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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군사통치와 민족갈등(2)

Name  
   류은숙  (2005-04-26 14:33:22, Hit : 299, Vote : 15)
Subject  
   버마: 군사통치와 민족갈등(2)
버마: 군사통치와 민족갈등(2)
버마 상황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 수 있는 글인 것 같아 앞으로 조금씩 번역해서 올릴 계획입니다.
*출처: Searching for Peace in Asia Pacific, A Project of the European Centre for Conflict Prevention(2004) 313-327


버마 내전은 공산주의와 군부 반란과 더불어 1948년 1월 독립 직후에 시작됐다. 독립적인 Karen 국을 분리하여 세우는 것에 대한 협상이 실패한 후, Karen National Union(KNU)은 1949년 초에 군대를 일으켰다. 버마의 다른 소수민족 집단, 즉 Mon, Karenni, Pao, Rakhine, 그리고 Rakhine의 무슬림들은 뒤따라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1960년대 초반에는 내전이 Shan과 Kachin으로도 확산됐다.

1962년 Ne Win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신 정권은 헌법을 폐지하고, 버마사회주의프로그램당(Buremese Socialist Program Party: BSPP)이 이끄는 단일 정당으로 바꾸었다. 헌법을 보다 연방제적으로 바꿀 가능성을 논의했던 수상 U Nu와 몇몇의 소수민족 지도자들은 체포되어 투옥됐다. Ne Win 장군은 자신의 정치사상을 불교와 사회주의 사상을 혼합한 "버마식 사회주의"에서 개진했다. 1970년대 초까지 버마는 외부 세계와 단절됐고, 모든 대기업, 미디어, 연구소는 국영화됐다. 모든 시민사회 조직은 금지되거나 엄격한 정부 통제하에 놓였다. 정치 야당의 구성원들은 재판을 받았다.

1970년대까지 tatmadaw(버마군)은 악명높은 "네개의 절단"(Four Cuts) 전략을 통해 성공적으로 소수민족 무장세력을 국경지대의 언덕으로 밀어붙였다.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이 전략은 무장세력을 민간인과 분리해내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 전략은 큰 대가를 치르면서 수행돼왔다. 엄청난 인권침해와 Karen, Kayah, Shan의 수십만명 소수민족을 지난 30년간 이주시켰다.

지배 정당(BSPP)의 정책은 재앙으로 판명됐다. 1980년대까지 경제는 거의 완전히 붕괴됐다. 한때는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이었던 버마는 1987년 가장 열악한 개발도상국 지위가 돼야했다. 같은 해에 BSPP는 엄청난 양의 은행권의 유통을 금지시켜 하룻밤 사이에 수백만명의 저축이 휴지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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