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6월 12일 연구공간 수유+너머 에서 상영회를 합니다.

6월 12일 연구공간 수유+너머 에서 상영회를 합니다.

 

화요토론회 6월12일 7:00 이강길 감독<살기 위하여-어부로 살고 싶다> 상영 및 새만금 관련 이야기

 

찾아오는길

 

 


이름 : E-mail
제목 : 6월 12일 화토] `어부로 살고 싶다-살기 위하여` 상영..


6월 12일 화요일 연구공간 수유+너머 화요토론회 시간에는(저녁 7시)
2000년 무렵부터 꾸준히 새만금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 오신
이강길 감독님의 <어부로 살고 싶다 - 살기 위하여>를 함께 보고,
감독님을 비롯해 새만금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
'새만금' 운동을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떻게 계속하면 좋을지
아이디어 회의를 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12일에 볼 작품은 <어부로 살고 싶다>의 세 편의 연작 중 가장 최근 작품으로,
계화도를 중심으로 한 2006년의 새만금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러닝타임 75분)

아시다시피, 2006년은 새만금 투쟁에서 가장 결정적인 해였습니다.
3월에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났고, 4월 21일에는 끝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개들, 게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하셨던 고은식님의 동반자이셨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싸움을 계속해 오신 새만금의 전사 류기화님이
정부의 예고 없는 수문 개방과 위험한 작업 조건 탓에 일찍 세상을 떠나셨던 해입니다.

영화는 대법원 판결을 전후한 어민들의 시위,
그리고 '새만금 투쟁'에 많게 적게 관련되어 있었던(또는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끝물막이 공사 이후 떼죽음을 당한 동죽들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해,
가장 결정적인 시기의 투쟁이 왜 무너지게 되었는지 '가감없이' 분석하고,
그 전해인 2005년의 투쟁들,
즉 맨손어업자로서 누구보다 갯벌에 밀착된 삶을 살았고 살림을 실질적으로 꾸려 왔던 '어머님'들이
농림부 항의 방문, 청와대앞 일인 시위, 끝물막이 공사 현장 시위를 해 나가시는 모습을
촌철살인의 인터뷰들과 함께 담아 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일만 있으면 달려가는, 정이 무섭다는 말을 잘 아는 '활동가'들의 모습도 나옵니다.
그리고, 류기화님의 장례를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10년 여 지속되어 온 큰 싸움이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지역이며 수억, 수십억의 생명들이 학살당한 곳,
2만 이상의 전북도 어민들이 '전북도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었던 곳,
그리고 갯벌을 죽이기 위해 주변의 무수한 산들을 깎아 내야만 했던 곳,
그곳이 '새만금'입니다.

새만금을 보면 한국사회의 많은 부정적인 면모들이 보입니다.
개발주의, 성장주의, 관료주의, 주류정치의 '대중'선동, 부동산 기반 경제, 공익 개념의 허구성,
사유화와 추방, 인간중심주의, ...

그리고 최근의 매일경제신문 보도는
이런 문제들이 앞으로 수십년 간 새만금에서 반복적으로,
더욱 큰 규모로 출현할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보여 줍니다.
예산은 크게 오버되었고, 복토에 필요한 토사는 8%밖에 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성격의 재앙이 덮쳐올 지는, 이미 시화호의 상황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발생할 곳은 새만금만은 아닙니다.
농촌공사에서 발간한 <서남해안 간척자원도>를 보셨나요?
위에 첨부된 그림입니다.
그 크다는 새만금도 '새발의 피'입니다.
더욱 더 큰 외해방조제를 건설해 영산강까지 잇는,
새만금보다 4배 큰 땅을 조성하려는 계획이 버젓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파란색 동그라미로 표시된 부분 참조.)
이렇게 색칠공부에 불과한 상상력이
무수한 삶들(어민과 갯지렁이, 그리고 다른 모든)이 자신을 기대고 있는 곳에서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고 있습니다.
제 눈에는 새만금조차 용지조성이 완료될 가능성이 불투명해 보이지만,
정말 또 다른 외해방조제 건설이 추진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것은 우리가 새만금을 '포기하고 돌아설 수 없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최소한 농촌공사가 탄탄한 관료기구로 남아 있는 한,
건설족들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국익'내지는 '공익'이라는 이름 아래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국책사업에 세금이 유입되는 한,
무엇보다 소외된 삶을 살아가며 '지역개발'에 마지막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비슷한 사태들은 계속 벌어질 지도 모릅니다.

요즘 '운동-이후'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새만금 투쟁을 회고적인 관점에서 성찰해 보는 또 다른 유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다른 투쟁의 길을 물을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라고 말하면 너무 비장한가요?
이렇게 말하면 부끄럽기도 할 뿐더러, 이 말이 실례라는 점을 우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삶이 지속되는 한 삶이 그대로 투쟁이고, 최소한 계화도에는 많은 주민들이 남아 있습니다.
긴 호흡으로 가야 할 것이고, 다른 방향으로 운동의 흐름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을 지속하는 힘, 일상의 힘, 끈질김의 힘,
그것들을 보여 주기 위한, 그리고 삶을 살아가기 위한 '투쟁의 물리적 근거'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아주 작아도, 꾸준히 할 수 있는 무엇.
국익을 근거로 추방된 그 곳에서,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삶의 생산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그러한 지지대가 될 수 있는, 아주 작아도 꾸준히 할 수 있는 그 무엇.
"투쟁은 길을 묻지 가능성을 묻지 않는다."
이 말이 요즘 가장 자주 떠오르는 말입니다.
저와 새만금의 인연은, 새만금 싸움이 '다 끝난 후에야'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삶과 싸움을 지속하고 계시는 계화도의 어민분들을 보며 여전히 많은 것들을 배웁니다.


많은 분들 오셔서,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했으면 좋겠어요.
6월 12일 화요일 저녁 7시입니다. ^^
Posted at 2007-06-04 Mon 22:0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