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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씨로부터의 소식입니다

방글라데시에 잘 도착했다고 합니다. 도착해서는 몸이 좀 아팠다고 하네요. 한국에서도 제대로 못자고 바쁘게 돌아다녀서 걱정이 되긴 했었습니다. 방글라데시로 급하게 돌아간 이유가 직장 때문이었는데요, 문제가 잘 해결되었다고 합니다. 사이드씨가 있던 ETV가 정부에 의해 문을 닫았었는데 12월 초에 갑자기 재개국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사장이 빨리 돌아와서 회사에 합류하지 않으면 해고할 수도 있다는 위협을 했었거든요.

 

회사일 때문에 정신없이 바빠서 브렉쓰루 멤버들과는 밤에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고 하네요. 브렉쓰루 멤버들 모두가 한국사람들의 굳건한 연대를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답니다. 오늘(금요일)저녁에 멤버들의 회합이 있다고 하니 다시 자세한 소식이 올 것 같습니다.

 

메일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weaver'-아마도 전통적 방식으로 베짜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를 기획 중이라고 합니다. 브렉쓰루의 다음 작업이 될 듯 한데 이게 현재 직장인 ETV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지금 슬렁슬렁 메일을 봐서요.(-.-)

 

모든 분들께 감사와 연대의 마음을 전하는 메일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제가 나가봐야 해서 대충 마무리. 죄송-.-)

 

12/20 

hallow,

         I reached Dhaka sound& safely, but i was so tired and sick for the long travel, i could not sleep in the Bangkok airport, my hand luge was very heavy,  i reached dhaka airport at 12.30 and i went to home 4.00 o'clock, i was so tired and restless, that`s why i take rest for todays,  after 1 day i went office. i have good news that my ETV administration could not take any action on me, they congratulate , if i  come late it makes a big problem for me.

    I am rearly sorry i could not see and say to goodbye u people, i was very busy upto airport, i could not manage time to call u, i think that i can call u from the airport but my luggage was so heavy , i put off some luggage in south korea, i feel very sorry and i miss u ,

i really miss all of u and those days ,  we r spend .

 my group members are very happy for ur help and solidarity. they want give u a heartful thanks , they r now fell that they r not alone , they have a solidarity friends in southkorea,

they also thanks for the camera and computer

   i can met two members of our group, i m going to set for the group meeting between 2 or 3 days, i am very restless and sick, miss u so mush.

JAHID

12/20

hallo,

       i hope that u r fine, i am very  sick  and tired, miss u , tomorrow i have 4 hours meeting with my ETV chairmen , he wants that now i join program department, he just introduce etv's programme chief, he was work with in a london tv channel many years, now he work with etv , my chairmen proposed to work with him, but i have to rejoin first , i take only 15 days leave , and i comeback after 2 months, but i manage everything, i spend until 10.00pm at office, today i start my regular office with week body  

               but i contact my group members individually , after my office i went shahabag , i met Akram one of our groupmember ,it was 12.00pm thats he come with my home talk about every thing , he was very happy for your strong support , i talk him mid of the night i feel very sleepy and week thats why i cannot talk to much every thing ,

We call a group meeting in friday .

jahid

12/22

hallow,

             i hope u r fine , now i m OK but i have great hassled in my office , 19 December i talk to my chairmen , he want after 4 hours meeting he want that i would join programme section , for this he introduces me, 20 December i went office in the morning and meeting with programme chief , but there is i faced a great problem with broadcasting section ,

our broadcasting chief riping couldn't want that i join the programme section, i wish that i work with broadcasting team , i was so confused , 20, 21 December i went office at 9 o clock and come back 12.30 pm at night , programme department and broadcasting department and chairmen we just going to meeting and negotiated the problem our chairmen said to the broadcasting department that i have experience in documentary making and i got the award for after a long discussion Ripon vai agree that i can join programme section, its good for me and breakthrough , its a good news now i am Programme Producer , and i m also chief the current affairs section , my group member akram, julhaj, eva, smrity , they come off and meet me individually ,

                    today  we have group meeting at 11.00 pm clock in art institute Dhaka, we discussed every thing , about our work , we desired that we can start work with ''WEAVERS'' ITS our culture custom, but now a days weavers a abolished  by the industrial system,  we just start our research work ,

                  Etv preparing for online that's why my off time is 10.30 pm , the office told that its 10.30 but i left office 12 pm , so i can't go to cyber cafe because our cyber cafe closed 10.00pm, sorry i cann'ot e-mail regular,  but i try my best level, Saturday 23 December i join Programme section.

  i have meeting i have to go now ,

j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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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일) 다시 이주노동자 집회가 있습니다

* 민중언론 참세상[만국의 노동자여 어디에 있는가] 에 관련된 글.

 

이주노조 위원장 안와르씨는 표적단속으로 붙잡혀 약 1년간 외국인 보호소에 장기구금되어있다가 지난 4월 25일 석방되었습니다. 사실, 석방의 개념이 아니라 '일시적 보호해제조치'로 풀려난 겁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당국에서는 보호해제의 사유가 없어졌다며 다시 잡아넣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12월 11일, 이주노조 경기중부지부장 자만씨가 작업장에서 일을 하던 중 출입국 직원에 의해 연행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지요. 아래는 이주노조의 성명서입니다.

 

 

〈속보〉이주노조 경기중부지부 자만 지부장을 즉각 석방하고 단속을 중단하라!

오늘(12월 11일) 오후 1시 경 군포 지역에서 작업장을 돌며 단속을 하던 단속반에 걸려 자만 지부장이 일을 하던 도중 연행돼 수원출입국사무소로 보내졌다.
단속반은 자신들은 단지 신고를 받아 단속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즘 밤낮, 주거지와 공장, 길거리를 가리지 않고 합동 단속이 진행되고 있다. 오늘 안양에서는 자만 동지 외에도 13곳의 작업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단속반에 체포됐다.
어제, 오늘 우리는 안양, 의정부, 동대문 지역에 단속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대문에서는 단속반이 공장마다 돌아다니며 이주노동자들을 찾느라 혈안이었다. 의정부에서는 매일 길거리와 작업장 곳곳에서 단속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의정부에서는 지난 토요일에만 40명 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단속에 걸려 잡혀갔다.
도대체 정부는 언제까지 우리를 이 끔찍한 사지로 내몰려 하는가?
우리 동료들은 매일 매일을 언제 단속에 걸릴지 몰라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단속에 걸렸을 때는 단속반의 폭력과 모욕적 태도에 충격을 받고 외국인 수용소로 보내진다. 사람들은 그곳에서의 생활을 가장 기억하기 싫은 시간들이라고 얘기한다. 체불 임금, 퇴직금 문제가 미처 처리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수용소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앞두고 지역에서 이 집회를 조직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자만 동지 역시 이 집회 조직을 위해 흩어져 있는 조합원들을 방문하면서 열의있게 ‘이주노동자의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만 동지는 지난 11월 30일 지역 단속에 항의하기 위해 열린 수원출입국관리소 앞 항의 집회를 적극 조직했다. 우리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투쟁하며 이주노조에 헌신해 온 자만 동지의 체포 소식에 깊은 분노를 느낀다.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우리의 동료 이주노동자들이 매일매일 이 끔찍한 인간 사냥의 희생자가 되는 현실에 분노를 느낀다.
우리는 정부의 이 지독한 탄압에 기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만 동지와 구금된 모든 이주노동자의 석방을 위한 투쟁, 그리고 세계 이주민의 날 집회 조직에 박차를 가하며 계속 투쟁해 나갈 것이다.

                                                                                                   12월 11일 이주동자 노동조합
      
12월 17일 세계이주민의 날 행사를 마친 후, 이주노조에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다시 24일, 자만씨 석방을 촉구하는 집회를 조직하기로 했답니다.  얼핏 듣기론, 24일 집회를 하면 연대단위들은 참여가 불가능하다고 걱정들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꼭 연대<단위>들만이 아니라, 이주노조를 지지하는 개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해 힘을 보여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2월 24일, 여러가지로 바쁜 일들이 많을 수도 있는 날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 아닐까요.

 

 

 

  단속추방 중단, 자만 동지 석방, 모든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결의대회
    
   Rally for stop crackdown,
    release Jaman and legalize all undocumented migrant workers


일시 : 2006년 12월 24일 (일) 오후 3시
          2006. Dec. 24. (Sunday), 3 p.m.
장소 : 보신각 앞(종각역 4번 출구)  
          (Jonggak Station Number131, Line1, exit 4)

  주최 :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MTU)
  문의(TEL) : 02-2285-6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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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씨가 떠나면서 전하는 말

사이드씨가 오늘(아니 이제 어제) 저녁 8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방글라데시로 돌아갔습니다.

공항가는 차를 타면서 눈물을 보이길래

으흑, 맘이 약간 이상야릇 서운섭섭.-.-

 

짐이 무쟈게 많아서 도착하면 어떡할거냐 걱정했더니

브렉쓰루의 모든 멤버들이 공항에 나오기로 했대요.^^

그러나 결국 중량 초과로 컴퓨터는 못 갖고 나갔다고 합니다.-.-

 

우쨌든, 

바쁜 일정에도 차를 끌고와준 깨철님,

공항까지 같이 가서 무거운 짐을 챙기느라 수고한 마니님과 문성준님,

그리고 안와르씨, 마붑, 매닉, 모두모두 수고하셨어요.^^ 

 

아래는 사이드씨가 떠나기 직전, 한국의 친구(적당한 표현을 못찾아서^^)들께 전하는 말입니다.

비루가 받아적어서 쌩짜배기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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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브레이크쓰루의 멤버들이 힘을 받아서

계획도 많이 짜고 투쟁현장들도 많이 찍을 것입니다.

이런 연대를 한국과 방글라데시 말고도

말레이지아나 필리핀이나 등등 다른 여러나라들과도 만들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사람들의 연대가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미디어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노동현장과 가난한 사람을의 투쟁을 찍고

한국과의 연대를 알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일일이 얼굴 보고 인사는 못드렸지만

어디를 가든지 앞으로 다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한국이나 방글라데시가 아니라도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만나리라 기대합니다.

 

(덧붙임) 방글라데시에 다들 꼭! 놀러오세요.

(또 덧붙임) 혹시 오실 때 소주를 갖고 오시면 최고의 선물!

 

 

*참고* 

방글라데시에서는 술이 마약-매닉의 표현-취급을 당해서 소포로 부치는 건 불가능하고

음주면허증-사이드씨의 표현-이 있어야 상점에서 술을 사거나 술집을 갈 수 있답니다.-.-



발신자표시 제한의 전화가 새벽 3시에 울려서

주저주저하다가 받았더니 사이드씨였습니다.

방콕공항에서 갈아타는 동안 짬을 이용해 전화한다더군요.

 

모두 너무너무 고마웠다고,

급하게 돌아가느라 여러 사람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해서 미안하다고,

특히 메세지까지 보내준 디*님과 조*원님께 연락 못드려서 미안하다고

꼭 전해달랍니다.

돌아가서 가능한한 빨리 블로그를 통해 소식 알리겠다고 했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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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상영회 후기 (by 노바리)

 상영회를 마친 후 뒷풀이에서

 

 

동지이자 친구였던 '이주노동자 자히드'가 '다큐멘터리 감독 사이드 무나'가 되어 돌아왔다. 이주노동영화제에서 상도 탔다는 그의 영화 <21세기>를, 나는 어제 후원의 밤에 가서야 봤다.

 

현재 방글라데시에 큰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는 의류산업의 장에서, 전체의 약 80%인 여성노동자들은 한달 겨우 1,000 ~ 1,500 다카(약 2만원)를 받고 일한다. 1인당 최저생활비가 3,000다카는 필요한 상황에서. 아침 8시부터 밤 12시, 어떨 땐 새벽 2, 3시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 새벽 4시부터 화장실에 줄을 서서 물을 받아 식사준비를 하거나 씻고서 출근하고, 시간 외 수당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하는 동안 문을 밖에서 잠그기도 하고,  중간 관리직인 남성 노동자들과 고용주에게 일상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돼 있는 아주 열악한 상황. 그 안에서 방글라데시의 의류노동자들은, 스스로 모여 스스로를 조직하고 투쟁에 나섰다.

 

<21세기>는 감독의 개입이 전혀 없이(그 흔한 내레이션이 한 줄도 없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쌩으로' 그대로 전하며 이들의 상황을, 그리고 고조되는 투쟁에의 의지를 '스스로 카메라에 대고 고발 / 고백'하게 하는 데에 그 진짜 미덕이 있다. 비록 짧은 러닝타임과 조금은 서툰 구성일지라도, 그 구체적인 지리적 장소가 방글라데시의 의류산업 공장이었을 뿐, 한 나라의 중추적 산업에 있어 정부-자본의 합동작전 하에 육체노동을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가 처하게 되는 상황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건 어느 나라, 어느 산업에서도 같다. 우리나라에선 바로 6, 70년대 청계천으로 대변되는 의류산업이 그랬고, 이젠 서비스산업으로 옮겨갔을 뿐, 그리고 민주화 투쟁을 통해 착취/억압의 방식이 조금 더 세련돼졌을 뿐.

 




 

Q. 방글라데시에서 실제 노동자들의 경제적 사정이 어떤가?

 

A. 1971년부터 2001년까지,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960다카였다. 한국 돈으로 1만원 가량 된다. 한국에서 현재 한 끼를 밖에서 먹을 때 드는 밥값이 4~5,000원 정도라 할 때, 그 상당의 식사를 하려면 70다카가 든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60다카 정도 하는 도시락을 먹곤 한다. 이 노동자들의 집을 가 보면, 가구가 밥통, 물통, 그리고 그 사이에 매달아놓은 끈이 전부다. 그 끈에다 옷을 건다. 바닥도 거의 맨바닥. 서울역 등에서 노숙자들이 박스를 깔고 덮고 자곤 하는데, 거의 그렇게 생활한다고 보면 된다.

 

영화에서 인터뷰에 응한 노동자는 1,500다카를 받는다고 하는데, 그 사람 정도면 아주 잘 받는 축에 속한다. 의류공장의 노동자는 80%가 여성이며, 이들은 주로 시골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올라왔고 집이 없으므로 당연히 밀집지역에 방을 구할 수밖에 없는데, 미혼 여성들은 방을 얻기가 힘들다. 지역 깡패들이 여성들을 괴롭히고, 방주인들은 이런 복잡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미혼 여성들에게 방을 내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여성들은 회사에서 20%를 차지하고 있는 중간관리직 남성 노동자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중간 관리 노동자들이 여성들에게 성 상납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공장 내에서도 협박과 성폭력은 아주 일상화되어 있다. 중간관리직 남성 노동자는 물론이고, 고용주가 심지어 자기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여성 노동자들에게 성희롱을 일삼는다. 고용된 여성 노동자가 예쁠 경우 야간 작업조로만 돌리고는 밤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식이다. 귀가 길에서도 문제다. 지역 깡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경찰한테도 고초를 당하게 되는데,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여성들에게 이들은 자신이 성매매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출퇴근 카드에는 실제로 밤늦게까지 일을 했음에도 7시에 퇴근한 것으로 돼 있어 괴로움이 많다.

 

화장실에 가는 것도 어렵다. 잠깐 미싱 앞을 떠나 있는 게 관리직 눈에 띄면 200다카를 벌금조로 월급에서 제해버리곤 한다. 일하는 동안 감금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일년에 몇 차례씩 의류공장에서 대형화재가 나곤 하는데, 이렇게 감금돼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명피해도 그만큼 높다. 공장 내엔 비상계단이 없거나 있어도 매우 좁고 위험해서, 화재가 나면 대피하는 와중에 부상을 당하는 일도 많다. 심지어는, 화재가 나면 혼란 와중에 회사 재산을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오히려 문을 닫아버려 인명피해가 더 증가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치타칸이라는 지역에서 실제로 화재가 났는데, 정부와 언론에서는 사망자의 숫자가 약 400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과 노동자들이 파악한 숫자는 무려 1,400명이다. 이것을 어떻게 알았냐 하면, 그날 공장으로 배달된 도시락인 1,400개였기 때문이다. 공장 안에서 노동자가 다 죽었고 그 숫자는 1,400명이었다. 이런 일이 1년에 몇번씩 발생한다.

 

영화 속의 투쟁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의류노동자들이 30년을 그렇게 살다가, 인터뷰에서도 말을 했던 분이 가먼트 포럼(Garment Forum)을 조직을 했다. 노동조합은 아니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을 하는 단체다. 가지푸르에서 5개 공장을 중심으로 파업을 주도했는데, 가지푸르 사거리에서 경찰 폭력 때문에 2명이 사망했다. 그 다음날, 50여 개의 공장에서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했고, 이 날도 2명이 죽었다. 그러자 그 다음엔 전국에서 300만 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조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때 거의 1주일 동안 전쟁 분위기였다. 공장에 불을 지르기도 하면서 투쟁이 계속되자 정부가 나서서 사장들의 단체와 함께 협상을 중재했다. 노동자들의 8개 요구안을 수용하기로 약속하고 투쟁이 멈추었는데, 2달 후 정부는 1인당 최소 생활비가 3,000다카는 필요한데 최저임금을 1,100다카로 올렸고, (노조는 아니라도) 노동자 단체를 만들어도 된다는 허가를 내줬다. 그래서 지금 노조를 만들려는 작업이 한참 진행중이다.

 

재미있는 게, 물론 방글라데시에서도 정부, 사장들의 편을 드는 나쁜 지식인들이 있다. 그 중 아주 보수적인 지식인이 책을 하나 썼는데, 거기에 "노조는 필요하다, 지난 번 그 전국적인 파업은 노조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썼다. 정부와 사장들의 단체가 이것을 받아들여 노조를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기 전에 사장 단체가 자기들 말을 잘 듣는 노조, 일명 어용노조를 결성을 하려고 하고 있다. 복수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1개 회사에 1개의 노조를 허락하는 조항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저 투쟁을 이끌었던 가먼트 포럼이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이제 많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찾아와 스스로를 조직화하려 애쓰고 있으며, 가먼트 포럼의 지부를 신청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미 만들어진 노조들은 대부분이 아직 어용노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조직화하자 경찰이 지도부를 연행해 갔다. 다음 날 또 조직을 만들자 이번에는 조직의 새 리더들이 실종되었다. 이들은 공장에도 집에도 안 돌아왔고 간 곳을 아무도 모르기에 우리는 납치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음 날 또 조직을 만들자 결국 사장 단체가 방글라데시 내에 이름이 좀 알려진 다른 조직의 노동자 리더 8명을 데려와 협상에 임했다. 그런데 협상에도 불구하고 그곳 노동자들은 더욱 투쟁을 했고, 이에 대한 이유를 묻자 투쟁하던 노동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8명은 우리 조직의 리더도 지도부도 아니다. 그 8명은 오히려 우리를, 노동자들을 팔아먹었다. 일을 조금 시키는 대신 보너스를 25%에서 15%로 삭감하는 협상에 서명했다."

 

 

Q. 언론의 반응은 어떤가?

 

언론도 사업체일 뿐이다. 다들 커머설(Commercial - 상업적) 미디어들인 것이다.

 

 

Q. 정부는 이 상황을 모두 알고도 묵인하는 것인가?

 

A. 그렇다. 사장들의 단체가 정부를 움직인다. 방글라데시에서 의류산업은 아주 크고 중요한 산업이다. 사장들의 단체는 여당이고 야당이고 할 것없이 정치자금을 제공하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노동자들의 편을 드는 정치가는 없다.모두 사장들의 편을 든다.

 

 

Q. 내가 아는 사이드 무나는 이주노동자 조합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미디어 감독이 되어 나타나서 개인적으로 참 놀랐다. 어떻게 미디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인가?

 

A. 내 20대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보내며 이주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운동을 배웠다. 방글라데시에 돌아간 후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입만 열면 한국 얘기라고 친구들이 구박할 정도였다. 그런데 방글라데시에서 보니, 한국에서의 내 생활은 너무 편한 거였다. 생활은 (방글라데시의 노동자보다) 훨씬 편한데 투쟁은 훨씬 더 치열하게, 무섭게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노동자들의 상황은 너무나 열악하다. 그런데 나는 사실 학교에 다닐 적 학생운동을 했다. 인터뷰에도 나온, 가먼트 포럼을 만든 분이 내가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선배였다. 그 선배를 찾아가 내가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물었더니 당장 자기 단쳉 들어와 일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난 그게 좀 아닌 것같았다. 내가 의류노동자가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그냥, 연대할 다른 방법을 찾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노동자들을 만나보면, 사람들이 너무 착하다. 한국에는 방글라데시가 못사는 데도 행복지수가 높다는 말이 떠돌고 있는데, 그건 결국 바보라서 그런다. 그렇게 착취당하고도 행복하다고 말하고, 밤새 남편에게 맞아도 다음날 아침에 행복하다고 말하다. 바보라서 착한 거다. 가먼트 포럼 사무실에 나가 그냥 이일 저일 조금씩 도와주면서 노동자들을 만나고 친해지고, 그분들 집에 찾아가 그 열악한 상황을 보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치가들을 만나거나 하면, 처음에 혼자라고 무시를 많이 당했다. 거의 쟨 뭐냐, 분위기. 후배 학생들을 만나러 가면, 얘네들은 "우리도 다 알지만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우린 안 돼"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거다. 그때, 카메라를 떠올렸다. 한국에서 명동성당 천막농성을 할 당시, 사실 카메라가 천막 안에 들어오거나 인터뷰를 하자고 하거나 하면 솔직히 귀찮기도 하고 신경질도 나기도 했는데, 그 카메라가 떠오른 거다. 카메라로 우리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려야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ETV에 들어갔다. 여기는 그나마 약간은 진보적인 방송국이었고, 결국은 정부의 탄압을 받고 문을 닫아야 한 이후 지역 미디어 교육 등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함께 공부하면서 만난 친구들, 여자 넷, 다른 남자 동지 둘과 팀을 꾸렸다.

 

한국에서 투쟁하면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가사가 있는 노동가도 부르고 했는데, 방글라데시에서는 정말,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다. 인간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운동을 직접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디어 운동도 굉장히 중요하다. 학생단체들은 자기네들도 다 안다고 하지만 실제론 잘 모른다. 그래서 카메라를 들게 됐다.

 

 

Q. 노동운동과 미디어운동이 마치 양립할 수 없는, 분리된 것처럼 얘기하고 있는데, 그것도 반-자본주의라는 하나의 큰 틀로 같이 볼 수 있지 않을까? 방글라데시에서 지금의 투쟁이, 나에게는 반독재투쟁과 반자본주의 투쟁이 섞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상황이 어떤가?

 

A. 노동운동과 미디어운동이 양립할 수 없다거나 분리돼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제까지 내가 받은 질문들 중엔, 노동운동을 해야지 왜 미디어를 하고 있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렇게 대답을 한 거다. 반자본주의 투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내와 국외를 막론하고 단결과 연대가 필수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미디어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방글라데시에서는 '연대'라는 말 자체가, '단결'이란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단결과 연대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동운동을 직접 하는 것보다도 미디어운동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Q. <21세기>는 한국에서만 상영된 것인가?

 

A. 그렇지 않다. 일단 국내에서 상영을 했고, 내가 개인적으로 한국에 추억이 많기 때문에, 특히 한국에서 꼭 상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한국에서 상영을 한 거다. 현재 21세기는 터키의 노동영화제와 캐나다의 토론토인권영화제에 가 있다.

 

 

Q. 많은 사람들이 21세기를 봤으면 좋겠는데, 유투브와 같은 온라인 상영도 했으면 좋겠다. 계획이 있는가?

 

A. 생각은 하고 있는데, 우리 그룹 멤버들 중 컴퓨터를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뿐이다. 우린 편집을 할 수 있는 컴퓨터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방글라데시에서 인터넷 속도는 매우, 매우 느리다. 사실 미디어 운동이라는 게 쉽지가 않다. 얼마 전에도 (독립 다큐멘터리를 찍는 문성준 감독을 가리키며) 잡혀갔다 풀려났는데, 방글라데시에서는 잡혀가고 풀려나고, 이런 거 없다. 그냥 죽을 거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경찰이나 군인 등이 갖고 있는 합법적인 총의 4배가 넘는 불법 총이 풀려있고, 이것은 깡패들이나 정치인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거나 암살할 때 쓰인다. 우리도 이런 미디어를 찍는 게 그냥 잡혀가고 풀려가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길가다가 그냥 죽을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사람을 참 쉽게 죽일 수 있다. 20만원만 준다고 하면 누구나 청부살인을 해달라는 요청에 응할 것이다.


 

                                                                                                                                    (비루가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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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12/15 응원금 주신 분들과 지출내역

1. 그전까지 남은 돈;    326,000

 

2. 들어온 응원금

 

12/12    이*경님     3,000,000

              수유+너*      147,000

 

12/13    정*현님         100,000

               상영회             47,000

 

12/15    달*님                20,000

              김*찬님          300,000

---------------------------------------------

                                   3,614,000

 

 

3. 지출; 컴퓨터 부품 구입   27,400

 

 

*현재 총액 3,912,600입니다.

 

조립한 컴퓨터는 사이드씨에게 전달하였고요,

현금은 내일 출국 전에 만나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모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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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샤와의 대화

이번주 토요일에 자히드가 가는군요.

오늘 아침에 캐나다에 있는 돌파 맴버인 나타샤와

메신저로 이야기를 했어요.

자히드가 방글라데시에 돌아가면 돌파 그룹이랑 소통하는 것에 대해

한국 활동가들이 걱정하더라 했더니,

인터넷을 다룰줄 아는 친구가 담당할 수 있을거라며 자신있어 하더군요.

얘기를 들어보니,

찰리체플린 필름 소사이어티 말고도

블랙쓰루 내에 빤짜판답이라는 소그룹이 있는데,

빤짜는 다섯이란 뜻이고, 판답은 우리말로 하면 '불한당' 정도의 뜻이 있답니다.

그러니까, 똑똑하고 학식도 있지만 반항적이고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네요.

빤짜판답은 "다섯명의 불한당들"이 되겠네요

무엇을 하는 그룹이냐고 물었더니,

교육받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연결해주는 교육 선전 그룹이라는 군요.

브랙쓰루 사람들 사진들을 좀 보내달라고 했더니, 몇개를 보내주었어요.

함 올려봅니다.

아래 자히드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여성이 나타샤에요.

아마 뒤에 있는 분들도 브렉쓰루 멤버들이 아닐까 싶어요.

예전에 다카 대학 근처에서 자히드의 소개로 몇분을 만났는데,

얼굴이 기억나는 건 여성들뿐이네요.

나타샤의 얘길 들어보니, 브렉쓰루가 열악한 환경에서 비디오 만드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더군요.

아침 새벽에 일어나 찍고, 시간이 되면 누구는 회사에, 누구는 학교엘 가야하고,

밤 늦게까지 일하고... 하여간 존경스럽습니다.

자히드가 돌아가도 끈끈하게 연대했으면 좋겠어요!!!

 

 

 

브렉쓰루 멤버인 에바

 

촬영하고 있는 나타샤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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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가이버의 전언.

 

방글라데시 전기가 불안정하니까

전압 안정기 (인버터)를 꼭 사가래요.

안그러면 컴터 고장난다고.

 

누구한테 말해야하는 건지 몰겠네.

오늘은 벌써 금요일인데.. 안절부절..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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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상영회 후기 -by 디디

 

지난 화요일,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브레이크 쓰루 후원을 위한 [21세기]상영회가 있었습니다. 

좀 망설이며 제안했는데,

뜻밖에 이진경샘에게 카메라 선물까지 받아 아주 행복했지요. ㅋ

 

이진경샘은,

연구실에서 '헝그리대마왕' 뭐 그런 류의 별명을 대여섯개쯤 얻으셨을 만큼-_-

평소 쫀쫀한 경제생활을 하시는 분이어서 감동 두배였다는. -ㅅ-)

"보람있게 쓸려고 아끼는 거야!"라는 한마디.

 

아시다시피
아이들에 대한 비디오랑 방글라데시 여성들에 관한 비디오가
방글라데시-한국 사이의 어딘가로 소멸해버린 탓에 -_-
16분짜리 [21세기]한편만 상영했습니다.

음..

영화는 짧지만, 아주 인상깊었어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세계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몸을 부풀려 왔는지를
1700년의 유럽과 70년대의 한국,
그리고 현재의 방글라데시를 경유하며 선명하게 비추어 주었죠.

아무리 긴 역사적 고찰과 학술적 연구를 동원해도
다 말하지 못할 거대한 컨텍스트를 간결하게 응축해내면서요.

영화에선 방글라데시의 끔찍함을 단 1%밖에 담지 못했다.

라는 감독의 회한어린 말에도 불구하고

그 1%의 처절함과,
카메라도, 그것을 편집할 컴퓨터도, 프로젝터도 없는 상황에서
아니 -_- 끝없이 닥쳐오는 생명과 자존의 위협 속에서도

(거긴 경찰이 사람을 쏴죽이는 게 딱히 별일이 아니래요.
그냥 깡패였다고, 보도자료 내면 그만이라는 ㅠㅠ)

이 모든 작업을 해내고 상영하기 위해 분투한
브레이크 쓰루 팀의 절박함과, 고단함이
그냥 마구 가슴을 파고드는 강렬한 체험이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인터넷 상황이 아주 열악하고
(인터넷은 고사하고 전기부터가 엉망이래요.
하루에도 몇번씩 퍽퍽 나가서 몇시간씩 안들어오기 일쑤라는 -_-;;)

그런 상황이니 아마도,
우리가 방글라데시의 미디어 전사
브레이크 쓰루와 계속 연락하고, 연대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태어나는가가 운명을 결정하기도 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운 좋은 존재이며 많은 선물을 받고 있는지,

그의 영화를 보면서 다시 느끼고

 

심지어, 가장 고단한 상황에서 싸움을 계속하는 그들이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크나큰 선물이라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이 인연을 놓지 않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보아용. >_<)

 

(그 머시냐..

상영회 할때마다 프로젝터를 빌리는데

한번 빌리는데 드는 돈이 왠만한 방글라데시 노동자 한달 월급을 훌쩍 넘더라고요.

그게 한국돈으로는 얼마나 될까?

정기 후원모임이 있어서, 조금씩 송금해도 좋을텐데..라는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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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7시, 브레이크쓰루 상영회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작품들이 아직 도착하지 못해서  '21세기'만 상영하게 되었습니다. (으흑흑)

혹시라도 기대하셨던 분들이 계셨다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만간 나머지 작품들을 틀 기회를 다시 마련하겠습니다.

 

스트레인지프룻은 간판이 작아 찾기가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우리 돌곱창> 이라는, 근처 하나밖에 없는 곱창집을 찾으십시오. 그 건물 지하가 스트레인지프룻입니다.

 

오늘 못오시는 분들은,

내일 저녁 7시반, 대방동 여성플라자("2006 노동미디어" 행사장)에서도 영화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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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컴퓨터 부품 구입비

돌파님의 [12/9 응원금 주신 분들과 지출현황] 에 관련된 글.

 

혹시님께서 구입에서 조립까지 완료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CPU : 인텔 콘로 6300                          173,000

메인보드 : 기가바이트 965p-ds3            141,000

메모리 : 하이닉스 6400 512MB 2개         144,000

하드 : 웬디 SATA2 80G                          41,000

                     SATA2 320G                        92,000

ODD : 파이오니어 DVD 멀티                   58,000

그래픽카드 : 기가바이트 X1600pro          102,000

1394카드 : AIO                                      19,000

파워 : 시소닉 S12-430                            76,000

케이스 : 마이크로닉스 클래식 웍스테이션  97,000

케이스 택배비 :                                      4,000

키보드 : 로지텍 네비게이터                     11,000

마우스 : 로지텍 아야쿠초                        12,000

택시비 :                                                7,400

 

합계 : 977,4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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