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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 등록일
    2007/10/28 17:28
  • 수정일
    2007/10/28 17:28
시봉님의 [과외하는 동네]에 관련된 글. 나는 지금 다섯명의 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내일부터는 여섯명이 될 것 같다. 나는 1년전부터 과외소개소를 통해서 과외를 구해왔다. 이 소개소는 첫달 과외비를 다 가져가는 시스템이다. 내가 하는 과외들의 평균 기간은 9개월 쯤. 어쨌든 소개소내에서 1년동안 나의 가치는 2배이상 상승했다. 1년전에 처음으로 소개시켜주던 곳에서의 과외비와 지금 소개시켜주는 곳에서의 과외비는 2배 넘게 차이가 난다. 그런데, 1년동안 내가 가르친 학생중에서 성적이 올랐던 학생은 사실 1명밖에 없다. 나머지 학생들은 성적이 그대로다. 다행히도 성적이 더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 위안이랄까...


1. 과외를 처음 가는 날에 내가 그 집에서 유심히 보는 것이 있다. 수학에 관련된 책이 그 집에 얼마나 있느냐이다. 교과서나 입시 문제집 말고, 퍼즐이나 넌센스 퀴즈 같은 책을 말하는 거다. 아니면 "재미있는 수학여행"시리즈 같은 것도 좋다. 그런 책들을 많이 갖고 있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수학을 잘한다. 잘한다는 건 단지 성적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수학을 더 편하게 생각하고, 더 쉽게 공부하면서도 성적이 나온다는 의미다. 2. 나는 어떤 학생을 만나더라도, 수업을 두번정도만 하면, 이 학생이 왜 수학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지 거의 알게 된다. 대부분 공부방식의 문제다. 그걸 나는 직접 학생과 그의 부모에게 말한다. 그래서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도 말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걸 바꾸는 학생은 한명도 못봤다. 3. 학생이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이므로, 학부모가 아무리 드세더라도, 그 문제를 지적해버리면, 학부모한테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중간고사를 보기전에 문제집을 8권을 풀어야 한다고 말하던 학부모도 그렇게 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는 학생을 두고는 더이상 자신의 주장을 강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학부모들과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지점들을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과외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소통이 되지 않으면 결국 뭔가가 꼬인다. 4. 나는 문제를 내가 직접 만들려고 한다. 문제집은 학생이 알아서 사라는 식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문제집들은, 난이도가 어느정도인지 평가만 해주면 된다. 그리고 나는 직접 문제를 만드는 것, 문제집을 골라주는 것 외에는 다른 수업준비는 전혀 하지 않는다. 나는 학생이 질문한 문제를 그 자리에서 읽고 풀어주는 재미로 과외를 한다. 그런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온갖 사전 공작을 마다하지 않는다. 5.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잘 안된다고, 학부모들이 하소연하는데, 사실 그렇게 말하는 경우의 80%는 실제로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아니, 공부를 열심히 하는게 어느정도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한다. 물론 학생들이 생각하는 기준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보다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우리 애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데, 심지어 학생 자신도 자기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데, 일주일동안 풀어놓은 문제가 전혀 없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과목별로 과외를 하니까, 1주일 내에 과외를 하지 않는 날이 없기 때문이다. 사교육을 많이 시키면 학생이 혼자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서 학생들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된다. 6. 강남의 학부모들은 성적떨어지면 과외선생 바꾸고, 학원 바꾸고 그런다. 학생들도 거기에 길들여져 있다. 당장 눈앞의 시험에 급급하다. 그래서 모든 게 암기 위주다. 수학도 물론 암기과목이지만, 그런 식의 단편적인 암기는 곤란하다. 어떤 단원의 문제를 풀어주다보면, 그 문제가 시험범위 밖의 다른 단원의 해법이 같이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최대한 다양한 해법을 알고 있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걸 설명해주려고 하면, 시험범위가 아니라고 거부하는 학생이 있다. 나는 그 학생을 처음 맡았을 때는, 그 학생의 의견대로 따라가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그 학생을 크게 다그친다. 수학은 지금 배우고 있는 단원과 다른 단원의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게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7. 요즘 과외하는 학생중에 한 학생은 참 재미있다. 문제를 풀라고 시키면 늘 딴 짓이다. 숙제를 내주면 항상 반만 해온다. 문제를 내주고 답을 구하라고 하면, 바로 답이 나온다. 물론 풀어보지도 않고, 그냥 말하는 것이다. "0이요" 그리고 내 눈치를 살핀다. 내 눈빛을 통해서, 정답을 확인하고 싶은 게다.ㅋㅋ 하지만, 나는 이런 면에서는 완전한 포커페이스.ㅋㅋㅋㅋ 이번 중간고사에서 객관식을 3문제 맟혀놓고도 여유롭다. 학생의 어머니도 시험성적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나에게도 오히려, 애가 원래 그러니 선생님께서 이해하라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앞에서 엄마랑 아들이랑 티격태격하는데, 엄마가 "내가 너한테 공부하라고 한 적 있냐?"라고 한다. 그저 과외할 때만이라도 잘 붙어있으라는 거다. 학생은 착하다. 진짜로 과외할 때만은 붙어있다. 정말로 시험성적에 대해서 초탈한 듯한 학생의 여유가 좋다. 하지만, 도대체 왜 과외를 시키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이 집에서 과외비를 받는 기분이랄까... 8. 요즘 고3학생들에게는 서서히 잠을 늘리라고 주문한다. 일찍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과외는 한밤중에 한다지...) 수능시험날에 언어영역 시작할 때 가장 상쾌한 컨디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게 수학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 이제 그들은 18일만 있으면 해방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9. 과외하다가 학생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본다. 아직은 대학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어떤 학생은 성적을 보고, 과를 바꿀 거라고 한다. 자신의 꿈이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 사실 나도 앞으로 뭐하며 살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나름대로 대학을 다니면서 얻은 경험들을 이야기해준다. 어떤 과는 어떻고, 다른 과는 어떻다느니... 수능 한문제 더 맞추는 것보다, 꿈을 가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건 이젠 나에게도 피상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10. 사실 과외는 재밌다. 학생들을 만나는 것도 재밌고, 문제를 풀면서 나의 어이없는 실력을 과시하는 것도 재밌다.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것도 재밌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뭔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그 학생들은 내가 중고등학교때는 가지지 못했던 부모의 경제력을 갖고 있는 셈이지만, 그리고 그 학생들처럼 과외를 할 수 없는 형편의 학생들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불공평한 경쟁을 조장하는 것은 인정한다. "모든" 아이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과외를 통해서 "어떤" 아이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소리없이 스멀스멀 전환되고 있는 시간. 그 시간에 대하여 재미를 느끼면서 돈을 벌고 있는 나. 뭔가 위험하다. 11. 구차한 변명을 하나 하자면, 나는 입시고 뭐고, 그냥 수학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아니, 그냥 수학을 같이 공부했으면 좋겠다. 수학의 세계를 입시의 영역으로 가두는 것은 사실 나에게도 가혹한 일이다.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고서는 결코 시작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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