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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동지라 부르지 말자

이제 우리 동지라 부르지 말자

 

서울 시내버스 ○○운수에서 노조 지부장 선거에 출마했던 한 조합원은 지난해 10월 말 자살을 했다. 까닭은 뻔하다. 지부장 선거 몇 번 출마하면서 선거 비용을 너무 많이 썼는데 그 돈을 갚을 길이 막막했던 것이다. 서울시내버스 회사 노조 지부장 선거에 당선이 되면 운전 일도 안 하고, 월급도 많고, 권력(?)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써 노름판 판돈에 투기하듯 내지른 결과다. 그만큼 한국노총은 상급단체나 그 밑에 있는 단위노조나 썩을 대로 썩었다. 그 버스 기사가 죽은 건 안타깝지만 철학이 없이 살아 왔던 그이의 삶은 우리 시대 노동자들의 삶을 비추는 거울 같은 느낌이 들어 씁쓸하기만 하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울산동구청장을 지냈던 이갑용 위원장이 《길은 복잡하지 않다》(철수와영희)라는 책을 냈다. 한국노총 같지는 않지만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자본가들에게 넘어가 회사에 빌붙고, 뉴라이트 같은 단체로 들어가고, 동료들을 배신하는 노동자들 이야기가 실명으로 거침없이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이 나오자마자 수구 언론들 입이 째졌다. 이 땅의 수구 언론들은 노동자들하고 ‘웬수’가 졌는지 노동조합, 거기다 민주노총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씹는다. 그런데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이가 민주노총을 비판하니 이게 웬 떡인가 했나 보다. 연합뉴스에 나온 제목이 “이갑용 前민노총위원장 민노총에 쓴소리”인데 얼마나 신났는지 조중동에서 열심히 퍼 나르고 있다. 조선일보 군사담당 유용원 기자는 ‘민주노총 이보다 더 썩을 수는 없다’ ‘비리로 얼룩진 내부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노동운동의 순수성을 잃어가고, 그래서 결국 국민과 노동자들이 등 돌리는 현실에서 이 씨의 충고가 얼마나 민주노총에 크게 들릴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하고 점잖 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 한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유분수지 누가 누굴 가르치나 쯔쯔.

노동자들이 자기도 모르게 동료들을 배신하고 심지어는 뉴라이트까지 들어가 자본에 넘어가는 가장 큰 원인은 자본가들의 이간질과 이념 공세 때문이 아닌가. 노동자들이 참다 참다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자본가들 공세가 얼마나 심한가. 수구언론은 ‘경제가 어려운데 웬 파업’, ‘길이 막혀 시민들한테 피해를 주면서 웬 집회’ 하면서 깐죽거리고 심지어는 빨갱이 타령까지 하지 않던가. 이런 사례가 어디 한둘인가. 심지어 나 같은 별 볼일 없는 사람도 90년대 근로기준법 책을 갖고 다니니 회사가 나보고 빨갱이라고 했다. 《길은 복잡하지 않다》를 보면 1987년 이갑용 위원장이 농성을 할 때 회사는 이갑용 아버님에게 사람을 보내 “아들이 감옥 갈지 모른다, 빨갱이 물이 들기 전에 빨리 데려가라”고 했다. 이러니 일반 조합원들이 이런 소리를 들으면 안 넘어갈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게 빨갱이로 몰지만 안 넘어가는 이도 있다. 이갑용 아버님은,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들에게 오히려 항의를 하고 “내 눈으로 실상을 보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남을 위해 싸우는 의로운 일이나 막을 수 없다”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뒤 아버님은 이갑용 위원장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고 한다. 아, 이 땅의 모든 아버지, 모든 어른들이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 대목에서 목이 울컥했다. 이런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에 이갑용 같은 훌륭한 전사가 나오는 거구나.

이갑용이 노동운동의 내부 문제를 솔직히 까발린 건 그렇게 만든 자본가들의 행태를 똑바로 바라보라는 뜻이다. 민주노총이 망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민주노총을 지키기 위한 것이 목적인데 민주노총에 쓴소리 했다고 입 헤벌어진 사람들을 보면 민망하기까지 하다.

사회주의자인 조지 오웰도 《위건부두로 가는 길》에서 사회주의를 비판했다. 조지오웰은 “역설적이긴 하지만, 사회주의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주의를 공격해 보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그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심지어 ’동지‘라는 말 한마디만 해도 사회주의 운동을 불신하는 데 적지만 한몫을 했다. 머뭇거리던 사람들 중 용기를 내어 대중 집회에 갔다가 자의식 강한 사회주의자들이 의무적으로 서로를 ’동지‘라 부르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제일 가까운 맥줏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그의 본능은 건전하다. 오랫동안 써 봐도 부끄러움을 삼키지 않고서는 부를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호칭을 왜 붙여야만 한단 말인가?”

 

그렇다. 요즘 노동자들이 늘 쓰는 이 ‘동지’라는 말이 나한테도 무척 낯설고 어색했다.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1936년에 한 진보단체로부터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하여 글을 써 달라는 제의를 받고 조시 오웰이 위건, 요크셔 지방 일대의 탄광 지대에서 노동자들을 취재해서 쓴 책이다. 사회주의 사상과 노동운동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섰던 서구 지역에서도 이 ‘동지’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했는데 사회주의는커녕 자본주의 사상과 반공사상이 뿌리박힌 우리 사회에서 이런 어색한 말을 쓰고 있다니, 다수가 평범한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어디 운동권에 얼씬댈 수 있는가. 이래서 우리 사회는 안 바뀌는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이갑용이 민주노총을 비판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는 걸 수구 언론은 모른다는 말인가. 하긴 수구 세력들이 그걸 알면 수구인가.

《길은 복잡하지 않다》는 이갑용이 살아온 이야기이면서,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여 준다. 이갑용이 1981년 군대를 다녀온 뒤에 원양어선을 타는 이야기부터, 현대중공업에서 노동조합 대의원을 거쳐, 교섭위원, 운영위원, 사무국장, 비상대책위원장을 거쳐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노동조합의 공식 직책을 차례 차례 밟으며 노동운동가로 단련되는 과정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노동운동을 할 때 감옥 생활하느라 아버님 환갑, 부모님 장례식, 그리고 동생 두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을 못 한 회한을 말할 때는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책은 또한 노동운동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알려 주는 지침서다. 자본가들과 협상하는 방법도 나와 있다. 이를테면 교섭단 안에 반드시 책상을 뒤집어 업는 ‘무대뽀’ 역할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가들을 머리나 논리로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는 식이다. 또 교섭할 때는 노동자들의 옷을 입고 머리띠를 꼭 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합원이 위임한 대표임을 상기시키라는 것이다. 이갑용은 대통령을 만나러 갈 때도 잠바를 입고 갔다. 전국민이 보는 방송에 민주노총 로고가 한 번이라도 더 나오게 하는 게 얼마나 큰 홍보 효과냐는 것이다. 그렇지. 자본가들은 뉴스나 드라마 같은 데 자기 상품 로고 한 번 보이려고 애쓰는 걸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하지만 이번에 당선된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만나러 갈 때 민주노총 대표답지 않은 세미 정장 차림으로 갔다. 이갑용 말을 되새겨 볼 만한 일이다.

이갑용은 민주노총 위원장과 울산동구청장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끝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그이의 성격 때문이었다. 구청장 시절 “자치단체장인 나에게는 ‘공무원을 징계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노무현 정부여, 나를 고발하라!” 고 주장하는 대목은 내 속을 후련하게 만든다. 〈조선일보〉 기자가 은근히 〈조선일보〉라는 걸 과시하며 이갑용의 인생을 잘 써주겠다고 인터뷰를 요청하는데 단칼에 거절하는 장면도 멋지다. 〈조선일보〉가 나한테도 그런 요청을 하면 나도 그렇게 단칼에 거절할 텐데 그럴 일은 없겠지. 하지만 얼마 전에 나한테 타워크레인 운전기사를 취재한다고 소개 좀 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자기가 〈조선일보〉기자라고 당당히 밝히는데 어이가 없었다. 그때 나도 한마디 했다. “조선일보 만들면서 부끄럽지도 않아요? 작은책이 어떤 책인지 좀 알고 전화해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아, 저는 사회부 기자라서…….” 그 말 듣고 푸하하 웃음 터질 뻔 했다. 아니 사회부 기자들은 좀 나은 줄 아나 보지? “이봐요. 전화 끊어요.” 띠,띠,띠! 정말 웃긴다. 조선일보 기자들은 자기들이 반사회적인 일을 한다는 걸 정말 모르나?

《길은 복잡하지 않다》를 보면서 아쉬운 게 있다. 이갑용을 실제로 만나 보면 정말 겸손하고 소탈하다. 여느 노동조합의 간부들이 가끔 보여 주는 권위 의식이 없다. 그런데 별명이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이다. 별명은 멋있지만 오바 같다. “대답하라. 여기는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 아, 이건 좀 아니다. 그런데 그 별명을 이갑용 자신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이갑용도 순진한 면이 있군. 하지만 그게 흉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시대를 변화시킨 골리앗투쟁의 전사 이갑용! 그이와 함께 역사를 움직여 온 노동자들은 어떤 의식이 있어 노동운동에 뛰어든 건 아니었다. 이갑용 부인 이선옥이 남편에게 왜 골리앗에 올랐느냐는 물었더니 그냥 골리앗이 거기 있어 올랐다고 했다. 골리앗이 천혜의 요새인 건 맞지만 그땐 그런 걸 따져볼 겨를도 없었고, 그냥 땅에서는 도망갈 곳도 없고, 빠져 나가지도 못하니 거기서 버틸 작정으로 꾸역꾸역 올랐던 것이라고. 이갑용, 그리고 그이와 함께 싸워 왔던 노동자들은 정말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감옥행을 각오하고 목숨까지 걸면서 싸웠지만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들이다.

어느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동지’들이 아닌 평범한 우리 서민들 모두, 이 책을 읽어 보고, “지금 알았던 걸 그때 내가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이제 동지라 부르지 말자. 아, 또 이 말 했다고 수구 언론들 “진보 세력 갈갈이 분열!” 이런 제목으로 뉴스 나올지도 모르겠다. 에헤이, 이갑용이나 되니까 언론에서 다뤄 주지 누가 나 같은 놈이 쓴 글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다뤄 주나. 그래서 나는 글을 편하게 쓴다. 띄워 주는 사람도 없고, 명예훼손으로 소송 거는 놈도 없을 테니까. ㅋㅋㅋ

 

2010년 2월 10일 /월간 작은책 발행인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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