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2006/10/03 10:33

직선제에 대한 반론

 


부르조아국가 체계를 허물어버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한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매진하는 여러 조직 중 그나마 현실에서의 대안을 열심히 라도 잘못되었던 잘했던 관계없이 제시하는 조직은 노동해방실천연대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새로운 목표가 아니고 자본주의를 대체해야하는 경제사회가 사회주의라는 것은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지하고 있지만, 결과를 알고자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식의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은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이번의 본인의 글에 대해서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하고 자신이 가진 협소한 틀을 깨지 못하고 물귀신처럼 기회주의세력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모습은 혁명적 세력이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에 노동대중의 투쟁력을 오히려 약화 시키고, 힘을 분산시키는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노동대중의 힘이 약하고 지배계급에게 처절하게 짓밟히고 있는 모습은 대중 스스로의 모습이 노동계급의 상층권이라고 하는 노조간부들과의 괴리감, 민주노총에서의 행동이 노동대중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관리들의 이익을  위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됨으로써 노동대중과의 거리감으로 느껴졌다. 이미 노동계급은 피부로는 자신들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는 현실감이 나타나 조직의 형태가 이미 관료화가 되고 있는 형태이다.


직선제가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 “ 상층관료들을 전체 조합원의 이름으로 추인해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라고 주장하는 모습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아직도 인식을 못하는 동지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직선제나 간선제가 가지고 있는 모습은 투표권만 가지고 있다면 하나의 조직에 대한 추인을 가질수 있다 없다의 차이를 주장하기보다는 투표권을 가졌다라는 것 하나가 진정 조직에 대한 계급성을 확보할 있냐라는 점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투표로 뽑아 선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대표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정치제도 속에서 대통령을 국민 전체의 이름으로 추인하는 도구가 될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내용으로 확대가 가능하며 이미 국민의 이름으로 대통령을 추인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변화는 필요 없는 모습으로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 지방의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직선제나 간선제라는 것은  무엇인가? 부르조아 사회에서 지배계급에 대한 지배방식을 합법적으로 유지하기위한 투표방식일 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직선제나 간선제냐의 의미는 단순한 것이다. 진정 무엇이 문제냐 하면 그 조직에 대한 지배력을 누가 어떤 식으로 행사 하는냐에 달려있는 것이지 선거 방식으로 인한 조직에 대한 지배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다. 노동계급이 조직에 대한 열의가 가장 높을 때는 조직이 노동계급의 뜻에 맞게 움직일때이고 그와의 반대는 울산에서처럼 언제나 한나라당으로 표심이 바뀔수가 잇다라는 점이다. 조직이 노동계급에 대해서 열과 성의를 제대로 할려면 그 조직에 대한 통제권을 노동계급이 가져야 한다. 통제권이 존재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선거를 통해서 대리를 뽑았다라고 할지라도 노동대중과의 괴리 속에서 썩어가는 상층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이런 의미에서 “ 임원-대의원 직선제는 참여와 혁신의 고리가 될 수 있”지는 못하고 언제나 부르조아의 물량공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현실은 노동대중의 상하층간의 부조화, 지역간의 연결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자신들의 당면 목소리로만 내세워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런한 모습에서 임원-대의원의 직선제라는 것은 형식적의 의미로나 내용적인 의미로나 적당하지 못하고 노동계급에 대한 조직에 대한 환멸을 더욱더 심화 시킬 것이다. 표심이라고 제시하여 대표성을 부여하자라고 하는 부르조아들에겐 환영받을 일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의 대리(대표가 아니다)로 제시하고자 하는 노동계급에겐 자신들이 통제권을 확립하지 못하는 조직에서는 언제나 소외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사회의 현실인 것이다.


차라리 노조에서의 법개정을 통하여 파업을 할 시에는 조합장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파업위원회를 상설하도록 하고  노동계급에 대한 대리로 인정할 것을 요구해야 하며, 파업위원회의 조직의 건설은 당시 상황에 맞는 팀제 방식에서의 나, 부서 방식 등등에서 단위 소조로서 대의원에 상응하는 대리를 맞들어 평의회 방식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시적으로 운영을 하되 항구적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조직이 부르조아 체제하에서 항시적으로 존재할 때는 언제든지 지배계급의 침탈에 의해서 대리가 대표로 둔갑을 하게 되고 노동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모습보다는 조직의 안위를 걱정하며, 유지하기 위해서  주객이 전도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노동조합이 변질되어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보인다. 조직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유지하고자 한다면 노동계급의 힘에 의해서 유지되고 발전되는 모습이 아닌 지배계급의 채찍과 당근의 사례속에서 변질되어진 것은 언제나 봐도 불쾌한 것이다. 적은 상층부만 변질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다.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리게 보인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동지들! 

진정 필요한 문제는 노동계급에 민주노총에 대한 강제할 수 있는 힘을 갖아야 하는 것이지 민주노총이 노동계급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노조가 노동계급이 부르조아사회에서 합법적으로 노동계급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 낸 것은 노동계급의 힘이다. 물적 개량을 얻어 내는 것도 노동계급의 힘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조직이 노동자의 대표로 만들어 버리고 그것만이 노동계급을 대표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르조아들이다. 적은 수의 적을 만들어 상대할 때만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리가 대표로 변하여 노동계급의 이익보다는 조직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힘이 약화 되었을때 지배계급으로 부터의 침탈을 막아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뿐 그 외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노동계급의 전진을 막아서는 틀로 존재하게 된다. 그런 조직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며 지배계급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강력함을 느끼게 만들게 하려면 조직에 대한 강력한 통제 수단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 방식이 임원-대의원 직선제 선출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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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3 10:33 2006/10/0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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