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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지를 않아

학교라는 공간은 소통의 부재.

 

교사는 교사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주눅 든 상태에서 행복하지 않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얼마 전 두 교사가 학부모에게 고소를 당했다. 작년 담임과 현재 담임.

 

아이가 장기적인 폭력을 당하고 있었는데 교사가 대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옆에서 보기에 그는 퍽 억울하다.

 

'피해 학생'은 하루에 네 번 이상 담임에게 왔고, 이야기를 걸었다.

담임은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아이에게 물었으나 학생은 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아이가 그렇게 찾아왔다는 것이 커다란 증거일 수 있다.

심증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대신 교사는 아이를 성실히 대했다.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힘든 부분을 도와주었다.

한 반에 학생이 마흔 명 가까이고, 수업에 들어가서 만나는 학생이 400명이 넘는 사람이다. (시수가 적어서 많은 반에 들어간다.)

그 아이에게 들인 공은 적지 않다.

 

수업 준비에, 학교 업무에, 학교에서의 하루는 정말 바쁘다.

4시 30분에 퇴근을 할 수 있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8:30 출근에, 점심 시간에도 일을 하니 정당하게 8시간을 일하고 퇴근하는 것이다.(나는 힘들다는 이야기만 하면, 넌 일찍 퇴근하잖아,로 답이 돌아오는 것이 이제 좀 지겹다. 먼지나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밥을 먹고, 그 시간 쪼개서 상담하고 업무 처리하는 것이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경찰서로 보낸 고소문에, 그는 아이를 전혀 살피지 않은 무능하고 이기적인 교사가 되어 있다.

 

힘들겠다는 위로의 말에, 그는 오랜 시간 있으면서 아이가 당했던 폭력을 파악하지 못한 자신이 무능하다며, 현재 담임에게도 미안하다고 한다. 아이에게도 미안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쪼그라들었다.

학부모의 날선 칼을 몇 번 받으면 방어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에게도 그런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증거로 제출할 수 있도록, 기록을 꼼꼼히 남기는 것이 살 길이라는 이야기가 돈다.

 

교사 간의 소통은 어떠한가.

위계가 있어, 불만은 불만으로만 그치고

개선책은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다.

죽는 사람만 죽어난다.

 

오늘은 유독 고인 물이 썩어가며 넘실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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