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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기.

 

3월쯤에 실습 시작하기 전에 모의 환자를 데려다놓고 면담을 하는 수업을 했었는데,

그때 모의 환자로 오셨던 분이 우리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는 말을 하셨었다.

 

다들 어디가 아픈지, 뭐가 문제일거 같은지, 그런걸 묻기에 바빠서,

아팠다는데, 힘들었다는데,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환자는 공감받고 이해받고 싶어한다고.

 

그리고 내과 돌 때 또 모의 환자한테 history taking하고 physical exam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환자가 또 그런 말을 했었다.

physical exam 다 한 사람 처음이라고, 평가표에 있는 거 다 했다고,

아픈데 대해 물어보는 것도 거의 다 물어본거 같다고,

근데 환자 말을 좀 더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좀 더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말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그리고 지금 소아과를 돌고 있는데,

어제 케이스 환자를 보러 갔었다.

엄마는 일 나갔다고 하고 할머니가 와서 계셨는데,

학생이라고 애에 대해서 좀 물어보려고 왔다고 하니깐 이것저것 말을 꺼내기 시작하셨다.

 

뭐 애가 원래 어떤 앤데 놀러갔다가 뭘 먹었는데 어쩌고 저쩌고 등등등.

EMR보고 갔으니깐 나도 다 아는 내용이었는데 내가 아는 것보다 엉성하게 이런 저런 말을 하시는데,

내가 궁금한건 그게 아니고 이거라고 말하려다 말고 문득 그때 그 말이 생각났다.

 

말하고 싶고, 대화하고 싶고, 의사소통 하고 싶은게 인간이고,

환자도, 환자 보호자도, 다 마찬가진데,

나는 의사 소통하고 싶은게 아니라 오로지 내가 궁금한걸 알아내려고 간거라는거,

 

그러면 안 된다고 수업 시간에 수없이 많이 들었는데,

막상 내가 병원에 가니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더라.

인간인 환자에 대해서는 관심 없고, 병을 가진 환자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그런 공감 능력 부족한 전문가의 모습.  (사실 아직 전문가도 아니지만.)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사람이 좋아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다 사람이 좋아서, 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사람을 좋아한다는게 어떤 걸까.

 

좋은 사람이 하는 일은 뭐든지 다 같이 할 수 있는데,

내 마음에 닿지 않는 사람의 일들에 대해서는 털끝만큼의 관심도 가지지 않는 이런건,

사람이 좋은게 아닌것 같다.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하고 있었던건지,

그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기 때문에 좋은건지,

요즘 갈팡질팡하고 있는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기도 하고.

 

 

 

전에 누군가 자길 좋아하는게 부담스럽단 사람의 말을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었다.

과연 내가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일에 대한 공감과 지지만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뭐가 한다는건 사실 그래야 되는걸텐데 나는 맨날 사람에 끌려 다니다 결국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었던 건 아닐까.

 

듣고 싶었던 강연도, 하고 싶었던 세미나도,

아끼는 녀석들이 술 먹자고 불러내면 그냥 그렇게 따라가버리던 나였는데,

그래, 지금까지도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는 내 문제는 사실 그거였을까.

의지도 뜻도 아무 것도 없이 오로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웃고 떠들고 그렇게 천년만년 살면 좋을 거 같았는데,왜 갑자기 그런게 다 시들해졌을까.

 

 

그냥.

문득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공감이라는건 사실 마음인데,

시간이 갈수록 난 그렇게 따뜻한 인간이 못 된다는걸 계속 깨닫고 있고,

그렇다면 냉철하게 내 할 일이라도 제대로 하는 인간이면 좋겠는데,

사실 그러지도 못하고 또 오만 인간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는거 같기도 하고,

 

 

그냥 요즘은 좀 그런 것 같다.

 

최첨단 의학의 발전에 경탄하며 최신 지견을 쫓아다닐 진정한 의학도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약 안 먹고 말 안 듣는 아저씨 아줌마들 약 드시라고 당 조절 하시라고 토닥토닥 살피고 챙겨줄 그런 care giver도 내가 아닌거 같으면,

 

 

그럼 난 머니.-_-;

 

아 갈길이 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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