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없이  2013/07/28 11:38

2013/07/28

며칠전에 페북을 보다가 누가 쓴 글인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개혁이라는 제목의 글을 섰다. 핵심은 개혁은 지배질서를 유지시키는 도구이기 때문에 변혁을 해야한다라고 주장을 한 것이다. 변혁을 해야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누가 봐도 옳은 이야기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글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계속해서 나의 머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머물고 있으면서 나에게 한없이 질문을 한다. 변혁운동을 하기위해선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하고, 어떻게 전진을 시킬 것이며, 개혁이 없이 변혁운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지라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쏟아냈다. 개혁과 변혁은 서로에게 변증법적인 방법으로 접근을 해야지, 무엇이 옳기 때문에 당위성 때문에 변혁에 올인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러시아 혁명에서 볼셰비키는 1915년 이후 그들은 대중에게 빵 토지 평화를 요구하도록 개혁적인 내용으로 다가섰다. 그들은 혁명을 하라고 요구한 것은 없다. 대중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현재의 자본주의적 모순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 것인가 첨예한 계급모순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부차적인 것인가에 따라서 개혁적인 운동의 모습도 혁명적인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변혁운동은 변증법에서 이야기하는 양과 질의 변화에 즉각적이 반응을 한다. 우리가 변혁을 하고자하면 강령으로 대체하여 대중의 투쟁의 현장에 들어가야한다라고 누누이 본인은 주장을 했다. 개혁은 지배질서를 유지시키는 계기도 되지만, 대중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기폭제로 만들어 갈수 잇는 것은 강령이다. 본인이 사회주의적 강령으로 대중과 함께가야한다라고 하는 것은 강령은 실행이 계급적인 역관계에서 실행이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지만, 강령은 대중이 인간답게 살기위한 사회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강령을 중심으로 투쟁의 고리를 잡아야 한다. 강령의 형식적인 모습은 개혁적인 것이다. 그러한 개혁을 무시하는 한, 계급운동은 언제나 퇴보를 거듭할 뿐이다. 아무리 국정원의 개혁을 이야기 했다고 하더라도. 대중의 개혁의 의지를 무시하지 말고, 대안을 제지하라. 개혁이 양이면 변혁은 질이다. 양의 변화는 질적인 변화를 수반한다. 질적인 변화는 양적인 확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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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8 11:38 2013/07/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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