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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27 충주호 가은산

  • 등록일
    2013/10/29 17:06
  • 수정일
    2013/10/29 17:06

새벽 알람소리에 깼더니 한쪽눈이 터질듯이 아프다.

혹시나 또 피줄이 터진것은 아닐까하며 거울을 보니, 조금 붉게 타오르고 있다.

 

일어나자마자 변기에 앉아 페북을 확인한다.

 

어제는 오후부터 밤까지 내내, 집회로 가득한 하루였다.

막판 촛불에서 짧게 상여된 민주노조운동과 투쟁의 역사를 그린 영상이 말하고 팠던 투쟁 계획이 의미있게 실천되길 기원한다.

 

급하게 씻고 챙긴다. 10월의 마지막 산행 충주호 가은산을 향해...

"가은산" 막상 길을 나서고 보니 산의 이름밖에 모른다. 밤금 나눠준 지도를 보니, 제천에 걸쳐져 단양의 경계인 충주호를 바로보고 있다. 이르게 서두른탓에 잠들어 달려온 문막휴게소에는 사람과 안개가 가득한데, 다시 달리는 버스 바깥풍경은 울긋불긋 단풍으로 가득하다.

물빛을 받고 단풍을 밟는다는 가은산이 무척 기대된다.

길은 구비구비 충주호를 옆으로 달린다. 산도 오르기전에 참 좋다라는 생각에 잠기고, 어느새 도착한 옥순대교 앞까지 여기저기 '자드락길(낮은 산기슭에 비스듬히 나 잇는 좁은길)'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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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당일산행으로 진행된 가은산은 등반대장의 부상으로 이루어지는 정말 이 산악회 입장에서는 가벼운 산보같은 느낌이라는데,,, 여기저기 사기가 판을 친다는 느낌이다.

옥순대교에서 출발하여 둥지봉(413m)과 가은산(575m)으로 이어지는 산행은 단풍나무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가는 내내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약 5시간 정도를 오르락 내리락, 구비 구비, 먼지가 날리기도 하고, 바위길을 밟기도 하며 "와~", "우와~"의 함성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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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27 지리산 종주

  • 등록일
    2013/01/30 14:17
  • 수정일
    2013/01/30 14:17

가는날이 장날이라더니, 날만 잡으면 추웠다.

 

지난 1월 1일-2일 설악산행때는 서울이 영하 16도를 넘더니, 두번째 산행인 지리산 (역)종주도 역시 서울은 영하11도까지 떨어지는 추위와 싸우게 되었다.

 

실내암벽을 한지가 벌써 2년차가 되었지만, 실력은 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저녁 식사량을 조절하면서 몸무게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몸이 가벼운 느낌은 아니다. 손바닥에 살짝 붙어있는 굳은 살이 운동을 한 것처럼 보여준다.

 

암장을 다니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을 새로 알게되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참 힘든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된 분중에 몇가지 점에서 나랑 코드도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꽤나 산을 좋아할뿐만 아니라, 각종 산관련 잡지에 글도 기고하고, 가끔은 이곳 저곳의 요청으로 산행 안내를 하기도 하는 한마디로 산에 대해서 일가를 이룬 듯한 사람이다.

지난 늦여름 설악산 천화대에 이어, 지리산 종주에 같이 하자는 연락을 받고 흔쾌히 두려운 맘으로 길을 나섰다.

동행자 28명, 잘 알지 못하는 25명과 함께 25일 밤 사당역에서 만나 진주를 거쳐 중산리 입구로 향했다. 잠을 들려고 수없이 노력했지만, 결국 1시간정도 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하였다.

버스가 덜컥거리는 소리가 두렵게 느껴지고 나서 차는 산의 입구에 도달했다.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중산리 입구로 새롭게 준비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바람이 쉼없이 불어댄다. 그칠만 하면 언덕을 만나고 다시 올라서면 저 멀리 천왕봉이 보이기도 했다. 땀으로 흠뻑 젖어 오기 시작하고, 바닥에 하얀 눈이 가득하다고 느낄즈음 천왕봉에 올라섰다.

파란 하늘이 너무도 파란 하늘이 파랗게 빛나고 있다.

저 멀리 정령치쪽으로 보이는 능선위의 하얀 눈이 아름답게 보이고, 북쪽으론 덕유산이 보이지만, 강풍으로 오래 서 있을 틈이 없다.

그리고 진짜로 지리산행이 시작되었다.

오르고 내리고, 다시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여 세석에 도착하여 한숨돌리고, 나선 다시 벽소령으로 출발하였다. 체력이 부치는 것인지, 두려움인지 알수 없는 것들을 이겨내 무렵 선비샘이 도착하였다.

찬물을 몇바가지 들이키고 나서 바로 걸음을 재촉했다.

저 멀리 보이는 벽소령 산장을 향해 잰걸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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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꽃이라는 불리는 곳, 설악산 천화대

  • 등록일
    2012/09/04 14:07
  • 수정일
    2012/09/04 14:07

 

15년전, 경기지역에서 활동하는 있는 선배로 부터 북한산에 가자는 얘기를 들었다.

다음날 북한산 우이동 가는 길에서 만난, 우린 서로 경악하고 말았다.

청바지에 구두를 신고 나선 나를 본 나현균(당시 전해투 위원장), 김은천(경기지역 활동가)과 또다른 1명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에게 산은 계곡 앞의 주점이나 계곡에서 운치있게 소주잔을 기울이는 그런 곳이였다.

다물지 못하는 입에서 온갖 소리를 듣고 난후, 선배로 부터 릿지화를 빌려 신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감당 안될 정도의 헉헉 거리는 숨소리를 참으며 북한산 깔딱고개를 넘었고, 인수봉 아래 대슬랩을 옆으로 망바위를 지나, 백운산장을 지나, 만경대까지 올랐다.

'이런 젠장할' 이런데까지 사람들이 정말 온다는 사실에 기가 막힐 뿐이였다.

아 정말 힘든 산행이였다. 그리고 만경대 꼭대기에서 가져온 소주와 김밥을 나눠 먹고 난후, 이젠 내려갈 수 있다는 희망에 안도하는 것도 잠깐, 혼자서 내려갈 수 없는 길이라는 판단에 잠깐 따라나선 만경대 릿지길은 정말로 돌아갈 수 없는 길이 되어 황당한 긴장속에서 뜀바위와 피아노길을 넘어서는 상황이 그야말로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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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가 오른 첫 산행이였다.

이후, 나에게 산행은 또다른 의미가 되었다.

온몸에 느껴지는 무거움과 답답함을 이겨내고 끝없이 쏟아지는 땀을 훔치며, 시원한 바람과 전망이 트인 산을 오르는 것, 그리고  흙과 물, 바위만나는  것, 죽을 것 같은 긴장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발끝으로 딛고 일어서고, 잡힐 듯 말듯한 바위를 잡고 균형을 잡아 다음 동작을 준비하는 것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또하나 '사람', '사랑', '신뢰'까지

 

그렇게 몇번의 산행이, 아주 많은 산행이 있었다.

잠깐이지만 인수봉으로, 간현으로 그리고 설악산으로

그렇지만 실력은 늘지 않았다. 그냥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15년 전 여름, 설악산 천화대로 길이 정해졌고,

비선대에서 짐을 풀고, 두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천화대 왕관봉에 오르지 못하였다.

 

다시 몇년후 무릅을 심하게 다치고, 산행도 시들해져 갔다.

그렇게 자주 어울렸던 이들은 또 그렇게 각자의 삶에 바빠졌고, 산행은 어쩌다 한번 느끼는 행사가 되었고, 멋진 색바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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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초 터무니 없는 계획을 세워 천화대를 가기 위한 운동을 시작하였다.

영등포에 있는 실내암장에서 운동을 시작하여 약 5개월을 보냈다. 지난 5개월은 암벽을 새로 배우고, 익히면 실력을 늘린 시간이라기 보다는 버텼다라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강사마저 암담하게 만들어버린 운동능력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짧게 운동을 끝내고 돌아섰다.

그리고 몇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적응해갔다. 남들은 1~2달이만 끝내는 초보코스를 4개월을 넘겼고, 그 4개월이 넘어서고 나서야 운동이 운동처럼 되어갔다.

그런모습이 그나마 눈에 띄었을까,

누군가 작은 소리로 '천화대 갈래요"하고 말해주었다.

알수 없는 긴장이 심장으로 부터, 뼈와 근육으로 부터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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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비를 맞으면 설악산 천화대 왕관봉에 올랐다.

15년만에 성취했다고 해야 하나, 솔직하게 앞에서 끌어주는 자일의 힘이였다.

한발, 한손을 두려움 가득한 길을 내딪으며, 이를 악물었다.

혹시나 실수하지 않을까, 혹여 뭔일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나를 완전히 지배하였다.

긴장된 근육과 내리는 비에 있던 자신감 마저, 스스로의 격려와 주변의 도움에도 자신감은 달아났지만, 차례에 따라 돌아갈 수 없는 길이라 전진해 나갔다.

첫피치, 그리고 두번째 피치, 실력이 안되니, 슬링(묶어둔 끈)을 붙잡고 일어나야 하는데, 나의 발을, 나의 팔은, 그

리고 묶여진 끈을 믿지 못하였다.

아홉피치를 가야하는 길에 두번째에서 자신감은 완전히 달아나버렸다.

이미 난 우리 팀의 민폐, 짐이 되어버린 느낌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 갈수 없는 길을 하나씩 하나씩 넘어섰다.

사선크랙을 옆으로 돌아 마지막 왕관봉을 앞두고 심란하기까지한 맘을 다잡고 용기보다는 순서에 밀린듯이 발로 딪고 손으로 잡아올랐다.

왕관봉에 올라서서의 느낌은 내게 "해냈구나"가 아니라, "이젠 내려갈 수 있겠구나"라는 안도감이였다.

 

설악산 천화대 릿지 길은 등반 내내 "왜 왔지"라는 자괴감을 들게 하였고, 당분간일지 모르지만,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다짐에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비와 구름 간간히 비추는 햇빛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 설악산의 곳곳의 능선은 충분하게 가슴으 울릴정도로 아름다웠다. 콧대높던 모습에도 불구하고 고생하는 이들에게 아름답게 피어난 꽃처럼 자태를 뽐냈다.

 

- 2012. 9. 1/설악산 천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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