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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방법서설

요 며칠 틈틈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읽고 있다.

얼마전 공부하다 유니스토어에서 책 구경을 하던 중에 저쪽 후미진 모퉁이에서 고전을 3000원~5000원에 파는 걸 발견했다. 책을 학교에 두고 와 출판사가 기억나진 않지만 출판사에서 작심하고 고전보급을 목표로 이런 시리즈를 기획한 것 같았다.

   성공했을 리가 만무하다. 어쩌면 출판사는 지금은 이미 망해 없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크기도 손바닥 만하고 깔끔하게 편집하니 굉장히 보기 괜찮았다. 그정도 가격이면 씨네21 한 권 가격에 맞먹고. 우쨨든 장교 시험 공부하는 틈틈이 그 책을 읽고 있는데 몇가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1. 데카르트 멋지다

23살에 철학, 논리학, 수학의 한계를 깨닫고 유럽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어떠한 일말의 자부심이나 오만이 글에서 묻어나지 않는다.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하나하나 논증 과정을 거쳐 진리로 이르게 되는 과정이 참 꼼꼼하고 조근조근한 문체로 설명되는데, 그 정도 박식함을 지닌 사람이 이렇게까지 자상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2. 쪽팔려

사실은 1학년 때 방법서설을 읽다 포기했다. 읽으려는 의도도 별로 없었고 솔직히 읽기가 좀 힘들었다. 어디서 방법서설이 대학생 1학년이 읽어야 할 필수 목록 중 하나란 소리를 들어서 붙들긴 했지만 어려웠다. 이제 4학년 곧 졸업하게 될 상황에서 읽으니 충분히 읽을만 하고 데카르트가 제시하는 예시와 비유, 여러 학자들의 이름이 더이상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1학년 때 꾸준한 집념으로 책을 읽어내지 못한 게 아쉽고 대학 공부 4년이나 했다는 놈이 개론서를 읽으며 이리 감명을 느끼는 게 참 스스로 불쌍하고 쪽팔린다.

 

3. 경험 없는 연역

데카르트는 대표적인 합리론자이며 그 스스로 수학적 탐구 방법으로 나름의 공부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했지만 형식적 연역에 만족하지 않고 전 유럽을 여행하며 생활 속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자신이 여행을 시작한 이유가 온갖 편견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히는 것처럼 여행은 개인의 지평을 넓히고 세계로 개방한다. 사람이나 풍경을 단순히 사진의 피사물로만 바라보는 따위의 전략적이고 일방적인 인식을 버려야 한다. 경험 없는 연역을 굉장히 적나라하게 묘사한 부분이 책에 있었는데, 이건 이따 밤에.

   이런 점에서 나는 여행지에서 모냥 수십 수백장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이 싫다.

   여행을 뭐 사진 찍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남는 건 사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진 말고 다른 걸 해볼 생각은 전혀 해보지도 않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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