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의 목표는 노동계급에겐 노동자국가 건설이다. 자본주의체제를 무너뜨리고 노동자들의 세상을 건설해야 하는 것을 목표로 전략적 가치가 주어진다.  한사회의 구성을 새로운 사회의 구성으로 바꾸는 것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해결하고 새로운 모순을 잉태하는 것으로서 현실의 궁극적 목표로서 노동자국가 건설이 완료되는 시점까지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전략의 개념이다. 전략은 반드시 쟁취해야하며, 그것이 단시간 내에 이루어 질수도 잇지만 자본주의체제가 가장 활발히 국가라는 이익집단들이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위해서 이합 집산하는 현실에서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략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각기의 시기마다 각계급간의 상관관계에 따라서 하나의 목표가 주어지는데 이를 전술이라고 한다. 전략적인  질 속에서 각기 상이한 질을 가지고 있는 양적인 존재들인 각 정세들은 당시의 상황에 따르는 계급간의 역관계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계급간의 이해와 요구를 관통하는 쟁점을 잡아서 노동자국가의 모습이 투영된 강령으로서 대중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 전술이다.


전술이 가지고 있는 목표는 전략적인 목표에 종속 되어야 하며, 전술적인 승리는 계급간의 역관계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지배계급이 자신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고자 당근과 채찍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사회를 지배하면서 지배계급은 자신이 들어 줄 수 있는 물적 개량의 한계를 저울질 하며 피지배계급을 어르고 달랜다. 피지배계급의 힘이 약할 때가 있고 강할 때가 있으며, 둘의 힘이 더 이상 물러서지 못하고 충돌을 할 때도 있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물리력이 충돌할 때는 두 계급간의 이해관계가 최고조로 달하며 각 계급간의 성격이 고스란히 들어나는 혁명적인 정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역학관계는 물리력이 약한 피지배계급의 힘이 어느 정도의 통일성을 가지고 지배계급에게 대항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지배계급은 어느 정도의 물적 개량의 한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각 정세 속에서 피지배계급의 물적인 개량의 폭이 좌우가 된다. 물적 개량의 폭을 전술적인 운용의 폭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물적 개량은 지배계급이 자신의 지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담은 여유 공간이라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전술이란 전략에 종속되어진 하나의 개체이며, 이를 활용공간은 그 시대에 흐르는 계급투쟁의 맥을 잡아내는 것에서 시작을 하지만 전략적인 승리를 위해서 주체의 역량을 최대한 보존하고 적의 진영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목표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전술이 가지고 있는 핵심은 노동자국가 건설의 내용이 대중에게 항상적으로 전파 시키는 것이며 한시기 한 시기에서의 패배를 의식하는 행위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승리 한자만이 승리를 했다라고 할 수 있듯이 물적 개량에 대한 호소만을 위해서 쟁취되어야하는 목표가 아닌 것이다. 쟁취하고자 하는 것은 계급의식이다. 자신들의 존재를 알고자 하며 역사에서의 본능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자본주의체제내의 개량에 만족시키는 행위는 계급의식을 희석화 시킨다. 


혁명의 정세 속에서는 각 계급간의 역관계가 국가권력의 중심으로 모아진다고 해도 그 안에서 물적 개량에 대한 요구가 없을 수는 없을 것이고, 물적 개량에 대한 요구는 언제나 자신의 삶의 지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항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다만 권력에 대한 교체 요구가 그 사회를 관통하는 모습이 전체적으로 투영이 되며, 권력에 대한 요구는 모든 계급에서의 요구상황으로서 나타나, 계급투쟁의 정점인 권력 투쟁으로 발현되어 지는 시기 인 것이다. 그 외의 시기에서는 삶의 개선요구로부터 지배계급에게 대항을 시작하는 피지배계급은 자신들의 계급적인 본질을 깨달아가고 권력에 대한 추상적인 혜택을 찾아 헤매고 있다. 쁘띠부르조아정치집단인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 민주노총에 대한 기대 및 건설에서 나타나는 피지배계급의 모습은 자신들이 만들어 논 조직의 모습에서 본능적으로 계급적인 위화감을 갖지 않는 이상 지원과 지지를 끊임없이 받을 것이다. 갈 곳이 없고 자신들만의 조직이 없는 피지배계급의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피지배계급의 사상을 선전과 선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자신들이 가야하는 길을 알지 못하는 피지배계급에겐  방황이라는 것은 시대적인 요구인 것이다. ㅡ 방황하는 자들을 끌어 들이고 순화 시키며 길을 인도해 나갈 수 있는 조직은 현 시기에서는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정당이 필요하다. 아직은 요원하지만 피지배계급의 계급적인 각성의 필요성과 발전적인 전망에 따라서 건설되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ㅡ 피지배계급이 앞으로 나가야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를 주지시키는 것은 전술이 가지는 핵심적인 목표인 것이다. 핵심적인 목표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하며 구체적인 표현은 노동자국가의 모습이 현 시점에서의 모순을 극복한 모습인 강령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강령이야 말로 노동계급이 추구하는 목표며,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지름길이다. 계급간의 역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표현이 바로 전술적 슬로건이다. 계급간의 역학관계를 제대로 집어내어 집약적으로 표현되어진 슬로건은 현재의 시점에서 피지배계급의 역할을 권력투쟁으로 이끌어나가는 매개 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혁명적인 정세 속에서만이 권력을 논의 하지 않는다. ㅡ 대부분의 자본주의국가들은 형식적인 민주주의로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매시기마다 권력에 대한 향수를 피지배계급에게 건네주고 있다. 그 와중에서도 정치에 대한 무신경을 유포시키는 형태도 띠기도 한다. ㅡ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탄압하고 억압하며 착취하는 사회가 계속되어지는 상황이라면 피지배계급의 저항이 시작되어지고 저항은 권력에 대한 투쟁으로 발전 되어지는 것이다. 일반적인 시기에서 노동자계급은 일시적인 물적 개량에 대한 보상으로 투쟁을 멈추게 되는 일시적인 상황은 그것이 바로 계급적인 요구의 본질이라고 느끼게 때문이며 본능적인 행동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본능으로 살아가는 것은 동물이면 족하다. 계급의 존재에서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는 인간은 자신들이 나가야하는 목표를 인식하고 나가야하며, 이를 제대로 반영하고 제시하여 함께 어울릴 수가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물적 개량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자발적이고 구체적인목표를 가진 계급에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미래다. 물적 개량만을 목표로 세운 전술을 가진 기회주의세력에겐 피지배계급의 전진이 두려울 것이다.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준비된 자만이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행동하는 조직에 대해서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는 어느 계급이던지 마찬가지다.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 도발적인 행위는 존재하기가 힘들다. 노동계급의 자주적인 참여와 그 조직과 함께하고자 한다면 조직의 선결과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에 함께 해야 한다. 대중과 함께한다라고 상부는 생각하지만 실지로는 따로 놀고 있고, 대중을 지도한다라고 상상을 하지만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처지에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을 보고 있는 현실에서, 노동계급의 계급의식화 사업을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처지에서 무엇이 그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인지!


전략과 전술은 서로 상충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전략의 총괄적인 부분을 전술의 상세한 부분으로 보완을 하면서 발전을 한다. 실행되고자하는 것은 계급의식화이다. 계급의식화가 진행되어 권력을 장악하던지, 권력을 장악하여 계급의식화가 진행 되는 지는 현재 알 수는 없다. 현실에서 해방연대의 해보자 안돼면 말고 식의 일을 진행하면 언제나 직감은 승리하고 과학은 멀어지는 것이다. 그 조직의 훗날에는 하부와 상부의 괴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예전의 어느 조직에서 하부에서는 과학적인 사고를 키우기보다는 상부의 지침이 우선이고, 대중을 의식화해야 한다라는 방식은 뒷전으로 밀려 일에 매몰되는 기형적인 형태가 띈적도 있다. 하부는 상부의 행동대원으로 전락시켜 상부가 흔들렸을 때 그 조직은 와해가 될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로 나타났다. 전술적인 결의나 행동의 지침이 이루어져 실천을 해야한다면 억지 춘향이를 만들지는 말아라. 무엇인가 일을 내야한다라는 강박관념은 쁘띠부르조아의 사고방식이다. 작금의 현실이 힘들고 괴롭다고 할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라. 한순간에 혁명이 지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기다리고 뜻을 세우며 노동계급에 대한 의식화 사업을 계속해서 해야만 한다. 모든 행동의 지침은 계급의식화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목표는 국가권력 장악하고 유지를 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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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4 17:26 2006/10/0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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