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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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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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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7/10/01
    찾았다! 갯벌 친구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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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할머니...

부안에서 소할머니로 알려진 장명순님

12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다.

"아이 키우는 것보다 힘들지 않나요?" 라고 묻자, 

"아이들 키워주면 돈도 안주고가, 얘네 들은 돈 주고가!" 라며 환하게 웃으신다.  

 

                                                                       장명순할머니

 

                                               풀밭에서 방목되어 자라고 있는 소들

 

                                                     밥때가 되자 한자리에 모여 있다. 

 

                                                           소들을 바라보는 할머니

                                                                   힘겨루기 하는 소

                                                 엄마소도 누렁소 엄마 닮았네....

                                                 대장 소를 끌고 우사로 가는 할머니

                                                          뒤를 따르는 소떼원들

                               카메라가 신기한 듯 계속 바라보는 소, 아니면 포즈 취하는 것....

 

 

 

                                                        우사 앞에서  할머니의 한판승 !! 

 

 

                                                                        밥묵자!!!

 

                          열씨미 묵고 무럭무럭 자라서 할머니에게 보답하는 소들

 

할머니는 이번 소고기 개방에 할 실 말씀이  많으시다고 한다.

소값 폭락보다 우리 먹을거리를 그리도 쉽게 다 내준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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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무기

모두 안녕하신지요.

2008년 야만의 무기를 시작하면서 오랫만에 소식을 전합니다.

 2003년부터 있었던 핵폐기장을 소제로 한  "야만의 무기" 를 제작중 입니다.

 

                                                                 부안읍내 전경

 

                                                        높은 건물은 대부분 아파트

 

부안이 내려다 보인다는 곳을 찾아가서 보니 넓게 트인게 너무 좋았습니다.  

이 곳 부안읍내도 대부분의 도시가 그러하듯 아파트천국입니다.  획일적인 콘크리트 도시가

지향하는 발전이란 말 안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야만의 무기는 이런 획일적인 발전을 이유로 자행되는 야만에 똥침을 놓는 다큐영화을 목표로

느린걸음으로 한 컷 한 컷 그려지고 있습니다.

계획보다 조금 늦게 촬영이 시작되어 걱정이 되지만 차분히 그려 갈 생각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이상공씨 일하는 모습

 

이번 주에는 부안 읍내에 살고 계시는 이상공씨를 따라 다니며 촬영하고 있습니다.

이상공씨는 조적공(벽돌쌓는 일)으로  핵폐기장으로 슬픔사연이 있는 분 입니다.

일하시면서 맥주를 마시는 것을 즐기시는 독특한 분이기도 합니다.

3일 간 맥주는 실컷 마셨습니다. 이 작품 끝나면 주량이 많이 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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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Peace Bout에서 온 편지

일본 입국을 앞두고 있는 정희정입니다.
10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2007년 9월23일 일본 요코하마항을 출발한 피스보트는 그동안 세계 20개 도시를 방문했으며 2008년 1월10일 요코하마항에 도착하게 됩니다. 일본을 떠나 있었던 지난 100여일 동안 가장 크게 변화된 것은 일본 정부가 일본에 입국하는 16세 이상의 외국인에게 지문 채취와 사진 촬영을 강제로 실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2007년 11월부터 새 제도가 시행됐으니 여행을 시작할 때는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특히 저는 한국에서도 개인적으로 지난 10년간 지문날인 거부 운동에 동참해왔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차별적인 지문날인 제도 시행 소식을 듣고 심정이 더욱 참담해졌습니다. 지문날인을 거부하면 바로 강제퇴거되며 블랙리스트에 등록돼 일본 입국이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자국민에 대해서는 범죄자에 한정해 지문 채취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인에 대해 지문을 채취하는 것은 외국인을 무조건 테러리스트나 범죄자로 보는 차별적인 행위입니다. 이는 국제인권규범이 옹호해왔던 무죄추정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신체의 자유를 강제적으로 침해하며 개인 프라이버시와 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변호사연합회도 외국인에 대한 지문채취가 일본의 헌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해 일본에 입국하는 700만 명의 외국인 중 200만 명은 한국인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이번 제도의 도입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나라입니다. 일본은 재일 한국인에 대한 지문날인 강요 등 차별정책을 고수해왔고 그 역사를 지금도 반성하려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며 이번 외국인 지문날인 제도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나라 역시 한국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쓰라린 역사를 다시금 되씹게 됩니다.

 


한국에는 40년전 주민등록 지문날인제도가 도입돼 모든 국민은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때 지문을 찍어야 합니다. 그리고 10년전 한국정부는 모든 국민의 지문을 전자정보화(데이터베이스화)하는 전자주민증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전자주민증 제도 도입 이전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던 국민들도 모두 다시 한번 일제히 지문날인을 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지난 10년동안 지문날인을 거부해 전자주민증을 발급받지 못한 사람 중 한명입니다. 한국 정부의 지문날인 제도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차별적인 정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국가에 의한 과도한 프라이버시권 침해, 신체의 자유 침해의 문제이며 감시사회에 대한 저항의 의미에서 지문날인을 거부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정부에도 제공하지 않은 생체정보를 일본 정부에 제공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일본 정부의 차별적인 지문날인 제도 폐지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더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일단 피스보트에서 일본인 승객들을 상대로 지문날인제도의 문제점을 알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피스보트에서 만난 재일코리안 전도영 할머니(70세)는 제게 지문 대신 자신의 사인이 들어 있는 외국인등록증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셨습니다. 재일코리안들은 외국인등록 절차를 밟으며 양쪽 손 열 손가락 지문을 다 찍고 난 뒤, 지문이 찍혀 있는 외국인등록증을 늘 휴대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 뒤에도 정기적으로 관청에 불려가 지문을 또 찍어야 했습니다. 이 차별적인 제도 때문에 재일코리안들은 자신이 일본이라는 국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고, 항상 감시당하는 대상이라는 걸 절감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지문날인 폐지를 요구하는 운동이 벌어졌고 할머니도 그 운동에 참여하셨으며 이제는 지문날인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차별과 인권침해는 영원히 사라져야 합니다. 잘못된 제도를 폐지시키기 위해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스보트 승객 중 한국인 학생 등을 포함 외국인이 30여명 있습니다. 그들도 부당한 차별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함께 힘을 모으겠습니다.

 


그러나 피스보트측은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1월 10일 요코하마항에서 승객들이 실제로 지문날인을 거부할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피스보트도 일본 정부의 지문날인 제도를 비판하고 폐지운동에도 동참해왔지만, 출입국 관리소와 직접 부딪치는 일은 일단 피하고 장기적인 싸움을 준비하자는 입장입니다. 제가 지문날인을 거부할 경우 지난해 11월 지문날인 제도 시행 이후 제1호 강제퇴거자가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어떤 행동이 지문날인 제도 폐지 운동에 도움이 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같은 상황을 널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태평양을 항해하는 배 위에 있기 때문에 통신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인터넷을 자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팩스를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팩스 번호는 다음과 같습니다. 872-764-546-281 Chung Hee Jung cabin No.50125

 

 

 

아래는 제가 일본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1000여명의 일본인 승객들 앞에서 이 편지를 낭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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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보트에서 우정을 나눈 일본인 친구들에게

 


당신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 많이 받았습니다. 지난 100여일 동안 우정을 나눈 친구들 중엔 우리집에 꼭 놀러오라고 주소를 적어준 이들이 많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들에게 너무나도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됐습니다.

저는 일본인 친구의 집에 방문할 수 없게 됐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무리 보고 싶어도 다시는 일본에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외국인을 차별하는 일본 정부가 저의 입국을 영원히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일본에 입국하는 16세 이상의 외국인이 일본에 입국할 때 지문 채취와 사진 촬영을 강제로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자국민에 대해서는 범죄자에 한정해 지문 채취를 합니다. 따라서 일본 정부가 모든 외국인에 대해 지문을 채취하는 것은 외국인을 무조건 범죄자로 보는 매우 차별적인 행위입니다. 신체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는 제도여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 변호사연합회도 외국인에 대한 지문채취가 일본의 헌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폐지가 됐었는데 최근에 테러방지라는 명목으로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저를 비롯한 외국인 승객들이 이번 여행이 끝나는 10일 요코하마항에 도착했을 때 지문날인을 거부한다면 퇴거 명령을 받게 되며 블랙리스트에 명단이 올라가 앞으로 일본 방문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한 일본인 친구는 제게 눈물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 국적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냥 친구로 느꼈을 뿐 외국인이어서 일본에서 차별을 받으리라곤 생각을 못했어. 정말 미안해."

우리는 피스보트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우리들 사이에 이미 국경은 없습니다. 남의 일인 것처럼 느꼈던 문제들을 바로 내 문제로, 내 친구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현실에 함께 분노했고, 보고 배우고 깨달은 만큼 우리가 실천한다면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피스보트에서 만난 한 재일코리안 할머니는 제게 자신의 사인이 들어 있는 외국인등록증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셨습니다. 과거엔 외국인등록증에 사인 대신 지문을 찍혀 있었습니다. 재일코리안들은 외국인등록 절차를 밟으며 양쪽 손 열 손가락 지문을 다 찍고 난 뒤, 정기적으로 관청에 가서 지문을 또 찍어야 했었다고 합니다. 이 차별적인 제도 때문에 재일코리안들은 자신이 일본이라는 국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고, 항상 감시당하는 대상이라는 걸 절감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지문날인 폐지를 요구하는 운동이 벌어졌고 할머니도 당시에 운동에 참여하셨다고 합니다. 끈질긴 운동의 결과 이제는 지문날인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옳지 않은 제도와 차별, 인권침해는 사라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싸워야 합니다. 그건 옳지 않다고 큰 목소리로 용기내어 외쳐야 합니다. 커다란 권력과 맞써 싸우기엔 우리의 힘이 너무 미약할지 모릅니다. 많은 피해를 입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순순히 따라준다면 영원히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일본인들이 `내 외국인 친구를 범죄자 취급하지 말라'며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낸다면 어떨까요? 세계 모든 이들이 외국인을 무조건 범죄자 취급하는 일본 관광 안하기 운동이라도 벌인다면 일본 정부가 깜짝 놀라겠죠?

 


제발 이것 하나만은 기억해주세요. 몇일 후 요코하마항에서 당신들이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 반가워하고 있을 때, 당신의 외국인 친구는 참담한 심정으로 지문을 찍고 사진기 앞에 일그러진 표정을 애써 감추며 한참을 서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차별적인 제도를 거부한 친구는 공권력에 의해 폭력적으로 일본에서 쫓겨나며 다시는 일본에서 만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는 앞으로 이 차별적인 외국인 지문날인 제도가 잘못된 것임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우리가 이 차별에 맞서 어떻게 저항해야 할지 일본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힘을 모으고 싶습니다.

 


2008년1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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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화도 무료진료봉사

올해 7월부터 시작 된 무료진료봉사가 오늘 개천절에 그레에서 있었다.

그레 입구에 프랭카드가 걸려져 있지만 오고 가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9월 태풍으로 한차

례 쉬고 이번이4번째이다. 홍보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확실한 마을 주체가 없었다는 것이 큰 것

같다. 오늘은 30여명의 주민분들이 오셨다고 한다.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으며 진료는 계속되었다. 

 

                                                   진료소에 온 김기철씨 가족

 

기철은 나와 동갑이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  원래 경운기를 몰며  갯벌에서 그레질를 했었다.

새만금방조제가 막히자 이제는 전어배를 타고 있고 부인은 읍내에서 시간제로 일한다고 한다.

중국 내륙의 농촌에서 온 동포로 시집와서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6년이라는 짧은기간 갯벌에서

그레질 할 때가 좋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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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았다! 갯벌 친구들.

         EBS다큐페스티벌기간중 살기위하여 상영때 만난 안은영작가님이 보내주신 책

 

                       새만금에서 몇번 인사드린 적이 있는 백용해선생님이 감수하셨다.

 

 

   새만금의 원주민들입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전의 건강한 갯벌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과분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안은영작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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