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잡다한 이야기

1. 행복한 때

 

3학년은 일주일에 네 번 국어가 들었다. 나는 다섯 반에 들어가고, 하루에 네 시간을 수업한다. 그러니까 하루에 한 반은 안 들어간다.

지난 화요일은 6반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 날 6반 담임이 출장을 가게 되어 내가 청소 지도를 하게 되었다. 교실에 갔더니 아이들이 왜 오셨냐고 묻는다. 담임 쌤이 출장을 가셨다 하니 한 남학생이 춤 비스무리하게 추면서

'이야, 오늘은 국어가 없는 날인데 이렇게 선생님을 보네. 그럼 이번 주는 매일 선생님을 보네.' 하면서 신나 한다.

빗자루를 들고 엉덩이도 조금 흔들흔들한다. 에구 귀여워.

 

7반 수업을 갔다. 앞머리가 내려와서 뒤로 쩜맸다. 새로워 보였나 보다. 뒷 자리의 한 여자 아이가 '선생님, 이뻐요!' 한다.

 

한 아이가 수업에 늦게 들어왔다. 원래 내가 교실에 들어갔을 때 자리에 앉아 있지 않으면 엉덩이로 이름을 쓴다. 그래서 종이 치고 복도를 지나면, 나를 본 아이들이 와~하고 교실로 뛰어들어 간다. 왁자지껄하고 귀여운 작은 소란이다. 그런데 오늘은 늦게 들어 온 아이를 보고, 다른 아이들이 '야, 바뀌었어. 오늘부터 엉덩이 아니고('엉덩이로 이름쓰기가 길어서 우린 엉덩이라고 짧게 부른다.) 노래 부르기야.'하고 입을 맞춘다. 나도 심각하게 '맞아'하고 맞장구를 쳤다. 용기를 내라고 손을 잡고 같이 노래를 불렀다. 아이는 남행열차를 부르고 얼굴이 발개져서 들어간다.

 

이제야 부른 배를 알아본 아이들이 축하를 한다.

 

소소한 일들. 하지만 마음을 주고받는 이런 일들이 큰 기쁨이다.

 

2. 그지 같을 때

 

2층에 교무실과 교실이 함께 있어서 아이들과 화장실을 함께 쓴다. 선호하는 화장실이 있는데(중간쯤에 문고리도 잘 닫기고, 문도 삐걱거리지 않는..) 어느 날 화장실 옆벽을 보니 '이명박 왔다감'이라고 쓰여 있다. 젠장. 여기서도 이 이름을 봐야 해?

펜을 들고 가서 그 아래 낙서를 하기도 뭣하고 매직으로 크게 써서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다른 화장실에라도 가면 떠올리지 않을 텐데, 꼭 들어가고 보면 그 화장실이다. 아유 또 들어왔네...

 

새 체육 쌤이 오셨다. 기간제 쌤이다. 잘 생겼다고 아줌마들이 난리가 났다. 올해 들어 여자 부장들 분위기가 쌩마초다. 어쩌다 모임 같은 것을 하면 노래를 부르고 야한 농담을 하고 남쌤들과 춤을 추려 한다.

이번에도 한 여자 부장, 새 쌤 앞에 자리를 틀고, 어쩜 이리 잘 생겼어요, 왜 결혼했다고 말해서 남 맘 아프게 해요, 난 3층에 있으니 놀러와요, 같이 배드민턴 쳐요, 아주 추파를 던진다. 보기 뭣해, '그 분 이제 임용 시험 보세요, 공부하셔야 합니다. 아니 아이도 둘이나 있으신 분이 남 결혼한 것 가지고 그러세요.'하고 말해 보았지만 아랑곳 않는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 남성은 여성보다 모욕감을 덜 느끼기는 하겠지만, 성추행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자기 위치와 권위(나이, 정교사)를 이용해 상대를 희롱하는 짓이다.

남자 교장에서 여자 교장으로 바뀌고, 새 교장이 그런 분위기를 즐기니 그간 나타나지 않던 욕망(!)들이 마구 나타난다. 보기 흉하고 불쾌하다.

 

지난 주 금요일에 대학 동기들 모임을 했다. 남자애들이 하나같이 마초가 되어서 나타났다. 잘 못알아듣겠지만, 분위기로는 뭔가 야한 소리를 하고 지들끼리 킥킥거린다. 애를 낳으면 인생 쫑이라며 불쌍하다는 듯 말한다. 짜증이다. 틱틱거리고 있다가 밥만 먹고 나왔다. 이게 사회화된 남자의 일반적인 모습일까? 대개는 이러고들 사는 것일까? 그래도 한 때는 친구였는데. 말도 통했는데. 걔들 보기엔 내가 깐깐하고 짜증 많은 여자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안녕이다. 다시 볼 일 별로 없을거다.

대판 싸웠으면 마음이 좀 풀렸을까?

 

3. 쫒기는 심정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진도 빼기가 힘들다. 매번 시험을 앞두고는 100미터 달리기를 한다. 딴 소리도 별로 안 하고 열심히 수업하는데 이렇다. 글도 쓰고 이야기도 나누고 발표할 기회도 많이 갖고.. 그런 활동들을 고려하지 않은 교과서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따라가기가 벅차다. 헥헥. 8차는 어떻게 되려나.

 

화장실을 자주 간다. 원래 잦지만 임신을 하고는 더 자주 간다. 자다가 한두번은 깨서 화장실에 간다. 아 귀찮아. 더 걱정인 것은 쉬는 시간에 볼 일을 봤는데도 수업 시간에 신호가 오기도 한다는 것. 자주는 아니어도, 진도도 진도려니와 수업 시간에 자리 비우기가 뭣해(내 책임인 시간이고, 그 시간에 할 일도 많다. ㅠㅠ) 신경이 쓰인다.

 

 

----------------------

그러고 보니 좋은 일들은 대개 아이들과 함께일 때고, 기분 나쁜 일들은 어른들과 함께일 때로구나. 다른 사람들 보면 내가 나이에 맞게 사회화가 안 된 것일까,하는 생각이 쥐눈꼽만큼 들기도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