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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없다.

 

인터넷상이나 책으로나 세상에 수많은 글들이 떠돌지만 가끔 정말 좋은 글을 봤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주제가 무엇이건간에 글쓴이의 마음이 전해지는 느낌이 드는,

글을 읽고 나서 괜히 내 마음이 좋아지는 그런 글.

 

 

무언가 비판하거나, 이게 옳다고 주장하기는 차라리 쉬운데,

내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는 것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야 한다, 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그냥 듣다보니 내 생각이 그렇게 변하고 그 말을 받아들이게 되는 경험들,

할 때마다 참 신기했고,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젠 아마 그렇게 될 수 없을거 같단 생각이 든다.-_-

 

 

뭐라고 말을 꺼내는게 참 조심스럽다.

 

가끔 세미나에 가서 말해보란 소릴 들을 때도 그렇고,

술자리에서 오가는 정치 얘기며 세상 얘기에도 그렇다.

 

원체 궁금한게 많은 인간이라 이것저것 묻다보면 열심히 말하다 돌아올 때도 있지만,

무언가 질문하고 또 질문하고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느 자리엘 가나 시시콜콜한 농담만 잔뜩 주고받다 오는게 허망하다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지나고보니 그런 자리라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 걸 편해하는구나 싶어졌다.

 

 

어른들 만나는게 편한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며칠전 학교 모임에 가서도 한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진짜 아닌데 싶을 때마다, 이게 너무 아닌 거 같아서 내가 막 말하다보니,

그냥 괜히 세미나 끝나고 돌아오는 길 기분이 좀 별로였다.

 

내가 선배들한테 많이 배웠는데, 내가 선배가 되서 후배들 만나는게 피로하다 하면 진짜 나쁜데,

그것보다도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날 어렵게 하는 것 같다.

 

내가 확신이 별로 없고, 내가 고민이 되는데,

누군가 이건 진짜 아닌 거 같은 소리를 하면 우선 그건 아니라고 말해야 하니깐,

내 고민은 어떻게 풀 기회가 되지 않고.

그게 아니라고 열심히 말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지치고 내가 그만하고 싶어진다.

내가 뭘 안다고 그게 아니라고 말 하나. 내가 좀 더 생각해보께.

 

 

빡쎈 사람을 만나는게 좋다.

가장 빡쎄고 가장 열심인 사람 앞에선 내가 그렇게 좀 아닌 듯이 느껴질테니깐.

내가 맞는 말을 해야된다는 부담 없이 멍청한 고민들을 펼쳐나갈 수 있어서 편하고,

그것보다도 그냥 들으면서 많이 배우고 또 많이 생각하게 되는게 좋다.

 

 

누군가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된다고 했는데.

그래야 외롭지 않게 오래 오래 지낼 수 있다고 했는데.

 

여전히 나는 대부분의 경우 고민을 누군가와 나누기보다는 그냥 듣고 혼자 생각하는게 편한 것 같다.

관계에선 그냥 농담따먹기나 하면서 실실대는게 편하고, 또 그게 좋고.

 

 

 

그냥.

누가 하는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내 얘기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고, 

나는 시간이 더 지나도 농담이나 장난밖엔 할 말이 없는데,

 

언제나 내가 들어주고 내가 받아주고,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안 해도 괜찮았는데,

상대가 내게 할 말이 없으면 난 정말 할 말이 없구나.

이런 시시콜콜한 인간 같으니.

 

잘 모르겠다.

 

 

 

 

 

뭔가 글이 앞뒤가 안 맞는거 같은데,

걍 그런 생각이었다.

 

 

나는 글 쓰는 것도 싫어하고, 남 앞에서 말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가끔 정말 좋은 글을 볼 때가 있고, 정말 좋은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런 글을 보면 마음이 좋아지고, 그런 말을 들으면 괜히 그 사람이 참 좋아진다.

 

그래서 내가 더 할 말이 없고 쓸 게 없는 거 같다.

 

내가 그런 말이 좋고, 그런 글이 좋은데, 나는 그렇게 말하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니깐.

그냥 시시콜콜하게 농담따먹기나 하는게  편하다, 싶어버리니,

글쎄, 난 계속 할 말이 없다.

 

 

 

그래, 나는 계속 이렇게 살려나보다.-_-;;ㅋㅋ

 

 

마음이 닿는건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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