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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꽃이라는 불리는 곳, 설악산 천화대

  • 등록일
    2012/09/04 14:07
  • 수정일
    2012/09/04 14:07

 

15년전, 경기지역에서 활동하는 있는 선배로 부터 북한산에 가자는 얘기를 들었다.

다음날 북한산 우이동 가는 길에서 만난, 우린 서로 경악하고 말았다.

청바지에 구두를 신고 나선 나를 본 나현균(당시 전해투 위원장), 김은천(경기지역 활동가)과 또다른 1명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에게 산은 계곡 앞의 주점이나 계곡에서 운치있게 소주잔을 기울이는 그런 곳이였다.

다물지 못하는 입에서 온갖 소리를 듣고 난후, 선배로 부터 릿지화를 빌려 신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감당 안될 정도의 헉헉 거리는 숨소리를 참으며 북한산 깔딱고개를 넘었고, 인수봉 아래 대슬랩을 옆으로 망바위를 지나, 백운산장을 지나, 만경대까지 올랐다.

'이런 젠장할' 이런데까지 사람들이 정말 온다는 사실에 기가 막힐 뿐이였다.

아 정말 힘든 산행이였다. 그리고 만경대 꼭대기에서 가져온 소주와 김밥을 나눠 먹고 난후, 이젠 내려갈 수 있다는 희망에 안도하는 것도 잠깐, 혼자서 내려갈 수 없는 길이라는 판단에 잠깐 따라나선 만경대 릿지길은 정말로 돌아갈 수 없는 길이 되어 황당한 긴장속에서 뜀바위와 피아노길을 넘어서는 상황이 그야말로 발생하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내가 오른 첫 산행이였다.

이후, 나에게 산행은 또다른 의미가 되었다.

온몸에 느껴지는 무거움과 답답함을 이겨내고 끝없이 쏟아지는 땀을 훔치며, 시원한 바람과 전망이 트인 산을 오르는 것, 그리고  흙과 물, 바위만나는  것, 죽을 것 같은 긴장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발끝으로 딛고 일어서고, 잡힐 듯 말듯한 바위를 잡고 균형을 잡아 다음 동작을 준비하는 것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또하나 '사람', '사랑', '신뢰'까지

 

그렇게 몇번의 산행이, 아주 많은 산행이 있었다.

잠깐이지만 인수봉으로, 간현으로 그리고 설악산으로

그렇지만 실력은 늘지 않았다. 그냥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15년 전 여름, 설악산 천화대로 길이 정해졌고,

비선대에서 짐을 풀고, 두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천화대 왕관봉에 오르지 못하였다.

 

다시 몇년후 무릅을 심하게 다치고, 산행도 시들해져 갔다.

그렇게 자주 어울렸던 이들은 또 그렇게 각자의 삶에 바빠졌고, 산행은 어쩌다 한번 느끼는 행사가 되었고, 멋진 색바랜 추억이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2년 초 터무니 없는 계획을 세워 천화대를 가기 위한 운동을 시작하였다.

영등포에 있는 실내암장에서 운동을 시작하여 약 5개월을 보냈다. 지난 5개월은 암벽을 새로 배우고, 익히면 실력을 늘린 시간이라기 보다는 버텼다라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강사마저 암담하게 만들어버린 운동능력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짧게 운동을 끝내고 돌아섰다.

그리고 몇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적응해갔다. 남들은 1~2달이만 끝내는 초보코스를 4개월을 넘겼고, 그 4개월이 넘어서고 나서야 운동이 운동처럼 되어갔다.

그런모습이 그나마 눈에 띄었을까,

누군가 작은 소리로 '천화대 갈래요"하고 말해주었다.

알수 없는 긴장이 심장으로 부터, 뼈와 근육으로 부터 느껴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9월 1일 비를 맞으면 설악산 천화대 왕관봉에 올랐다.

15년만에 성취했다고 해야 하나, 솔직하게 앞에서 끌어주는 자일의 힘이였다.

한발, 한손을 두려움 가득한 길을 내딪으며, 이를 악물었다.

혹시나 실수하지 않을까, 혹여 뭔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였다.

긴장된 근육과 내리는 비에 있던 자신감 마저, 스스로의 격려와 주변의 도움에도 자신감은 달아났지만, 차례에 따라 돌아갈 수 없는 길이라 전진해 나갔다.

첫피치, 그리고 두번째 피치, 실력이 안되니, 슬링(묶어둔 끈)을 붙잡고 일어나야 하는데, 나의 발을, 나의 팔은, 그

리고 묶여진 끈을 믿지 못하였다.

아홉피치를 가야하는 길에 두번째에서 자신감은 완전히 달아나버렸다.

이미 난 우리 팀의 민폐, 짐이 되어버린 느낌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 갈수 없는 길을 하나씩 하나씩 넘어섰다.

사선크랙을 옆으로 돌아 마지막 왕관봉을 앞두고 심란하기까지한 맘을 다잡고 용기보다는 순서에 밀린듯이 발로 딪고 손으로 잡아올랐다.

왕관봉에 올라서서의 느낌은 내게 "해냈구나"가 아니라, "이젠 내려갈 수 있겠구나"라는 안도감이였다.

 

설악산 천화대 릿지 길은 등반 내내 "왜 왔지"라는 자괴감을 들게 하였고, 당분간일지 모르지만,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다짐에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비와 구름 간간히 비추는 햇빛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 설악산의 곳곳의 능선은 충분하게 가슴으 울릴정도로 아름다웠다. 콧대높던 모습에도 불구하고 고생하는 이들에게 아름답게 피어난 꽃처럼 자태를 뽐냈다.

 

- 2012. 9. 1/설악산 천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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