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17 20:16

빈농들 긴 농알투어 5

드디어 상주다.

상주 형님은 높은 곳에 산다.

오르고 내리는 일이 쉽지 않다.

 

 

베어 놓은 참깨를 다듬고 묶었다.

비가 와서 널어놓은 빨래가 이틀간 그대로.

빨간 건 라봉 빤쓰, 살구 빛은 내 빤쓰.

그럼 오늘 라봉이 입고 있는 건 표범 빤쓰.

 

 

 

고추를 따고 닦고 말리고

말린 것은 꼭지를 따고

울고

재채기 하고.

 

 

 참으로 편하게 재밌게 지냈던 곳.

더 많이 일하고 싶고 더 오래 있고 싶었던 곳.

즐겁게 사는 형님 모습.

가을엔 감 따러 가야지.

 

 

짱돌이 어디서가 이 녀석을 데려왔다.

이녀석은 죽은게 아니란다.

죽은 척 하고 몸을 사리는 중이란다.

배워  봄직한 자세다.

 

상주 농알을 끝으로 걷고 일하는 투어는 끝이 났다.

이제 좀 편히 쉬면서 천천히 둘러보며 집으로 가자고 했다.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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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7 19:28

빈농들 긴 농알투어 3

잊지 못할 명잦마을의 밤.

여느 때 처럼 마을 노인정을 빌려놓고

 어르신들이 다 놀고 가실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다.

마을이 커서인지 어르신들이 많이도 오고 가셨고 

우린 마냥 기다렸다.

 

컴컴해지는 것을 느껴

노인정에 들어서니 

"여기 아무나 와서 막 자고 그러는 데 아니야!"

"아까는 쓰라고 하셨는데요...;_:"

"그 할매들은 다 집에 가고 없어!"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지만 갈 데가 없다.

 

근처에 마을도 회관도 교회도 빌릴 상황이 안된다.

두려움과 서운함을 섞어 마구 내달린 새벽길.

비까지 온다.

 

깜깜한 밤길에 하얀 불빛.

간이역이다.

창문을 두드려 사정을 말하니 밤샘근무를 하시던 역장님(이셨을까?)이 문을 열어주시고

따뜻한 커피를 내주신다.

우린 그 밤을 간이역에서 잤다.

 

 

역 이름은 밝히지 않으련다.

고맙고 예뻤던 간이역, 커피, 아저씨.

 

 

지난 밤의 질주 덕에 우린 다음날 일찍 안동시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발바닥에서는 국물이 흐르고 물집이 잡힌 곳마다 뜸을 떠서 굳혔다.

오일간의 여행을 함께 했던 붉은 말을 서울로 올려보내고

넷이 남았다.

 

 

예천으로 넘어가는 길에

짱돌이 사라져다.

 

 

그를 찾아 우리는 약 다섯 번 정도 되돌이 히치를 했다.

 

 

우린 지쳤고 더웠고 마치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였다.

그 시각 짱돌은 낙동강에서 우렁이를 잡고 있었다.

 

까만 봉다리 가득 우렁이를 담아서

허겁지겁 우릴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두워진 하늘 아래 지친 그의 파란 등짝을

씨게 두 차레 두들겨주고 싶었던 날.

음...

서로 미안한 마음이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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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7 13:00

빈농들 긴 농알투어 2

 

봉화를 떠나 안동을 향해 가다가

청량사 아래 정자에서 하루 묵을까 싶어

매화산에 올랐더니만,

야영금지, 취사금지란다.

 

 

약해진 마음에 근처 민박집에서 하루를 잤다.

빈농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였다.

다행히 산골민박 아저씨의 허허 하는 웃음과 싼 가격에

다친 자존심을 쓰다듬으면서

거저 주시는 밥을 다 받아 먹고

다음 날 아침 청량사에 올랐다.

 

 

주지스님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돌을 올려 메고 지었다는

아름다운 이 곳에서도

우리의 관심사는,

 

'공양 시간이 언제일까?'

 

 

먼 길 가야하는 우리 사정 관계 없이

늦은 공양시간에 입을 댓 발 세우고 우리는 내려왔다.

 

 

절밥은 포기했으니 공짜 차는 꼭 마셔야 한다.

'내버려둬' 라는 큰 글씨를 세우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분의 집.

(사진은 찻집 앞에 식신이 꼬깃하게 서 있는 모습.)

 

그날 밤 걸어서 도착한 마을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거기에서 마을 회관을 빌려 잤다.

아침에 퉁퉁 부은 발을 커다란 냄비에 담그고 있다가 할머니들에게 혼났다.

깨끗하게 씻어놓고 나왔다.

왜 미처 생각 못했을까......

죄송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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