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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 3181(210208)호]시미즈 타케오 의장이 기자회견 : 혁명의 선두에 서겠다는 결의를 표명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쓰러뜨릴 때

주간『전진(前進)』 3181호(2021년 2월 8일자)

시미즈 타케오 의장이 기자회견

혁명의 선두에 서겠다는 결의를 표명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쓰러뜨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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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미즈 타케오 의장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은 1월 27일, 기자회견(새해 정책발표회)을 도쿄 히비야도서문화관에서 진행했다. 51년만에 공연석상에 등장한 시미즈 타케오(清水 丈夫) 의장에 대한 각 언론사와 기자들의 주목도가 높아 취재요청에 응한 것이다. 20곳 이상의 언론사가 참가했다. 기자에게 1971년의 시부야폭동투쟁이나 반혁명 혁마르파와의 싸움에 대한 물음에 시미즈 의장은 “어떻게든 필요한 투쟁이었다.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생각한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회견이 시작함에 따라 아키츠키 타케시(秋月 丈志) 서기장이 발언했다.

 “경찰, 자본가등 모든 반동세력은 혁공동, 중핵파가 ‘평화로운 시민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테러·게릴라집단’이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폭력혁명을 지향하는 ‘극좌폭력집단’이라 선전하고싶어한다. ‘우치게바1’에 대해 말하자면, 만약 혁공동이 혁마르파의 테러에 굴복했다면 지금의 혁공동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평화로운 시민사회’, ‘민주주의’라는 것은 오늘날 정말 있는 것인가. 전세계에서 1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코로나에 감염되고, 200만 명 이상의 목숨이 빼앗겼다. 세계최대의 코로나 희생자를 낸 미국에선 BLM운동이 부르주아민주주의의 기만을 폭로했고, 의회에선 반혁명폭동이 일어나 군대에게 보호받지 않았다면 대통령 취임식도 못했다. 일본도 5천 명 이상이 코로나에 희생되었고, 의료붕괴로 입원도 못한 채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일자리를 잃고 살아갈 희망을 빼앗겨 자살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무수하다. 한편 한줌에 지나지않은 부르주아는 정부에게 제일 먼저 도움을 받아, 주가상승으로 폭리를 계속 취하고 있다. 스가정권은 코로나를 이용해 강권적인 정치지배, 개헌을 노리고 있으며 사상최대의 군사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원전을 재가동하고 핵무장을 계획하고, 배외주의와 전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말도 안되는 폭력이다. 사회의 질곡이 된 부르주아의 지배를 타도하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투쟁을 혁공동은 단호히 지지하며, 그 선두에서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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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로 가득찬 기자회견장

 

 이어서 시미즈 의장이 발언. “60년 넘에 운동을 해왔고, 전후 혁명기를 제외하면 지금처럼 사회가 엉망진창이 되었던 때가 없다. 지배정당이 이만큼 무책임하고 엉터리인 현실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신자유주의가 막다른 길에 가로막혀 그곳에서 코로나사태가 일어나 위기가 극에 달하고 있다. 재정투입이나 저금리·금융완화를 아무리 해도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절대 붕괴할 것이다”라며 정세를 갈파했다.

 “1947년 2.1총파업2이 초등학교 4학년일 때였다. 가족이나 주변의 형들을 포함한 노동자들 대부분이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싸웠다. 2.1총파업은 좌절했지만 노동자는 대단하다고 확신하며 싸워왔다.”

 [시미즈 의장은] “7차대회의 잘못을 시인하고 노동자가 일터의 생산점에서부터 일어서기 위해 선두에 섰다. 혁명운동이 이 선에 그치면 합격이라 할 것은 없다. 끊임없는 곤란에 부딪히며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쓰러뜨리기 위해 싸운다, 그것이 혁명이 혁명당의 역할이다. 이 자리를 포함해, 모든 노동자계급의 앞에 서서 호소하기 위해 공연노선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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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内ゲバ, 정파간 갈등이 폭력사태로 확대된 것. 중핵파와 혁마르파의 갈등이 가장 컸다. 정파갈등도 있었으나 공안경찰이 조직을 와해하기 위해 정보를 흘려 분란을 유도하는 일도 있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 일본 관공청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노동세력들은 1947년 2월 1일을 기해 총파업에 돌입하는 계획을 세운다. 1월 1일 요시다 시게루(吉田 茂)총리대신은 노동조합을 무뢰배 무리로 비하해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으며, 1월 15일엔 30개 노조 400만명이 전국노동조합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고 18일엔 일본사회당과 일본공산당이 도각(倒閣)실행위원회를 발족한다. 그러나 연합군사령부의 맥아더는 1월 31일 총파업 중지명령을 발하며 파업은 무산되었다.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