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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말걸기도 일 보러 나가고 혼자 집에서 딩글거리고 있었다.
창 밖에서 뭔 소리가 계속 났다.
소리는 가까이 오더니 전하길
'국산 조와 보리를 나누어 준다. 중국농산물 수입으로 우리 농가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국산 농업 시장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농산물을 무료로 나누어 주니 꼭 나와서 받아가시라.'
마침 곡식을 나누어 주는 장소가 아파트 바로 뒷마당이었다.
나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갔다.
공짜잖아~~~
나갔더니 열댓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주최측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더니 종이를 주며 이렇게 행사를 하는 취지를 설명한다.
종이에는 각 지역의 농협 전화번호와 특산물이 적혀 있다.
잡수시고 좋으면 일루 전화해서 많이 좀 팔아달라는 것이다.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농민들이 물건을 팔게 홍보 좀 해 달라고 자신들을 보냈다 한다.
그들은 조 한 봉지를 주더니
이런 저런 홍보를 한다.
그리고 설명한 내용을 다시 묻고 잘 대답하면 곡식 한 봉지를 더 준다.
사람들은 눈이 반짝이며 큰 소리로 대답을 한다.
그러더니 비누 하나를 준다.
쌀 비누인데 금산에서 만든 거란다. 11월부터 시중 대형 마트에 유통이 되니 써 보고 좋으면 많이 써 달란다. 그리고 금산 특산물인 인삼에 대한 정보를 준다.
인삼을 꿀에 재 먹으면 안 된다. 먹을 때 바로 찍어 먹어라. 인삼은 적어도 12시간(?) 달이고 홍삼은 72시간(?)을 달여야 한다. 홍삼 달인 것이 제대로 된 것은 물처럼 나오는 게 아니라 꿀처럼 찐득찐득하게 나온다. 그것을 먹어야 한다. 뭐가 몸에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고 먹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정관정 것이 좋다. 그런데 정관정 것은 한달치가 45만원으로 좀 비싸다.
(눈치가 빨랐으면 여기서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우 씨이~ --;;)
홍삼은 적어도 석 달은 먹어야 한다.
여기 금산에서 만든 홍삼 엑기스가 있다. 이것도 11월부터 판매될 것인데 맛이라도 보여드리겠다. 요렇게 생긴 걸 사 잡수라.
하고는 나무 막대기에 홍삼을 찍어 나누어 주었다.
이어 왈,
파주에서는 광고를 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왔었다. 그런데 그 사람 모두에게 홍삼 원액 3일치를 나누어주었더니 되려 광고에 악효과가 났다. 설명을 제대로 안 듣고 3일치를 한 번에 마신 할머니가 안 좋은 거라고 입소문을 냈기 때문이다. 피해가 막심하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효과를 확실히 본 사람이 좋은 소문을 내 줄 것이므로, 몰아서 한 사람에게 한 달치를 주겠다.
종이 쥔 손을 여기 한 가운데 모아 보라. 목소리가 큰 사람이 광고를 잘 할 것이므로 내가 셋을 세면 '금산'(?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인삼인가 홍삼인가 여튼 뭔가를 외치게 하였따.)을 외치라. 그럼 세 분께 홍삼을 드리겠다.
나도 '금산을 외쳤다.(아 쪽팔려..)
근데 또 말을 잇는다. 이거 가져가면 누가 먹을거냐. 나눠 먹으면 효과 없다. 한 사람이 다 먹어야 한다. 혹 같이 먹고 싶은 분이 있을까 하여 여러 분 효과 보라고 한 통 더 드리겠다.
(여기까지 와서도 나는 눈치를 못챘다. 이 때 몇 사람은 뒤로 빠졌는데.. ㅠㅠ 눈치가 꽝이야.)
자 다시 외쳐보자. '금산!'
순발력 있게 대답한 내가 당첨이 되었다. 앗싸아!
진행자는 감사하다며 비누 세 장과 곧 출시된 예정인 순창 고추장 한 통을 다른 진행자에게 넘겨 준다. 그는 나를 끌고 열 발자국쯤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간다.
이미 쇼핑백에 홍삼 원액 두 통이 들어 있다. 나를 델꼬 간 사람은 그 위에 비누들과 고추장을 올려놓더니 말한다.
'운이 좋으시네요. 그럼 저기서 이야기 들으신 것처럼 하나는 무료로 드리고 하나 값만 6개월 안에 편하신 대로 내시면 됩니다. 여기 계좌번호와...'
으잉? 그 때야 나는 정신이 퍼떡 들었다. 그렇지 공짜가 어딨어. >.<
'안 할래요.'
오아 아저씨 얼굴이 무서워질라고 한다.
나는 부랴부랴 되돌아서 집으로 왔다. 이미 받은 조 세 봉지와 보리 한 봉지, 비누 하나를 꼭 들고서.. 집에 와서 생각을 하니 33만원 안에 사람 유지 비용이나 차 유지비, 나누어주는 것들, 홍삼 두 통, 저 모든 것의 단가가 들어갈 텐데 이것이 국산이겠노, 싶다.
경쟁심을 유발하고 얼핏 상관이 없는 정보부터 흘리니 듣다듣다 보면 따라가게 된다.
이것이 저들의 노하우인가보다.
하마터면 공짜 좋아하다 필요 없는 것을 살 뻔 했지만,
막판에 빠져나왔으니 흐흐 나는 똑똑해~~
아 다행이다.
댓글 목록
앙겔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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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ㅁ-!!! 대충 어디 사세요?? 저는 인천 사는데 7,8년 전에 당할 뻔 했거든요...-ㅁ- 낮에 아빠가 빨리 나가서 받아오라구=ㅁ= 그래갖고 나가서 나도 뭔가 외치고 의기양양하게 받아서 수금하는 사람 델꼬 집에 왔는데 아빠가 불같이 화내서=ㅁ= 너무 부끄럽고...;; 지금 생각해도 제가 그런 데 안 넘어가는 사람인데 정신줄을 놓고 집까지 데려왔으니 이작자들의 언변이 참으로 뛰어나지연. 근데 그거랑 완전 똑같은 수법으로 아직도 하고 자빠졌 ㅇ<-< 꺅파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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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쵸, 그쵸? 어찌나 말을 잘 하는지 그냥 듣다보면 넋을 놓고 끄덕끄덕하게 돼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관광 버스 공짜로 탔다가 약을 허벌나게 사 오신다던데 그럴 법하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게 고전적인 수법이군요... 지나고 생각해보면 영 엉성한 게 많지만, 들을 땐 잘 모르겠어요. 이 넘 시키덜..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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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식물 쓰레기통 공짜로 준다고 해서 나갔다가...1시간이 훌쩍 지나가더라구요. 제 후배랑 같이 나갔는데 그애가 당첨되었거든요. 안한다니까 아저씨들 표정이 확~ 구겨지던데. 그 때에도 금산이었어요. 그런데 사무실 후배의 아내가 외국교포였는데 한국 적응이 막 시작하던 즈음에 이런 일을 겪어서....아직까지 한국을 불신하고 있다는....파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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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부처 / 아 참 저는 일산 살아요~~하루 / 웅 여러 가지로 낚는군요. 공짜 좋아하다 덤테기 쓸 뻔 했어요~
야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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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그 아저씨들 일산에도 갔었네. 광화문에도 한번 오셨드랬죠. 열심히 대답하고 받을 거 다 받아서 집에 가져왔는데 쓸만한 거는 없더라. ㅋㅋ 그때 받은 게 쌀보리, 기장, 비누 등등. 참.. 이 아저씨들 홍보를 이런 식으로 하나, 한심해하면서 나왔던 기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