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에 관한 궁상 촛불집회가 민주당의 가세로 조금 더 우측으로 이동했지만 대중의 참여는 늘어가고 있다. 집회의 형식은 민주당의 장외투쟁의 이름으로, 국정원의 선거개입의혹을 조사하기위한 국정조사를 위해서 그리고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차단하기위한 개혁을 요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대중들은 혁명의 열망보단 좀 더 낳은 현실의 삶을 열망하여 개혁을 원하고 행동한다. 민주당은 대중을 자신의 품으로 안고자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을 선도하고 자신의 품안에서 알을 낳기를 바란다. 대중의 개혁열망과 민주당의 개혁열망의 결합은 지금 하나의 방향성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개혁을 위해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을 선도하는 민주당은 의도는 무엇인가를 파악하기 위해서 먼저 개혁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개혁이란 지배계급이 당시상황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개혁이라는 변화가 없다면 지배계급은 그 질서 그대로 자신의 이익에 만족한다는 것이지만 개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배계급내의 암투와 더불어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계급적인 역관계속에서 대중의 운동을 자신의 지배질서 안으로 포섭하고자 하는 행위이다. 주체는 지배계급이며, 대중은 멀리서 바라보고, 성원하고, 청원하는 존재로 만들어 놓은 것이 개혁이 가지는 이유다. 민주당이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자신이 주체가 되고자하는 열망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그 주체는 새누리당, 현 정권인 것이다. 개혁의 주체가 그들이기 때문에 그 외의 개체들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애원하고 싸우고 트집 잡고 하는 일 외에 할 것이 없는 것이다. 대중의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고 그 모습을 축약시켜놓은 것이 현재의 민주당의 모습인 것이다.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진다는 운동단체들의 대응은 몇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로 무대응 이다. 개혁투쟁은 지배질서를 유지시키는 운동이라는 일관된 사고방식으로 스탈린주의적 투쟁방식의 변형형태다. 소위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좌파단체들의 일부가 그렇다. 물론 그들 스스로는 스탈린을 미워하지만 모습은 닮아간다. 두 번째로 일부 단체들이 보여주는 다른 운동과의 연대를 위한 다리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소식들을 전하는 방식을 애용을 한다. 세 번째로는 대부분의 단체 및 개인들의 모습에서 보여주듯이 한정된 주제로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다. 네 번째로는 무정부주의적인 형태로 이도저도아닌 현 정부에 대한 비판 현실에 대한 비판만을 하고 대안도 없이 떠들고 다니는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부류들의 특징은 운동의 관점이 전혀 틀린 것 같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점이 있다. 모든 운동들을 개별화시켜 별도로 다른 운동이라는 것으로 분리시킨 것이다.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그리고 쁘띠부르주아운동을 분리 시켜서 다른 운동과의 연계라는 거창한 계획으로, 노동운동이 앞장서야한다는 당위론적인 사고방식으로 획일화하여 운동의 흐름을 끊어 먹는 데는 프로선수들인 것이다. 어떠한 운동이던지 운동은 발전이라는 모습으로 보여준다. 운동의 발전은 질의 형식을 깨뜨리는 것은 필연이다. 목적을 위해서 또는 목적도 없이 운동을 한다고 해도 질적인 변화를 가로 막는 것이 존재하는 한 장벽을 깨뜨려야한다는 것은 필연이다. 필연이라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질적인 맹아가 더 이상 알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 변화하기위해 알을 깨뜨리고 나올 수 있는 토대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양적인 변화는 질적인 변화를 수반한다. 질적인 변혁을 위한 운동에선 운동의 개별화는 전체성으로 바뀐다. 전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개별화된 운동을 변혁의 전망으로써 바로 잡아야 한다. 국정조사를 위한 촛불집회의 내용에서 연대의 틀을 제시하고 함께하고자하는 방식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방식을 더 하고자 하는 욕심이다. 하지만 대중의 상태를 무시하고 대중에게 여대를 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운동의 대부분의 흐름이 연대를 강조한다. 연대를 해야만이 대중투쟁이 살아난다고 생각을 하고 그것으로 운동의 흐름을 이끌어야 한다고 행동을 한다. 목적은 사라지고 방식이 목적이 된다. 목적은 대중들의 자발적인 투쟁으로 자신들의 세상인 사회주의건설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회인 사회주의 건설이 현재의 목적이다. 그것을 알고 그것으로 가고자하는 것은 목적의식적인 행동이다.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은 의식적인 행동이기에 목적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가지고 대중에게 다가서야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적인 변화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운동의 발전과정에서 변화 발전하는 것이다. 반자본주의 운동이라는 목적이라는 형식으로 자신들의 지적인 과시를 하면서 투쟁의 모습은 목적만 내세워 대중과의 동력을 스스로 차단해서는 안 된다. 운동의 흐름을 장악하기 위해선 대중투쟁의 장에서 그들의 요구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국정원이 문제인 까닭은 그들이 지배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고 그 뜻에 따라서 자신들의 입맛을 바꾸기 때문이며, 그 운동의 효과적인 내용의 사회적인(최소강령, 도는 이행강령)강령으로 운동을 매개하여 하나의 운동의 흐름으로 변화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흐름은 연쇄적인 흐름으로 다른 것을 자극한다. 어떠한 대중의 운동도 무시하거나 한계를 정해서는 안 된다. 현재 운동을 한다는 단체들은 그 안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 대중을 발전시키려면, 현재의 촛불집회에서 연대를 위한 운동이 아닌, 운동의 한계를 정한 것이 아닌 발전을 시키고자 하면 강령으로 대중의 투쟁을 이끌어 내도록 하자. 예를 들어 국정원해체, 기밀문서 폐지 및 공개, 선거개입에 대한 도덕적인 책임을 지고 정권퇴진, 인민대중에 의한 판검사 임명 및 소환제 실시 등등의 요구로 발전 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강령을 토론만 하고 썪어가게 만들지 말자. 만들어 놓은 강령을 사용하고 없는 강령은 그것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면 우리는 채택을 할 것이다. 대중에게만이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스탈린주의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무장된 사회주의 또는 반자본주의운동을 한다는 대부분의 조직에서 더 많이 필요하다. 사회혁명은 그러한 변화에서 맹아를 찾아 우리에게 다가 올 것이다. 혁명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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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1 14:10 2013/08/1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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