게 마련이지

 


사진 박김형준 |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jinbo_media_23&id=192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추모의글] 먼저 떠난 상덕에게

 
[추모의글] 먼저 떠난 상덕에게  “부디 그곳에서는 질병과 고통 없이 편안히 살기를”
윤가브리엘(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26일 세상을 떠난 고 김상덕 활동가를 추모하는 글을 윤가브리엘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대표가 보내왔다. 김상덕 활동가가 글리벡 투쟁을 이끌었던 환자 당사자라면, 윤가브리엘 대표는 현재 HIV/에이즈 감염인들의 인권보호 활동을 이끌고 있는 감염인 당사자다. 윤가브리엘 대표는 현재 병세가 악화돼 서울대 병원에 입원 중이며, 병상에서 추모의 글을 작성해 보내왔다.[편집자주]

 

지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초저녁 설핏 든 잠을 전화벨 소리에 깨고 이렇게 모니터 앞에 앉았다. 오늘은 아주 길고 힘든 하루를 보냈었어. 날벼락 같은 너의 죽음을 듣고도 병실에 갇혀 꼼짝 못하는 내 자신도 원망스럽고 그렇게 황망히 가버린 너도 야속하고 그렇더구나.

 

너를 민중의료연합 사무실에서 권미란의 소개로 처음 보았을 때 구구한 자신의 소개를 하지 않아도 너의 살아온 이력을 다 알 것 만 같았어.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에 화상을 입은 듯한 너의 외모를 보고 나 못지않게 아프고 힘들게 살아온 친구라는 걸 단박에 느끼면서 진 한 동질감을 느꼈었다. 너나 나나 어떻게 병마와 싸워 왔는지 앞으로도 어떻게 병마와 싸워야 하는지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뭔가가 있었다고 생각해. 우린 한번도 서로의 아픈 이력에 대해 얘기해 본적이 없었잖아.

 

너가 앓고 있던 백혈병이나 내가 앓고 있는 에이즈란 병이나 환자들의 문제는 거의 대동소이 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어떤 방법이 환자들의 권익에 도움이 될까를 늘 고민하고 문제의 핵심들을 잘 짚어내던 풍부한 너의 경험과 지식에 배울 점 이 참 많은 친구라고 늘 생각 했었다.

 

그리고 훗날 에이즈 환자나 백혈병 환자나 모든 환자들이 다같이 연대하여 환자의 권익을 찾기 위한 일들을 해야 한다고 그래 놓고서 그렇게 황망히 가버리다니,,,

 

나의 신체 한쪽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너에게 내가 참 많은 기대를 했었나봐. 죽음은 망자의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산자의 것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 말 이 딱 맞는 것 같구나.

 

나 역시 앞으로도 내가 얼마나 살아 나갈 수 있을까 문득문득 드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 저으며 ‘얼마를 사는 게 뭐 중요해 하루를 살아도 열심히 사는 게 중요하지’라고 다짐 했었는데, 너의 죽음을 접하고 얼마를 사는 것도 중요 한 일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나도 참 우매한 인간에 불과 한 것 같아. 난 죽음 이라는 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었어. 훌쩍 떠나버리면 그만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 남아있는 사람도 생각해야 한다는 걸 또 배우게 된다. 아마 너도 그렇게 편안히 눈감지는 못했을 것 같아.

 

그동안 너를 힘겹게 짓누르던 삶의 무게를 이제 그만 내려놓고 먼저 간 그곳에서라도 고통 없이, 아픔 없이, 질병 없이, 편안히 살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함께 하려던 우리의 일들을 너를 생각해서,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남아 있는 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먼저 간 그곳에서 라도 날 지켜봐줄 거 라 믿는다!

 

상덕아! 그곳에선 제발 아프지 말아라!

 

 [2006년 5월, 당시 입원중이었던 윤가브리엘이 먼저 떠나간 김상덕님을 추모하는 글을 민중언론 참세상에 기고한 것입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3631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에이즈 25년속의 에이즈운동

 [2006년 7월 동성애자인권연대 진보포럼에서 발표한 글입니다]

 

에이즈 25년 속의 에이즈운동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윤가브리엘


1) 미, 에이즈발견 ‘에이즈 이데올로기로 게이들 죽이기’


올해로 에이즈 발견 25년이 되었다. 미국에선 에이즈 25년을 맞아 25년 정리와 에이즈 문제가 어떻게 왜곡되고 이용되어 왔는지 언론들이 특집기사들을 통해 다루었다. <이글 에서는 시사 주간지<뉴스위크>가 에이즈25년 ‘에이즈가 미국을 어떻게 바꿨나’의 특집기사에서 일부분 인용하였다.>


1981년 미국 질병관리센터(CDC) 의사들이 “남성 동성애자"들이 감염되는 특이한 급성폐렴과 피부암 사례”로 보고하면서 에이즈는 세상에 존재를 알렸다,

당시 대통령 레이건의 보좌관을 지낸 팻 뷰캐넌은 1983년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를 이렇게 묘사했다 “동성애자들이 자연과의 전쟁을 시작했고, 자연은 가공할 천벌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 한마디로 레이건 정부와 극우파, 언론 등이 왜곡과 무시, 비난의 질병으로서 에이즈를 다루었다는 것을 단 적으로 알 수 있다.

에이즈발견 25년 역사를 돌아보면 당시 미국 사회는 마치 중세 인들이 흑사병을 대하듯 무관심과 적의, 오해로 에이즈를 다루다 질병을 키웠고, 특히 남성동성애자들은 극우파와 기독교에 의해 질병을 확산시키는 악마 취급을 당하며 “신이 동성애자에게 내린 천벌”이란 낙인을 받고 죽어 나갔다. 82년 美 의료인ㆍ언론, 등은 에이즈를 "동성애자 관련 면역 결핍증"으로 소개. 질병관리센터 는 에이즈(AIDS) 로 명칭을 지정하였다, 아이티 출신, 동성애자, A형 혈우병환자, 정맥 약물주사자, 를 4대 위험요인으로 지목하였다. 종교적, 도덕적 이유로 게이와 약물 주사자 들에게 관심이 없던 레이건 정부는 무관심으로 일관하였고 언급자체를 꺼렸다. 미국에서만 에이즈로 1만 2천여 명 이 사망할 때까지 공식석상에서 한 번도 이를 언급하지 않은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레이건의 입에서 ‘에이즈’라는 말은 1987년에야 나왔다. 그것도 ‘비정상인들’인 남성 동성애자들끼리의 성관계가 유일한 발병원인인 ‘게이 암’으로 에이즈를 언급하여 이른바 ‘정상인들’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을 조소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1980년대 미국 언론들도 에이즈 보도에 무관심 했다. 뉴욕 타임스는 81~82년 사이 새로운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해 10건 미만의 기사만 실었으며, 그나마도 작은 박스 기사로 다루었다. 뉴스위크도 83년 4월에야 커버스토리로 다루었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성애자도 감염된 1982년 2월 '게이들에게 종종 치명적인 질병이 여성과 이성애자에게도 발병하다'라는 제목으로 처음 보도했다. HIV감염인 들은 가정에서 쫓겨나고, 직장에서의 해고, 학교, 병원, 등 에서 기피, 격리대상이었으며 의료 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당시 게이 사회도 에이즈에 대해 무관심 했다. 게이 언론도 에이즈를 취급하지 않았다. 언론에서 “게이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에 다룬 기사들을 게이 언론들은 “질병관련 소문은 대체로 근거 없다”는 제목을 달았다. 에이즈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는 게이사회 일각에서 여러 해 동안 지속되어 왔다. 주변인들이 피부암으로 또는 심한 폐렴으로 입원 하는 동안에도 70년대의 파티를 이어가길 원했던 다수의 게이들은 자신들의 성적자유에 에이즈가 찬물을 끼얹는 걸 원치 않았다. 84년에 가서야 샌프란시스코 게이 전용사우나 폐쇄 여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동성애자 권리 운동가이자 작가인 ‘래리 크레이머’(87년 ACT-UP 을 조직한 활동가)는 당시 게이들이 많이 모이는 행락지에서 에이즈 연구기금 모금 운동을 벌였으나 불과 769 달러 밖에 안모였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처음으로’ 에이즈를 알게 된 것은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85년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에이즈로 끝내 사망하면서 그때서야 미국인 들은 에이즈를 처음으로 인식했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감염인 근처에만 가도 병을 옮는 줄 알았던 당시 상황에서, 친구 록 허드슨의 손을 잡으며 그의 뺨에 키스를 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사진은 혁명적 인 것 이었다. 이 후 테일러는 에이즈 자선 재단을 운영하며 미 정부 보다도 더 먼저 발 벗고 나서서 에이즈 연구기금과 환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선 활동을 시작하였고 에이즈 자선재단의 대표적인 얼굴이 되었다.

그 이후 91년 농구 스타 매직 존슨의 감염은 '버젓하고 건강해 보이는 스포츠 스타'도 에이즈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충격적 이었고, 영국의 유명 록 그룹 퀸의 리드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 의 감염사실 과 죽음은 전 세계를 놀라 게 만들었다


2) 미 에이즈환자들 거리를 나서다! ‘침묵은 죽음이다’


81년 에이즈 가 처음 발견 된 이후 이 질병과 질병의 확산을 수수방관한 미 정부에 분노를 터뜨려온 에이즈 운동가 “래리 크레이머”는 87년 실의에 빠져있는 에이즈 환자 1만 여명을 모아 뉴욕 맨하탄 동성애자 지역봉사센터에서 '직접행동' 조직 액트업(ACT UP “권력의 해방을 위한 에이즈연대”)을 결성한다.  액트업 은 ‘침묵=죽음 Silence=Death’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고. 백악관 앞에서 에이즈로 사망한 환자의 관을 들고 정부의 무대책에 항의하며 투쟁에 나선다. 액트업 이 결성된 같은 해 87년 미 FDA에 첫 승인 된 에이즈 치료제 AZT (지도부딘)를 환자들이 먹을 수 있게 하고 조속한 치료제 개발과 지원을 촉구 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치료제 AZT를 개발한 제약사가 있는 월스트리트를 봉쇄했다. 이후 에도 액트업 과 연대하는 많은 단체들(옥스팜, 국경없는의사회 등)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점거하고 성패트릭 성당에서 대규모 시위 등을 지속적으로 벌인다. 이 들의 지속적인 투쟁에 힘입어 에이즈에 대응하기 위한 미 정부의 본격적인 대책 마련인 에이즈지원 법 과 예산 배정은 1990년대에야 이뤄졌다.


95년 클린턴이 백악관에서 최초의 HIV/AIDS 회의를 개최하고 에이즈 치료제 단백분해효소 억재제인 신약들이 개발 되어 에이즈 치료가 좀 더 쉬워진다. 97년 세 가지 향바이러스제 를 섞는 칵테일 용법 덕분에 미국에서 에이즈 사망자가 전년대비 40%이상 감소 하지만 비싼 치료제 때문에 돈 없는 환자들은 약을 먹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미국은 사 보험 제도에다 주마다 보험관련법이 달라 현재도 에이즈는 보험적용이 안 되는 곳이 많다) 액트업 은 특허라는 명목으로 폭리를 취하는 다국적 제약사들을 비난하며 지속적인 약값인하 투쟁을 벌리 고 2년마다 열리는 국제 에이즈 회의에서 “비싼 치료제가 우리를 죽인다!”는 구호를 외치며 다국적 제약사의 전시장들을 때려 부시 며 항의 한다.

그 외에도 반세계화 투쟁의 집회가 있었던 1999년 시애틀, 2000년 제노바, 그리고 2002년 유럽사회포럼이 열리고 있는 피렌체에서 에이즈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반세계화 행진에도 결합하였다. 처음 에이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액트 업이 적극적으로 ‘반세계화, ’반자본주의 운동’에 참여 하는 건 에이즈의 문제가 단지 질병의 문제가 아니고 빈곤과 계층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현재 에이즈 환자의 95%는 저개발국에 집중돼 있고 특히 아프리카 사하라이남 국가들에 무려 2천 8백만 명이 몰려 있다. 또한 계층적으로도 의료 접근권이 취약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감염 율 이 많다.(미국의 현재 감염 율 통계를 보면 가난한 흑인들이 50%이상을 차지한다)


에이즈 25년 미국 사회를 평가해보면 초기 게이의 질병으로 왜곡하여 초기대응 하지 못한 실패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부터 현재 이라크 전쟁에 이르는 모든 전쟁에서 죽은 미국인 보다 더 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역사와 문화에 지우지 못할 흔적을 남겼고 동성애를 묘사하는 언론의 태도를 바꾸었다. 미국인들은 무시하고 욕해왔던 한 사회의 인간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에이즈 란 질병도 바뀌었다 게이와 약물사용자를 죽이는 질병에서 ‘빈곤과 인권 취약 계층의 질병’으로 바뀌었다. 에이즈 환자의 권익을 위해 투쟁한 액트업 은 수수방관하던 미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냈고 에이즈 환자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벌이지 않았다면 암 환자 , 림프종 등의 난치병 환자들이 오늘날과 같은 열성적인 환자 권익운동을 벌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3) 한국 에이즈25년 감염인 인권침해25년 ‘감염인 들이 인권을 말하다‘


한국에서는 1985년 에이즈 환자가 처음 발견 되었다. 당시 에이즈란 질병을 강 건너 불구경 하던 정부는 87년 부랴부랴 대책이라며 에이즈 예방법을 제정, 감염인 색출, 격리, 통제에 들어간다. 에이즈 예방법을 통해 공포의 이데올로기를 조장하면서 미국이 초기 대응에 실패한 직접적 원인인 동성애자 ‘고 위험 집단’ 정책으로 일관한다. 미국의 실패한 에이즈 정책을 답습하는 정부를 비판해야할 한국의 언론들은 오히려 에이즈 공포를 더 부추긴다. 감염인문제가 발생하면 보복 심리로 문제를 일으킨다며 에이즈문제의 원인이나 연구는 없고 사건에만 초점을 맞춘다. 언론에서 감염인 들은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으로 심각한 문제이고 정부에 감염인 감시와 관리를 더 철저히 하라는 기사들을 쏟아낸다. 국가인권위가 지난해 발간한 ‘HIV 감염인과 에이즈환자 인권실태 조사보고서’를 보면 3대일간지 에이즈 관련보도 1600건 중 5.3%인 85건만이 감염인 인권을 기사로 다뤘다.


또한 에이즈를 정부가 제대로 알리지도 않아 국민들은 에이즈 발견 25년이 지난 지금도 에이즈에 무관심 하며 나와는 상관없는 일들로 인식한다. 그나마 에이즈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언론에 의해 왜곡된 공포의 대상 일뿐이거나 입에 올리기 싫은 금기의대상이다. 나와는 무관한 일로 받아들이지만 감염인들 에겐 심한 편견을 보이고, 감염인 들이 퍼트리고 다녀 문제라는 피해의식도 상당하다. 감염인 들은 여전히 부도덕한 ‘걸릴 만한 짓을 한사람들’이란 낙인 이 찍 혀 한국에서 에이즈 25년은 ‘감염인 인권침해 25년‘ 으로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다. 이런 한국사회의 잘못된 에이즈 인식을 조장하는 배경엔 에이즈 예방법(후천성 면역결핍증 예방법)이 존재한다. 87년 제정 후 몇 차례 개정을 통해 감염인 격리 조항 같은 독소조항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감염인은 감시와 통제, 관리의 대상일 뿐이고 에이즈 공포에 기반 한 조항 도 변한 것이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에이즈에 대한 편견 조장하는 영화 <너는 내 운명>

[인권, 영화를 만나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 조장하는 영화 <너는 내 운명>
 
기사인쇄    
윤한기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깼다"는 영화 <너는 내 운명>을 보기 전부터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컸다. 그간 영화를 비롯해 온갖 미디어들이 에이즈란 질병을 편견에 가득 찬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는 걸 익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에이즈에 감염된 여성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는 이 영화가 그런 편견을 깨줬으면 한다는 작은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다. 개봉을 하면 꼭 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 HIV/AIDS 감염인 단체, 예방단체 등 에이즈 관련 단체들이 가진 비공개 시사회에 초대됐다.

사진설명<너는 내 운명>의 포스터 [출처] 공식 홈페이지(mysunshine.co.kr)


이 영화는 2002년 여수에서 HIV에 감염된 여성이 성매매를 하다 구속된 실제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당시 이 사건을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마녀사냥식 사실왜곡과 여론호도에 경악했던 나로서는 애초부터 이 영화를 편한 마음으로 볼 수는 없었다. 영화는 순박한 '농촌 총각'과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모르는 '다방 여종업원'의 슬픈 사랑과 이별, 그리고 사회의 편견에 대한 싸움을 나름대로 담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 심기가 불편해진 건 여주인공의 감염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회의 편견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영화 후반부부터였다.

실제 사건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기자들이 몰려들면서 주인공들이 살던 지역은 에이즈 공포에 휩싸였다.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에이즈 검진을 받는 동네사람들, 여주인공과 성관계를 맺었을 거라 짐작되는 한 트럭의 군인들, 심지어 보건소 직원까지. 당시에도 그런 호들갑을 떨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영화는 지역주민들의 무지스러운 행동을 과장되게 그리기 시작했다. 실제 사건에서는 공포를 조장한 언론의 역할이 더 컸음에도 말이다.

사진설명<너는 내 운명>의 스틸사진 [출처] 공식 홈페이지(mysunshine.co.kr)


여주인공을 그래도 사랑하며 같이 살겠다는 남주인공을 향해 "미쳤냐?"며 "에이즈는 당장 죽을 병"이라고 만류하는 보건소 의사는 의사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몇 년 전부터 에이즈는 치료가 가능한 만성질병으로 진화하여 의료계에선 이미 만성질환으로 보고 있다. 감염인을 일선에서 관리한다는 의사의 입을 빌려 나온 이 말은 에이즈에 대한 감독의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겠다.

구속된 여주인공이 감옥에서 홀로 거울을 보다 피부에 붉은 반점들이 번지며 흉측한 몰골로 변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에서는 어느새 "지겨워"라는 말이 내 입속을 맴돌았다. 미디어들이 흔히 다루는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정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이즈에 감염되면 피부에 나타나는 붉은 반점이다. 물론 서구의 HIV 감염인들은 체질 탓인지 그런 반점들이 간혹 나타나기도 하고, 아프리카 감염인들은 위생환경의 문제로 유독 피부질환에 시달린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 등 동양인들은 그런 붉은 반점들이 거의 안 나타나고 내가 본 많은 말기 환자들도 거의 그런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미디어들은 왜 그리도 HIV/AIDS 감염인들의 피부에 집착할까? 아마도 에이즈란 질병이 가지는 혐오스러움과 공포를 표현하는데 붉은 반점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에이즈에 대한 혐오스러운 상징이 그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 감염인들까지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감독은 모르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하다.

실화의 주인공들이 어떤 사랑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는 실화의 본질은 비켜간 채 단지 남성 중심의 사랑을 다루면서 "그래도 좋아"라는 동정심에만 초점이 맞춰져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남주인공은 '에이즈까지도 받아들이는' 무한한 아량을 가진 사람이고 여주인공은 단지 그런 남성에게 '사랑받는' 대상일 뿐이다.

당시 실화의 주인공은 콘돔 사용을 거부한 남성 성매수자에 의한 피해 여성이었음에도 가해자로 몰려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성을 산 남성들은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남성들은 깨끗한(?) 몸을 제공하지 않았다며 그 여성에게 저주에 가까운 비난만을 퍼부었다. 누구하나 그 여성에게 사과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화 속의 두 주인공이 이 영화를 보며 어떤 기분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그 악몽을 다시 떠올리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윤한기 님은 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aidsmove.org) 대표입니다.
인권하루소식 제 2902 호 [입력] 2005년09월27일 0:12:3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에이즈의 날, 지켜지지 않는 약속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에이즈의 날, 지켜지지 않는 약속
 
기사인쇄    
윤한기 
12월 1일은 유엔에이즈계획(the United Nations Programme on HIV/AIDS, UNAIDS, 아래 유엔에이즈)이 제정한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유엔에이즈는 각 국가들의 에이즈 관리 및 예방사업을 돕기 위해 1996년 1월 창설된 유엔 산하의 에이즈 전담기구이다. 이 유엔에이즈가 2005년 세계에이즈의 날을 맞아 전 세계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AIDS 확산에 대한 노력을 전 세계가 하고 있지만, 그 수는 계속 증가했고, 현재는 4030만명에 육박했다. 거기에는 소녀를 포함하는 여성의 죽음과도 점점 더 깊은 연관을 가진다. 하지만 콘돔의 중요한 역할로 몇 개 국가에서는 성인 감염 비율이 감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이즈 감염은 더욱 증가추세에 있고 여성의 비율도 높아졌다. 뉴욕에서 열린 세계회의(World Summit)는 모든 유엔 국가들은 2010년까지 HIV의 예방, 치료,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가능한 그 목적에 가깝게 가는 것들과 그 실행에 대해 맹세했다. 그들이 필요로 하고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효과적이고 포괄적인 예방, 치료, 돌봄 프로그램은 보다 방대한 스케일에서 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의 에이즈에 대한 노력은 좀 더 가속화되어야 하며, 게을리 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HIV에 대항하여 백신, 여성 감염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과 새로운 세대를 위한 효과적인 치료 보조의 가속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 우리는 이번에 새로운 테마를 선택했다. "에이즈를 막으려면 약속을 지켜라"(Stop AIDS, Keep the promise) 효과적인 예방, 치료, 돌봄 서비스, 이것들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변명도 따를 수 없다." (한국HIV/AIDS감염인연대 KANOS 번역)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엔에이즈의 메시지는 효과적인 예방, 치료, 케어 서비스에 국가가 적극적인 약속을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 메시지가 한국사회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는 올해 에이즈의 날 한국의 슬로건을 '에이즈 예방은 나로부터'로 정해 에이즈에 대한 책임을 마치 개인에게 지우는 듯한 인상을 주어 감염인의 한 사람으로서 심히 불쾌하기만 했다. 언제나 그랬지만 에이즈의 날에 에이즈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예방에 대한 경각심만 앞세우며 모든 언론은 마치 에이즈 때문에 혹은 4천만이 넘는 감염인들 때문에 지구가 폭발 직전에 놓인다는 이상한 논리들만 펼쳐놓는다. 에이즈의 공포와 경각심만 쏟아내는 세계 에이즈의 날, 정작 감염인들은 더욱 움츠러들고 나아진 것 없는 인권상황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기념식은 허탈하기만 하다.

에이즈의 날을 지나면서 감염인 사이트 KANOS에 올라온 글이 모든 감염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 인용해 본다. "나는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감염인이거나, 감염인이 될 수 있는, 결코 에이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아직도 병원에서 진료에 따른 수술거부를 일삼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남의 눈이 무서워 검사도 두려운 나라가 한국이다. 직장 건강검진에 HIV/AIDS 테스트가 포함되어,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나라가 한국이다. 호적정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가족이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도대체 동생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에이즈에 걸리냐고 떠들어대는 의사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수술일정을 체크하면서 당신 호모냐고 되레 큰소리치는 의사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 한국에서 나와 당신들은 살고 있다."
◎ 윤한기 님은 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www.aidsmove.org) 대표입니다.
인권하루소식 제 2961 호 [입력] 2005년12월19일 17:46:3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법정 전염병 병력자 정보제공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법정 전염병 병력자 정보제공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기사인쇄    
윤한기 
지난 9월 보건복지부 국정 감사에서 에이즈 수혈사고의 문제 제기가 집중적으로 다뤄지면서 한 건 터트릴 사안에 목이 말랐던 한나라당의 전제희 의원은 질병관리본부가 보유하고 있는 법정 전염병 병력자의 정보를 대한적십자사에 넘겨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의 심각한 인권침해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아무런 고민도 없이 보건복지부는 10월 부랴부랴 법정 전염병 병력자 정보를 적십자사의 혈액안전관리시스템에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혈액안전관리 시스템 계획이라는 것이 속내를 들여다보면 너무나 졸속으로 치러진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일 뿐이며, 보건복지부의 아무 생각 없는 정책에 감염인들은 또 한번 상처를 받고 좌절하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작금의 에이즈 수혈사고 들은 항체미형성기를 찾아내지 못하는 현재의 검사법이 문제인 것이다. 이미 질병관리본부에 등록된 HIV/AIDS 감염인들은 이미 항체를 다 가지고 있기에 설사 감염인이 모르고 헌혈을 했다하더라도 적십자의 혈액검사법으로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다. '나누리+'가 이 사안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대한적십자사에 공개질의서를 보내고 확인한 결과 이미 HIV는 적십자사에 매주 정보를 제공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심지어 보건복지부의 혈액장기 팀 담당자는 전화통화에서 "감염인들이 의도적으로 헌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마치 감염인들이 에이즈 수혈사고의 원인인 것처럼 왜곡하는 발언까지 했다

이에 22일 감염인 단체. 정보인권단체등과 함께 질병관리본부 앞에서 전염병 병력자 정보제공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HIV 감염인 단체 KAPF의 대표는 발언에서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과도한 한국사회에서 적십자라는 민간기구가 감염인의 정보를 알고 부주의하게 다뤄질 경우 얼마나 큰 인권침해와 피해를 당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이미 에이즈 양성이란 이유로 직장에서도 해고당하고 진료거부도 당하며 심지어는 가족들한테도 외면당하는 현실에서 헌혈의 집까지 감염인들의 정보를 알게 되어 잘못 유출될 경우 감염인들은 지역사회에서 쫓겨나는 일도 생길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항의의 표시로 붉은 삼각형의 색지에 HIV/AIDS, B형간염, 말라리아 등을 써 붙이면서 적십자사에 정보제공이 나치 시대에 독일군이 유대인, 동성애자 등에게 표시를 붙여서 격리시킨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로 항의표시를 했고 기자회견 후 붉은 삼각형 색지를 찢어버리면서 향후 이 문제가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했다.

이어 질병관리본부 방역관리센터장과의 면담을 단체 대표들이 가졌지만 질병관리본부의 입장은 아직 준비가 안 되었고 관계자들과 논의하겠다는 답변만 들었다. 면담을 맡은 담당자는 감염인의 인권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엇보다 감염인의 인권이 중요하며 감염인 지원을 위해 고민한다고 입바른 소리만 했다.

우리는 HIV/AIDS 감염인이란 이유로 이미 국가에 등록되어 시·도를 경유해 보건소의 관리를 받으며 일선 공무원들에 의해 부주의하게 감염 사실이 노출되어 피해를 당하는 사례들도 봐왔고 늘 감시 받는 듯한 관리체계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적십자사라는 민간기구에까지 감염인의 정보를 제공하는 건 차라리 감염인들에게 "당신들은 HIV/AIDS에 걸렸으니 표시 나게 사시오"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전염병 병력자정보제공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
윤한기 님은 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www.aidsmove.org) 대표입니다.
인권하루소식 제 2942 호 [입력] 2005년11월22일 19:06:4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직장 건강검진으로 일터에서 배제되는 감염인들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윤한기의 인권이야기] 직장 건강검진으로 일터에서 배제되는 감염인들
 
기사인쇄    
윤한기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시민실천사업 'HIV/AIDS 인권지침서' 발간작업과 올해 단체협력사업 'HIV/AIDS 감염인 치료 접근권' 실태조사를 위해 '나누리+'는 감염인 간담회를 진행해 왔다. 간담회에서 감염인들이 토로하는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직장 건강검진에서 원하지 않는 HIV 검진 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일이다.

HIV 검진 때문에 부당해고를 당한 ㄱ씨의 사연을 보자. 지난해 봄 직장 건강검진에서 HIV 양성반응 판정을 받은 ㄱ씨는 감염사실을 안 직장 상사로부터 "일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직 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되는 건강한 상태였던 ㄱ씨는 이후 대기발령 상태가 됐다. 업무가 특수해서 바로 교체되기는 어려워 약 1개월 동안 인수인계를 하고 전혀 일해보지 않은 부서로 옮겨져 3개월을 근무했다. 이후 파견형식으로 원래 업무로 복귀했다가 출산휴가 갔던 동료가 돌아오자 다시 대기발령 상태가 됐다. ㄱ씨는 결국 회사의 권고와 상사의 그만두라는 최종통보까지 듣고 명예퇴직으로 내몰렸다. 당시 상담을 맡았던 필자는 엄연한 부당해고이니 노동부에 알리자고 ㄱ씨에게 적극 권유했다. 하지만 ㄱ씨는 자신의 감염사실을 또 드러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그냥 억울한 일을 감수하고야 말았다.

에이즈에 대해 한국사회가 가진 과도한 편견과 차별, 이에 따른 감염인들의 좌절은 필자를 답답하게 한다. HIV 감염인들은 HIV 양성이란 이유로 부당해고와 진료거부를 당해도 자신의 병명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법적인 구제나 이의제기 절차를 포기한다. 에이즈는 일상생활에서 전혀 전염이 안 된다는 사실도 제대로 모르는 직장 동료들에 의해 감염인은 '집단 따돌림' 당하고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HIV검진은 사생활을 침해하는 중대한 인권침해인데도 직장 건강검진을 통해 관례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검진결과는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공개되고 있다. 보통 직장 건강검진은 검진을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에 사업주가 의뢰하는데 검진항목이 많고 비용도 많이 드는 A급과 검진 항목이 적은 B급, C급 등으로 나뉜다. A급 검진 항목에는 문제의 HIV 검진이 들어 있고 노동조합에서도 A급 검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검진의 결과가 사업주에게 일괄통보되는 바람에 HIV 양성반응이 부당한 해고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제7조는 "감염자의 진단·검안 및 간호에 참여한 자"와 "감염자에 관한 기록을 유지·관리하는 자"에게 비밀유지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원하지 않는 HIV 검진에 따른 결과가 타인에게 함부로 통보된다. 에이즈 관련 법조항 가운데 꼭 필요한 것이 직장 건강검진에 HIV 검진을 무조건 포함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어떤 검진보다도 HIV 검진은 당사자가 검진을 원해야 하며 검진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상담도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양성으로 밝혀지면 심각한 사생활침해와 인권유린을 당할 수 있기에 결과가 본인에게만 통보되는 장치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윤한기 님은 에이즈인권모임 나누리+(www.aidsmove.org) 대표입니다.
인권하루소식 제 2921 호 [입력] 2005년10월25일 0:28:20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