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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적 노동운동/오늘날 세계의 여러 가지 노조운동론]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

-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라는 개념은 남아공의 이런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생겨남. 즉, 남아공의 노동이론가들은 위의 역사적 과정을 거치는 동안 노동운동이 취한 특정한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라는 개념을 효과적으로 적용함.


- 이런 형태의 노조주의는 공식 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과 느슨하게 구조화된 행동네트웍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하며, 혹은 이 구별 자체를 소멸되게 함. 다시 말해서, 노동조합에 특징적인 공식조직적 특성이 사회운동들의 동원 능력 및 보다 느슨한 구조와 융합될 때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라는 것이 존재하게 됨.

 

-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자본-노동 갈등의 중심성을 앞세우지 않음.


  “자본주의적 혁명이 노동-자본 갈등의 중심성을 감소시키는 한편, 사회적 모순의 규모와 중요성, 횟수는 극적으로 증가한다. 노동자의 상대적 수의 감소, 차별성과 지역적 확산의 증가라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투쟁이 가지는 우선성에 관한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의 어떠한 선포도 자기주변화의 위험 - 여기에서 자본과 국가는 이들을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소수 국민으로 희화화시킨다 - 으로 귀결된다. 이는 새로운 대안적 사회운동(인권, 평화, 생태주의, 여성)을 ‘단일이슈’, '부르주아적‘, 혹은 ’서구적‘이라고 기각하는 노동운동진영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대안적 사회운동은 ’근본이슈‘ 운동으로 간주될 수 있는데, 이는 세계 다수인구(여성)에게 평화, 생태적 지속가능성, 인권 등이 최소한의 인간적 사회(자본주의적이든 아니든)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오직 권리, 평화, 환경, 성적 자각을 옹호하는 것으로 점차 인식되는 경우에 한해서  - 또는 스스로 주장하는 경우에 한해서 -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운동의 호소를 확장시키고 자신들의 동맹자를 증가시킬 수 있다.”(워터맨)


-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개량주의니 혁명주의니 하는 식의 안이한 범주화를 허용치 않음. 이 운동은 사회주의적으로 고무된 대안적 경제모델 전망들을 옹호함에 있어서 진정으로 새로운 사회운동 방식 속에서, 사회적 목표로서 뿐만 아니라 내부적 작동 원리로서도 민주주의와 권한 부여를 우선시해 왔음. 


-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경제적 노조주의나 정치적 노조주의와도 구별됨. 워터맨은 한편으로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자신이 처음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라고 불렀던 것을 ‘사회적 노조주의’라고 부름.


  “투쟁의 영역은 점차 ‘경제’와 ‘정치’로부터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와 마찬가지로 일국적 수준에서 아래로는 지방적 수준으로, 그리고 위로는 지구적 수준으로 이동하고 있다. 인습적인 노동운동 - 좌파든 우파든, 또는 중도파든 - 은 일반적으로 자본에 반대하는 ‘경제투쟁’이나 국가에 반대하는 ‘정치투쟁’, 혹은 전자와 후자의 배합과 단계들에 우선권을 두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적 민족국가나 민족국가 의존적 자본주의 시기에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혹은 부활한 ‘시민사회’ 개념은 또 다른 새로운 투쟁의 영역 - 자본과 국가 외부의, 혹은 그로부터 독립적인 민중적 자기조직화 영역 -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저항 영역으로서의, 사회적 해방과 변형에 중심적인 영역으로서의 ‘사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다. 산업자본주의 시기의 민족국가의 중심성은 국제적 기구와 세력들(국가간, 시민사회간)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민족보다 하위 수준의 공동체들(지역, 인종, 지방 등)에 의해 점차 도전받고 있다. ‘민족경제’, 즉, ‘민족국가’를 지향하는 인습적인 노동조합들은 이처럼 새롭고 점차 중요해지는 사회적 수준에서의 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 워터맨은 다음과 같이 사회적 노조주의의 특징을 열거하고 있는데, 좋은 참고가 될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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