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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의끝

선입견인지도 모르겠지만, 서원에 온 이후 시간이 느리게만 가는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면 빨리 지나간 것 같지만 당시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생각하면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고, 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느리게 가 준 것 같다.

 

이번 상반기도 1년같이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수료를 했기 때문에 서원의 수업은 듣지 않았지만,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동안 써놓은 문론(文論)의 양 만큼이나 많은 생각과 고민들이 있었다. 아침부터 독어 학원에 가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적응하면서 낑낑 독어훈련을 받았고, 돌아와서는 조교 일에 치이다가도 다시 공부방에 들러 문론을 깨작거리기도 하였다.

 

문론이야 대로(大老)께서 지시하신대로 주어진 텍스트에 충실하게 분석하고 견해를 제시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정말 대로를 비롯한 어르신들이 보기에 설득력이 있을지 참 걱정이다. 오늘 대로를 뵙고 지금까지 써온 문론 쪼가리를 들고 알현하여 이번 학기 심사를 청구해도 될지를 비롯한 논의를 기대했지만 대로께오서는 간단하게 써온 거 놓고 가고, 심사 지원하라고만 말씀하시고 대화를 끝내셨다.

 

대로께오서 일단 무관심하게 지나쳐주시니 문론을 잘 쓴 건지 안 쓴건지 이게 다 원래 이런 식인건지 잘 감이 오지 않는다. 남은 후반기에 가서 직접 심사를 받아봐야 뭐가 잘못되고 이걸로 통과가 될지 안 될지가 결정될 것 같다.

 

이젠 '나이'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나이이다. 이번에 서원에서 나의 문론을 통과시켜 줄지 말지 결정은 나지 않았지만 이대로 흘러갔을 때, 다시 또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모를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저 가만히 지켜보려 한다. 이건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그 방향으로 꼭 스토리가 펼쳐질 거라 장담할 수 없는 경우인 것 같다. 학위를 받은 이후에야 말로 내 삶의 그릇이 어느정도 인지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너무 운명론적인 것이며 모든 것은 사실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나의 의지를 관철했던 경우에는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감당해야 했다. 이제 또 그런 희생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이젠 그럴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그것이 하나의 결정일 것이다. 운명이기도 하고, 나의 결정이기도 하다. 학위를 받고 나서 나에게 어떤 선택지가 놓여있을 지 자못 궁금하다. 물론 그 선택지는 내 삶이 마련해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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