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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

홍아가 어린이집에 있다.

 

내가 데리고 가면 떨어지기가 너무 힘들어서

아빠가 어린이집에 데리고 갔다.

마침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셔서 할아버지도 함께 가셨다.

 

말걸기에게 전화가 왔다.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은행에 가는 중이라 한다.

 

어떻게 울지, 얼마나 울지 눈에 선하다.

 

아직도 울고 있을까.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 있을까.

 

저를 두고 간 아빠와, 함께 있지 않은 엄마의 부재를 어떻게 느낄까.

 

내가 세 살 되기 전에 나의 엄마도 일을 하셨다.

엄마가 일을 가신 동안 나는 할머니 집에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땐데도 엄마가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서는 동안

울면서 엄마를 쫒다가 언덕을 데구르르 구르던 생각이 난다.

엄마도 울면서 일을 가셨다.

 

어느 날은 엄마가 일을 하고 오는데

시골에 웬 비행기가 지나가더란다.

마침 혼자 길을 다니던 내가 비행기 소리에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바닥에 엎어져서 막 울고 있더란다.

그런 나를 안고 엄마도 울었다 한다.

 

다는 기억하지 못해도 그 때의 아픔이 고스란히 있는 것일까.

 

내가 떠올리는 것이 홍아의 마음인지 나의 마음인지...

둘 다 너무 괴롭다...

 

이렇게 떼어놓는 것이 잘 하는 것일까.

내년 9월까지는 휴직을 할 수 있는데 홍아에게 더 시간을 줬어야 하는 것일까...

 

적응이 잘 되어서 그 땐 그랬지, 하는 날이 어여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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