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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1 <나탈리 사로트와 소설> 요약발제문 -1

해석에 반대한다. 수전 손택.

나탈리 사로트와 소설.

 

교훈주의는 실로 예술의 현대적인 요소이다.(1966년) 교훈주의의 중심 교리는 예술은 발전 해야하고, 그리하여 해당 장르를 진보시키며, 더 나아가 새로운 기법을 창조하는 것이 주요 목적인 것이다. 이 경우에는 예술이 친숙하거나, 즐거움을 주는 매체라기 보다는 교훈적이고 충고조의 작품이 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작품의 예로는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 스타인과 베케트가 쓴 산문, 베베른과 불레즈가 작곡한 음악이 있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장르는 이러한 경향, 책의 표현대로 전장에 멀리 떨어져 있다. 소설은 19세기 예술의 원형적인 형식으로서, 당대의 현실에 대한 철저히 현세적인 개념, 진정으로 야심에 찬 정신을 갖고 있지 못한 현실, '흥미로운 것'의 발견, E. M. 시오랑이 “하층 계급의 운명”이라고 부른 것을 완벽하게 확인 시켜준 장르이다. 소설은 사회속에 인간을 다룬다. 소설은 세계를 그대로 모방해 인물을 배치한다. 이 같은 기존 서사 형식에는 소설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는 요소들이 빠져있다. 이러한 서사 형식은 심리를 발견했다거나 주제를 ‘경험’으로 치환하지 못했다. 소설이 열려있는 형식이 된 것은, 바로 이처럼 ‘경험’을 기록하고자 하는 열정, 사실에 대한 열정에 있다. 모든 예술 형식에는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경험계를 초월하는 일련의 절대적 기준이 적용되나. 소설은 앞서 서술한 이유로 어떠한 정보든지 구성이든지 생각을 수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소설은 재미가 있다. 그러나 음악, 조형미술 등 예술의 진보라는 교훈주의를 좇고 19세기 리얼리즘이 지녔단 교리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는 동안 소설이란 예술 형식은 20세기 내내 그 어떤 것도 자기 것화 하지 못한 체 속물주의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결국 우리 시대(1966년 이후)의 소설은 예술의 ‘진보’라는 생각, 전위라는 은유에서 보여주는 전투적인 이데올로기 같은 미심쩍은 관념들에 연루될 수 밖에 없다. 결국 이는 소설이 독해되어야 하는, 몇 번씩 다시 읽어 뜻을 해석해야하는 된다는 것이고 이는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는 짓일 것이다. 잘난 체하고 꼰대적인 책들이 범람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들은 두 가지 흐름으로 주로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다. 초기에는 모리스 블랑쇼, 조르주 비타이유, 피에르 클로스프스키가 이끌었다. 두 번째 흐름은 1950년대의 저자로, 미셸 뷔토르, 알랭 로브 그리예, 클로드 시몽, 그리고 나탈리 사로트가 봅힌다. 이들의 공통점은 19세리 리얼리즘 전통에 따라 성격을 묘사하는 것이 소설의 임무가 아니며, 심리라는 관념을 버리겠노라고 맹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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