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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것은 못 하게 해야

9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방학 첫날이라고 게으름을 한껏 피우려 했던 것에 비하면 이른 시간이고,

일하러 갈 때에 비하면 엄청나게 늦은 시간이다.

 

지난 주엔 교실에 들어가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불편할 정도로 피곤했던 터라

오늘부터 시작되는 방학을 너무너무 기다렸다.

 

그런데 나는 방학이어도 애들은 아닌가 보다.

'방학이어서 좋지?' 하고 물으면

'안 좋아요.'하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다.

'왜?'하고 물으면

'학원 가서 계속 공부해야 하는데 뭐가 좋아요. 차라리 학교 오는 게 나아요.'

 

오전 10시에 학원에 가서 10시에 집에 온다는 아이도 있고,

12시에 학원에 가서 10시에 집에 온다는 아이도 있고.

미술을 하는 녀석은 하루에 6시간씩 꼬박 앉아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한다.

 

학원에서 뭐해?

수업도 듣고 자습도 해요.

자습하면 잘 돼?

아뇨, 계속 있으니까 집중력도 떨어지고 힘들어요.

그렇게 오래 그려도, 그림 그리는 거 좋아? 뭐 그려?

뭐 입시에 필요한 그림 그리죠. 그림 그리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저 중 3이잖아요...)

 

학원에 가서 효과를 보는 친구는 아주 없진 않지만, 모두가 달려가는 그 수에 비하면 매우 적다.

하교 후 예닐곱 시간을 학원에서 공부하고 온다는 몇 아이들은

엄청나게 예습을 하고 왔으면서도

수업 내용을 이해 못 하거나 시험 성적이 낮다.

오히려 어디서 들은 내용이라 여겨서 그런지 수업에 집중을 안 한다.

이해하기 전에 호기심마저 잃고 오는 것이다.

 

그 시간에 축구도 하고 친구들과 동네를 쏘다니기도 하고 좋아하는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자기 재주를 발휘해 무언가를 끄적이며 만들어 보기도 하고

악기도 배우고 노래도 부르고

그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을 아이나 학부모에게 말하긴 어렵다.

 

학원에 아이들을 불들어 매는 건 그들의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변의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면, 안 가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라면

가계에 그렇게 부담을 주면서, 아이가 코피 흘리고 얼굴이 뜨는 것을 보면서,

효율이 없는 것을 보면서도

학원으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며칠 전 학교에 급한 공문이 왔다.

0교시 자율화에 대한 학생 3, 학부모 2, 교사 2, 교장의 의견을 묻는 공문이다.

 

교무부장은 자율화가 얼마나 좋은 것이냐며, 학교에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찬성이란다.

교사 둘의 의견을 묻는 내용이라 난 옆에서 반대라고, 아예 처음부터 할 생각조차 못하게 해야 한다고, 근처 학교에서 하나둘 하게 되면 그 땐 선택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고 했다.

 

담당 교사가 조사한 내용을 보니

학생들은 셋 모두 반대이고(말이 자율화지, 자율화하면 결국 모두 하게 될 것이라는 똘똘한 근거를 달아)

학부모는 둘 모두 찬성이고(공부를 더 시켜야 한다나!!!)

교사는 찬성 하나, 반대 하나

교장은 찬성.

 

해서 안 좋은 것은 아예 가능성을 없애는 게 좋다.

아이들이 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테두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이 정부의 교육 정책은 너무너무 천박하고 인간다움이 없다.

한탄만 하기엔 애들이 너무너무 불쌍하다.

 

테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서울 교육감 선거에 더 눈이 가게 된다.

서울 시민이 아니어서 투표를 못 하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교육이 경쟁이 아니라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하는 세력(주경복 후보와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이 될 것인가.

그들이 서울에서 권력을 갖게 된다면!

 

집에서도 투표할 수 있다니, 서울 사는 분들 많이많이 투표하시길.

좋은 소식 좀 전해주세요.

 

산울림의 노래 한 구절을 배경 음악으로 깔며 : 부탁 부탁 부타악, 부탁 부탁 부, 부탁해애. 부탁 부탁 부타악, 부탁 부탁 부, 부탁해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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