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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군사통치와 민족갈등(3)

Name  
   류은숙  (2005-04-27 14:28:35, Hit : 425, Vote : 8)
Subject  
   버마: 군사통치와 민족갈등(3)
버마: 군사통치와 민족갈등(3)
버마 상황에 대해 개괄적으로 알 수 있는 글인 것 같아 앞으로 조금씩 번역해서 올릴 계획입니다.
*출처: Searching for Peace in Asia Pacific, A Project of the European Centre for Conflict Prevention(2004) 313-327

경제 위기는 1988년 항쟁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88년, Ne Win 장군이 갑작스럽게 사퇴한 후 수도인 랭군에서의 학생 시위가 전국적인 대중 항쟁을 발화시켰다. 시위자들은 다당제의 도입과 군사 독재의 종식을 요구했다. 1988년 9월, 군대가 수천명의 시위자를 학살하며 시위대를 진압했다. 항쟁에 대응하여, 정부는 '국가의 법과 질서 회복위'(State Law and Order Restoration Council)를 설립하여 체제정비에 나섰다. 이것은 이전의 지배당인 BSPP를 대체한 것에 지나지 않았고 사실상 군부통치체제의 전형이었다.

1989년 버마의 공산당이 붕괴된 이래, 대부분의 소수민족 무장세력은 군사정권과 휴전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들은 사실상 군사협정이어서 각 집단이 자기 영토를 통치하고 무기를 유지하도록 했다. 다양한 무장세력의 사정과 활동은 서로 다르다. 큰 규모에 속하는 휴전 세력은 Wa 연합군(UWSA), Shan 북부군(SSA North), Kachin 독립기구(KIO), 신 Mon국당(NMSP)이다.

다양한 반체제 집단을 포함하여 소규모 집단이 또한 존재한다. 이들 집단은 지역 시민군에 보다 가깝다. 일부 휴전 세력은 정치적 아젠다를 갖고 있는 반면에(예를 들어 Kachin 독립기구, 신 Mon국당) 또 어떤 세력은 보다 경제적 동기를 갖고 있다. 경제적 동기를 가진 세력중 다수는(예를 들어 UWSA) 마약 거래에 깊이 관련돼 있다는 주장이 있다.

스스로가 자초한 고립의 세월이 지난 후, 버마의 군사 지도자들은 1988년 전국 항쟁에 대한 진압과 대규모 인권침해에 대응해서 취해졌던 국제적 고립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한 정책을 1990년 도입했다. 군대는 90년 5월에 선거를 조직했다. 독립 투쟁 영웅 Aung San의 딸인 Aung San Suu Kyi가 이끄는 버마민족민주동맹(NLD)이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다수의 소수민족 정당도 또한 의석을 확보했다. Aung San Suu Kyi는 1989년 이래로 가택연금 상태였고,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군부는 권력이양을 거부했고 대신에 수십명의 NLD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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