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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한 거야

화요일 밤에 잠을 자다 멋진 경험을 했다.

 

요즘 꿈을 많이 꾼다. 대개는 시달리는 꿈이다.

자다가 화장실도 자주 간다.

불안한가 보다.

 

수요일과 목요일엔 학교 출근을 하는 날이라,

또 방학에 여는 도서관 학교에서 수업도 해야 해서

(연습 없이 내가 준비한 프로그램으로 모르는 아이들에게 수업을 해야 해서)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꿈을 많이 꿀 때는 꿈을 꾸면서도 그 내용을 분류하고 분석하는데

(이게 저절로 된다. 되게 피곤하다. 한 편으로 꿈을 꾸면서 한 편으론 음 내가 이런 꿈을 꾸고 있군 하고 생각을 한다.)

내가 꾸는 꿈들을 종합해 보니

나는 학교 일을 겁내고, 무언가 활동하는 것을 겁내고, 학교에서 (자기가) 상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고, 수업을 잘 할지를 걱정하고, 아이와 내 몸이 건강한지를 염려하고,,, 그러고 있었다.

 

문득 짜증도 나면서 든 생각.

이런 걱정거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걱정거리를 선택했다는 생각!

 

그 밤에 깨달음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생각이었다.

그래, 내가 부른 거야!

그러니까 내가 안 부르면 돼!

 

(그리고 이건 깨고 나니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괜찮아'라는 내용의 깨달음(!)도 얻었던 것 같다.

아, 기억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내 것이 되었겠지?)

 

그러고 나서 선택하지 않기로 결심을 하니 꿈을 꾸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계속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다.

하룻밤의 경험일까, 그 힘을 계속 낼 수 있을까...

 

그런데 그 날 저녁 만난 선생님이

임신한 엄마가 잠을 못 자고 뒤적이면 태어난 아이도 그렇고,

푹 자면 아이도 잘 자는 것 같단 이야기를 한다.

 

어이쿠, 내 선택이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구나.

 

안 그래도, 부모가 극복하지 못한 상처는 아이에게 되물림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 소심증을 아이에겐 물려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야, 네 씩씩함을 내게도 줘.

 

그러고 3일째, 전보단 훨씬 꿈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잠을 자고 있다.

우리 둘이 힘을 합해 단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신나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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