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 퇴임? 국정조사 철저? 요즘 촛불집회가 한참 진행 중이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지 대중들은 그들만의 대안을 찾아서 자신의 의지를 모아서 대중민주주의라는 틀을 갖춘 채로 시청앞 광장에 모여서 외쳤다. 대중가요도 부르고 민중가요도 부르면서 집회의 주최 측이 누구인지 모른 채로 놀러 갔다. 국가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을 했다는 모양새가 인터넷에 댓글을 올려서 여론몰이를 했다고 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여 국정조사를 철저히해야한다는 대안 아닌 대안으로 대중의 여론을 끌어가고 있다. 여론몰이는 여론에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언론과 정치인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국정원의 여론몰이보다 더 무서운게 조중동의 여론 조작인데, 신문 방송에서 떠든 것 보다, 국가기관의 형식을 갖춘 중립적인(?) 기관에서 본분을 잊어버린 채 정권의 재 창출을 도왔다는 것만으로 커다란 죄를 가진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한가지를 생각해보자. 국정원이 언제부터 중립적인 기관이었는가? 그 중립의 위치는 어디를 기준을 하는 것인가? 민간인 사찰을 수시로 해왔던 국정원 기무사 등등의 국가 기관들은 명분과 대의를 지배하는자들을 위한, 지배하는자들에 의한 기관으로 자신의 자리를 잡아 왔다. 그들의 비밀은 국가 기밀로 분류해 왔고, 그 기준은 그들이 정한다. 객관은 사라지고 주관이 존재할 뿐이다. 그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조사할 수 있는 기관은 지배하는자들을 돕는 국가기관들은 아니다. 경찰이 그랬고, 검찰도 그래왔다. 국회에서의 국정조사는 어떠한가? 현재의 정부가 존재할 때 기득권을 챙길 수 있는 기관중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관이 입법부인 국회인 것이다. 민주당 새누리당 및 기타군소정당들은 그 안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가지고자 아전인수격인 싸움을 한다. 한번 기득권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자 타인의 양심을 판다. 개개인의 의원들은 양심적인 행동을 하겠지만 집단의식은 변하지 않는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여권과 야권의 차이일 뿐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한 수구정당임은 변하지 않는다. 지역기반이 틀리다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다.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면 부르주아민주주의 형식적인면에서도 대통령은 사퇴해야하고 선거는 다시 치러져야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그것에 일언반구도 없다고 해도 닉슨의 예처럼 사퇴는 기본이다. 그것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집권을 했을 때 그 부분에서 양보를 받기위함이고, 가부장제적인 국가기관의 장을 밀어냄은 대중의 투쟁의 고무시키는 계기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가원수라고 칭하는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다면, 사퇴를 강하게 요구하는 상황이 된다면, 민주당은 닭 쫒던 개가 되는 심상이 더 큰 것이다. 대중들은 투쟁의 고양기엔 누구보다 앞서나가 행동한다. 전위가 후위로 빠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그들은 그것을 두려워한다. 이러한 현재적 상황에서 사회주의를 외치는 소위 좌파단위에선 무엇을 하고 있나? 소부르주아적운동이라고 치부하고 방관만하고 있다. 현재 대중들의 투쟁은 계속 고양되고 있지만 추진력은 언제나 쉽게 꺼지는 수입소고기개방반대촛불처럼 언제 쉽게 꺼질 가능성이 높다. 그 추진력을 높게 한다면 국정조사철저, 국정원장 해임 등등을 외치는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그것의 대안은 사회주의적 대안이거나 이행기적 대안으로서 최소 강령적의미를 가져도 무관하다. 대중투쟁은 그 틈새를 비집고 나오려고 애를 쓰지만 그 틈을 메워주는 것은 방관하고, 포기하고 다른 곳에서 놀고 있는 소위 진보적 사고방식을 가진자들이다. 이 상황에서 강력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국정원해체, 국가기밀 폐지 및 전면 공개, 인민대중들에 의한 사법기관의 선출(검사 판사) 등으로 우리의 목소리를 외쳐야 한다. 대중들의 작은 투쟁의 흐름은 언제나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그 흐름은 부르주아사고방식의 개혁만 요구했을 뿐,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현대화시키는 계기로 나타났을 뿐이다. 사회주의라고 푯말을 들고 잇는 모든 이들은 대중의 투쟁의 흐름에 뒷북을 치고, 그 흐름이 막혔다고 주저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우리에겐 대중과 함께 대중을 사회주의 사고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건설하고자하는 목적으로 우리의 운동은 가는 것이다. 그것이 다만 현재사회에서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뿐이다. 혁명은 구경만하고 주저앉은 그대들에게 오지 않는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는 것이다. 기회를 만들자. 능동적인 참여와 혁명적인 의식으로 무장하고 과학적인 대안으로 대중과 함께 세상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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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4 18:10 2013/07/1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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