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잉오 엘베의 글을 자기이해를 목적으로 우리말로 옮겨 본 것이다. (이동금지, 수시수정)  세부 단락구별은 역자가 한 것이며, 원문의 강조는 여기에 표시되지 않았다. 원문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http://www.rote-ruhr-uni.com/cms/Marx-vs-Engels-Werttheorie-un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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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오 엘베

(Ingo Elbe, November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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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vs. 엥엘스 : 가치이론과 사회주의관

(Marx vs. Engels : Werttheorie und Sozialismuskonzeption - Übersetzung vom Deutschen ins Koreani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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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cheiskra at 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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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순 상품생산에 대한 엥엘스의 역사주의적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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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1권의 출판 후 100년간 프리드리시 엥엘스(Friedrich Engels)의 해설들은 맑스의 경제학비판에 대한 유일한 정당하고 적절한 평가들로 간주되었다. 맑스주의적 전통에서 어떤 독해방식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859)에 대한 평론 혹은 『자본』 3권(1894)에 대한 후기(Nachwort)와 같은 텍스트들에서 엥엘스에 의해 전개된 독해방식만큼, 그렇게 논쟁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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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의 반영관(Widerspiegelungskonzeption)을 배경으로, 엥엘스는 맑스의 가치형태분석을, “다만 역사적 형태와 방해하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우연성들)을 벗긴”[1] (자본주의적 임노동관계에 이르는) ‘단순 상품교환’에 대한 논리적이고 동시에 역사적인 서술로 해석한다. ‘논리적’이라는 개념은 이 맥락에서 기본적으로 ‘단순화’를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서술방식인,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범주들의 연쇄(상품, 단순한 가치형태, 전개된 가치형태, 일반적 가치형태, 화폐, 자본)는 “추상적이고 이론적으로 필연적인 형태에서 역사적 진행의 반영(Spiegelbild)일 뿐”[2]일 수 있다. 화폐형태의 발생에 대한 고찰은 “언젠가 실제로 일어났던 실제적 과정”[3]에 대한 묘사로 이해된다. 엥엘스는 그의 저작의 다른 곳에서 역사적 유물론을 그런 식으로 극적으로 (‘유물론-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들-실제적 과정’ vs. ‘관념론-추상적 사고과정-순수히 추상적인 영역’ 등의 그에 의해 사용된 연상사슬들을 부과하는) 속류적 경험주의와 역사주의로 환원하지는 않았다. ‘논리적-역사적’ 방식으로, 엥엘스는 맑스주의적 정통에서 지겹도록 혹사당하고 회자된 표제어를 명기한다. 이미 칼 카우츠키(Karl Kautsky)는 그의 매우 영향력 있는 설명들에서 『자본』을 “본질적으로 역사적인 저작”[4]으로 이해한다. 즉 “자본을 역사적 범주로 인식하고, 자본의 발생을 머리로부터 구성하는 대신에 역사의 힘으로 증명하는 것이 맑스에 의해 비로소 이루어졌다.”[5] 맑스레닌주의(ML)뿐만 아니라 서구 맑스주의[7] 역시 이 평가에서 그를 따른다.

 

 

 

 

그러나 만약 정치경제학 비판이 역사기술로 해석되면, 결국 정치경제학비판의 처음에 전(前)자본주의적 상품[8]이 존재하고, 가치형태분석은 두 명의 생산물소유자(Eigner)의 우연적이고 화폐 없는 상호작용에 대한 서술과 더불어, (엥엘스가 BC 6000년부터 15세기까지 계속된 경제적 시기로 날짜를 적어낸) 엥엘스의 소위 “단순 상품생산”[9]과 더불어 시작한다.[10] 즉 가치법칙은 이 시기에 순수하며 가격범주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형태로 통용된다. 그리고 그것을 엥엘스는 중세의 농부들과 수공업자들 사이의 화폐 없는 ‘교환’의 가정된 예에서 설명한다. 즉 여기서 우리는 동시에 그들의 생산수단들의 소유자들(Eigentümer)인 직접적 생산자들의 명료한 사회적 관계에 관련된다. (여기서 소유자들 중에서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주시하는 가운데[unter den Augen] 노동하고, 결국 “[그들에 의해] 교환되는 대상들의 생산을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을 상당히 정확히 안다”[11]) 엥엘스에게 이미 이러한 전(前)자본주의적 ‘경제’는 탈피적(entbettet[embedded]: 파내진, 해체된, 해방된) 경제이나 결코 ‘도덕적 경제’는 아니다.[12] 즉 엥엘스에게 어떤 규범적 기준이 아니라, 행위자들에 의해 의식적이고 직접적으로 측정된 노동시간의 추상이 이런 ‘자연교환’의 조건들 아래, “교환할 수 있는(auszutauschend) 상품들의 양적 결정에 대한 유일하게 적합한 척도”[13]이다. (엥엘스에 의하면) 농부들도 수공업자들도 그렇게 둔하지 않고, 동일하지 않은 노동량을 교환할 수 없다. 즉 “농부의 자연경제의 전 기간에, 교환된 상품양이 더욱 더 그것들에서 육화된 노동량에 따라 측정되는 경향을 가지는 그러한 것과 다른 어떤 교환도 가능하지 않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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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엥엘스에 의하면 상품의 가치는 의식적으로 시간으로 측정되는 개별 생산자들의 구체노동을 통해 결정된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노동괴로움 이론(Arbeitsleidtheorie)[15]에서처럼, 여기서 가치형성은 개인과 자연 사이의 전(前)사회적 행위(Akt)로 인간-사물-관계에서 놓여지고, 가치실체 즉 추상노동은 결국 잼이 펜 케이크에 들어가듯이 생산물에 들어가는 인류학적 크기로 이해된다.[16] 이러한 가치이론에서 화폐는 구성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화폐는 한편으로 가치에 외적인 ‘교환의 보조제와 윤활제’이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소모의 은폐를 위해 가치실체로 복무한다. 즉 노동시간에 의거하는 대신, 언젠가 갑자기 암소(Kühe)와 결국 금괴에 의거해 교환된다.[17] 엥엘스 역시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가치가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을 통해 결정되며, 생산자가 추상노동을 실행했는지 안했는지가 우선 시장에서 사후적으로 판명된다는 것을 알기는 한다.[18] 그러나 엥엘스에게 이것은 가치개념의 필수 구성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옛날의 (그리고 미래에 다시!) 일목요연한 ‘단순한’ 사태의 우연적 복잡화인 것처럼 보인다. - 「후기」(Nachwort)에서 엥엘스는 언제나 전(前)화폐적(prämonetär) 시대에서의 맑스의 가치법칙의 순수한 통용(Geltung)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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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본』에서 맑스의 ‘논리적’ 서술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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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경제학비판의 서술방법 및 대상에 대한 맑스의 생각은 실제로, 맑스주의적 정통 및 ‘엥엘스주의’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여기서 실제로, (포괄적인 고전적) 정치경제학과 정치경제학비판 사이의 오랫동안 인지되지 못한 대립이 열린다. 이것은 여기서 다만 대강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즉 맑스는 “경제적 범주들을 그것들이 역사적으로 규정하는 것들이었던 순서로 연쇄되도록 하는 것을 실행할 수도 없고(untubar) 거짓인 것으로” 간주한다. “오히려 경제학 범주들의 순서는 경제학 범주들이 근대 부르주아적 사회에서 서로 취하는 그것들의 관계를 통해 결정된다.”[20] 따라서 경제학비판의 대상은 결코 전(前)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의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생이 아니라, “생성된[...], 그 자신의 토대 위에서 운동하는[...] 부르주아적[...] 사회”[21]이고, 따라서 발생동학이 아니라, 그 자신의 전제들을 자신의 결과들로 (재)생산하는 확대되고 위기적으로 재생산되는 ‘행위관계’(Handlungszusammenhang)의 재생산동학이다. 이제 정치경제학비판의 과제가 상호 (전)제하는 형태들[22]의 이러한 체계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시에 존재하고 서로 지지하는 전체의 요소들이 서술논리적인 연속으로 필연적으로 놓아”[23]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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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 전체 정통(맑스주의)에 의해 이해되지 않은 - 『자본』의 첫 단락에서 맑스는 그 점에서 분명하게, 그에게 서술의 출발점으로 복무하는 것은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된 상품이라고 언급한다. 즉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들의 부는 ‘거대한 상품집합’으로 나타나고, 개별상품은 부의 기본 형태로 나타난다. 그 때문에 우리의 연구는 상품 분석으로 시작한다.”[24] 이제 서술의 시작으로서의 ‘상품’에 대한 두 가지 주장들이 지시될 수 있다. 상품의 실제역사적 특수성: 상품은 자본주의의 구성적인 사회적 생산과정의 생산물들에 대한 독특한 형태결정이다. 상품의 논리적 기초(Elementarität): 상품을 추상적으로(in abstracto) 이해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핵심결정, 노동력의 상품성의 이해를 위한 근본조건이다. ; 게다가 ‘잉여가치’ 개념은 ‘가치’ 개념 이전에 도입될 수 없다. 따라서 상품은 우선 ‘그 자체로’(an sich: 즉자적으로) 고찰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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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전개된 범주들과 독립적으로 상품을 다루는 것은, 여기서 전(前)자본주의적 상품이 고찰될 것이라거나 그 후에 전(前)자본주의적인, 정말로 전(前)화폐적인 상품교환이 고찰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상품이 화폐, 자본과 관련이 있는 실제적 참조관계(직접적인 것의 현실적 매개성)가 우선 개념적으로 설명되어야만 한다. 결국 변증법적 서술은 서술의 진행에서 단지 외관상 단순한 것(즉 ‘단순한 상품’[W], ‘단순한-화폐 없는-상품교환’[W-W], ‘단순한-순수한 상품소유자와 화폐소유자 간에 일어나는-순환’[W-G-W])의 필수적 전제들의 만회(Einholung)[2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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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에 따르면, 역사적 고찰은 결코 “서술의 변증법적 형태”[26]와 동일하지 않다. 서술의 변증법적 형태가 그것의 “한계들”[27]에 이르렀다면, 역사적 고찰이 비로소 들어온다. 역사기술은 그것이 (자본주의의 자기재생산성의 절대성의 환상에 굴복하지 않고, 변증법을 헤겔적으로 ‘맴돌기’[Kreis aus Kreisen]로 소실되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외부의 역사성, 전(前)자본주의적 사회구성에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전제들의 생성을 끌어들여야만 하는[28] 바로 그 곳에서, 정치경제학비판이다.[29] 이에 관해서 어떤 역사적 과정들이 고찰될 수 있는가는, 물론 다시 우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들에 대한 구조분석으로부터 쏘아진다.[30] 예를 들어 노동시간의 제한의 정도와 같은, 자본주의 내적 발전의 개념적으로 도출될 수 없는 결과들 역시, 역사기술적 연구들의 대상으로 되어야만 한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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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형용사적 사회주의(Adjektivischer Sozialismus)와 전(前)화폐적 가치이론의 아포리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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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엘스의 ‘단순 상품생산’은 이제 그레이(Gray)와 푸르동(Proudhon)의 시간전표-구상의 변종에 다름 아니다. 즉 여기서는 구체적 노동시간이 가치의 토대이자 척도이고 따라서 생산물들의 교환의 토대이자 척도이다. 각 상품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고유의 ‘화폐’이다. 따라서 가치실체와 가치실체의 생산물이 고유의(특유한) 가치형태를 필요로 하고, 상품의 가치가 다만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에서, 실제로 우선 일반적인 등가형태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될 수 없다.[32] 실체와 형태, 본질과 현상형태, 가치와 화폐가 서로 떨어뜨려질 수 있는 외적인 대립들이 되어 버린다. (가치)실체는 심리학적인 대상성으로, 개별 상품에 존재하는 토대(Substrat)로 실체화된다. 본질과 현상은 단지 ‘본래적인 것/중요한 것’과 ‘본래적이지 않은 것/중요하지 않은 것’을 상징한다. 그 때에 ‘본질적이지 않은 것’이 ‘본질적인 것’을 은폐한다. 곧 엥엘스가 『자본』의 서술방식을 역사적-구체주의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그는 정치경제학의 범주들을 탈역사화하고 개별화한다. 그 점에서 그는 확실히 개별화되고 ‘고전’의 패러다임에 구속된 입장에, 특히 『자본』 2판에서, 관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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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맑스는 한편으로 서술방식의 대중화에 대한 엥엘스의 제안을 따랐다.[33] 그리고 그것은 가치형태의 전개의 논리적 성격에 대한 몇몇의 중심적인 방법론적 언급들의 제거를 이끈다.[34] 다른 한편으로 맑스는 추상노동을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인간의 노동력의 지출”[35] 및 “인간의 뇌, 근육, 신경, 손의 지출”[36]로 규정하는 것을 통해, 가치실체에 대한 자연주의적 해석을 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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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경 하에서 맑스주의에서 우선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형용사적(adjektivisch) 관념이 전개될 수 있다. 그런 형용사적 관념은 다만 “자본주의적 상품경제에서와 같은, 인간의 노동생산물들의 동등한 사회적 형태결정에 대한 혁명화된 [...] 계산방식”[37]이 될 뿐이다. 자유를 필연성에 대한 통찰로 보는 엥엘스의 (다시 헤겔에게서 꺼내지는) 성구에 관련하여, 그리고 자연법칙들과 사회적 과정들에 대한 그 성구의 비교와 관련하여,[38] 이러한 사회기술적(sozialtechnologisch) 해방구상의 근본 진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즉 ‘자본주의에서 무정부적이고 통제되지 않은 채 작용하는 사회적 필연성은, 자연과 사회의 객관적 법칙성들에 대한 (과)학으로서의 맑스주의에 의거해, 사회주의에서 계획적으로 사용되고 의식적으로 이용된다.’ 자본주의적 형태결정들의 소멸이 아니라 그 형태결정들의 대안적 이용은, 부-형태들을 역사적으로-특수한 형태들로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태들을 자연화하는 것은, 형용사적 사회주의와 이 사회주의의 ‘사회주의적 정치경제학’을 특징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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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뒤링』에서 이미 엥엘스는 공산주의를 ‘단순 상품생산’의 회귀로 이해한다. 즉 거기에서 사회는 이제 “얼마나 많은 노동시간이 증기기관에, 마지막 수확의 100리터의 밀에, 일정한 질의 100 평방미터의 아마포에 들어갔는지를 간단히 계산”할 수 있다. “또한  노동시간을, 사회에 자연적이고 적합하며 절대적인 척도 즉 시간에서가 아니라, ‘사회가 그 다음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아는, 생산물에 들어간 노동량[!]에서’, 장차 ‘단지 상대적이고 변동하고 불충분하며, 이전에 응급수단[!]으로 불가피한 척도에서’, ‘제3의 생산물에서’ 표현하는 것은 사회에서 머리에 떠오를 수 없다. ‘사회주의적 상품생산’ 혹은 심지어 ‘본래적인 사회주의적’ (즉 ‘낡은 사회의 모반[母斑]’으로 결코 이해되지 않은) 가치법칙’[40]과 같은, 부조리들의 명백한 선언에서, 이미 엥엘스에 의해 근거지워진 형용사적 사회주의가 나타날 뿐이다.『반(反)뒤링』에서 엥엘스의 서술(Version)은 이후의 현실사회주의의 공식적 교의에 대한 정확한 반대를, 즉 공산주의에서 상품, 가치, 화폐, 자본의 지양을 분명히 주장하기는 한다.[41] 그러나 이러한 ‘지양’은 노동시간을 통한 사회화, 직접적 노동시간계산, 교환, 또한 실체주의적 노동가치이론의 범주들에서 공식화된다.[42] 따라서 이러한 ‘공산주의’는 거의 『자본』 3권 보유(Nachtrag)에서의 엥엘스의 ‘단순 상품생산’의 가상(허구)에 대한 직접적 모사이다. - 상품생산이 언급되는 것 없이, 다만 ‘거대한 사회적 사닥다리’ 위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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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맑스는 몇몇의 양가성들에도 불구하고, 이제 공산주의에 대한 이런 관념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 그 점에서 그가 그레이와 푸르동의 전(前)화폐적 가치이론의 체계적 아포리아들에 대해 상술한 것은 동시에, 공산주의는 “무엇보다 이러한 ‘잘못된 형’(푸르동주의)에게서 벗어나야”[43]만 한다는 맑스의 경고를 진지하게 취하지 않은, 엥엘스와 그의 아류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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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가 노동의 직접적 사회화와 간접적 사회화를 구별하고, 그것과 엇갈리게 (주변적) 전(前)자본주의적 상품생산과 (보편화된)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을 구별한다면, 엥엘스는 첫 번째 구별과 두 번째 구별을 뒤섞고, 그래서 그에게 한편으로 전(前)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은 직접적 사회화의 요소들을 수여받고,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 이후의 직접적인 사회화는 상품생산의 범주들에서 이해된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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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해에 따르면 이미 특수하고 개별적인 노동이 가치생산적이고 따라서 추상적-일반적이며, 따라서 이미 그 노동의 특수한 생산물이 직접적으로 교환될 수 있는) 엥엘스의 실체주의적이고 전(前)화폐적 이해와 반대로, 맑스는 체계적 방식의 그런 전(前)화폐적 교환은 그의 가치이론에 따를 때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인다. 즉 전(前)화폐적 교환(W-W)에서, 각 상품은 동시에 ‘일반적 부, 가치’의 육화로, 그리고 ‘특수한 부, 교환가치’ 그 자체로 간주된다. 모든 다른 상품소유자들은 각 상품 소유자의 상품을, 일반적 상품으로 필요로 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모든 다른 상품들과 직접적으로 교환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밖의 상품소유자들의 모든 다른 상품들은 각 상품 소유자의 욕구들을 위한 특수한 상품들, 사용가치들 뿐일 것이다. “그러나 각 상품이 자신의 자연형태를 모든 다른 것에 맞서 일반적 등가형태로 나타내면, 모든 상품들은 모든 것을 일반적 등가형태로부터 배제하고, 그 때문에 자신을 자신의 가치크기에 대한 사회적으로 타당한 서술로부터 배제한다.”[45] 그러나 실제적으로 “모든 종류의 사적노동은, 그것 모두가 배타적 종류의 사적노동에 [...] 동일시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성격을 다만 모순적으로 지닌다. 그것을 통해서 배타적 종류의 사적노동이 추상적 인간노동의 직접적이고 일반적인 현상형태가 된다.”[46] 따라서 사적생산물들의 사회적 형태로서의 가치는 특수한 (비사회적) 등가형태에서 적절히 표현될 수 없다. 이것이 화폐 없는 상품들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이는, 맑스의 가치형태분석에서 서술의 진행의 동력이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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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존 그레이 혹은 푸르동의 교환은행-유토피아에서이든, 단순 상품생산에 대한 엥엘스의 가상(허구) 및 그의 공산주의관념에서이든, 이러한 접근들에서 항상 다음이 주장되고 요구된다. 즉 화폐 없는 체계적 상품교환이 기능하며, 기능할 것이라는 것, 각 판매는 동시에 구매일 것이라는 것, 따라서 위기와 ‘불공평’은 폐지될 것이라는 것. 엥엘스에게 공산주의적 공공조직(Gemeinwesen)인 국가(national) 중앙은행은 그 때 그 때의 생산자들의 생산물들에서 대상화되는 노동시간을 확인하는 기능을 떠맡는다. 그리고 “가치의 공식적 증명서, 즉 그의 상품이 가지고 있는 만큼의 노동시간에 대한 수령증”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 1 노동주(週), 1 노동일, 1노동시간 등에 대한 이러한 은행권들(Banknoten)은 동시에 Bankdocks에 보관된 모든 다른 상품들에서 등가물에 대한 지시(Anweisung)로 복무한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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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맑스는 한편으로 이러한 유토피아가 무정부주의적이든지 공산주의적이든지 그것의 의도와 다르게, 국가성(Staatstätigkeit)의 폐지 및 소멸이 아니라, 반대로 국가성의 비대한 확장, 사회의 전체주의적인(totalitär) 초정치화(Überpolitisierung)를 야기할 것이라는 것을 보인다. 은행 및 계획당국은 은행과의 교환에서 속임수의 저지와 노동시간의 확정을 위해, 구체적인 사적 노동들을 끊임없이 감독해야만 할 것이고, 정말로 다양한 노동방식들의 비례적 분배를 위해 심지어 생산부문들에 대해 지도해야만 할 것이다. 은행 및 계획당국은 “일반적인 구매자와 판매자일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생산자”, 따라서 “생산의 전제적 정부이며 분배의 관라자”[49]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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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맑스는 그런 시도의 가치이론적 역설을 비판한다. 즉 직접적으로 교환가능하기 위해서, 사적노동들은 특수하고 사적인 노동들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들은 직접적인 일반적이고 사회적인 노동들이어만 할 것이다. 즉 “처음부터 일반적인 생산의 부분으로 결정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에서 우선 교환이 노동에 일반적인 성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전제된 공통적(gemeinschaftlich) 성격이 생산물들에 대한 참여를 결정할 것이다.”[50] 노동의 사적-분업적 사회화조건들 아래 노동들의 사회적 관계는, 노동들의 (객관적) 동일시, 노동들의 구체적 성격에 대한 도외시, 추상노동(시간)으로의 환원에 존재한다. 이러한 추상노동은 이 사적노동들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사적노동들의 특수한 사회적 형태이다. 추상노동은 가치실체로서 다시 사적노동들 서로의 관계이고, 따라서 “매우 상대적(relativ)이어서, 만약 재생산을 위해 필요로 되는 노동시간이 변한다면, 그것의 가치가 변한다. 그것에 실제적으로 포함된 노동시간이 변하지 않은 채 남아있을지라도 말이다.”[51] 우선 그것의 실제적인 판매, 그것의 화폐로의 전화를 통해, 사적노동은 사회적인 노동으로, 즉 구체적인-개별적 노동은 추상적-일반적 노동으로 실현된다.[52] 구체적 노동시간이 아니라 추상적 노동시간이, 개인의 경험적 노동시간이 아니라 단지 화폐에서만 표현되는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이 가치토대이자 가치척도이다. 가치량을 구성하는 노동시간은 사회적으로 정의되고 결정된다.[53] 그 점에서 추상노동은 단순한 명목추상이 아니라 실제추상이다. 즉 “노동의 추상성은 (반성하는 주체가 [...] 다양한 노동들의 비교에서 밝혀낼 수 있는) 노동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결정들이 아니라, 교환에서 생산물들의 동일시에서 실제적으로 발생하는 (이 생산물들을 생산한 다양한 노동들의 특수한 성격들에 대한) 추상이다.”[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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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는 추상노동을 - 그의 자연주의적 공식화들과 반대로 - 이제 더 이상 인류학적 크기가 아니라, 사적-분업적 생산관계들의 보이지 않는 구조효과로 규정한다. 즉 “그러나 이제 이 사적노동들의 어떤 것도 그것들의 자연형태에서 추상적 인간노동의 이러한 특수한 사회적 형태를 지니지 않는다.”[55] “예를 들어 특수한 생산적 활동으로서의 그것의 소재적 규정성에서 재봉노동은 재킷을 생산하지만, 재킷의 교환가치를 생산하지는 못한다. 노동은 재봉노동으로서가 아니라 추상적-일반적 노동으로서 재킷의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재봉사가 꿰매지 못했던 사회관계에 속하는 것이다.”[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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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간전표-유토피아의 전제들 아래서는 - 다시 한 번: 구체적 사적노동은 이미 사회적 성격을 가진다. - 교환도 구체적이고 사용가치를 형성하는 노동에 대한 실제추상도 발생하지 않는다. 즉 “따라서 개인의 노동(즉 그의 생산물 역시)을 직접적으로 화폐가 되도록 하는 것, 실현된 교환가치[57]가 되도록 하는 것은 다음을 말한다. 즉 노동을 일반적인 노동으로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것, 다시 말해 (그 조건들 아래서 노동이 화폐와 교환가치로 되어야만 하고 사적교환에 의존하는) 조건들을 부정하는 것. 그 요구는 (그 속에서 그 요구가 더 이상 제기될 수 없는) 조건들 하에서만 충족될 수 있다. 교환가치들의 토대에서의 노동은, 개인의 노동도 그의 생산물도 직접적으로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전제한다. 즉 생산물이 우선 대상적 매개를 통해서, 생산물과 구별되는 화폐를 통해서 이 형태를 획득한다는 것을 전제한다.”[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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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처럼, 그러나 그 때문에 “사회주의를 상품과 화폐 사이의 필연적 관계에 대한 기본적 오해로”[59] 해소하는 사람은 푸르동뿐만이 아니다. 개별적 생산자들의 노동시간지출에 근거한 노동의 사회화에 대한 엥엘스의 테제 역시 그 때문에 무의미하다. 맑스 또한 공산주의에 대해 “시간의 경제(학)뿐 아니라 생산의 다양한 부문들에 대한 노동시간의 계획적 분배”[60]를 요구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에게 이것은 “노동시간을 통한 교환가치들(노동들 혹은 노동생산물들)의 측정과 본질적으로 다르다.”[61] 공산주의에서 노동시간은, 구체노동들에 착수되고 사회화에 본질적인 활동절합과 욕구절합(vergesellschaftungsrelevante Fähigkeits- und Bedürfnisartikulation)에 종속된 ‘주관적 추상’을 표현한다. 여기서 노동시간은 노동들의 표준특수적(normspezifisch) 분할을 위해 복무하는 단순한 명목추상이다. 즉 “노동들은 동일한 노동들로 시간에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지 않은 노동들로 이윽고 분할된다.”[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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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회주의에 대한 역설적 관념은 또한, 맑스의 중요하고 살아 있을 때 출판되지 않은 텍스트인 「독일 노동자당의 강령에 대한 평주들」에서 발견될 수 있다. 여기서 분명히, 다른 맑스의 글에서는 그렇지 않은, 그의 가치이론의 고전적이고 전(前)화폐적인 찌꺼기들(Restbestände)이 전면에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오랜 진통 후에 생기”[63]고 아직 자본주의 사회의 “모반(母斑)”[64]이 붙어있는 ‘공산주의로의 이행사회’[65]의 경제적-법적 원리들에 대한 그의 스케치에서, 맑스는 다른 곳에서 자신에 의해 그렇게 근본적으로 비판된 푸르동의 시간전표-구상으로 갑자기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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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에 대항해 그는 처음에, 공산주의의 첫 번째 낮은 국면에서, 즉 “협동조합적 생산수단들, 생산수단들에 대한 공유재(Gemeingut)를 기초로 하는 사회”[66]에서, 행위자들이 그들의 생산물을 교환하지 않고,[67] 그들의 노동은 더 이상 생산물들의 가치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다. 아직 불만족스러운 생산력-발전의 조건들 하에서, (그것으로써 맑스는 아직 그의 시대의 유럽 대륙의 준(準)-초기산업적 상황들을 반영한다.) 그러나 개인들에 대한 소비재의 분배는 아직 ‘각자에게 각자의 실행에 따라’라는 원리로 일어나야만 한다. 여기서 갑자기 푸르동은 맑스의 사회주의의 대부(代父)가 된다. 즉 “개별 생산자의 개인적 노동시간”은 그 생산자에게 “사회”(원문: 교환은행)에 의해 (시간전표의) “증서”의 형태로 영수(領收)된다. 그것으로써 그 생산자는 다시 “소비수단들에 대한 사회저장품으로부터, 같은 양의 노동이 들어간 그 만큼을 집어낸다.”[68] 여기서 사회화원리는 여전히 노동시간, 물론 (푸르동-엥엘스에게서처럼) 개별적 노동시간이다. 그것은 교환되고 자본주의적으로 취득되지 - 사적-분업적 생산자들 사이의 관계 - 않기는 하나, “상품등가물들의 교환에서와 같은 원리”가 지배한다.[69] 가치법칙과 반대로 - 가치법칙에서 구체노동, 시간으로 측정된 ‘개인’(혹은 집단)의 노동은 사회적 총생산물에 대한 그의 몫을 결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특정한 조건들(가치법칙 - 역자) 하에서 다른 이 보다 더 많은 노동시간을 지출할 수 있으나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이 가치크기를 결정함으로 - 역자)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 여기에서는 순수한 실행원리가 지배하고, 분배적 정의[70], 노동(시간)지출 및 노동강도의 척도에 따른 비례적 분배, 따라서 이 척도에 따라 동일한 것에 대한 평등이 지배한다.[72] 결과적으로 그것과 결합된 “평등한 권리”란 “[...] 불평등한 노동에 대한 불평등한 권리”[7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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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前)화폐적-구체주의적으로 사고된 등가물들의 ‘교환’은 - 푸르동과 반대로[74] - 맑스에게 결코 긍정적인 영원한 정의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불평등한 개인들과 그들의 삶의 기회들을 억압적 평등주의에 굴복시키고 “불평등한 개인적 재능과 따라서 실행능력을 [...] 자연적 특권들로 암암리에 승인한다.”[75] 그러나 - 몇몇 독해가들이 주장한 것처럼[76] - 결코 맑스에게 실행원리(소위 기회평등)의 토대위에서의 평등한 출발조건들이, 따라서 아이 수 혹은 재능 같은 더 나아간 차원들의 비교기준으로의 편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화의 분배를 노동시간 지출로부터 그리고 가치에서 비교하는 것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맑스에 따르면 실행원리의 폐지는 전적으로 인간해방의 표시라고 할만하다.[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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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행사회에서의 사회화원리에 대한 짧은 설명들은, 맑스 또한 “‘노동화폐’의 천박한 유토피아주의”[78]를 때에 따라서 선동한다는 것을 보인다. 엥엘스의 전(前)화폐적 가치이론과 무엇보다 여기서 다루어진 구절에 대한 레닌의 교의화에 관련하여, 이 구상은 정당한 사회주의 관념으로 맑스주의 전통으로 들어가서, 베렌스/하프너(Behrens/Hafner)는 다음과 같이 옳게 확언한다. 즉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모든 지금까지의 관념들은 맑스가 푸르동을 예로 들면서 불가능성으로 입증한, ‘직접적 노동가치계산과 유용(Nutzen)계산의 모델’에 의지한다.”[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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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eraturverzeich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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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z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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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EW 13, S. 475.
[2] MEW 13, S. 475; vgl. auch MEW 25, S. 20, 905.
[3] MEW 13, S. 475.
[4] Kautsky (1908), S. XI.
[5] Kautsky (1884), S. 350 [Hervorhebung von mir, I.E.].
[6] Vgl. nur Rosenthal (1973).
[7] Vgl. Mandel (1972) oder Haug (1989).
[8] “그것을 통해, 맑스가 1권의 처음에 [...] 왜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부차적 형태, 이미 자본주의적으로 변화된 상품이 아니라, 단순상품으로 시작하는지가 확실히 분명하게 된다.”(MEW 25, S. 20)
[9] MEW 25, S. 20
[10] Vgl. MEW 25, S. 909.
[11] MEW 25, S. 907.
[12] 개념에 대해 다음을 참조. Thompson (1980).
[13] MEW 25, S. 907.
[14] MEW 25, S. 907.
[15] Vgl. Heinrich (1999), S. 38.
[16] 그래서 하욱(Haug, 1989, S. 121)에게 가치실체는 자연실체로 간주된다. 즉 “‘구체적-유용’노동도 ‘추상적-인간’노동도 결국 자연과정으로 환원되었다.” 맑스-비판은 또한 그의 가치개념에 대한 이러한 자연주의적 이해를 넘어서 가지 않는다. Becker (1972), S. 37 참조. 또는 양가성들에 대한 언급들과 더불어 일지라도, Castoriadis (1981), S. 233f.
[17] Vgl. MEW 25, S. 909.
[18] Vgl. MEW 20, S. 286f.
[19] Vgl. MEW 25, S. 909
[20] MEW 13, S. 638.
[21] MEW 42, S. 178.
[22] 특히 MEW 42, S. 203 참조. 거기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확언한다. “완성된 부르주아적 체계에서 각 경제적 관계는 부르주아적-경제적 형태에서 다른 관계를 전제하고, 따라서 각 정해지는 것은 동시에 전제이다.
[23] Arndt (1985), S. 140; vgl. auch Heinrich (1999), S. 173f.
[24] MEW 23, S. 49 (Hervorhebungen von mir, IE); vgl. auch MEW 19, S. 369: “내가 시작하는 것은, 그 속에서 현사회의 노동생산물이 표현되는, 가장 단순한 사회적 형태이다. 그리고 이것이 ‘상품’이다. 나는 상품을 분석하는데, 그 속에서 상품이 나타나는 형태로 분석한다.”
[25] Vgl. Bubner (1973), S. 65ff., 76f., 84.
[26] Urtext, S. 945.
[27] Urtext, S. 945.
[28] 본보기로『자본』 1권 24장이 그런 역사기술을 보증한다.
[29] Vgl. dazu Heinrich (1999), S. 177.
[30] Vgl. Heinrich (1999), S. 178.
[31] 『자본』 1권에서 본보기로 8장 참조.
[32] 여기서 즉 순수히 사회적인 어떤 것도 더 이상 사물적으로(dinghaft) 나타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추상노동이 엥엘스에 의해 경험적 현상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33] 1867년 6월 16일 엥엘스의 편지와 1867년 6월 22일 맑스의 답장 참조(MEW 31, S. 303-307). 물론 이미 맑스는 1861년 12월 9일 편지에서, 엥엘스 측으로부터의 압박 없이 그리고 오히려 그의 저작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 대한 평론으로 인한 부정적 경험들의 배경 이전에(이에 대해 다음을 참조. MEW 29, S. 462-465.), 다음과 같이 알린다. 즉 “그것은 훨씬 대중적일 것이고 방법(론)은 1부에서보다 훨씬 감춰질 것이다.”(MEW 30, S. 207) 따라서 2판은 이미 대중화의 대중화로 표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 텍스트’(Urtext)에서 아직 명확히 설명되었던 화폐로부터 자본의 이행은, 이미 『자본』 1판에서 거의 예감될 수 없다. 그를 통해 단순유통의 자립성에 대한 관념이 영양공급 받는다. 이에 대해서 특히 다음을 참조. Heinrich (1999), S. 254-257.
[34] 예를 들어 2판에는 빠진 MEGA II/5, S. 30과 43.의 공식화를 참조.
[35] MEW 23, S. 61.
[36] MEW 23, S. 58.
[37] Grigat (1997), S. 20.
[38] MEW 20, S. 106과 260f.를 참조.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힘들은 완전히 자연력들처럼 작용한다. 즉 맹목적으로, 폭력적으로, 파괴적으로. 우리가 그것들을 인식 못하고 그것들을 고려하지 못하는 한 말이다.” 이에 예를 들어 다음이 연결된다. Stalin (1979e), S. 406ff., 487ff. 혹은 Jahn (1968), S. 31ff. 이에 대해 비판적인 것으로는 다음을 참조. Schmidt (1993), u.a. S. 201.
[39] MEW 20, S. 288.
[40] 예를 들어 동독-맑스주의에 대해는 Jahn (1968), S. 31-37., 서독 맑스주의에 대해는 Heller (1976), S. 93f., 125, 129f. 참조. 이에 대해 비판적인 것으로는 다음을 참조. Behrens/Hafner (1991), Reitter (2002), S. 8 및 Kittsteiner (1977), S. 44-47: “사회적 노동이 직접적으로가 아니라 사적으로 지출된다는 것을 뜻하는 [...] 이중형태에서의 노동의 지출은 [...] 직접적인 사회적 노동의 - 현상형태로 표명된다.”
[41] MEW 20, S. 288 참조: “사람들은 악명 높은 ‘가치’의 개입 없이 모든 것을 매우 단순히 배열한다(abmachen).”
[42] Vgl. dazu Heinrich (1999), S. 389.
[43] MEW 29, S. 573. 물론 ‘단순 상품생산’이라는 가상(허구)은 근대 사회고찰의 많은 변종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전통맑스주의적 자본주의 비판에서(엥엘스와 많은 다른 이들), 무정부주의적 화폐비판과 이자비판에서(푸르동, Gesell과 다른 이들), 자유적 자본주의 변증론에서(Carey/Bastiat에서 Friedman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이에 대한 상세한 것은 다음을 참조. Rakowitz (2000).
[44] Vgl. Brentel (1989), S. 140-145.
[45] MEGA II/5, S. 43.
[46] MEGA II/5, S. 42; vgl. auch MEW 42, S. 103.
[47] Vgl. Backhaus (1997), § 11 oder Brentel (1989), S. 325: “‘상품’은 항상 이미 전제된(vorauszusetzend) 상품-화폐-관계로 증명된다.”
[48] MEW 13, S. 66.
[49] MEW 42, S. 89. Vgl. auch Brentel (1989), S. 228-236.
[50] MEW 42, S. 103f.
[51] MEW 26.3, S. 126 (Einklammerungen im Text). Vgl. auch MEW 23, S. 53.
[52] Vgl. MEW 26.3., S. 133.
[53] 추상노동은 노동들의 구체적 내용의 추상뿐만 아니라, 노동들의 ‘구체적이고’ ‘경험적으로 시계로 측정될 수 있는’ 시간의 추상이다. Heinrich (1999), S. 219.와 Reitter (2002), S. 7f. 참조.
[54] Heinrich (1994), Sp. 58f.
[55] MEGA II/5, S. 41.
[56] MEW 13, S. 24.
[57] 맑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에서처럼 『요강』에서 가치와 교환가치를 아직 용어학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당연히 가치가 의미된다.
[58] MEW 42, S. 104f.
[59] MEW 13, S. 69.
[60] MEW 42, S. 105.
[61] MEW 42, S. 105.
[62] Brentel (1989), S. 148; vgl. auch Heinrich (1999), S. 213 und Müller (1969), S. 73-75.
[63] MEW 19, S. 21.
[64] MEW 19, S. 20.
[65] 맑스는 여기서 이것을 ‘공산주의의 첫 번째 국면’으로 부른다. 레닌은 후에 이 첫 번째 국면을, 발전된 공산주의와 대조되는 ‘사회주의’로 부를 것이다.
[66] ? (원문 그대로 - 역자)
[67] MEW 19, S. 19.
[68] 여기서 교환개념은 엄격한 의미에서 역사화된다. 즉 체계적 등가교환의 특수한 경제적 전도형태로 제한된다. (상품)교환, 사회적 상호관계, 거래, 증여(Gabe)를 교환개념 아래 무차별적으로 포괄하는 사람은,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로(Aristoteles)부터 모스(Mauss)에 이르기까지 발생한 것처럼, 완전히 이질적인 범주들과 사회적 형태들을 혼합하고, 가치매개적 사회화의 존재론을 촉진하고 분배와 교환을 동일시하는 모험을 한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것으로는 다음을 참조. Schandl (1999)과 Ritsert (1998), S. 325-327.
[69] Alle Zitate MEW 19, S. 20.
[70] MEW 19, S. 20.
[71] Vgl. Aristoteles (2002), S. 209-211.
[72] Vgl. MEW 19, S. 20f.
[73] Vgl. Ritsert (1997), S. 26.
[74] MEW 19, S. 21.
[75] “자유로운 연합, 생산수단들에서의 평등과 교환에서 등가를 견지하는 것에 제한된 자유는 유일하게 가능하고 유일하게 정당하며 유일하게 진실된 사회형태이다.”(Proudhon [1896], S. 232)
[76] Vgl. Fetscher (1967), S. 187 oder Radbruch (1929), S. 78f.
[77] Vgl. MEW 19, S. 21 sowie MEW 3, S. 528.
[78] MEW 23, S. 109 (FN 50).
[79] Behrens/Hafner (1991), S.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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