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 안 되고 그냥 책을 도구삼아 퇴행하고 있다. 요사이는 근대 떡밥이 재미지다.

 거기에 대해선 숱한 서로  다른 지형도가 있으니...일단 지금 당장 관심이 가는 것은 '모던껄' 이다. 근대는 여성을 어떻게 만들어 냈는가? 혹은 여성이 어떻게 근대를 규정지워 주었는가 하는 것. 그러나 정작 읽은 책들은 그와 별로 직접적인 연관이 없구나...; 재미있었으니까 뭐...

 라고 해도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무겁게 든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 이지민(이지형), 문학동네

 

  이 책에 대한 평 중에 '시대 재현에 충실했다' 라는 것은 없다. 일제강점기 배경의 서사들이 흔히 띄는 숨막히는 애수와 근엄한 비장미 같은 것도 찾기 힘들다. 왜 하필 이 시대를 배경으로 이런 책을 썼는가, 라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한데, 작가는 그에 대해 확고한 생각이 있는 듯. 책 속 인터뷰에 인용된 작가의 말은 한국 사회를 "슬로건과 표어의 사회" 로 정의한다.

 

'하면 된다', '휴지는 휴지통' 에서부터, 세계화, 정보화, 인터넷 대한민국까지. 교실, 사무실, 길거리, 신문, TV, 심지어 껌 포장용지에까지, 눈 돌아가는 곳 어디에나 붙어 있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와 목표들. 온 사회가 마치 수험생의 책상머리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물론, 한 세기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역사적 비극과 시련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그 정도의 의식화 노력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해서 학습하고 터득해서 일정 궤도에서 부지런히 빙빙 돌기를 강요하는 그 모든 표어 딱지들이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 저는 이런 저의 지긋지긋한 못 견딤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 그래서 전 역설적이게도 그 넘쳐나는 대의명분을 뚫고 가기 위해 그 모든 것들이 가장 치열하고 맹렬하게 살아 날뛰던 우리 역사의 최고 암흑기로 시간여행을 가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리의 많은 부분을 규정했던 시대, 그리고 저항과 고통의 시대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들었던 시대를 생각할 때 우리는 거의 항상 충실하게 슬로건들을 되새기고 내면화한다.  이 소설은 의식적으로, 다소 위악적으로 거기서 벗어나고자 한다. 아 좋아 이런거 좋아...설정이 모에요소로 가득 차 있어... 가볍게 나풀거리는 주인공 이해명은 도무지 "역사의식"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위인이다('나는 반성하지 않는다'). 반짝이는 구두, 깨끗한 모자, 세련된 양복 차림으로 경성을 날아 다니며 사랑을 찾아 헤메는 이 쿨한 모던보이에게 식민지인으로 조선 총독부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다지 고뇌할 만한 일이 못 된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이미 죽었기에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고, 그에게 총독부의 푸른 돔 지붕은 대한제국이나 조선의 무덤이 아니라  '나의 둥그런 푸른 무덤' 이다. 결국 소설 말미에서 그는 성공적으로 거기서 도망치는 것 같다. " '나의 둥그런 푸른 무덤' 은 총독의 무덤도 그 누구의 무덤도 아닌, 바로 나의 무덤이므로, 묻힌다면 나 혼자만이 묻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말 도망쳤는가?  한 걸음 물러서서 소설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그리는 지도는 부채꼴로밖에 못 걷는 사람이 걸어간 길을 이은 것처럼 묘하게 한 곳을 향한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일본의 벨 에포크 시대를 맞아 부르주아적 데카당을 온몸으로 재현하는 듯한 유키코의 남편은 총독부 국장으로 시대에 고뇌하는 지식인이다. 낭만적 감수성으로 유키코와 사랑에 빠져있는 신스케도 역시 극동민족소년척후대에게 거짓 노래를 지어내 준 에피소드를 들먹이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나르시즘을 재현한다. 이해명은 다른 곳 아닌 조선총독부  대경성신도시계획회의 연구부서에서 일힌다. 그는 경성의 지도 위로 줄과 금을 그어 경성을 재단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사랑하는 여자를 지옥까지라도 따라가겠다는 '낭만의 화신' 이고 게다가 그가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난파선' 은 조선의 독립을 향하여 장렬하게 돌진한다. 소설은 기이하게 전경과 배경을 겹치고 시대는 불쑥 전경이 되었다 배경이 되었다 한다. 그리고 말미에서 이해명은 생각 없고 개념 없는 모던보이를 단호하고 정련된 방식으로 연기함으로써 그 모든 시대를, 배경을 배반한다. 그러나 이 배반은 결정적이기 때문에 그가 배반한 것들은 다시 전경으로 돌아온다. 결국 우리는 하루키를 가질 수 없는가. 뭐 내가 원한다는 건 아니고 사실은 오히려 싫...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06/11 01:10 2011/06/11 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