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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없다.

 

병원 실습이 시작됐다.

 

 

patient case report를 쓰는데,

known glaucoma, near blindness 라고 무심하게 타자를 치다가,

하얀 막대기를 두드리며 병동을 나서던 아저씨 모습이 떠오른다.

 

 

종일 모르는 것들에 치여 후달리다가,

오밤중이 되어서야 이틀간 만난 사람들 모습이 머리 속을 채운다.

 

EMR에 써있는 말들로는 부족한 "사람"이 있는데,

 

 

눈도 안 보이고 alcoholic으로 간도 안 좋고, 허리도 아픈 아저씨가,

왜 그렇게 술을 마시게 됐는지, 눈이 안 보이는데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고,

LN biopsy 결과가 나오면 그게 어떤 stage가 될까 종일 공부했는데,

오밤중이 되서야 갑자기 마음이 싸해진다.

 

 

눈이 보이지 않는 아저씨는 내게 폐암 staging을 가르쳐주고,

DLBL 할머니는 내게 tumor lysis synd.을 가르쳐주고,

 

 

그리고 나는 조금씩 더 많이 알게 되면서,

그 사람들을 잊게 될까.

 

나는 길에서 그 사람들을 만났을 때 알아볼 수 있을까.

 

 

 

 

마음이 있는만큼만 말하고,

마음이 내키는만큼만 행동하고 싶은데,

 

더 잘하려면 말주변을 늘이는게 아니라 마음을 키워야 되는데,

 

 

왠지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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