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한 발 떨어져 보기, 가르친다는 것

1. 작년에 아팠던 덕분에 올 해는 담임이 없다.

젊은 나이에 이건 엄청난 호강이다.

막상 담임이 안 되니 제일 큰 보람은 없어졌지만 일은 엄청 줄었다.

그리고 아이들과의 부대낌에서 한 발 떨어지니 또 다르게 상황이 보인다.

 

어제도 정시에 퇴근을 못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학생부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는데 관리실에서 잡아두고 있다고.

학교에서 안 오면 경찰서에 신고를 하겠다고 했다고.

 

3학년 여학생들인 모양인데 담배를 피웠나.

 

마침 자리에 있던 담임들은 아이들이 올 때까지 집에 못 가게 생겼다.

그리고 또 무슨 일이 벌어졌으니 마음이 심난해진다.

더구나 학기 초라 일이 엄청 많은데 이런 일이 생기면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기 보다는

과부하가 걸려 싫은 마음이 먼저 들게 된다.

 

며칠 전 또 다른 녀석들이 생일빵이라며 별로 친하지도 않은-그러나 평소에 맘에 안 들어했던- 아이를 심하게 때린 일로 바빴던 그들이다.

 

학교에서 이런 문제는 자주 있고,

반복되는 폭력이나 따돌림, 괴롭힘을 보게 되다보면

종종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보려 해도

그 방법만으로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다보면 귀찮아지고 미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일이 좀 주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문제에 좀 덜 마음을 상하게 된다.

 

우선은 올라갔구나,하는 사실이 인지가 되고

왜 그랬을까,하는 의문도 생긴다.

 

아 짜증나,보다 먼저.

 

 

2. 아이들이 올라간 옥상은 난간이 있는 옥상이 아니라

'ㅅ' 모양으로 기울어진 옥상, 그러니까 지붕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25층 아파트의 지붕.

 

거서 사진을 찍고 놀았다고 한다.

 

짜릿했겠다,는 생각보다는 큰일날 뻔 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자칫 발이라도 미끄러졌다면 무서운 일이 날 뻔 했다.

자기 목숨을 걸고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다니 아이들에게 화도 난다.

왜 생명을 건 위태로움에서 해방감을 느끼니.

다른 일에 생기를 걸고 거서 즐거움을 느끼면 안 되겠니.

 

그럼 어른으로서 나는 아이들을 혼을 내야 하는 것일까, 조근조근 이해하며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일까. 둘 다 하면 되는 걸까.

 

나는 이런 것이 혼란스럽다. 이해하고 대화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어리고 미숙하고 배워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청소년기에 다 컸다고 생각하고, 어른들이 그걸 몰라준다고 생각하며 서운해하거나 어른들을 마음에서 밀어냈던 적이 있기에 그런 어른이 되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보는 아이들은 아직 많이 어리다.

 

그것을 알려 주거나, 알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서 오는 피드백은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혼내기, 알려주기가 효과적이라는 걸 알려준다.

하지만 사람이 금방 변하는 것은 아니기에 그 방법이 너무 무르거나 아무 변화를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종이 쳤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