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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7/17
- 할 말이 없다.(2)
인터넷상이나 책으로나 세상에 수많은 글들이 떠돌지만 가끔 정말 좋은 글을 봤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주제가 무엇이건간에 글쓴이의 마음이 전해지는 느낌이 드는,
글을 읽고 나서 괜히 내 마음이 좋아지는 그런 글.
무언가 비판하거나, 이게 옳다고 주장하기는 차라리 쉬운데,
내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는 것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야 한다, 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그냥 듣다보니 내 생각이 그렇게 변하고 그 말을 받아들이게 되는 경험들,
할 때마다 참 신기했고,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젠 아마 그렇게 될 수 없을거 같단 생각이 든다.-_-
뭐라고 말을 꺼내는게 참 조심스럽다.
가끔 세미나에 가서 말해보란 소릴 들을 때도 그렇고,
술자리에서 오가는 정치 얘기며 세상 얘기에도 그렇다.
원체 궁금한게 많은 인간이라 이것저것 묻다보면 열심히 말하다 돌아올 때도 있지만,
무언가 질문하고 또 질문하고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느 자리엘 가나 시시콜콜한 농담만 잔뜩 주고받다 오는게 허망하다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지나고보니 그런 자리라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 걸 편해하는구나 싶어졌다.
어른들 만나는게 편한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며칠전 학교 모임에 가서도 한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진짜 아닌데 싶을 때마다, 이게 너무 아닌 거 같아서 내가 막 말하다보니,
그냥 괜히 세미나 끝나고 돌아오는 길 기분이 좀 별로였다.
내가 선배들한테 많이 배웠는데, 내가 선배가 되서 후배들 만나는게 피로하다 하면 진짜 나쁜데,
그것보다도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날 어렵게 하는 것 같다.
내가 확신이 별로 없고, 내가 고민이 되는데,
누군가 이건 진짜 아닌 거 같은 소리를 하면 우선 그건 아니라고 말해야 하니깐,
내 고민은 어떻게 풀 기회가 되지 않고.
그게 아니라고 열심히 말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지치고 내가 그만하고 싶어진다.
내가 뭘 안다고 그게 아니라고 말 하나. 내가 좀 더 생각해보께.
빡쎈 사람을 만나는게 좋다.
가장 빡쎄고 가장 열심인 사람 앞에선 내가 그렇게 좀 아닌 듯이 느껴질테니깐.
내가 맞는 말을 해야된다는 부담 없이 멍청한 고민들을 펼쳐나갈 수 있어서 편하고,
그것보다도 그냥 들으면서 많이 배우고 또 많이 생각하게 되는게 좋다.
누군가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된다고 했는데.
그래야 외롭지 않게 오래 오래 지낼 수 있다고 했는데.
여전히 나는 대부분의 경우 고민을 누군가와 나누기보다는 그냥 듣고 혼자 생각하는게 편한 것 같다.
관계에선 그냥 농담따먹기나 하면서 실실대는게 편하고, 또 그게 좋고.
그냥.
누가 하는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내 얘기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고,
나는 시간이 더 지나도 농담이나 장난밖엔 할 말이 없는데,
언제나 내가 들어주고 내가 받아주고,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안 해도 괜찮았는데,
상대가 내게 할 말이 없으면 난 정말 할 말이 없구나.
이런 시시콜콜한 인간 같으니.
잘 모르겠다.
뭔가 글이 앞뒤가 안 맞는거 같은데,
걍 그런 생각이었다.
나는 글 쓰는 것도 싫어하고, 남 앞에서 말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가끔 정말 좋은 글을 볼 때가 있고, 정말 좋은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런 글을 보면 마음이 좋아지고,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그 사람이 참 좋아진다.
그래서 내가 더 할 말이 없고 쓸 게 없는 거 같다.
내가 그런 말이 좋고, 그런 글이 좋은데, 나는 그렇게 말하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니깐.
그냥 시시콜콜하게 농담따먹기나 하는게 편하다, 싶어버리니,
글쎄, 난 계속 할 말이 없다.
그래, 나는 계속 이렇게 살려나보다.-_-;;ㅋㅋ
마음이 닿는건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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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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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 좋은 말을 하려는 자세를 버리면 어떨까요? 저도 학생 때 오랫동안 그런 압박에 시달렸는데, 후배에게도 저에게도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최대한 솔직해지는 게 모두에게 좋아요. 그런데 진짜 솔직해 지는 게 무엇인지가 어려운 거지요.자본주의가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최종 체제일수도 있고, 이주 노동자가 한국에서 한국 노동자에 비해 차별받는게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게 옳다는 게 아니라, 올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동시에 정말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고민해보고 그 모든 것을 함께 후배와 함께 나누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지 못했던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아쉬움이예요.
daybreak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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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제가 후배들 앞에서 그런 강박을 느꼈던건, 그 사람을 제대로 믿지 못해서였던 것 같기도 해요. 같이 고민하고, 같이 나누면서 나아간다기보단 괜한 노파심에 가르치려 들고 내 생각을 설명하려고 하니깐 그게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깐 괜히 더 지치고, 무슨 말을 해야될지 모르겠어진게 역효과였던 것 같아요. 역시 오래 더 함께할려면 내 고민이나 내 시행착오마저도 같이 나눌려고 하는게 맞겠죠.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