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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촛불집회

  • 등록일
    2006/11/04 03:11
  • 수정일
    2006/11/04 03:11

디디님의 [촛불집회] 에 관련된 글.

낮에 디디의 문자를 받았으나, 나는 아무에게도 다시 문자로 전달하지는 않았다.

저녁 6시부터 과외가 있어서, "내가 과연 갈 수는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게 아니더라도, 문자를 받았던 그 시점의 나는

오후1시의 실험수업을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오늘은 의외로 실험이 일찍 끝나서, 원래 4시간짜리 실험인데, 1시간 10분만에 나왔다.

그리고는 학교에서 우리과 학생회장을 하고 있는 04학번 후배랑 같이 밥을 먹으면서

촛불집회가 있다고 처음으로 말해줬다. 물론 이 친구는 못간단다.

 

6시에 과외인데, 학교에서 4시 20분쯤에 나왔다. (사실 5시 20분에 나가면 되는데...)

또 그게 운명이었을까? 전철역 부근에서 몇년만에 보는 한때 매우매우 친했던

어떤 선배를 우연히 만났고, 이왕 만난 김에 같이 커피를 마시다가,

헤어졌고, 나는 과외를 갔다.

 

과외를 일부러 일찍 끝냈다. 일찍 끝내는 명분은? 간단하다.

시작할 때, 오늘은 어느 문제까지는 무조건 하겠다고 질렀다.

시간이 오래걸리고, 제한된 2시간이 넘어가더라도, 거기까지는 무조건 하는 것이고,

대신 일찍 끝나면, 수업을 짧게 하겠다는 식의 조건이다.

(물론 평소같으면 제한된 시간내에 하기 힘든 분량을 지정하는데,

오늘은 일부러 금방 할 수 있는 만큼만 지정했다.)

 

오늘은 과외를 평소보다 무려 20분이나 일찍 끝냈다.

그리고 약속은 약속이라면서, 나는 가겠다고 선언했고,

그 학생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공부를 일찍 끝난 것에 뿌듯해하는 분위기를 느끼며

나는 과외집을 나섰다. 과외집에서 버스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다. 자, 이제 어디로 갈까?

일단 과외를 일찍 끝냈지만, 이때까지도 다음 행선지를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집에 빨리 가서, '오영종 vs 전상욱'의 빅매치를 보는 경우가 있었다.

 

어쨌든 이 때, 나는 집으로 가지 않는 버스를 탔다.

서울역에서 다른 버스를 갈아타고, 광화문으로 갔는데, 이게 패착이었다.

힘들더라도 여기서 지하철로 갔어야 했다. 아니, 처음부터 지하철로 갔어야 했다.

서울역에서 딱 두 정거장만 가면 되니까, 버스를 탔는데, (지하철도 두 정거장)

그 버스 두 정거장을 가는데 무려 20분이 걸렸다.

처음부터 지하철을 탔으면, 환승때 최단거리 하차지점 확보하고 무조건 뛰어다니면,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버스타고 가서 결국 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내가 가겠다고도 말하지 않았고, 같이 갈 사람들을 애써 모으지도 않았다.

또 가겠다고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도, 과외가 끝나고 난 후의 버스정류장에서였다.

그러니, 혼자였다. 그리고, 촛불집회에서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못봤다.

그래서 서서 구경했다.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어디 앉아있기도 좀 껄끄러워서...

(더군다나 마침 나의 패션이 사교육사기꾼의 새옷 패션이어서, 관리도 하느라고^^)

 

디디는 여기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문자를 보냈더니, 전화가 왔다. 근데, 없단다.

없다는 사실에 잠깐 실망을 했고, 정말 같이 앉아 있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머리속에 더욱 오래 남아버린 생각...

디디는 자신이 촛불집회에 가지 못함에도 최소한 내게 연락을 해줬고,

나는 갈 수 있을 지 조금이라도 확실하지 않아서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어떤 게 더 적절한 판단이었을까? 답을 이것, 혹은 저것이라고 결정하기는 싫다.

이런 것에 대해서 운동의 결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혹시 있다면...)

주변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이게 아주 중요한 문제고, 항상 벌어지는 고민이고,

늘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고, 사람마다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집회를 할 때, 보통 앞에서 노래를 부르시는 분들이 부르는 거 보면,

요즘은 정말 대부분 내가 잘 모르는 노래다. 처음 들어보는 것도 많고...

하기야 몇년을 집회를 안다녔으니, 그럴만도 하지. 이것도 유행이 있으니...

오늘도 내가 가서 들었던 노래들은 역시 처음들어보는 노래들이었으나,

맨 마지막에 '파도 앞에서'를 부르는데, 너무 반가웠다. 모처럼 아는 노래...

내가 매우 좋아하던 노래인데, 그러나, 직접 부르는 것은 또 처음 보는 노래였다.

 

끝나고 혼자 걸어갔다. 디디에게 끝났다고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답장을 보고, 다시 답장을 보낼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걸어가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그제서야 웃음을 지었다.^^

 

결국 을지로입구역까지 걸어갔고, 명동까지 걸어가볼까하다가

오줌이 마려워서, 지하철 역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내친 김에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마지막에 버스에서 내려서 집에 돌아가는 길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오늘 입었던 새옷이 비에 젖을까봐, 잔뜩 쫄아서 집에 막 뛰어들어갔다.

아무렇지도 않게 TV를 켜고, '오영종 vs 전상욱'의 빅매치를 녹화방송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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