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오늘날 세계의 여러 가지 노조운동론] 제3세계에서의 사회운동 노조주의 : 남아공의 경험을 중심으로

- 산업화와 더불어 성장한 남아공 노조들은 초기에는 ‘급진개혁’(급진적 전망을 개혁 전략과 결합시킴) 전략을 추구했음.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남아공의 악명높앗던 인종차별 및 격리정책)를 종식시키고, 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장기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합법적 투쟁수단을 강조함.


- 이는 아프리카민족회의와 그 동맹세력이 추진하고 있던 정치적, 군사적 투쟁과 대조를 보임. 이들은 국가기구에의 불개입을 강조했던 반면, 노동운동은 국가를 보이콧하기보다는 이에 참여하는 전략을 발전시킴.


- 두 전략적 전망 사이에는 갈등이 심했음. 그러나 1980년대에 급진개혁 전략은 혁명적 단절로도, 국가로의 흡수로도 이어지지 않았고, 제도로서의 노동조합의 정당화와 급속한 성장으로 귀결됨.


- 노동조합 조합원수의 성장은 흑인거주지구와 학교에서 시민조직이나 청년 및 학생 총회와 같은 강력한 사회운동들의 발전과 함께 진행되었음. 이 운동들은 1979년부터 지역사회에 연계된 노동조합들을 건설하였고, 노동자들을 전국적인 민주화투쟁에 결합시키려는 시도로 급진개혁 전략을 거부하였음. 1980년대 중반 경 지역사회에 기반한 이들 새로운 시민사회 내 형성체들은 지역적 수준과 전국적 수준 모두에서 국가에 직접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했고, 반란에 가까운 상황을 만들어 냄.


- 이러한 심화되는 위기는 1983년 이후 통일민주전선이라 명명된 전국적 조직체 내에서 급진개혁에 전념하는 이들과 성장하는 정치운동 사이에 전략상의 차이가 심해지게 함. 특히 노동조합들은 정치적 비제휴라고 하는 자신들의 정책을 재평가하지 않을 경우 고립될 처지에 처함.


- 결국 급진개혁을 위해 노력하던 산별노조들은 이들 사회운동과 동맹을 형성하고 1984년 후반부터 일련의 총파업과 정치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 1985년 노동운동의 이들 두 주요 경향은 통합하여 코사투(Congress of South African Trade Unions, KOSATU)를 결성하였는데, 이는 산별노조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연맹을 통해 아프리카민족회의 지도 아래 전국적인 민주화투쟁에 참여하는 전략적 타협을 나타낸 것.


- 새로운 동맹은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 보다 강력하고 통일된 반대를 만들어 냈고, 국가 내에서 억압전략을 주장하는 강경론자들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반란선동적 경향에도 기름을 부음. 파업활동과 무정부상태에 빠져드는 지역의 증가로 상징되는 1986년 전반기 대중행동의 가속화는 6월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이어짐.


- 1989년 정부는 억압의 일환으로 고용주들의 지지 속에 노동관계수정법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은 1979년이래 확립된 권리들을 후퇴시킴으로써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었음. 이 위협은 노조를 자극했음. 노조들은 급진개혁의 논리를 확장시키면서 고용주들과 협상하는 한편, 지속적인 대중행동을 통해 이들에게 압력을 가함. 이후 2년에 걸쳐 노동운동은 노동자 정상회담을 열고 법안에 맞서 시위, 출근거부투쟁, 초과노동반대 등의 캠패인을 벌임. 노둥운동의 대대적이 투쟁은 억압이 별 효과가 없었음을 보여주었음. 대중행동은 고용주들에게 손실을 가져다주었고, 결국 고용주들은 억압적 노동법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


- 한편, 이 시기에 스스로를 동원한 사회세력은 노동자뿐만이 아니었음. 불법화된 통일민주전선의 조직들은 대중민주운동(Mass Democratic Movement, MDM)이라는 이름 아래 재결집하여 대중운동을 새롭게 하고, 효과적인 시민불복종운동을 벌였음.


- 국가는 선택에 직면하게 됨.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내 다른 동원 조직들을 억압할 것인가, 아니면 보다 근본적인 정치개혁으로 방향을 바꿀 것인가 하는 것.


- 1989년 후반, 개혁주의자 드클레르타가 보타를 대체하여 국가수반이 되었고, 뒤이어 아파르트헤이트를 개혁하고자 함. 10월, 그는 60년대 초반부터 투옥되어 있던 아프리카민족회의 베테랑 지도자들을 석방함. 90년 2월에는 아프리카민족회의, 범아프리카민족해방회의, 남아프리카공산당 등을 합법화한다고 발표하고, 만델라를 석방함.


- 이 기간에 코사투는 아프리카민족회의, 남아프리카공산당과 삼자동맹으로 알려진 정식화된 협정을 맺음으로써 대중민주운동(MDM)으로 만들어진 정치적 관계를 공식화함.


- 남아공이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있음이 명확해짐에 따라 고용주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김. 90년 5월, 주요 노동연맹과 전국고용주연합, 남아공 인력자원부 사이에 역사적인 협정이 체결됨. 코포라티즘 펼쳐짐.


- 이 코포라티즘에 대한 평가는 상이함. 기껏해야 부분적인 자유민주주의의 획득으로 그쳤다고 폄하하는 좌파적 해석도 있고, 나름대로 진보적 방향으로의 이행에 기여했다고 보는 긍정적 해석도 있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