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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 검사

시 수업을 하고 모방시 쓰기를 했다. 학생들의 심금을 울린 시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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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 검사

 

거울이 가득한 방 안에

머리카락이 떨어지고

 

가위를 든 아가씨는

애처로이 잦아드는한 소년의 머리카락을 잘라내었다.

 

이윽고 개학은

학생부와 두발검사로 돌아오시었다.

 

아, 선생님 손에 들려있는

저 빛나는 가위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매서운 선생님의 눈초리가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말없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마침내 뒷문으로 선생님이 나가시고 있었다.

그 날 나는 새가 되어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 때의 선생님만큼 나이를 먹었다.

 

단발한 학생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자유가 넘치는 도시에는

이제 옛날의 그 긴장감은 없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머리에

불현듯 선생님의 손길을 느끼는 것은,

 

그 옛날 길었던 내 머리를 거침없이

잘라 주시었던 공포가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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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학교는 이렇게 후지다. 고색창연한 말처럼 느껴지는 '두발 검사'. 대부분의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다.

이 시스템에 들어오니 한 사람이 '통제' 해야 할 아이가 너무 많아 규제의 방법으로 두발이나 복장을 검사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임져야 할 학생이 많으니 가장 쉬운 방법은 그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틀 안에 가두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머리 길이나 옷 차림.

머리 잘라야 공부 잘한다는 낯뜨거운 설득도 있고, 아이들 차림이 단정해야 사고도 안 나고 수업 분위기도 잡힌다는 그럴듯한 말도 있지만, 목적은 통제에 있다.

 

학교에서는 별의별 사고가 많다. 그러니 분위기를 잡을 필요를 느낀다. 그 분위기는 쉽게 전염이 되어, 학교에 온 지 1, 2 년이 되는 젊은 교사들도, 길 가는 낯선 아이의 긴 머리조차 못 마땅해 하게 된다.

 

이 보수적인 곳은 새로운 방식으로-자율로- 아이들이 자신들을 컨트롤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다. 간혹 반항을 하거나 싫은 내색을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길들여지는 아이들도 많다. 교복자율화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95% 이상의 학생들이 찬성을 한다. 학교에서 사복을 입는 것에 대해서는 '꿈'도 꾸지 않는다.

 

전교조 쌤들이 학생부장에게 두발 검사나 소지품 검사 등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기도 하였다. 몇 쌤들은 자기 반 애들에게는 해 줄 수 있는 한의 여지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걸로 학교가 바뀌진 않는다.

 

(처음엔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자책도 있었지만, 홀로 해결할 수 없는 일로 자신을 탓하는 건 무익하다. 조금씩 못 본 척 하고, 조금씩 분개하고, 한 발 떨어져 두고 본다. 이렇듯 맺힌 감정을 해소할 기회나 주고, 속상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 정도나 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안-못-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늙어가는, 낡아가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무서워서, 혹은 귀찮아서 접는다.ㅜㅜ)

 

바람은 있다. 아이들이 자유로와지길.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내 아이의 아이가 학교에 다녀도 학교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스템이 통으로 변해야 한다. 한 교사가 담당하는 아이의 수도 획기적으로 줄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이 경쟁이 아니라 자아 실현에 있어야 한다.(경기도 교육청의 모토는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글로벌 인재 육성'이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 아이는 이번 교육감 선거와 후폭풍에 대한 시를 썼다. 당신 땜에 우리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학원에서 얼마나 쪼들리는지 아느냐고, 내가 투표할 때 두고보자고 한다. 그 마음을 들어주고 복돋워주는 것, 우선은 글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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