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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시간 마라톤음주

요즘은 음주를 자제하고 있다만, 한때는(이런 표현 쓴다는게 참 거시기하다) 술에 쩔어서 산 적이 있었다.

그 절정들 달리던 시기가 바로 4년 전, 그러니까 2001년 이맘때쯤의 이야기다.

 

 

 

한밤중에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주 안 만나는 친구가 왜 전화질을 하는지 신기했다.

"야, 술 마시자"

"콜"

아주 간단한 대화다. 그때가 11시였다. 사실 한낮이나 다름없다.

어쨌거나 그 날 하루도 혈중알콜농도를 높이기 위해 그 친구의 집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당에 술이 몇십박스는 쌓여 있지 않던가.

종류도 단순하다. 맥주, 소주, 막걸리. 대체 이걸 어떻게 구했는지도 신기할뿐더러 어떻게 옮겼는지도 신기했다.

어떻게 구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도 그 경로를 비밀에 부치고 있어서 아무래도 진실은 저 너머로 건너간듯하다.


이 정도가 쌓여 있었던 것 같다.

 

 

친구 둘과 오징어를 안주로 먹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모두들 불이 붙는 것이 아닌가. 맥주, 소주, 막걸리 한 박스씩을 혈관 속으로 흡수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한시간만에 맥주 4박스, 소주 3박스, 막걸리 3박스를 비웠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도 않았다. 제대로 각성한 날이었던 것이다.

 

오징어가 바닥나자 짱박혀있던 과자 2봉지를 찾아내서 다시 먹기 시작했다. 물론 뱃속으로 사라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과자 2봉지를 안주삼아 소주를 빨고나니 국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돼지고기, 감자 등을 냄비에 집어넣고 고추장을 타서 끓였다. 술취한 상태에서 끓이니 맛이 아주 제대로 쒯이다. 어쩌겠나 있는대로 먹어야지. 그렇게 해서 다시 술박스를 비워댔다. 얼마나 마셨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술은 땡기는데 안주가 바닥났다. 그래서 냉장고에 있는 수박 한 통을 땄다.

세 명이서 숟가락으로 수박을 파먹는 꼴은 그리 아름답지는 못하나, 명색이 과일안주라고 먹어댔다.

그리고는 빈 수박통에다 술들을 부어서 섞은 다음에 원샷하기. 제대로 미쳐가고 있었다.

 

 

이러고나니 대략 6시간이 지난 것 같았는데, 갑자기 구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당에 있는 나무에다가 6시간동안 먹었던 것을 복기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소화가 덜 된 음식물들의 흔적이 다른 나무에도 있는게 아닌가. 다들 정신없이 마셨나보다.

 

술은 더 마셔댈 분위기인데, 안주가 없다. 게다가 음식물을 복기했으니 속은 비어있는 상황이라 위장이 경련을 일으킬 것 같았다. 그래서 치킨을 시키고 배달오는 동안 막걸리로 뱃속을 달래줬다.

미친듯이 닭살을 뜯어먹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해가 뜨고 있었다. 대체 얼마동안 마신건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나무에 거름을 주다보니 이상하게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쌀을 씻어서 밥을 하고, 유일한 반찬이었던 김치를 먹으며 다시 알콜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배달 온 신문을 읽으며 밥을 먹고 있는데 옆에 있던 두 친구가 쓰러져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버린게 아닌가. 그래서 내버려두고 자작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러고 있으면 욕먹기 딱 좋은거다.

식후땡을 하고 아침드라마를 보며 술을 먹고 있는데 어느샌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노을이 져 있고 쓰러져 있던 두 친구는 술을 먹고 있는게 아닌가. 지독한 놈들...

그래서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장을 봤는지 고기에 상추도 있고, 오징어 땅콩에 대구포까지 있는 것을 보아하니 작정하고 술을 마시려는 모양이다. 우선은 고기 여섯 근을 구워먹으며 전체 술박스 중에서 절반을 소화했다. 그러고나니 일일연속극이 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8시가 지난 모양이었다.

고기가 바닥나자 이번엔 남은 김치를 먹기 시작했다. 스포츠뉴스가 끝남과 함께 김치가 바닥나고 막걸리도 모두 소화하였다. 그리고 잠시후 다시 구토가 몰려왔다.

나무에 가서 숙성된 안주들까지 뱉어내고나니 그 일대가 전부 구토물 투성이었다. 알만하다.

 

자정이 지나면서 맥주가 바닥났다. 이제 소주만 남은 것이다.

오징어와 대구포를 가죽같이 씹어먹으며 소주를 먹자니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역시 국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냄비에 계란과 남은 반찬을 털어넣어서 끓였는데, 이게 의외로 맛이 괜찮았다. 나중에 실험해봤는데 이때만큼의 맛이 안 나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음식의 맛을 극대화하는 절대타이밍이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가 정신을 잃고 다시 일어나니 또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막대한 양의 거름으로 말라죽을 것 같은 나무에 다시 거름을 주면서 하루를 시작하려는데 이젠 돈이 다 떨어졌다. 안주도 없이 술을 먹으려는데 속이 쓰려서 안 될 것 같고, 결국 수돗물을 안주삼아서 먹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수돗물이 달게 느껴진다. 역시나 이 이후에는 수돗물이 달게 느껴지는 일은 없었다.

 

결국 술을 전부 혈관으로 흡수하고나니 라디오에서 정오의 희망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11시 30분부터 마신 것 같으니 계산해보면 36시간 이상을 음주로 보낸 것이 되겠다.(쓰러져 있던 시간 포함)

이러고나서 술을 비운 세 명은 정신을 잃고 24시간 이상을 잠으로 보냈다.

 

 

 

이 사건 이후로 별다르게 바뀐 일은 없었으나, 마당에 있던 나무 두 그루가 말라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물론 36시간동안 무차별적으로 살포한 거름을 감당못한 결과겠지만, 당시 여행을 가 있었던 그 집 식구들은 영문을 모른채 나무를 뽑아야 했다. 아마 영원히 그 이유를 모를 것이다. 진실은 저 너머에.

 

 

 

 

요즘은 학교의 누군가가 48시간 음주를 달성했다는 소문이 있어서 기록을 갱신해야겠다는 충동을 억제하고 있다.

술 먹다가 위궤양 걸린게 한 달 전인데, 그렇게 마셔대면 어디 위장이 남아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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